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상세
고속도로를 타고 장거리 운전을 하다 보면, 피곤하거나 배고파서, 혹은 화장실에 가기 위해 한 번은 휴게소에 들르게 됩니다. 휴게소에서 식사하려면 어느 정도 각오를 해야 합니다. 평범한 우동 한 그릇에 7,500원 정도를 써야 하고, 핫바, 알감자 등까지 곁들이면, 2만 원이 훌쩍 넘기 때문입니다. 6,000원이나 하는 짜장면의 내용물이 너무 부실해 놀란 경험도 있습니다. 푸석한 국수에 건더기도 거의 없었습니다. 몇 시간 참더라도 고속도로를 나가서 식사할 걸 그랬나 후회를 하기도 합니다.
휴게소 음식은 편의점이나 동네 식당과 견줬을 때 확실히 비쌉니다. 별다른 대안도 없습니다. 다른 휴게소로 가려고 해도 약 20㎞를 더 달려야 합니다. 아예 고속도로 밖으로 나가야 다른 선택지가 생깁니다. 사실상 고속도로 위의 ‘독과점’인 셈입니다.
시민들도, 정치권도 수십 년간 문제 제기를 해왔습니다. 쌓이고 쌓인 불만을 포착한 이재명 대통령은 2025년 12월 “휴게소 음식이 맛이 없는 데 왜 이리 비싸냐. 알고 보니 몇 단계를 거치며 중간중간 임대료, 수수료 떼먹는 게 절반이더라”라고 직접 국민의 불만을 전하기도 했고요. ‘비싸고 맛없다’는 불만이 수십 년 동안 쌓였지만 바뀌지 않는 고속도로 휴게소의 현실을 보여주고, 원인이 무엇인지 다각도로 살펴보자는 것이 저희 기획의 목표였습니다. 애초 주간지 한겨레21에서 2주 연속으로 다루려던 계획은 취재를 거듭하면서 바뀌었습니다. 생각보다 한국도로공사(이하 도로공사) 전관들의 ‘도피아(도로공사 마피아의 합성어)’ 행태와, 불공정한 수익 구조, 그리고 일부 휴게소 운영사들의 ‘꼼수의 뿌리’가 깊었기 때문입니다. 한겨레21은 이를 빠짐없이 살펴보기 위해 2026년 2월부터 본격적인 취재에 돌입했습니다.
휴게소 음식이 비싼 이유 살펴보니
우선 ‘휴게소 음식은 비싸다’라는 명제를 확인해 봤습니다. 라면, 우동, 짜장면, 김밥, 핫바 등 우리가 흔하게 휴게소에서 사 먹는 음식들의 가격을 종합해 ‘고속도로 휴게소 음식 가격 지도’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이미 ‘고속도로 공공데이터 포털’에도 많은 휴게소 관련 자료들이 공개돼 있지만, 저희는 조금 더 구체적인 개별 메뉴별 가격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김성회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의 도움을 받아 도로공사의 데이터를 받아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만에 받은 자료를 조금 더 효과적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기 위해 사내 IT국과 협업해 인터랙티브 페이지를 만들기로 계획을 세웠습니다. 고속도로 이용객들이 더 가성비 좋은 휴게소를 미리 찾아 일정을 정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였습니다.
자료를 받아 분석해 보니, 실제로 휴게소에서 판매되는 음식이 시중 판매가보다 10~60%가량 비싸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9,000원이 넘는 우동, 7,000원에 달하는 라면, 1만 1,000원을 넘는 돈가스 등 선택지가 없는 휴게소에서 비싼 음식을 강요받고 있던 것입니다.
휴게소 음식이 왜 비싸게 팔릴 수밖에 없는 구조인지도 살펴봤습니다. 전국의 여러 휴게소를 직접 찾아가 식당 주인, 운영사 직원 등 여러 관계자를 만나 실태를 파악했습니다. 파악해 보니, 휴게소 음식은 ‘3중 구조’로 판매되고 있었습니다. 도로공사가 관할하는 전국 215곳의 휴게소 가운데, 민간 운영사에 위탁하는 ‘임대 휴게소’가 198곳입니다. 임대 휴게소는 특이한 형태로 운영됩니다. 휴게소 땅과 시설은 모두 도로공사가 소유하고 있는데, 이를 낙찰받은 휴게소 운영사가 일정 기간 운영하는 형태입니다. 휴게소 운영사는 거둬들인 이익의 일정 비율을 임대료로 매달 도로공사에 냅니다. 그리고 식당 등 점포는 운영사와 계약을 맺습니다. 휴게소에 입점한 식당 등 점포가 재료비, 인건비 등을 빼고 추가로 ‘물품 대금’이란 이름으로 임대료를 운영사에 내야 하고, 운영사는 또 도로공사에 임대료를 내야 하므로 결국 음식 가격이 시중보다 높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였습니다.
우리가 사 먹는 휴게소 음식 가격에 식당 등 점포가 운영사에 내는 수수료, 또 운영사가 도로공사에 내는 임대료가 모두 포함된 것입니다. 운영사가 도로공사에 내는 임대료율이 매출액 대비 16~23%, 식당 등 점포가 운영사에 내는 돈이 30% 내외라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보통 시중의 점포가 임대료로 내는 비율이 10~12% 정도인 것에 견줘 높은 비율입니다. 그래서 한 핫바 점포의 경우, 하나에 4,000원인 핫바 한 개를 팔아도, 수수료, 인건비, 재료비 등을 제외하면 400원 정도가 남는다고 했습니다.
28억 원 휴게소 운영사의 갑질
그러던 중 저희는 중요한 제보를 입수하게 됐습니다. 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기흥휴게소에서, 휴게소 운영사로부터 수억 원의 돈을 받지 못한 입점 점포가 있다는 것입니다. 일단 이 사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시 한번 임대 휴게소의 구조를 봐야 합니다. 도로공사로부터 운영권을 임대한 운영사는 식당 등 점포와 ‘물품 공급계약’을 맺습니다. 사실상의 임대지만, 도로공사는 운영사와 임대계약을 할 때 “영업권을 제3자에게 재임대할 수 없다”라는 조항을 계약서에 넣었기 때문에 이를 우회한 것입니다.
식당에서 소비자가 음식을 결제하면, 그 돈은 운영사에게 곧바로 갑니다. 그리고 운영사는 도로공사에 내야 할 임대료와 자신들이 챙길 수수료를 제외한 나머지 금액을 식당에 보냅니다. 그런데 한 운영사가 아예 돈을 식당에 보내지 않은 것입니다.
저희가 확인한 점포의 경우 수개월째 대금을 받지 못해 6억 원이 넘는 돈을 받지 못한 상황이었으며, 이 운영사가 운영하는 충남 천안시 망향휴게소에서도 같은 ‘물품 대금 미지급’ 사태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이 운영사는 두 휴게소를 운영하면서 모두 28억 원가량의 돈을 지급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들 휴게소를 운영하는 운영사는 인앤아웃과 제이에스물산으로 사실상 이 사건의 핵심으로 드러난 엄정욱 회장 일가가 운영하는 기업입니다.
심지어 이 운영사가 물품 대금을 주지 않는 행태는 과거에도 있었고, 운영사로부터 수억 원을 받지 못한 한 상인이 도로공사에 민원을 넣었다가, 이 사실을 알게 된 운영사로부터 일방적인 계약 해지를 당해 끝내 목숨을 끊은 사례도 확인했습니다.
휴게소 안에는 분명한 갑을 관계가 존재했습니다. 운영사는 임대계약이 아닌 물품 공급계약이기 때문에 언제든 점주에게 ‘나가라’고 요구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인테리어 비용 등 초기 투자 비용은 당연히 운영사가 물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든 쫓겨날 수 있다는 두려움에 점포들은 운영사가 돈을 주지 않거나 갑질을 해도 민원을 넣거나 소송을 걸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물품 대금 미지급 사태가 장기화됐던 것입니다.
인앤아웃과 제이에스물산은 물품 대금이 자신들의 돈이 아님에도 일종의 ‘무이자 대출’처럼 활용해 왔습니다. 점포가 번 돈임에도 이를 해외 도박 사업에 투자하고, 건설사를 운영하며 건설 사업에 투자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엄 회장은 회삿돈을 개인 금고처럼 쓰며 사적으로 빼돌리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엄 회장은 정치권과도 줄곧 관계를 맺어오면서 32년 동안 도로공사와 계약을 연장해 왔습니다. 특히 엄 회장이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장모에게 ‘휴게소 사업의 법적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민원을 넣은 사실을 취재로 확인했습니다.
휴게소에 드리운 ‘도피아’ 카르텔
무엇보다 고속도로 휴게소에 가장 깊이 파고든 문제는 ‘도피아’ 카르텔입니다. 취재에 앞서 선행 보도들을 살펴보니, 도로공사 전관들의 친목 모임인 ‘도성회’가 직접 휴게소 운영 사업에 진출했으며, 사모펀드가 장기 임대한 민자 휴게소에서 과도한 수익을 챙긴다는 의혹이 일부 보도된 바 있었습니다. 2000년대에도 도성회의 휴게소 운영 행태에 대해 국회의원들이 국정감사에서 지적했다는 것도 확인했습니다.
파편적 보도와 무거운 문제의식 사이에서 취재 방법을 고민하던 도중 저희는 ‘귀인’을 만났습니다. 네이버 카페 ‘고속도로 휴게소’였습니다. 방대한 휴게소 운영 관련 정책과 역사, 뉴스가 집대성돼 있고, 업계 관계자들의 의견이 수시로 올라오는 활발한 카페였습니다. 그리고 휴게소 업계에서 일하고 있는 카페 운영자에게 많은 이야기를 듣고 자료를 받아볼 수 있었습니다. 또 전국의 휴게소 운영사와 관계자들을 만나가며 증언과 제보를 모았습니다. 이러한 귀인들의 도움을 바탕으로 그간 업계에서 소문으로 전해지던 현황을 실제로 확인하기 위해 뛰었습니다.
객관적인 사실 확인을 시작했습니다. 등기부등본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기업 정보 사이트 등을 통해 확인한 정보와 김성회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실이 도로공사로부터 받은 자료를 취합했습니다. 이렇게 전수조사를 거친 결과, 한겨레21은 도로공사 퇴직자 60명이 최근 10년간 전국 휴게소 10곳 중 4곳(42.8%)의 운영사나 관련 업체에 재취업하거나 이권 사업체를 창업한 사실을 단독 확인했습니다. 운영사에 재취업한 전관들은 도로공사가 매년 시행하는 운영 서비스 평가 때마다 ‘로비스트’ 역할을 자처했습니다. 도로공사 현직 직원들에게 연락해 “등급을 올려달라”라고 요구하는 방식으로 자신을 채용해 준 운영사의 계약 해지를 막았고 카드 결제 중계 사업인 밴(VAN, Value Added Network)과 오수 처리 분야에까지 나서 수익을 챙겨왔습니다. 특히 이런 부대 이권 사업을 고발한 것은 한겨레21이 처음이었습니다.
또 도로공사 전현직 임직원으로 구성된 사단법인 도성회가 자회사 H&DE 등 3개 출자회사를 통해 휴게소·주유소·입점 브랜드 16곳을 운영하며 2025년 한 해 2,703억 원의 매출을 올린 사업 구조도 보도했습니다. 나아가 이렇게 발생한 수익을 도성회에 수억 원씩 배당하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됐습니다.
아울러 저희는 ‘공기업 사냥꾼’으로 불리는 사모펀드 맥쿼리자산운용이 전국 매출 1위와 2위 등 ‘알짜’ 민자 휴게소 세 곳의 운영권을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을 추적했습니다. 특히 매출의 20~24%를 매년 고정으로 보장받는 ‘최소 임대료’ 조항을 통해, 10년 동안 2,079억 원을 회수한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이러한 고수익 사업 구조의 이면에 위탁 운영사·입점 업체·소비자에게 부담이 전가되는 실태가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또 도로공사가 2025년 기준 연 매출 397억 2,900만 원에 이르는 하남만남주유소 운영권을 휴게소 운영사들의 이익단체인 한국고속도로휴게시설협회에 ‘임시 운영’ 명분의 수의계약 형태로 15년 동안 넘겨 온 사실도 확인했습니다. 이 협회 부회장 자리에 도로공사 간부 출신 5명이 재취업한 사실까지 보도했습니다. 15년간 국고 수백억 원이 낭비된 정황을 포착한 것입니다.
탐사보도 뒤 정부 “휴게소 운영 개편하겠다”
저희 연속 보도 뒤에 정부에서도 발 빠른 반응이 나왔습니다. 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는 2026년 4월 9일 도로공사 담당 국장을 교체하는 강수를 뒀고, 4월 13일 한겨레21 보도를 언급하며 “도로공사 퇴직자 단체의 휴게소 운영 등 휴게소 운영 전반에 걸친 불공정 행위들을 발본색원하겠다”라며 ‘휴게소 불공정행위 신고센터’ 등을 운영하고, 모든 휴게소를 대상으로 납품 대금 미지급 여부에 대한 전수 점검에 나섰습니다. 특히 김윤덕 국토부 장관은 납품 대금이 미지급된 휴게소를 방문해 직접 휴게소 소상공인들의 피해 실태를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민간단체인 휴게시설협회가 수의계약을 통해 하남만남주유소를 15년째 운영하고 있다는 보도 직후, 정부는 즉시 이곳을 도로공사 직영으로 전환한다고 지난 4월 13일 발표했습니다. 15년째 매년 운영권이 민간단체에 넘어가 낭비되던 예산을 절감할 수 있는 계기가 됐습니다. 또 정부는 같은 날 도로공사 출신들이 대표이사, 부사장 등 임직원으로 재취업하고 있는 ‘길사랑장학사업단’이 수수료를 받는 카드 결제 관련 사업에 진출해 휴게소 이권을 취하고 있다는 보도에 대해서도 조처하기로 했습니다.
국토부는 이어 지난 7월 9일 이러한 내용을 종합한 ‘고속도로 휴게소 운영 개편 방안’을 발표했습니다. 휴게소 입점 업체가 중간 운영사 등 ‘다단계’를 거치지 않고 공공관리회사와 직접 계약하도록 바꾸고, 도로공사 퇴직자 단체(도성회)의 휴게소 사업 참여도 원천 차단하기로 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도로공사는 공기업 ‘고속도로 시설공단’을 만들어 휴게소를 운영했다 폐지했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번엔 달라야 합니다. 고속도로 휴게소가 수익을 내기 위한 식당가가 아닌,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국민을 위한 공공시설이라는 점을 잊어선 안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