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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과학, 경제학, 사회학과 문학, 예술까지 100권의 고전을 영상 콘텐츠로 제작한다. 막대한 비용과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대형 프로젝트가 연상되지만, EBS는 AI로 이를 현실화했다. AI 기술로 시작된 인문학 아카이빙의 여정을 따라가 본다. 편집자 주
숏폼 콘텐츠와 자극적인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다. 알고리즘이 띄워주는 30초짜리 영상을 멍하니 넘기다 보면 문득 허무해질 때가 있다. 도파민은 채워지는데 머릿속은 오히려 텅 비어가는 느낌. 많은 사람이 이 갈증을 채울 뭔가를 본능적으로 찾고 있다. 그게 결국 인류가 수천 년간 검증해 온 ‘고전’이라는 것도 다들 어렴풋이는 알고 있다.
문제는 엄두가 안 난다는 점이다. 당장 벽돌만 한 원전을 보면 진지하게 마음먹은 독자도 멈칫하기 마련이다. 기존의 고전 강의 영상들 역시 아쉬움이 적지 않았다. 강사 한 명이 혼자 내용을 설명하는 강의식 구성은 금방 지루해지기 쉬웠고, 제작비의 한계로 방대한 고전을 제대로 파고들기도 어려웠다.
‘인류의 위대한 유산을, 요즘 기술로 생생하게 부활시킬 수는 없을까?’ 이 프로젝트는 오직 이 질문 하나에서 시작됐다.
100권의 고전, 1,000강이라는 무모한 도전
기획을 시작하며 처음부터 선을 하나 그었다. 책 한 권을 10분짜리 영상 하나로 때우는 수박 겉핥기식 요약은 하지 않겠다는 것. 역사에 획을 그은 고전 100권을 골라, 한 권당 에피소드를 10개 안팎으로 쪼개 제대로 들여다보고 싶었다. 계산해 보니 총 1,000강이 나왔다. 분야는 문학, 역사, 철학부터 과학, 예술, 경제, 정치, 사회까지 인간의 사유를 담은 8개 영역으로 정했다. 어느 한쪽으로 쏠리지 않는 지식 지도를 만들고 싶었다. 전례 없는 규모다.
기획 초기에 이 숫자를 꺼냈을 때 주변 반응은 뻔했다. “그걸 언제 다 만드냐”라는 것이었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기존 방식대로라면 PD, 작가, 세트디자이너, 촬영, 편집, 조명, 음악 감독 등이 팀을 꾸려 수년간 매달려도 장담하기 힘든 분량이니까. 우리는 이 문제를 AI를 통해 극복했다.

사람은 뭘 하나요? ‘100% AI 제작’의 의미
‘100% AI 제작’이라는 말을 쓰면 꼭 받는 질문이 있다. “그럼 당신은 뭘 하나요?” 버튼 하나로 영상이 뚝딱 나오는 것이 아니냐는 거다. 그 오해를 먼저 풀고 싶다.
지금 제작 과정은 이렇게 굴러간다. 원전을 읽은 뒤 거대언어모델(LLM)로 원전의 핵심 내용을 뽑아 방송 언어로 스크립트 초안을 잡는다. 비주얼은 나노바나나(Nano Banana)로 콘셉트를 잡고, 힉스필드(Higgsfield)와 클링(Kling), 베오3(Veo 3) 같은 AI 비디오 툴로 정적인 이미지에 움직임을 입힌다. 배경음악은 수노(Suno)로 새로 만들고, 일레븐랩스(ElevenLabs)의 AI 보이스로 내레이션을 얹는다. 원문 탐색부터 번역, 자막 작업까지 하나의 흐름 안에서 연결된다.
자료 조사, 이미지 렌더링, 음악 작곡처럼 손이 많이 가는 일을 AI가 맡는다. 사람은 그 결과물을 보면서 방향을 틀고, 고치고, 최종 결정을 내린다. 과거라면 대규모 팀이 몇 달간 매달려야 했던 영상을 지금은 훨씬 압축적으로 완성할 수 있다.
다만 한 가지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AI가 인건비를 줄여줄 것 같지만, AI 구독료와 인프라 비용은 생각보다 빠르게 불어난다. AI는 ‘결코 싸지 않다’는 것을 현장에서 직접 느꼈다. 어떤 툴에 얼마를 쓸지 계산하는 안목도 이제 디렉터의 능력 중 하나가 됐다.
장면마다 달랐던 철학자의 얼굴
시행착오는 일상이었다. 초기에 AI로 철학자나 역사 인물을 만들어 놓고 보면 꼭 박물관 동상 같았다. 어색하고 묘하게 기괴한 느낌, 흔히 말하는 ‘불쾌한 골짜기’가 화면에서 줄줄 흘러나왔다.
돌파구는 의외로 사소한 데 있었다. 멈춰 있는 그림 대신, 인물의 눈빛이 잠깐 흔들린다거나 옷자락이 바람에 살짝 나부끼는 디테일을 비디오 툴로 심어봤다. 그제야 영상에 숨이 들어오는 느낌이 났다.
인물의 시각적 일관성(consistency) 문제는 지금도 씨름 중이다. 같은 인물인데 장면이 바뀌면 얼굴이 묘하게 달라지는 건 AI 영상의 고질병이다. 프롬프트를 수십 번 고쳐 쓰고, 레이아웃을 고정하는 후가공을 반복하는 수밖에 없다.
더 지독했던 건 AI의 ‘시대착오(anachronism)’ 문제였다. AI의 시간 감각은 생각보다 엉망이다. 1830년대 런던을 배경으로 장면을 뽑아달라고 하면, AI는 아무렇지도 않게 화면 뒤편에 시계탑 빅벤(Big Ben)을 그려 넣는다. 빅벤은 1859년 완공됐다.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의 《자유론》 강의라면 모를까,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장면에 빅벤이 등장하는 순간 그건 명백한 고증 오류다. AI에게 ‘런던’은 곧 빅벤이다. 관광 사진 속 런던의 상징이니까. 소품 하나, 건축 양식, 의상 하나까지 AI가 제멋대로 섞어놓은 가짜 도상들을 사람이 눈을 부릅뜨고 잡아내야 했다. 화려한 툴 뒤에서 이런 조용한 싸움이 매일 벌어지고 있다.
AI가 쓴 스크립트, 그냥 믿었다간
지식 콘텐츠에서 팩트는 생명이다. 그런데 AI는 가끔 존재하지도 않는 인용구를 태연하게 지어낸다. 역사적 사실을 교묘하게 비틀기도 한다. 이른바 ‘환각(hallucination)’이 이 프로젝트의 가장 큰 위협이었다.
문제는 영상이 정교해질수록 더 커진다. 화면 속 철학자가 실제 인물처럼 느껴질수록, 시청자들은 아주 미세한 오류까지 찾아내기 시작한다. “애덤 스미스 발음에 왜 미국 남부 억양이 섞여 있냐”라는 지적, “호메로스가 들고 있는 리라의 현이 7줄에서 8줄, 다시 7줄로 바뀌고 있다”라는 지적 등이다. 핍진성이 높아질수록 기대치도 함께 높아진다.
막는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AI가 쓴 스크립트는 반드시 해당 고전을 전공한 박사급 연구자에게 보내 크로스체크한다. 팩트가 맞는지, 개념이 슬쩍 왜곡된 건 아닌지 꼼꼼히 검수한다. 초안이 통째로 엎어지거나 빨간 펜으로 가득 차 돌아오는 일이 생각보다 잦다.
한 가지 내부 원칙도 세웠다.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의 실제 사진은 AI로 영상화하지 않는다. 사진을 영상으로 바꾸는 순간, 그 자리에 카메라가 있었던 것처럼 보이게 되고 역사 기록이 오염될 수 있기 때문이다. 보관되는 모든 클린본에는 반드시 ‘AI 생성물’ 표기를 달도록 의무화했다. 영상이 아무리 예뻐도 내용이 틀리거나 기록을 왜곡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기술이 앞서갈 때, 사람이 붙잡아야 할 것
AI 기술은 자연스럽게 1인 제작 시스템을 유도한다. 혼자 모든 걸 할 수 있다는 건 분명 매력적이다. 그런데 그 매력이 때로는 함정이 된다.
《군주론》 편을 작업하던 중이었다. 마키아벨리(Niccolò Machiavelli)가 실제로 당했던 고문 장면을 AI로 구현했는데, 결과물이 너무 생생했다. 팀원 모두 진짜 같다며 감탄했다. 역사적 사실에 충실한 재현이었고, 기술적으로도 완성도가 높았다. 그런데 잠시 후 누군가 이런 말을 꺼냈다. “우리가 이걸 실제로 촬영했다면 굳이 찍었을까?”
대답은 명확했다. 찍지 않았을 것이다. 고증에 충실하다고 해서 모든 장면을 다 담아야 하는 건 아니다. 실제 촬영 현장이었다면 연출자 스스로, 혹은 주변의 누군가가 진작에 선을 그었을 테다. 하지만 AI로 만든 영상이다 보니 신기함과 기술적 흥분이 그 감각을 잠시 마비시켰다. 결국 심의실의 지적을 받고 해당 장면을 삭제했다.
이 일이 꽤 오래 머릿속에 남았다. AI는 만들 수 있는 것의 범위를 훨씬 넓혀주지만, 만들어야 하는 것의 기준은 넓혀주지 않는다. 오히려 기술이 강력해질수록 그 기준을 붙잡고 있어야 할 사람의 감각이 더 중요해진다. 원문 인용 방식, 자막 처리, AI 생성물 표기 의무 등을 담은 제작 가이드라인을 계속 업데이트하며 팀과 공유하는 것도 그래서다. 기술이 아무리 빠르게 달려도, 최종 편집자는 사람이어야 한다.

ⓒ임시진
AI라는 파도에 올라타라
<AI 고전 역사를 바꾼 100책> 시리즈를 보는 분들이 고전을 유리 진열장 너머 유물로 보지 않았으면 한다. 지금 우리가 붙들고 있는 문제, 오늘 마주한 혼란에 실마리를 던져주는 무언가로 쓰이길 바란다. 가장 새로운 기술로 가장 오래된 지혜를 꺼내 보는 경험, 그것이 이 ‘1,000강 대장정’이 하고 싶은 말의 전부다.
비슷한 고민을 하는 현장의 동료들에게도 한마디 보태고 싶다. ‘AI가 내 일자리를 뺏으면 어쩌지’라는 두려움이 드는 건 당연하다. 나도 처음엔 그랬다. 그런데 직접 써보고 나서는 생각이 달라졌다. AI는 내 머릿속에 있던 거대한 상상력을 꺼내주는 도구다.
이제 진짜 질문은 따로 있다. 기술이 아니라,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가. 그 안목과 기획은 AI가 대신해 줄 수 없다. 두려워하지 말고 올라타서, 예전엔 감히 엄두도 못 냈던 이야기를 만들어 가시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