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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현장에서 말하는 익명화와 비식별화
668 | 등록일 : 2026-07-31
익명 보도는 취재원 보호를 위한 중요 장치지만, 동시에 무책임하고 불투명한 보도의 수단이 될 수도 있다. 한국적 특수성과 다양한 요소가 얽혀 있는 현장의 여러 사례를 통해 익명 처리 기준을 함께 고민해 본다. 편집자 주

이름 없는 사람들과 얼굴 잃은 사람들
딜레마에 빠진 뉴스룸1)


사고 실험이다. 당신은 ○○지검을 취재하는 기자다. ○○지검에서는 대통령 측근을 수사하고 있다. 당신을 만난 담당 검사는 숨을 고른다. “내가 위에서 어떤 얘기를 들었냐 하면 말이야”라며 말머리를 꺼내더니 싹둑 자른다. 그리고 묻는다. “기사로 쓰려고? 내 이름 나가는 건 좀 부담스러운데.” 이때 선택의 두려움은 만국 공통이다. 사회학자 허버트 갠스(Herbert J. Gans)는 《저널리즘, 민주주의에 약인가 독인가》에서 뉴스 조직을 공장에 비유한다. 정기적으로 뉴스를 대량 생산해야 하는 뉴스 조직은 ‘예측 가능한 원재료’를 필요로 한다. 기자들이 자주 의존하는 뉴스 원재료는 고위 공직자다.2) 고위 공직자와 기자 사이에는 큰 정보 격차가 존재한다. 고위 공직자가 익명을 전제로 발언할 때 제지하기가 쉽지 않다.

한국적 특수성도 있다. 기자들과 전화 통화만 해도 보고를 해야 하는 곳이 적지 않다. 심지어 익명으로 보도된 뒤에도 “너 때문에 좀 시달렸다”라고 하소연하는 취재원이 부지기수다. 이들을 한 번 더 설득해야 한다는 지적에는 동의한다. 다만, ‘돈과 밥의 두려움’을 아는 그들을 무장해제 시킬 논리를 찾기는 어렵다. 실시간 피드 형태로 뉴스를 유통해야 하는 요즘 여건상 설득에 들일 수 있는 시간도 넉넉하지 않다.

특히 취재원으로부터 익명 요청이 잦은 곳은 정당 안팎이다. 정당 내부엔 계파 갈등이 존재하고, 개별 의원의 자율성이 오롯이 보장된다고 보기 어렵다. 내부 권력 투쟁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 정당 안팎에서 익명을 요청하는 스피커들이 등장한다. 정책과 의제 중심으로 보도 방향을 전환하는 것이 대안이겠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갈등을 한낱 해프닝으로 치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당에서 나오는 소위 ‘메시지’가 혼란스러울 때도 있다. 당 대표의 공개 발언이 나왔지만, 개인적 의견이라는 단서가 붙기도 하고, 공식 논평은 절제돼 있지만 실제 내부 기류는 다를 수도 있다. 기자들이 ‘익명을 요청한 재선 의원’ 등에게 부연 설명을 요청하는 배경이다. 

특종 신화와 관성

이 현상을 지탱하는 관성은 강하다. 기록의 성실성·투명성이 보도의 파급력보다 저평가되는 정서가 존재한다. 한국 기자의 롤 모델은 대개 성실한 기록자가 아닌 특종 기자다. 기자 사회의 동료 평가, 내부 경쟁도 단독 보도 여부로 수렴된다. 뉴스룸 안이든 밖이든 기사를 평가하는 시선이 교정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보도의 반향뿐만 아니라 익명 취재원 활용의 불가피성이나 익명 취재원에 대한 검증의 적절성을 따져보는 것이다. 

익명 취재원 ‘딥 스로트(deep throat)’를 활용한 ‘워터게이트 보도’는 탐사보도의 전형으로 꼽히지만, 일방적인 찬사만 있는 것은 아니다. 워싱턴포스트의 미디어 전문기자 하워드 커츠(Howard Kurtz)는 지난 2005년 딥 스로트의 정체가 밝혀진 뒤 자사 선배들의 보도에 대해 성과를 인정하면서도 문제 제기를 잊지 않았다. 익명 취재원 사용에 대한 기준이 느슨해지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3) 특종 기사를 ‘무결점의 신화’로 박제하기보다 한계도 함께 짚는 비판적 접근이 때로는, 아니 자주 절실하다.

영상 모자이크, 비식별화를 둘러싼 과거의 고민이 초상권 침해라는 ‘지점’이었다면, 새로운 고민은 ‘지형’에 가깝다.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문제다. 대표적인 갈등의 최전선은 집회·시위 보도다. 원칙은 간단하다. 공공장소에서 집회·시위를 촬영하면 초상권 침해가 아니다. 시위 참가자들은 묵시적으로 촬영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기자들이 자주 듣는 판례다.4) 

하지만 현실은 판결문처럼 매끈하지 않다. 사회적 약자들의 집단행동에는 혐오 정서에 기반한 댓글이 달린다. 댓글 창을 막아도 해결되지 않는다. 참가자의 얼굴이 캡처돼 어떻게 유포될지 모른다. “기자님 때문에 너무 힘들었다”라며 보도가 나간 뒤 모자이크 처리를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 영상 보도의 사실성을 내세우며 이 요청을 기각해도 되는지, 확신이 들지 않는다. 

미국 공영 라디오 NPR의 퍼블릭 에디터 켈리 맥브라이드(Kelly McBride)는 “시위자들의 얼굴은 기쁨과 분노, 슬픔을 전달한다. 이러한 감정들이 없다면, 불완전하고 부적절할 것이다”라고 주장한 바 있다.5) 공감하는 명제다.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는 장애인 단체의 집회를 접할 때마다 이들이 느끼는 좌절감과 분노는 마땅히 뉴스의 소재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 번 송출된 뉴스는 엎질러진 물이다. 

익명 보도 기준, 활발한 논의 필요해

선정과 자극이라는 기준도 재검토가 필요하다. 얼핏 직관적 판단이 가능해 보이지만, 반례가 있다. 2015년 9월, 해변가에 한 시신이 떠올랐다.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장면이다. 모자이크 처리를 한 국내 언론사가 많았다. 그러나 이 사진에는 선정성, 자극성만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맥락이 있었다. 사망자는 세 살배기 시리아 난민 아일란 쿠르디(Alan Kurdi)였다. 내전을 피해 다른 나라로 떠나기 위해 배에 몸을 실었다. 사진이 공개되자 전 세계가 충격에 빠졌다. 숨진 어린이 난민의 무구한 표정이 고스란히 공개되면서 세계인들은 뭔가 잘못됐다고 각성하게 됐다. 이 얼굴도 가려야 할까? 선정성, 자극성이라는 개념은 지극히 맥락적이며 유동적이다. 

국내에서도 이 문제를 다면적으로 성찰해 볼 계기가 있었다. 이태원 참사다. 대다수 언론은 희생자 이송 장면 등을 모자이크 처리했다. 축적된 관행이었다. CNN이나 워싱턴포스트 등 외국 언론이 보정하지 않은 것과 대조된다.6)7) 뉴스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각, 해당 장면의 수용성이 우리와 다를 수 있는 만큼 어느 쪽이 윤리적으로 타당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다만, CNN이나 워싱턴포스트의 보도 화면을 선정적이고 자극적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흐림 처리가 비극의 전시를 막는 유일한 대안인지 자문해 볼 때다. 

영상에 모자이크 처리를 하는 일관된 기준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보다 정교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안타깝게도 준칙이나 가이드라인에 담겨있는 것은 추상의 언어다. 기자들이 마주하는 애매한 현실을 포괄하지 못한다. 이 화면이 전체 사건·사고의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 필수적인지, 피사체에 대한 존중이 담겼는지, 공동체의 정서와 조응할 수 있는지 판단하는 것은 가이드라인이 아닌 현장 기자의 몫이다. 

게다가 존재하는 대부분의 가이드라인은 기존 언론 보도의 폐단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거나 첨언됐다. 조심하고 경계해야 한다는 뉘앙스가 행간에서 느껴진다. 가이드라인을 보수적으로 해석하기 십상이다. 모자이크 처리 화면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복잡다기한 취재 현장에서 가이드라인은 분명 한계가 있다. 언론사가 유연하면서도 자율적으로 결정을 내리는 것이 바람직하다. 나아가 그 결정을 위해 내부에서 활발한 논의가 지속돼야 한다. 언론사를 둘러싼 사회적 압력 역시 뉴스룸 내부 협의를 촉진하는 방향으로 작동해야 한다. 전제는 언론사가 내부 논의 과정과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다. 학계와 시민 사회가 논의 과정과 결과를 묻고, 언론사가 성실하게 응답할 때 자율성과 책임이 공존하는 보도가 가능해진다.익명화·비식별화는 기자 개인의 의지나 역량 차원으로 개인화할 수 없는 문제다. 취재와 보도 현실, 뉴스 소비 습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칼로 끊어내기보다 손으로 천천히 풀어야 하는 매듭이다. 





1) 이 글은 2026년 5월 23일 고려대 대학원(크림슨 저널리즘 과정)과 방송기자연합회가 공동 주최한 ‘투명성과 익명 취재원의 현실: 저널리즘의 신뢰는 어떻게 흔들리는가’ 세미나 발표 내용을 토대로 작성했다. 
2) Herbert J. Gans, 《Democracy and the News》, 2003, 남재일 옮김, 《저널리즘, 민주주의에 약인가 독인가》, 강, 2008, 101~103쪽
3) Kurtz, H., , The Washington Post, 2005.6.9, https://www.washingtonpost.com/archive/business/technology/2005/06/10/woulddeep-throat-be-a-hero-in-2005/7da5e03f-4394-415e-87fa121dee49d96f
4) 서울중앙지방법원 2009.10.14. 선고 2009가합41071 판결
5) McBride, K., , NPR, 2020.6.18, https://www.npr.org/sections/publiceditor/2020/06/18/879223467/should-images-of-protesters-be-blurred-to-protect-themfrom-retribution
6) Jeong, S., Bae, G., Hancocks, P., Whiteman, H., & Yeung, J., , CNN, 2022.10.30, https://edition.cnn.com/2022/10/30/asia/seoul-itaewon-halloween-crush-explainer-intl-hnk/index.html
7) , The Washington Post, 2022.10.29, https://www.washingtonpost.com/photography/interactive/2022/photos-video-scores-dead-seoul-after-crowd-cru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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