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상세
1955년 전쟁고아 보호를 명분으로 시작된 우리나라의 해외 입양 역사는 70여 년에 이른다. 해외 입양이 이처럼 장기간 지속된 배경을 정치·외교·제도 등 입체적으로 규명하고 다양한 현장의 목소리를 통해 사회적 관심을 끌어낸 아시아경제의 기획 보도 취재기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지난해 12월 26일, 정부는 해외 입양을 단계적으로 중단하는 방안을 내놨다. 국내 아동의 입양은 국내 입양 등 국내에서의 보호를 우선으로 하고 해외 입양은 중장기적으로 중단하겠다는 얘기였다.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에서 해외 입양이 여전히 이뤄지고 있다는 현실에 놀랐는데, 이를 ‘단계적’으로 중단하겠다는 계획은 더 충격적이었다.
이 같은 정부 발표를 계기로 아시아경제 사회부 행정팀 소속 3명의 기자(배경환·오주연·김보경)는 4월 보도를 목표로 약 3개월간 공동 취재에 착수했다. 취재팀은 그동안 해외 입양 체제가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 해외 입양인들의 목소리, 해외 입양의 실질적 종결 과제 등을 중심으로 각자 맡은 파트를 세분화해 접근했다.
기록으로 되짚은 해외 입양 70년
그동안 해외 입양의 역사와 이면을 조명한 보도는 단발성 기사뿐 아니라 기획 기사 형태로도 이어져 왔다. 취재팀은 보다 근본적으로 해외 입양 제도의 뿌리부터 찾아내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이를 위해서는 해외 입양 제도에 법적 정당성을 부여한 국회 기록부터 찾아야 했다. 외국인이 우리나라 고아를 입양하는 절차를 간소화한 「고아입양특례법」이 발의된 1955년부터 미아(迷兒)의 해외 이주 허가를 제한한 1994년까지 국회의 기록을 뒤졌다.
국회 회의록에서 이 기간 국내 및 국외 입양을 다룬 회의가 총 56번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본회의와 상임위원회 기록을 모두 살펴 ‘해외 입양’만을 다뤘던 8차례 회의에 집중했다. 회의록을 일일이 확인하는 작업에 긴 시간이 소요됐다. 입양이라는 직접적인 단어를 쓰지 않고 ‘위탁’이나 ‘아이를 넘기는’ 등 당시 사용된 다양한 표현을 함께 추적하는 데 집중했다. 보도를 시작하기 전 같은 작업을 한 번 더 진행해 사실관계의 정확성을 높였다.
회의 참석자들의 발언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도 고민했다. 당시의 인식과 분위기를 보여주기 위해 이들의 발언을 그대로 전하기로 했다. 해외 입양을 “고아를 외국에 보내고 130달러 외환까지 얻는 일석이조의 사업”, “호적이 넘어가면 우리나라 국민이 아니다”라고 언급한 발언들이 확인됐다. 국가의 무관심과 제도적 방치 그리고 정치적 이해관계 속에서 아동을 국외로 보내는 구조가 고착화됐던 셈이다.
2023년 해외 입양인이 대한민국 입양 시스템에 문제를 제기하며 정부와 입양기관을 상대로 소송에 나섰던 결과들을 찾았다. 법원 판결문을 조사해 1979년 미국에 입양됐던 애덤 크랩서(한국명 신송혁) 씨가 사회복지법인 홀트아동복지회(홀트)와 국가를 상대로 했던 소송에 주목했다. 기사에 모두 담아내지는 못했지만, 본인이 태어난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과정은 적지 않은 심리적 부담으로 작용했다. 상처받은 과거를 헤집는 행위로 소송을 중도에 포기하는 해외 입양인이 적지 않다는 사실도 기사에 반영하지 못했던 부분이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권희정 미혼모아카이빙과권익옹호연구소장은 ‘해외 입양의 단계적 중단이 아닌 즉각적인 중단’에 대해 오랜 시간 본인의 생각을 털어놨다. 마지막까지 취재팀이 고민했던 ‘해외 입양을 통해서라도 가족을 찾아주는 게 우선일 수도 있다’라는 생각에 권 소장은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는 아이를 낳은 원가족이 아이를 지킬 수 있게끔 국가와 사회가 지원해야 한다고 밝혔다. 국내 입양을 해외 입양의 대안으로 보지도 않았다. 미혼모를 포함한 다양한 위기 상황에 놓인 임산부에게 필요한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 소장은 “아동만 분리해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복지 후진국이자 아동 인권 후진국으로 남게 될 것”이라고 수차례 강조했는데, 이러한 문제의식은 취재팀이 해외 입양 기획을 마무리하는 과정에서도 중요한 참고가 됐다.

1972년 7월 5일 태어나 노르웨이로 입양된 앨리스 앤더슨(한국 이름 강부자) 씨의 입양 당시 사진과 서류. 그는 날 때부터 신장이 하나였지만, 홀트아동복지회가 작성한 입양 서류에는 신체적 결함이 없다고 적혀있다. <출처 – 취재원 제공>
해외 입양 단체와의 만남, 대외비 문서를 통해 확인한 사실
기획 기사 준비를 위한 사전 조사 과정에서 해외 입양인들을 위한 권익 보호 단체 ‘뿌리의집’에 대해 알게 됐다. 해외 입양인들이 한국을 찾았을 때 게스트하우스처럼 머물 곳을 기꺼이 제공해주던, 그들에겐 따뜻한 보금자리 같은 곳이었다. 뿌리의집이라면 해외 입양인의 입장을 대변해 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지난 3월 뿌리의집의 피터 뮐러 공동대표와 한분영 활동가를 만나 해외 입양의 다양한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서로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 가감 없는 대화를 통해 기사의 대략적인 줄기가 나왔다.
특히 뿌리의집이 갖고 있던 1970~80년대 덴마크와 한국 정부가 나눈 해외 입양 관련 서신과 대외비 문서들이 취재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100쪽이 넘는 덴마크어 문서를 인공지능(AI)을 활용해 한국어로 번역·분석하며 입양을 둘러싼 당시 양국의 첨예한 이해관계를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한 해 수백 명의 해외 입양이 정치적 거래처럼 이뤄졌다는 사실이 문건을 통해 드러났고, 그 과정에서 아이들의 인권이나 복지는 찾아볼 수 없었다. 박정희 정권 시기에는 “아이들을 해외로 판매한다”라는 북한의 선전을 의식해 해외 입양 규모를 줄였지만 혼혈아는 예외 대상으로 남겨둔 사실도 확인됐다.
피부색이 주는 의미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 1983년 덴마크로 입양된 말레네는 어렸을 적 피부색 때문에 전학을 가야 할 만큼 괴롭힘을 심하게 당했다고 한다. 코로나19 팬데믹 때는 동양인에 대한 혐오가 더욱 극심했고, 지금도 거리에 나가면 “니하오”라고 소리치는 행인들이 있다고 한다. 세계적으로 복지 제도를 잘 갖추고 인권을 존중하는 나라에서도 인종차별이 여전하다는 사실은 해외 입양인의 삶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다. 영문도 모른 채 태어나자마자 이역만리 타국에서 자라고 적응해야 했던 이들의 심정을 온전히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이번 기획 기사를 통해 해외 입양인들이 이방인으로서 겪는 외로움과 자신의 진정한 뿌리를 알지 못하는 마음 속 공허함을 조금이나마 함께 느낄 수 있었다.
이번 기사를 준비하면서 처음으로 시도한 일도 많았다. 전 세계 해외 입양인을 상대로 설문지를 직접 만들어 진행한 것도, 줌(Zoom)을 활용해 유럽에 있는 해외 입양인과 화상 인터뷰를 한 것도 처음이었다. 혹여나 인터뷰나 설문 과정에서 그들의 마음에 상처가 되지 않을까 주의를 기울였다. 같은 사연을 반복해 말하도록 요청하는 일에도 조심스러움이 따랐다.
정부는 2029년까지 ‘해외 입양 제로(0)’를 선언했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수천 명의 해외 입양인들이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화위)’를 통해 진실 규명을 요구하고 있고, 일부는 경찰에 수사를 요청하고 있다. 하지만 진화위의 결정문에는 법적 강제성이 없고, 경찰 수사는 공소시효 문제로 불송치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입양 기록이 담긴 문서조차 친생부모가 동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열람이 제한되고 있다. 입양 관련 법·제도의 정비와 함께, 친생부모가 아이를 양육할 수 있는 여건과 사회적 분위기를 마련하는 일도 남은 과제다.
1983년 덴마크로 입양된 말레네의 친생부모에 대한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한국사회봉사회(KSS)에 따르면 그의 어머니는 당시 27살의 이 씨 성을 가진 미혼모였다고 한다. 하지만 해외 입양에 동의했다는 서명조차 없다. <출처 - 취재원 제공>
해외 입양 아픔 반복되지 않으려면… 우리 사회의 과제는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해외 입양인들 가운데 그들을 포기한 친생부모를 원망하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들은 “언젠가 엄마를 만난다면 ‘나는 괜찮다. 잘 살았다’고 말하고 싶다”라고 입을 모았다. 그들이 생각하는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에 방문할 때마다 향수를 느낀다고 했고, 정부를 원망하기보다는 해외 입양이 조속히 종료돼 그 누구도 자신과 비슷한 아픔을 겪지 않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해외 입양의 아픔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부의 목표는 2029년까지 해외 입양 0명이라지만, 입양을 기다리는 아이들이 사라지지 않는 한 아이들은 어딘가에서 보호받아야 한다. 해외가 아니라면 국내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그 아이들을 모두 품을 준비가 돼 있을까. 기획의 마지막 회차는 이 질문에서 출발했다.
보건복지부와 국회 등을 통해 취재한 결과, 지난 2020년부터 2025년까지 입양을 기다리는 ‘입양 대기 아동’은 연평균 354명이었으며 같은 기간 국내 입양된 아동은 연평균 181명에 그쳤다. 이대로라면 올해 입양 대기 아동 중 새 가정을 찾는 비율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해외 입양 감소에 맞춰 국내 보호 체계의 수용력이 충분히 확충되지 못한 채 국내 입양 규모마저 함께 줄어드는 구조에 있기 때문이다.
국내 입양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낮다는 사실도 기사에 담았다. 마침 보건복지부·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24년 입양실태조사 연구> 최종 보고서를 확보해 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입양을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은 예상과 같았다. 10명 중 8명은 입양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정작 입양 자녀·가정에 대해서는 절반 가까이(42.6%)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혈연 위주의 가족 제도 때문이라는 응답(39.4%)이 가장 많아 우리 사회가 여전히 가족의 범위를 제한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입양 결정 과정에서 아동의 의학적 상태가 사실상 중요한 변수로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원가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아이들은 국내에서 어떤 형태로든 보호받을 수 있어야 한다. 시설보다는 가정에서 자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선으로 꼽힌다. 하지만 여전히 낮은 국내 입양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해법을 찾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그렇다면 이런 현실 속에서도 입양을 선택한 가족들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입양을 통해 이룬 가정이 혈연을 통해 이룬 가정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가족’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고 싶었다.

출산 없이도 부모 되고, 혈연 아니어도 가족이 되는 사회
이렇게 만난 시우네 가족 이야기는 <“한달 200만원 들지만 죽는 병은 아니니까”…‘우리가 만나 다행’이란 입양가족>을 통해 소개됐다. 많은 독자가 사회적 편견에 맞서 입양을 선택하고, 입양 후 알게 된 아이의 장애까지 긍정적으로 감당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시우 양부모는 지금도 주 5일 병원을 오가며 척추 치료, 안과 치료, 언어·놀이·인지치료, 물리치료를 감당한다. 한 달에 200만 원이 넘는 치료비가 들어도 “그래도 다행이다. 죽는 병은 아니니까”라고 말했다. 시우네 가족은 아이가 계절을 아는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다며 올여름에도 가족 여행을 준비한다고 했다.
가족은 꼭 핏줄로만 완성되는 걸까. 우리는 오랫동안 누가 누구를 닮았는지, 누구의 성을 물려받았는지, 어디서 태어났는지로 가족의 경계를 그었다. 하지만 아이를 낳지 않아도 부모가 되고, 같은 피를 나누지 않아도 평생의 가족이 되는 사람들이 있다. 한부모가족, 조손가족, 재혼가족, 위탁가정, 입양 가정 등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함께 살아가는 현실에서 가족은 더 이상 혈연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해외 입양 0명은 숫자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원가정을 지키는 정책과 함께 아이들을 품을 가정이 늘어나야 하고, 혈연보다 돌봄을 가족의 기준으로 받아들이는 사회가 돼야 한다. 취재 과정 중 접한 한 입양 가정의 어버이날 이야기가 인상 깊었다. 지난 5월 8일, 8살 딸에게 감사 편지를 받은 한 입양 부모는 편지 속 한 문장을 유난히 오래 들여다봤다고 했다.
“엄마 아빠, 저를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흔히 아이들은 ‘낳아주시고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쓰지만, 그 아이의 편지에는 ‘낳아주셔서’가 없었다. 부모는 그 한 줄에서 오히려 가족의 본질을 봤다면서 가족을 ‘혈연으로 묶이지 않았어도, 피보다 진한 정으로 맺은 인연’이라고 했다. 가족은 어쩌면 이렇게 만들어진다. 피를 나눴다는 사실보다 서로의 하루를 떠안는 일, 아픈 아이의 예약을 챙기고 치료비를 계산하고 아이가 잠든 뒤 내일을 걱정하는 일 속에서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