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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일본에서는 흥미롭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사건이 벌어졌다. 인기 영화의 줄거리와 결말을 10분 내외로 압축해 보여주는 이른바 ‘패스트무비(Fast Movie)’ 유튜브 영상이 대거 등장했고, 이를 제작·유포한 유튜버들이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것이다. 이들은 자신의 영상이 영화에 대한 리뷰이자 비평이므로 공정 이용에 해당한다고 항변했지만, 센다이지방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1)
2021년 11월 주범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이 선고됐고, 이어진 민사 재판에서는 도호(東宝)를 비롯한 13개 일본 영화 제작사가 낸 손해배상 청구가 인용됐다. 도쿄지방재판소는 조회수 1,000만 회가 넘는 영상의 피해액을 1회 조회당 200엔으로 계산해 피고 2명에게 각각 약 5억 엔, 우리 돈으로 48억~50억 원에 달하는 배상금을 선고했다.2) 소재가 불명했던 다른 가담자에게도 2023년 8월 같은 금액의 배상 판결이 공시송달을 거쳐 확정됐다.
몇 분짜리 유튜브 영상 하나가 어떻게 50억 원에 가까운 손해배상으로 이어질 수 있었을까. 법원의 판단은 명확했다. 원본 영화의 핵심 장면과 스토리를 대량으로 사용함으로써 영화의 본질적 가치를 훼손하고, 원저작물의 시장에 실질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리뷰 목적’, ‘비평 목적’이라는 이름만으로는 면죄부를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이 사건은 구체적인 숫자로 증명해 보였다. 국내에서도 영화·드라마 요약 채널, 뉴스 클립을 재편집한 이른바 ‘사이버렉카’ 콘텐츠가 꾸준히 논란이 된 만큼 이 판결이 남긴 메시지는 더 이상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뿐 아니라 ‘다루는’ 모든 이들에게 해당하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이 사건은 최근 출간된 《크리에이터를 위한 미디어콘텐츠법》을 펼쳐볼 좋은 이유가 된다.
AI가 만든 콘텐츠, 저작권은 누구의 것인가
패스트무비 사건이 “타인의 콘텐츠를 얼마나 가져다 쓸 수 있는가”를 물었다면 지금의 창작 현장은 한 걸음 더 나아간 질문과 마주하고 있다. AI가 스크립트를 쓰고, 이미지를 그리고, 목소리를 입히는 시대에 ‘내가 만든 것’과 ‘내가 가져다 쓴 것’의 경계는 어디인가라는 질문이다.
《크리에이터를 위한 미디어콘텐츠법》이 소개하는 가상 사례 하나가 이 질문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다큐멘터리 PD 출신 유튜버가 생성형 AI로 위인의 일대기를 다루는 쇼츠 채널을 운영해 18만 구독자를 모았는데, 뒤늦게 유사 채널을 개설한 경쟁자가 그의 서사 구조와 AI 이미지 화풍, 배경음악을 교묘하게 변형해 사용하고 상표까지 비슷하게 쓴 사안이다. 대사 표현만 살짝 바꾸고, 구도와 색조가 거의 동일한 섬네일을 쓰고, 배경음악은 음높이만 변조해 재활용하는 식이다. 여기에 ‘원조’, ‘업계 최초’라는 문구까지 내세우며 마케팅에 활용했다.
저자는 실제 상담으로 구성한 이 사례를 통해 여러 층위의 법적 쟁점을 차근차근 풀어낸다. AI 생성 이미지 자체의 저작물성은 법적 근거가 부족해 결과를 장담하기 어렵지만, 그 이미지를 수십 차례 프롬프팅하고 선별·편집한 결과물은 편집저작물로서 보호받을 여지가 있다. 또한 독창적으로 작성한 스크립트는 어문저작물로, 자체 제작한 배경음악은 그 표현 부분에 창작성이 있다면 별도의 음악저작물로 각각 보호받으며, 등록상표 역시 상표법의 보호 대상이 된다. 특히 부정경쟁방지법의 이른바 ‘성과물 무단 도용’ 조항은 상당한 투자와 노력으로 만들어진 성과를 공정한 거래 관행에 반해 무단으로 사용하는 행위를 폭넓게 포섭하는 일반조항이어서, 콘텐츠의 서사 구조나 스타일을 통째로 베끼는 행위에 실질적인 제동을 걸 수 있다는 설명도 눈길을 끈다. AI가 도구로 쓰였다는 사실이 곧 법적 책임의 공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목소리도, 얼굴도 흉내 낼 수 있는 시대의 초상권
AI가 흉내 내는 것은 이미지와 문장에 그치지 않는다. 책에 실린 또 다른 가상 사례는 유명 성우와 거의 동일한 톤의 AI 음성으로 역사 해설 영상을 만든 지식 채널 운영자의 이야기다. 영상 설명란에 ‘AI 음성 사용’이라고 밝혔음에도, 해당 성우의 소속사는 특정 인물을 식별 가능하게 모방해 상업적으로 이용했다며 퍼블리시티권 침해와 부정경쟁행위를 문제 삼았다. 저자는 이 사례의 핵심이 ‘실제 음성을 사용했는지 여부’가 아니라 ‘특정 인물을 연상·식별할 수 있게 했는지 여부’에 있다고 짚는다. 생성형 AI로 목소리와 얼굴, 문체까지 손쉽게 재현할 수 있게 된 지금, 방송·엔터테인먼트 업계 종사자라면 한 번쯤 곱씹어봐야 할 대목이다.
생성형 AI가 던지는 질문은 콘텐츠의 결과물에만 머물지 않는다. AI 모델을 학습시키는 과정에서 저작물을 대량으로 수집·복제하는 이른바 TDM(텍스트·데이터마이닝) 문제도 책이 비중 있게 다루는 주제다. 저자는 2011년 12월 도입된 공정이용 규정(저작권법 제35조의5)3)을 통해 TDM 면책 여부를 다뤄볼 수는 있지만 그 적용 범위가 상업적 AI 서비스 개발에까지 폭넓게 미치는지는 여전히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짚는다. 언론사와 방송사가 자사 기사·영상 아카이브를 AI 학습에 제공하거나, 반대로 자사 콘텐츠가 무단으로 AI 학습 데이터로 쓰이는 상황 모두를 마주할 수 있는 지금, 이 대목은 미디어 기업의 데이터 전략을 짜는 실무자가 눈여겨볼 만하다.
현장의 언어로 쓴 법률서
각 장은 가상의 인물과 사건으로 문을 열고, 관련 법리를 짚은 뒤, 실무에서 바로 참고할 수 있는 ‘핵심 노트’로 정리하는 구성을 취한다. 저작권부터 초상권·퍼블리시티권, 방송 포맷 보호, 플랫폼 이용약관과 분쟁 대응, 그리고 AI 생성 콘텐츠와 딥페이크, 웹 3.0 시대의 저작권 쟁점까지 다룬다. 유튜브 댓글 관리나 OSP(온라인서비스제공자) 면책, AI 카메라와 개인정보 보호법, TDM 면책 등 실무자가 실제로 궁금해할 세부 주제까지 놓치지 않고 짚어낸다는 점도 특징이다. 딱딱한 법조문 인용보다 구체적인 숫자와 최신 판례를 촘촘히 배치한 것도 저자가 오랫동안 방송 제작과 저작권 분쟁 조정 실무를 함께 겪어온 데서 나온 균형 감각의 결과로 읽힌다. 여러 대학원에서 미디어·콘텐츠·창업 관련 법과 제도를 강의하고 관련 공공기관의 자문 위원으로도 활동해 온 경험이 각 장 말미의 핵심 노트에 녹아 있다. 핵심 노트는 강의 교재의 요약본처럼, 혹은 막 사업을 시작한 콘텐츠 스타트업이 자신의 사업 모델에 어떤 법적 리스크가 숨어 있는지 스스로 점검해 보는 체크리스트처럼 활용할 수 있게 구성돼 있다.
언론·미디어 현장에 이 책이 필요한 이유
이 책이 언론인과 미디어 업계 종사자에게 특히 유용한 대목은 ‘인용’을 다루는 방식이다. 저작권법 제28조가 정한 인용의 요건, 즉 인용 목적이 분명해야 하고 자기 저작물이 주(主)가 돼야 하며 인용된 저작물은 종속적·보조적 위치에 있어야 한다는 세 가지 기준은 뉴스 콘텐츠 제작에서도 매일 마주치는 문제다. 책은 이와 관련해 2024년 11월 대법원이 선고한 판결을 함께 소개한다. 유튜브 채널 운영자가 타인의 설교 영상을 캡처해 섬네일과 본문에 무단 사용한 사안에서, 대법원은 비판·학술 등 공공의 이익을 위한 목적이라도 인용된 저작물이 부수적 관계를 넘어 원본의 시장 수요를 대체할 정도라면 정당한 인용으로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짧은 클립 하나, 캡처 이미지 한 장이라도 원본 시청의 필요성을 없애버리는 방식이라면 법적 보호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저작권법의 일반적 공정이용 조항인 제35조의5가 상업적 영상 콘텐츠에는 좀처럼 적용되기 어렵다는 실무적 조언 역시, 조회수와 수익을 함께 고려해야 하는 방송·유튜브 제작 현장에는 곧바로 도움이 될 대목이다.
취재와 보도, 유튜브 콘텐츠 제작, AI 도구를 활용한 뉴스 요약과 영상 편집에 이르기까지, 미디어 현장의 일상적인 업무 하나하나가 이제는 잠재적인 법적 쟁점과 맞닿아 있다. 콘텐츠를 빠르게, 많이 만들어낼 수 있게 된 만큼 법적 리스크와 마주치는 지점도 그만큼 촘촘해진 것이다. 《크리에이터를 위한 미디어콘텐츠법》은 그 접점을 딱딱한 법률 용어가 아니라 어디선가 본 듯한 구체적인 사건들로 풀어낸다. 법을 몰라 낭패를 보기 전에, 혹은 애써 만들어낸 콘텐츠의 가치를 지키지 못하기 전에, 미디어·언론 업계 종사자와 학계 관계자 모두에게 한 번쯤 펼쳐볼 것을 권한다. 콘텐츠를 만드는 손과 그 콘텐츠를 세상에 내보내는 손이 점점 더 많이 겹치는 지금, 이 책 한 권이 그 경계에서 방향을 잃지 않게 해줄 나침반이 되어줄 것이다.
이달의 추천 도서
데이비드 팩먼(David Pakman) 저, 김내훈 역
350만 구독자를 보유한 시사 유튜브 채널 <데이비드 팩먼 쇼>를 운영하는 저자가 확증편향과 가짜뉴스, 필터 버블이 지배하는 ‘탈진실의 시대’를 진단한다. 사법 시스템과 의회·선거제도, 언론과 뉴미디어의 문제를 짚고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대안을 모색한다.
《매일 저녁 90초를 위한 시간》 ⓒ클
심수미 저
JTBC 기자인 저자가 국정농단, 조희팔 추적, 이태원 참사 등 주요 사건을 취재하며 기록한 17년의 현장 경험을 담았다. 방송 리포트에 미처 담지 못한 숨은 취재 과정과 기자의 고민, 언론 불신의 시대에도 기록과 저널리즘의 가치를 지키려는 노력을 진솔하게 풀어낸다.
1) 센다이지방재판소 2021.11.16.선고, 저작권법위반 피고사건
2) 도쿄지방재판소 2022.11.17.선고, 레이와4년(ワ) 제12062호 손해배상 청구사건
3) 제35조의5(저작물의 공정한 이용) ① 제23조부터 제35조의4까지, 제101조의3부터 제101조의5까지의 경우 외에 저작물의 일반적인 이용 방법과 충돌하지 아니하고 저작자의 정당한 이익을 부당하게 해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저작물을 이용할 수 있다. ② 저작물 이용 행위가 제1항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할 때에는 다음 각 호의 사항등을 고려하여야 한다. 1. 이용의 목적 및 성격 2. 저작물의 종류 및 용도 3. 이용된 부분이 저작물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그 중요성 4. 저작물의 이용이 그 저작물의 현재 시장 또는 가치나 잠재적인 시장 또는 가치에 미치는 영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