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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치러진 전국동시지방선거는 미디어 환경의 변화를 선명하게 드러냈다. 유튜브, 틱톡, 인스타그램 릴스가 유권자의 선택에 큰 영향을 미쳤고, 이들 플랫폼을 통한 시사·정치 콘텐츠가 승패를 가르는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저널리즘 의제 설정 기능의 변화 양상과 함의를 짚어본다. 편집자 주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이하 지방선거)가 끝나자 승패의 책임을 가리는 익숙한 풍경이 펼쳐졌다. 다만 이번에는 책임의 대상이 달랐다. 한 진영의 패인으로 지목된 것은 상대 정당도 후보도 아니었다. 다름 아닌 유튜브의 시사·정치 채널이었다. 누구를 밀고 누구를 배격하는 방송이 내부를 갈라 결집을 무너뜨렸다는 것이다. 유튜브가 정치에 개입한다는 지적은 새롭지 않다. 이제는 유튜브의 시사·정치 콘텐츠가 언론의 외양을 빌린 해설을 넘어 승부에 가담하는 ‘플레이어’로, 나아가 패배의 원인으로 호명되기에 이르렀다.

책임론은 특정 채널의 영향력 문제를 넘어선다. 선거를 둘러싼 편집의 권한이 바뀌고 있다는 징후다. 언론학은 오래전부터 이를 의제 설정의 문제로 설명해 왔다. 언론은 무엇을 생각하라고 명령하지는 못해도 무엇에 주목할지에는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어떤 사안을 키우고 어떤 사안을 묻을지, 그 현저성의 전이(transfer of salience)는 언론의 편집 과정에서 꾸준히 일어났다. 신문 1면과 9시 뉴스의 머리기사가 곧 그날의 의제였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드러난 미디어의 지각변동은 의제 설정 이론 자체보다 그 이론이 기대어 온 미디어 환경의 전제를 다시 묻게 한다. 무엇이 선거의 의제가 되는가. 그 현저성을 빚는 자리가 더 이상 편집국에만 있지 않다.
편집국의 선택에서 플랫폼의 배열로
무엇이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지를 결정하는 방식은 미디어 환경의 변화와 함께 달라져 왔다. 활자 시대에 그 권력은 지면을 짜고 무엇을 실을지 결정하는 자리에 있었다. 영상 시대에는 한정된 채널과 편성표가 무엇을 언제 보여 줄지를 통제했다. 인터넷과 스트리밍이 연 상호작용의 시대에는 플랫폼 운영자가 그 자리를 이었다. 그리고 데이터와 알고리즘이 지배하는 지금, 무엇을 보이게 할지를 실질적으로 좌우하는 것은 추천과 배열의 질서다. 가시성을 결정하는 권한이 사람에게서 알고리즘으로 넘어간 것이다.
2026년 지방선거는 그 교체를 선명하게 드러냈다. 후보의 인지도는 더 이상 공약의 무게나 검증의 깊이만으로 쌓이지 않는다. 유튜브 쇼츠와 틱톡, 인스타그램 릴스의 반복 노출 그리고 포털의 노출 순서가 인지도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한 후보를 알게 되는 경로는 그가 무엇을 말했는가가 아니라 그의 어떤 장면이 얼마나 떠올랐는가로 결정된다. 선거 정보는 설명에서 장면으로, 논증에서 인상으로, 공약에서 표정과 한 문장으로 압축된다. 보도는 기사와 리포트의 형식을 넘어 클립과 컷의 단위로 잘리고 그렇게 잘린 장면은 다시 피드 속에서 증폭된다.
결정적으로 피드 위에서는 며칠을 들여 검증한 보도 한 컷과 몇 분 만에 지어낸 가공물 한 컷이 ‘도달’이라는 단일한 척도로 나란히 환원된다. 알고리즘은 어느 컷이 사실인지보다 사람들을 얼마나 더 오래 머물게 하는지에 민감하다. 사실성보다 반응, 검증보다 체류, 맥락보다 반복이 앞설 때, 보이는 것은 곧 중요한 것이 된다. 보이는 것이 의제가 되는 선거였다.
공동의 광장과 각자의 피드
변한 것은 의제의 생산만이 아니다. 의제가 모이고 부딪치는 공간인 공론장도 함께 갈라졌다. 지난 광장 정치의 장면을 겹쳐 읽으면 차이는 선명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 보수 세력이 모인 태극기 집회와, 이른바 조국 사태를 거치며 진보 세력이 결집한 서초동 집회는 갈라선 진영이었으나, 적어도 같은 거리에서 같은 장면을 마주 보았다. 오늘날 플랫폼의 추천 알고리즘은 하나의 광장을 각자의 화면으로 분할한다. 저마다의 피드에는 관성적인 정치 메시지만 흘러든다. 한 시민이 보는 화면과 그 옆 사람이 보는 화면은 더는 같지 않다. 같은 날 같은 선거를 치르면서 저마다 다른 선거를 본다. 공동의 장면은 사라지고 개인화된 화면만 남는다.
태동기부터 정치적 입장과 분리될 수 없었던 유튜브의 공표된 정파성은 같은 성향만 끌어모으는 알고리즘의 공명과 맞물려 이 분열을 가속한다. 여기서 시사·정치 유튜브는 선거를 전하는 매체가 아니라 선거에 개입하는 행위자가 된다. 전통 저널리즘의 외양과 권위는 선택적으로 빌려 오되 검증과 책임은 같은 무게로 지지 않는, 이른바 ‘저널리즘적 실천’의 비대칭이 선거 국면에서 증폭된다. 쟁점은 책임의 소재보다 경계의 붕괴다. 선거를 전하는 일과 선거에 가담하는 일이 더는 쉽게 구분되지 않는다.
가시성을 둘러싼 경쟁은 딥페이크라는 기술과 결부되며 폭발적으로 격화된다. 선거를 일주일가량 앞둔 지난 5월 27일까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딥페이크 게시물 삭제 요청은 1만 319건에 달했다. 이미 2025년 제21대 대선 기간 전체 삭제요청 건수의 98.2%에 이른 수치다.1) 조작된 영상의 목표는 모두를 완벽히 속이는 데 있지 않다. 잠깐 흔드는 것으로, 공적 사실을 함께 딛고 설 바닥에 균열을 내는 것으로 충분하다. 무엇이 보이느냐의 경쟁이 극단에 이르면 무엇이 실재하느냐의 감각마저 흔들린다. 선거는 사실의 경합을 넘어 의심을 증폭하는 기술의 장이 된다.
검증 없는 신뢰, 가시성의 우위
유튜브의 ‘저널리즘적 실천’을 비판적으로 논해 온 연구자로서, 검증 책임이 생산자보다 수용자에게 전가되는 구조를 지적해 왔다. 2026년 지방선거는 그 떠넘김이 한 걸음 더 나아갔음을 보여 준다. 이제 검증은 수용자가 아니라 알고리즘의 가시성 규칙에 위탁된다. 무엇이 참인가를 가리는 일이 무엇이 더 보이는가를 가리는 일에 자리를 내준 것이다.
그렇다고 저널리즘의 몫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플랫폼이 가시성을 배열할수록 저널리즘이 해야 할 일은 외려 분명해진다. 더 많이 보이게 하는 경쟁이 아니라,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을 함께 따져 물어야 하는지 가려내는 일이다. 이 일이 무너진 자리에서는 불신이 자란다. 일찍이 필자가 유튜브 득세의 국면을 ‘불신의 시대, 맹신의 유튜브’로 명명했을 때, 그 불신은 전통 저널리즘이라는 과녁을 향하고 있었다. 이제 그 의심은 보이는 것 전부로 번져 과녁을 잃었다. 그리고 과녁을 잃은 의심은 끝내 더 그럴듯해 보이는 쪽에 투항한다.
무엇을 보이게 하고 무엇을 보이지 않게 했는가. 2026년 지방선거에서 드러난 한 답은 추천과 배열의 알고리즘이었다. 그러나 어떤 컷이 사실이고 어떤 물음이 공동체에 값진가를 가르는 일까지 추천과 배열의 질서에 위탁할 수는 없다. 남은 질문은 무엇을 더 보이게 할 것인가가 아니다. 무엇을 함께 검증하고 따져 물을 것인가다. 2026년 지방선거가 우리에게 남긴 것은 답이 아니라 바로 이 질문이다.
1) 양정우, <‘6·3선거’ 앞두고 허위·가짜뉴스 급증…하루 평균 12.5명 적발>, 연합뉴스, 2026.5.28, https://www.yna.co.kr/view/AKR202605281328005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