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상세
“최고의 르포는 진실을 말하는 소설과 같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Gabriel Garcia Marquez)
정치부 현장기자 시절, 중요한 선거를 앞둔 시점이면 어김없이 데스크의 지시를 받아 민심 르포 기사를 썼다. 르포의 대상은 주로 전통적인 여야 경합 지역이거나, 제3당 돌풍 같은 정당 체제의 급변이나 과거에 볼 수 없었던 후보 변수의 돌출로 판세 예측이 힘들어진 여야의 전통적 강세 지역이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둔 수도권과 충청권의 스윙보터(swing voter) 선거구가 앞의 사례에 해당한다면, 광주나 대구 같은 여야 텃밭 지역의 총선이나 국회의원 재보궐선거는 후자의 경우였다.
천편일률적인 한국 언론의 정치 르포
선거를 전후해 작성하는 민심 르포의 기사 문법은 대체로 정형화돼 있었다. 취재를 위해 파견되는 기자는 지역 상황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가족과 친지, 동문 등 1·2차 사회관계의 인적 네트워크가 남아 있는 현지 출신 저연차 기자들이 선호됐다. 찾아가는 곳은 서민층과 노장년층이 모이는 전통시장, 청년 유동 인구가 많은 대학가 주변, 30~40대 직장인 밀도가 높은 도심 유흥가라는 세 범주를 벗어나지 않았다. 택시 기사가 전하는 바닥 민심도 빠지지 않고 인용됐다.
기사의 얼개와 전개 방식도 유사했다. 신문 지면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타 지역(대체로 서울) 독자들이 알기 어려운 현지 민심을 가능한 생생하게 전달하려면, 취재기자가 시공간의 제약 안에서 수집한 정보를 최대한 밀도 높게 배치해야 했다. 텍스트의 형식은 그것이 수행하려는 기능에 철저하게 종속됐다. 문제는 기계적 균형이 강조되는 한국의 언론 지형에서는 ‘접전지 민심 르포’라는 형식 자체가 독자의 기대를 배반하도록 텍스트 작성을 강제한다는 데 있었다. 기사에 담긴 정보로 선거 결과를 쉽게 유추할 수 있다면 그곳은 이미 접전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결과 예측에 필요한 핵심 정보와 논리적 근거를 직접적으로 제공하는 것은 기자가 알아서 피해야 했다. 취재원 각자가 특정 후보나 정당을 지지하는 이유를 편파적이지 않게 같은 분량으로 보여주는 데 많은 기사 지면이 할애됐다. 여기에 팽팽한 접전의 흐름을 보여주는 복수의 여론조사 결과가 첨부됐다. 독자가 기사를 통해 알고 싶은 것과 기사의 형식·내용이 처음부터 괴리되도록 운명지어져 있었던 셈이다. 그러니 기사가 그 독자에게 남기는 것은 해당 지역이 접전지임을 재확인시키는 것 말고는 없었다. 독자를 새로운 사실의 영역으로 안내하기보다 동어반복의 무한 루프에 가두는 것과 다를 게 없었다.
이런 민심 르포의 한계는 매체의 성향을 떠나 대부분의 종합일간지도 마찬가지였다. 제21대 대선 투표일을 앞둔 지난해 5월, 보수성향의 종합일간지 ㄱ신문과 진보성향의 ㄴ신문이 여야 지지세가 팽팽한 서울 한강 벨트의 두 지역을 취재해 내보낸 르포 기사에서도 확인된다. 원고지 13~14매 분량의 이 기사들은 △팽팽한 민심을 보여주는 도입 인터뷰 △(유세)현장 스케치 △취재 지역의 역대 선거 결과 △유권자들의 상반된 선거 결과 예측 △전문가 분석 △각 후보 캠프의 목표와 판세 진단으로 이어지는 얼개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효율성이 아닌 의외성을 건져 올려야
필자 역시 정치부장으로 현장에 민심 르포 취재를 지시할 때면 익숙한 기존 문법을 벗어나는 파격을 허락하는 데 인색했다. 취재 현장이 기사의 목적에 부합하는지, 인용한 전문가는 신뢰할 만한 사람인지, 등장한 인터뷰이는 몇 명이고 이름과 나이, 직업 등의 신상정보가 충실히 담겼는지 등 기사의 형식적 완결성을 높이는 데 신경을 썼다. 당연히 결과물에 대한 만족감이 클 리 없었다. 지시와 데스킹, 기사에 대한 반응 체크가 반복될수록 선거를 앞두고 관행적으로 내보내는 민심 르포는 지면 낭비, 취재력 낭비로 여겨졌다. 그렇다고 민심 르포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대부분의 매체가 접전 지역 르포를 선거 보도의 주요 아이템으로 다루고 있었던 데다, 선거기간 ‘광활하게’ 배정된 정치면을 정당과 후보들의 메시지만으로 메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던 탓이다.
‘안전하지만 무용한’ 한국형 선거 르포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해외 선거 보도의 유의미한 사례들로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 특히 미국 러스트 벨트(Rust belt, 미 북부와 중서부 지역)의 상징인 오하이오주 영스타운(Youngstown)을 다룬 두 편의 해외 르포는 선거 저널리즘이 도달해야 할 목표 지점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첫 번째 사례는 일본 아사히신문 가나리 류이치(金成 隆一) 기자가 쓴 《르포 트럼프 왕국》이다. 일본 이와나미 서점이 펴낸 이 르포집은 2017년 국내에도 같은 제목으로 번역돼 나왔다.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주요 언론과 여론조사 기관들이 여론조사 수치에 기대 힐러리 클린턴의 승리를 단언할 때, 가나리는 워싱턴을 떠나 영스타운을 비롯한 쇠락한 공업지대에 수개월간 상주했다. 그는 유세장과 선술집, 간이식당 등을 훑으며 여론조사 지표에는 잡히지 않던 백인 노동자층의 좌절과 분노, 변화에 대한 열망을 정밀하게 파헤쳤고, 대선의 결과와 정치적 의미를 가장 정확하게 예측했다. 책에서 가나리는 르포 취재의 두 가지 방법을 소개한다.
“효율성을 고려해야 할 때는 리서치를 통해 어느 정도 목표를 압축한 다음 현장에 돌입한다. 단, 취재하기 전에 미리 ‘이런 기사를 써야겠다’고 정해놓기 때문에 예상했던 수준에 머무르며 기사에 의외성이 나타나지 않는다. 다른 하나는 별다른 계획을 세우지 않고 현장에 돌입하는 방법이다. 시간이 많이 든다. 자신이 묻고 싶은 것은 적당 수준에서 자제하고 상대의 페이스에 맡긴다. 그냥 거리를 걸어본다. 그러면 예상 밖의 이야기도 듣게 되고 만남의 폭도 넓어진다.” - 《르포 트럼프 왕국》 중에서
두 번째는 올리버 러프랜드(Oliver Laughland) 영국 가디언 기자가 2020년 대선 직전 영스타운 현장에서 작성한 르포 기사 <여정에서 목격한 두 개의 미국-과연 어느 쪽이 승리할 것인가?>다.1) 러프랜드는 4년 전 가나리 기자가 찾았던 영스타운을 찾아가 그곳에서 극단적으로 충돌한 ‘두 개의 평행 우주’를 입체적으로 그려냈다. 그의 기사에는 공화당 유세 현장에서 “트럼프 정권 아래 일자리가 날아갔다”라고 분통을 터뜨리는 GM 공장 해고 노동자와, 그를 향해 “돈 받고 온 게 분명하다”며 피켓을 찢고 욕설을 퍼붓는 트럼프 지지자들의 충돌이 적나라하게 묘사됐다.
러프랜드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조지아주의 투표권 운동가가 음모론과 허위 정보에 맞서 싸우는 현장, 텍사스 국경 장벽 건설로 조상들의 묘지 접근권이 제한될 위기에 처한 라미레스(Ramirez) 일가의 분투를 생생하게 담아냈다.
르포의 핵심은 서사의 복원이다
두 르포의 공통점은 며칠의 상주 경험에 기댄 현장 스케치나 기계적인 5:5 진술 인용에 그치지 않고, 정치가 유권자의 삶과 영혼에 어떤 균열을 냈는지를 풍부한 서사와 맥락 인용을 통해 정밀하게 복원해 냈다는 점이다. 앞서 인용한 외신 보도와 필자 개인의 취재 및 데스킹 경험을 바탕으로, 관행적 ‘민심 스케치’에 갇힌 한국 언론의 선거 르포를 재구성하기 위한 몇 가지 제안을 해본다. 우선 분량을 늘려야 한다. 지면 메우기용 기사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선 충분한 서사의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는 뜻이다. 한국 신문의 선거 르포에는 200자 원고지 10~15매 정도의 분량이 할애되는데, 여기서 가능한 것은 취재원의 발언을 자르고 붙이는 ‘따옴표 인용’ 뿐이다. 가나리의 단행본이나 러프랜드의 현장 리포트처럼, 유권자의 정치적 선택에 영향을 미친 생애사적 맥락과 지역사회가 겪은 사회경제적 변화, 새로운 정치적 균열의 등장 등을 담으려면 원고지 30매 이상의 지면 확보가 필수다.
취재 기간을 늘리고 접근 방식을 바꾸는 것도 중요하다. 1박2일 출장에 의존하는 시스템 아래에선 전통시장, 대학가, 상징적 도심 순례라는 상투성을 벗어날 수 없다. 기자가 해당 지역에 최소 일주일가량 상주하거나, 방문 횟수를 늘리는 방식으로 같은 취재원을, 시차를 두고 접촉해 민심의 종단적 흐름을 포착해 볼 필요가 있다. 취재 장소 역시 전세사기로 삶이 무너진 청년들의 빌라촌, 폐업을 앞둔 지방 공단의 노동자 숙소, 인구 소멸로 학교가 문을 닫는 변두리 마을 등 사회적 균열이 날카롭게 드러나는 삶의 현장으로 옮겨가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꾸밈없는 바닥 민심이 실체를 드러낸다.
무엇보다 발언의 배후에서 작동하는 서사를 복원해야 한다. 그러려면 물음의 방식을 바꿔야 한다. 한국 신문의 민심 르포는 대부분 “A 후보를 찍겠다”, “다 도둑놈이다”라는 결론 형태의 단편적 발언만 나열해 왔다. 러프랜드가 영스타운의 해고 노동자 데니슨(Chuckie Denison)이나 텍사스 국경 장벽 앞의 라미레스 일가에 다가가 던진 질문처럼, 기자의 물음은 “누구를 찍을 것인가”가 아니라 “지난 몇 년간 당신의 삶은 어떻게 파괴되거나 변했는가”여야 한다. 유권자가 특정 후보에게 분노하거나 기대를 걸게 된 삶의 궤적, 예컨대 실직의 경험이나 자산 격차에 따른 소외감, 지역 쇠퇴에 대한 공포 등 정치적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정념적 요소들을 입체적으로 복원해야 한다.
정직한 예측은 저널리스트의 책무
마지막으로 정교한 데이터 분석에 근거해 과감한 판세 예측까지 보도의 지경선을 밀어 올리는 것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그동안 한국의 민심 르포는 ‘기계적 균형’을 도피처로 삼아 명확한 판세 예측을 유예해 왔다. 그러나 진정한 르포는 정교한 데이터 분석과 현장 취재가 결합할 때 완성된다. 정밀한 취재를 통해 바닥 기류를 읽었다면, 양비론이나 ‘예측불허의 접전’ 같은 식의 무책임한 언어로 도피하지 말고 현장의 실제 기류와 판세의 방향을 신중하되 정직하게 적시하는 방식도 고려해 봐야 한다.
저널리즘 고유의 판단력과 책임감을 회복하는 길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피상적인 기계적 균형문법을 깨뜨리는 것, 취재 기간과 분량을 대폭 늘려 유권자의 ‘말’이 아닌 ‘삶’을 복원하는 것, 그리고 정교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정직하게 판세를 읽어내는 것. 이것이야말로 독자의 기대를 충족시키고 선거 저널리즘의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1) Laughland, 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