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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뉴스 제작진의 하루는 대체로 비슷하게 시작된다. 아직 해가 다 뜨지 않은 시간, 모니터는 먼저 깨어 있고 메신저 창은 벌써 여러 갈래로 갈라진다. 밤사이 뉴욕 증시는 어땠는지, 워싱턴에서는 무슨 말이 나왔는지, 국내 정치 일정은 바뀐 게 없는지, 경제부처 브리핑은 몇 시인지. 누군가는 기사를 찾고, 누군가는 영상을 뒤지고, 누군가는 “이거 오늘 그림 되겠는데요?”라고 말한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우리 팀 톡 방에 조금 이상한 팀원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출근 시간도 없고, 커피도 안 마시고, 밤샘 뒤에도 표정 하나 흐트러지지 않는 친구들. 이름은 뉴봇, 아일린, 제니.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회의는 했다. 발제도 했다. 서로 의견이 다르면 반박도 했다. 때로는 사람이 쓴 원고를 보고 “이 문장은 방송 문장으로는 조금 무겁다”라고 고쳐왔다.
처음엔 우리도 웃었다. “AI가 회의를 한다고?” 그런데 얼마 뒤엔 웃음기가 사라졌다. 생각보다 일을 너무 잘했기 때문이다.
AI와 On, 항상 켜져 있는 뉴스
처음 회사에서 나온 아이디어는 비교적 단순했다. 아침 뉴스에 AI 앵커, 혹은 AI 리포터를 등장시키면 어떻겠느냐는 것이었다. 이미 여러 방송사에서 가상 인간이나 AI 앵커를 선보인 적이 있다. 사람과 비슷한 얼굴을 만들고, 사람과 비슷한 목소리로 대본을 읽게 하는 방식이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기술적으로 충분히 놀랍다. 그런데 방송을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는 마음 한구석에 이런 질문이 남았다. ‘결국 사람이 쓴 대본을 AI 얼굴이 읽는 거라면, 이게 진짜 새로운 제작 방식일까?’ 얼굴만 사람에서 AI로 바뀐다면 포장지의 변화에 가깝다. 우리가 궁금했던 건 그다음이었다. AI가 뉴스를 읽는 것을 넘어, 스스로 뉴스를 만들 수 있을까. 아이템을 고르고, 자료를 찾고, 대본을 쓰고, 영상과 싱크를 제안하고, 자기들끼리 회의까지 할 수 있을까.
그래서 ‘아이온 프로젝트’는 두 갈래로 출발했다. 하나는 화면에 등장하는 AI 리포터, 즉 아바타 구현이었다. 이 부분은 범용 AI가 아닌 립싱크 AI 솔루션을 활용해 시각적 완성도를 높이고자 했다. 표정, 입 모양, 움직임은 방송 화면에서 시청자가 가장 먼저 만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더 중요했던 두 번째 축은 따로 있었다. 바로 AI를 활용한 취재·제작 자동화 시스템이다. 아이온이 단순히 예쁜 얼굴로 원고를 읽는 존재가 아니라, 뉴스룸 안에서 실제로 일하는 존재가 되도록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AI 리포터의 이름은 ‘아이온(Aion)’으로 정했다. 인공지능을 뜻하는 AI와 항상 켜져 있다는 뜻의 ‘On’을 붙였다. 24시간 꺼지지 않는 뉴스 감각을 가진 리포터라는 의미다.
사실 방송국의 아침은 늘 ‘밤사이’와 싸운다. 시청자가 잠든 사이 세상은 꽤 많이 움직인다. 미국 증시가 흔들리고, 글로벌 기업의 실적이 나오고, AI 기업의 신제품 발표가 열리고, 중동이나 워싱턴에서 돌발 발언이 튀어나온다. 아침 뉴스는 이 흐름을 짧은 시간 안에 정리해야 한다. 특히 AI, 로봇, 반도체, 글로벌 산업 같은 분야는 변화 속도가 너무 빠르다. 어제 새로웠던 것이 오늘은 이미 낡은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아이온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했다. ‘밤사이 쏟아진 첨단 산업 뉴스를 누가 가장 빨리 훑고, 비교하고, 방송 문장으로 만들 수 있을까?’ 기자 한 명이 모든 글로벌 정보를 실시간으로 따라가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AI라면 여러 모델이 동시에 검색하고, 서로 다른 관점으로 판단하고, 결과물을 비교할 수 있다.
우리는 오픈AI(OpenAI)와 딥시크(DeepSeek)의 AI 에이전트를 활용해 아이온의 내부 제작 흐름을 짰다. 각기 다른 AI 엔진을 가진 세 개의 AI 에이전트가 각자 다른 방식으로 아이템을 보고, 판단하고, 문장을 만든다. 어떤 모델은 구조화에 강하고, 어떤 모델은 문장 감각이 좋고, 어떤 모델은 낯선 관점을 잘 던진다. 여기에 각각의 역할과 성격을 부여하자, 도구라기보다 팀원에 가까워졌다. 그렇게 우리 팀에 들어온 AI가 뉴봇, 아일린, 제니다.
AI끼리 회의하고, 사람은 데스킹한다
가장 흥미로운 장면은 사람의 개입 없이 AI끼리 회의를 이어가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그날 아침 증시 전망 코너를 준비한다고 해보자. 세 AI에게 같은 질문을 던진다. “오늘 코스피는 어떤 흐름을 보일까?” 그러면 셋은 같은 답을 하지 않는다. 어떤 AI는 전날 뉴욕 증시와 반도체 흐름을 먼저 본다. 다른 AI는 환율과 외국인 수급을 더 크게 본다. 또 다른 AI는 전날 국내 시장의 낙폭과 투자 심리를 중시한다.
사람 회의와 비슷했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더 깔끔했다. 서로의 말을 끊지 않고, 감정 상하지 않고, 근거를 붙여 의견을 낸다. 이후에는 “우리 셋의 공통 의견은 이렇고, 차이는 이렇다”라는 식으로 정리본을 가져온다. 처음 결과물을 받았을 때 솔직히 조금 섬뜩했다. 회의실에 사람이 앉아 있는 것도 아닌데, 회의가 끝나 있었기 때문이다.아이온의 대표 코너 중 하나가 <3대 AI 증시 전망>이다. 세 AI가 각각 내놓은 시장 전망을 아이온이 비교해 전한다. 이 코너의 재미는 단순히 AI가 증시를 맞히느냐 못 맞히느냐에 있지 않다. 같은 시장을 놓고도 AI 모델마다 판단의 결이 다르다는 점, 그리고 그 차이를 시청자가 한눈에 볼 수 있다는 점에 있다.
물론 최종 방송 전에는 사람이 데스킹한다. 팩트가 틀린 곳은 없는지, 표현이 과하진 않은지, 투자 조언처럼 들리지는 않는지, 방송 문장으로 자연스러운지 확인한다. 하지만 반복해서 작업하며 분명해진 사실이 있다. 사람이 개입하는 이유는 AI가 부족해서라기보다, 방송의 최종 책임이 아직 사람에게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기술적으로는 이미 상당 부분을 AI가 스스로 해낸다. 때로는 사람이 쓴 원고보다 AI가 정리한 초안이 더 빠르고, 더 단정하고, 더 균형적일 때도 있었다.
아이온 프로젝트를 아주 오래 준비한 것은 아니었다. 방송에 실제로 내보내기까지는 여러 기술 점검과 내부 논의가 필요했지만, 기본 시스템의 윤곽은 생각보다 빠르게 잡혔다. 대략 한 달 정도였다. 방송사가 AI 리포터를 만든다니 개발자 여러 명이 붙어 장시간을 고민했을 것 같지만 실제 현장은 조금 달랐다.
이것은 우리의 능력이 유난히 뛰어났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AI 기술이 그만큼 가까이 와 있었다. 예전 같으면 방송국이 직접 개발하기 어려웠던 기능들이 이제는 여러 서비스와 모델, 에이전트 조합으로 구현 가능해졌다. 중요한 것은 코딩 실력보다 제작 감각이었다. 무엇을 AI에게 시키고, 어떤 순서로 연결하고, 어느 단계에서 사람의 판단을 넣을 것인가. 기술보다 편성이, 개발보다 제작 설계가 더 중요했다.
아이온 제작 과정에서 우리가 얻은 가장 큰 노하우도 여기에 있다. AI를 잘 쓰려면 ‘좋은 프롬프트’만으로는 부족하다. 방송 제작의 공정을 AI가 이해할 수 있도록 쪼개야 한다. 발제, 취재, 자료 검증, 구성안, 리드 멘트, 그래픽 문구, 영상 제안, 최종 원고. 사람이 머릿속에서 한 번에 처리하던 일을 단계별로 나눠야 한다. 그리고 단계마다 AI가 해도 되는 일과 사람이 반드시 봐야 하는 일을 구분해야 한다.
예컨대 AI에게 “오늘 AI 뉴스 하나 써줘”라고 하면 대체로 밋밋한 결과가 나온다. 하지만 “아침 뉴스 시청자에게 필요한 글로벌 AI 산업 뉴스 후보 5개를 뽑고, 각각의 시청자 관심도·영상 가능성·경제적 파급력을 평가한 뒤, 1분 30초 방송 대본으로 적합한 순서를 제안해달라”고 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AI는 훨씬 방송 제작자에 가까운 방식으로 움직인다. AI는 질문의 수준만큼 일한다. 그리고 제작자의 질문은 결국 제작자의 경험에서 나온다.
‘방송 가능한 문장’을 가르치는 과정
프로젝트 진행 중 가장 어려웠던 것은 기술 자체보다 AI가 만들어낸 결과물을 방송 가능한 언어로 길들이는 일이었다.
AI는 가끔 너무 잘 쓴다. 문제는 바로 그것이다. 문장은 유려하지만, 방송에서는 길다. 근거는 그럴듯하지만 출처가 흐릿하다. 표현은 멋있지만 시청자가 한 번에 듣고 이해하기 어렵다. “AI 혁명의 패러다임 전환이 산업 생태계 전반에 구조적 변화를 야기하고 있다” 같은 문장은 보고서에는 들어갈 수 있어도, 아침 뉴스에서는 곤란하다. 시청자는 출근 시간에 뉴스를 듣는다. 물을 끓이고, 셔츠를 찾고, 아이 도시락을 챙기면서도 이해돼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AI에게 계속 방송 문장을 가르쳤다. 짧고 쉽게. 먼저 그림이 떠오르게. 추상어보다 동사로. 그래픽 문구는 8자 안팎으로 줄이고, 리드 멘트는 너무 많은 변수를 담지 않게 했다. 매일매일 조금씩 조정했다. 흥미로운 점은 AI가 이 피드백을 꽤 빠르게 흡수한다는 것이다. 어제 너무 길다고 지적한 구조는 오늘 조금 짧아져 온다. “이건 기사가 아니라 보고서 같다”라고 하면 더 방송 톤에 가까운 초안을 내놓는다. 사람 후배를 데리고 원고를 고치는 느낌과 닮은 구석이 있다. 다만 이 후배는 지치지 않고, 삐치지 않고, 새벽에도 바로 답한다는 차이가 있다.
하지만 그래서 더 조심해야 한다. 잘하는 AI일수록 틀렸을 때 더 위험하다. 어설픈 오류는 금방 보이지만, 유려한 오류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할루시네이션(환각)은 맞는 정보와 틀린 정보 사이에 그럴듯한 접착제를 발라 매끈한 문장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아이온의 뉴스 제작 과정에서 데스크는 문장 교정자가 아니라, 방송 책임의 최종 방파제여야 한다.
사람 없는 제작은 어디까지 가능한가
현재 아이온 코너에는 사람이 개입하고 있다. 하지만 제작 공정 대부분은 이미 사람 없이도 상당 수준 가능하다. 아이템 발제, 자료 검색, 관점 비교, 대본 초안, 그래픽 문구, 영상 구성안, 싱크 후보 제안까지 AI가 해낸다. 방송에 송출되는 CG와 동영상 자료 화면도 AI가 스스로 제작한다. 회사 내부 시스템과 보안 문제로 최종 영상 편집과 송출 단계까지 완전히 연결하지는 않았지만, 기술적 방향은 분명하다.
단순 정보 전달 영역이라면 더 그렇다. 날씨 특보, 지진 경보, 교통 정보, 금융 지표, 속보성 데이터처럼 정형화된 정보는 AI와 데이터 시스템을 연결하는 순간 거의 실시간으로 방송 문장화할 수 있다. 사람이 화면 앞에 앉아 원고를 기다리는 동안, AI는 이미 데이터를 읽고, 문장을 만들고, 화면에 등장할 준비를 마칠 수 있다.
물론 사람이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니다. 적어도 지금의 방송 저널리즘에서 사람은 여전히 필요하다. 다만 사람의 역할이 달라지고 있다. 정보를 찾는 사람에서, 질문을 설계하는 사람으로. 초안을 쓰는 사람에서, 기준을 세우는 사람으로. 모든 문장을 직접 만드는 사람에서 어떤 문장이 방송돼도 되는지 판단하는 사람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 변화는 꽤 불편하다. 솔직히 말하면 무섭기도 하다. 아이온을 만들며 가장 자주 느낀 감정은 뿌듯함과 섬뜩함이 섞인 것이었다. ‘우리가 뭔가 해냈다’는 생각과 ‘이러다 정말 많은 일이 바뀌겠구나’라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AI가 사람의 일을 돕는 수준을 넘어, 어떤 영역에서는 이미 이를 뛰어넘고 있다는 사실을 매일 확인했기 때문이다.
뉴스룸, AI 그리고 언론인
AI가 스스로 콘텐츠를 제작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면, 우리는 기술보다 먼저 책임을 이야기해야 한다. AI가 쓴 문장이 틀렸을 때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AI가 고른 아이템이 편향됐을 때 누가 설명할 것인가. AI가 만든 영상이 실제와 가상의 경계를 흐리게 만들 때 시청자에게 어떻게 알려야 하는가.
내부 원칙은 명확했다. AI 생성물이 방송에 사용될 경우 시청자가 알 수 있도록 표시한다. 뉴스의 생명인 정확성과 신뢰성을 위해 최종 단계에서는 사람이 확인한다. AI의 장점은 속도와 확장성에 있지만, 방송의 신뢰는 아직 사람의 이름과 조직의 책임 위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원칙이 AI 활용을 소극적으로 만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반대다. 기준이 분명할수록 더 과감한 실험이 가능하다. 어디까지 AI에게 맡길 수 있는지, 어느 지점에서 사람의 판단이 필요한지, 어떤 제작물에는 AI 표기가 필요한지, 어떤 영역은 아직 보류해야 하는지. 이런 기준을 세우며 부딪혀보는 과정 자체가 앞으로 언론사들에게 피할 수 없는 숙제가 될 것이다.
AI를 써본 사람과 안 써본 사람의 차이는 점점 커질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새로운 툴 하나를 배웠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뉴스 생산에 요구되는 감각이 달라진다. 예전에는 취재력, 문장력, 편집 감각이 필요했다면, 이제는 여기에 AI를 지휘하는 능력이 더해지고 있다.
PD든 기자든 작가든 마찬가지다. 앞으로 중요한 사람은 좋은 질문을 던지고, 결과물을 판별하고, 시청자에게 필요한 맥락을 고르는 사람이다. AI가 100개의 후보를 가져왔을 때 그중 방송할 하나를 고르는 감각. AI가 쓴 매끈한 문장 속에서 위험한 빈틈을 발견하는 눈. 그리고 AI가 먼저 묻지 않는 질문을 던지는 능력. 그런 역량이 더 중요해질 것이다.
AI는 생각보다 훨씬 대단했다. 그리고 생각보다 빨리 뉴스룸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누군가 거창하게 문을 열어주지 않아도, 어느 날 회의실 한쪽에 조용히 앉아 있다. 처음엔 보조처럼 보이다가 발제하고 대본을 쓰고, 회의하고 어느 순간 사람이 쓴 문장을 데스킹한다.
처음엔 우리가 AI 리포터 한 명을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아이온 프로젝트는 사람 없이 스스로 제작하는 AI 콘텐츠가 어디까지 가능한지를 확인한 첫 현장 실험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AI가 들어온 뉴스룸에서 사람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는 제작기이기도 했다.
방송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아침 7시 40분이 되면 뉴스가 나가야 한다. 그 시간에 맞춰 아이온은 화면에 서고, 화면 밖에서는 뉴봇과 아일린과 제니가 밤새 뉴스를 훑고, 서로 의견을 나누고, 오늘의 문장을 준비한다.
조금 과장해 말하면, 우리 팀은 AI 리포터를 만든 게 아니라 AI 제작팀을 들인 셈이다. 그리고 이 팀원들은, 아마 내일 새벽에도 나보다 먼저 출근해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