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사 상세
[취재기 제작기] 경인일보 <뚜안, 스물셋 죽음 뒤의 벽> 취재기
669 | 등록일 : 2026-08-28
지난 3월 10일 경기도 이천시 한 자갈 공장에서 베트남 국적 이주노동자 응우옌 반 뚜안 씨가 컨베이어벨트 끼임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경인일보는 한 줄의 부고로 끝날 수 있었던 이 사고의 이면을 파고들었다. 전국 최초로 ‘산업재해 사망 외국인노동자 유가족 지원 조례’가 통과되는 데 이바지한 취재기를 따라가 본다. 편집자 주

한 청년이 일터에서 숨졌습니다. 처음에는 ‘20대 이주노동자 끼임 사망 사고’라는 한 줄로 정리될 수 있는 사건처럼 보였습니다. 사고 개요와 입건 여부만 확인해도 기사는 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한 줄로는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뚜안 씨의 직계 유족은 모두 베트남에 있었습니다. 반면 부검과 장례, 시신 송환과 보상 절차는 한국에서 진행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죽음 이후의 절차에서 해외 유족은 쉽게 뒤로 밀려났습니다. 경인일보의 <뚜안, 스물셋 죽음 뒤의 벽>은 사고 기사 한 줄로는 보이지 않았던 사각지대를 따라간 보도입니다. 3개월여간 사고 현장과 경찰서, 빈소와 경기도의회를 오가며 전화 취재만으로는 알 수 없었던 절차의 빈틈과 기자에게 남은 질문들을 되짚어봤습니다.
 
지난 3월 13일 경기도의료원 이천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뚜안 씨의  빈소 ⓒ경인일보
지난 3월 13일 경기도의료원 이천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뚜안 씨의 빈소 ⓒ경인일보

사고 바깥에 남은 질문

사고 기사는 대개 전화로 시작됩니다. 경찰서에 전화를 걸어 사고 시각과 장소를 확인합니다. 소방과 노동 당국에도 출동 내용, 수사 착수 여부 등을 묻습니다. 사고가 난 회사가 확인되면 입장을 듣고 재발 방지 대책 등의 자료를 요청합니다. 다음 날 지면에 실릴 기사 한 꼭지는 그렇게 완성됩니다. “경찰과 노동 당국은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라는 익숙한 문장과 함께.

2026년 3월 10일 새벽, 경기도 이천의 한 자갈·모래 제조공장에서 베트남 국적의 청년 노동자 응우옌 반 뚜안(Nguyen Van Tuan) 씨가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졌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도 그랬습니다. 스물셋, 베트남 국적, 새벽 작업 중 끼임 사고. 처음 확인한 사실들은 산재 사망사고 기사에 필요한 최소한의 정보였습니다.

다음 날 현장에 갔습니다. 공장에는 경찰 통제선이 남아 있었습니다. 뚜안 씨가 마지막으로 쓰고 있던 안전모는 컨베이어벨트 아래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 앞에서 익숙한 질문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왜 기계는 멈추지 않았을까. 왜 그는 혼자 그 아래로 들어갔을까. 안전장치는 있었을까. 외국인 노동자가 이해할 수 있는 안전 교육은 이뤄졌을까. 산재 사망사고를 취재하는 기자에겐 당연한 질문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날 국내에 사는 뚜안 씨의 친척과 이주 인권 활동가들이 경찰서를 찾는 과정에 우연히 동행하면서 질문은 사고 원인 바깥으로 넓어졌습니다.

모두가 절차를 따랐지만

이천경찰서 수사관은 사고 경위와 향후 절차를 설명했습니다. 부검의 필요성, 동의권자, 시신 인도 시점, 위임에 필요한 서류가 차례로 언급됐습니다. 위임장과 가족관계 서류가 필요하다는 설명도, 불편한 점이 있으면 검사를 통해 의견을 낼 수 있다는 안내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정해진 절차를 따라 진행됐습니다.

다만 그 설명을 직계 유족이 직접 듣지 못한다는 점이 문제였습니다. 경찰서에 앉아 있던 사람은 사촌 누나 린 씨와 이주 인권 활동가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베트남의 가족을 대신해 물었습니다. 부검은 왜 필요한지, 누가 동의할 수 있는지, 시신은 언제 돌아갈 수 있는지 하나씩 확인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들은 설명은 추후 다시 베트남에 있는 가족에게 전달돼야 했습니다.

누군가 큰 소리를 높이거나 문전박대를 당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수사관은 자신의 자리에서 가능한 설명을 하고 있었지만, 그 설명을 들어야 할 부모와 형제들이 한국에 없다는 커다란 장벽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그날 이후 취재의 방향도 달라졌습니다. 뚜안 씨가 왜 숨졌는지와 함께 그의 가족이 죽음 이후 한국에서 이루어지는 절차를 어떻게 겪게 되는지도 지켜보려 했습니다. 사고 현장에 남아 있던 안전모에서 시작한 질문은 경찰서 안에서 다른 질문으로 이어졌습니다. 남겨진 가족은 어디에 서 있는가. 그 물음이 보도의 출발점이 됐습니다.

기사의 파장이 유족에게 어떻게 돌아올지

경찰서 취재 이후 기사의 초점은 사고 원인에서 죽음 이후의 절차로 넓어졌습니다. 유족이 어떤 설명을 듣고 있는지, 회사는 무엇을 지원하겠다고 했는지, 배·보상 협의는 어떻게 진행되는지 확인해야 했습니다.

사고 초기, 회사는 책임을 통감하고 장례와 필요한 절차를 지원하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중대재해 대응 조직을 둔 대형 로펌이 선임됐습니다. 유족 측은 위임장과 가족관계 입증 서류, 공증 절차를 거쳐 국내 대리인에게 권한을 맡긴 상태였습니다. 회사 측은 이를 부정하고 또 다른 형식의 위임장을 요구했고 배·보상 협의에 필요한 자료 제공도 늦어졌습니다. 유족이 권한을 증명하는 데 시간을 쓰는 사이, 협의의 주도권은 점점 회사 쪽으로 기우는 듯했습니다.

사고 한 달 뒤, 베트남에서 입국한 동생 뚜 씨가 형의 생일날 사고 현장을 찾았습니다. 그날 사 측은 언론의 출입을 제한했습니다. 저는 유족 측 동의 아래 활동가들과 함께 기자 신분을 밝히지 않고 공장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뚜안 씨가 숨진 기계와 작업 공간을 직접 확인하기 위한 잠입취재였습니다. 유족이 처음으로 사고 지점을 마주하는 이 자리는 취재진이 반드시 확인해야 할 현장이었습니다. 2인 1조 근무와 설비 정지 여부가 핵심 쟁점이었기에, 이주노동자인 뚜안 씨가 왜 새벽 시간 홀로 기계 쪽으로 들어가야 했는지 확인해야 했습니다. 그가 숨진 기계는 어떤 구조와 규모였는지, 작업자가 안으로 들어갔을 때 밖에서는 무엇이 보이고 무엇이 보이지 않는지도 직접 봐야 했습니다. 뚜안 씨가 어떤 기계 앞에서 일했고 어떤 공간에서 숨졌는지 확인해야, 작업 환경과 안전관리의 문제, 그리고 남겨진 가족의 질문까지 함께 설명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뚜 씨는 컨베이어벨트 아래에 국화꽃을 놓고, 향 대신 담배를 피워뒀습니다. 베트남에 있는 아버지는 영상통화로 그 장소를 봐야 했습니다. 해외 유족이 사고 현장과 절차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보여주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장면을 기사로 옮길 때도 한 가족의 애도 장면을 그대로 전하는 데서 멈추고 싶지 않아 고민했습니다. 무엇을 기사에 담아야 유족의 권리가 보이고, 그들의 슬픔이 기사 속 장면으로만 소비되지 않을지 생각했습니다.

사 측은 취재 내용에 예민하게 반응했습니다. 특히 현장 취재가 문제가 됐습니다. 사 측은 유족 측에 예외적으로 허용한 현장 방문에 기자가 동행한 것을 두고, 배·보상 협의에 나선 대리인과 활동가들에게 신뢰를 깬 행동이라는 취지로 항의했습니다. 합의 이후에도 언론 보도가 이어질 수 있다는 점 역시 협의 과정에서 쟁점이 됐습니다.

사건의 진상을 확인하고 그 이면을 보도하는 일은 당연한 취재였습니다. 그러나 회사와 협의를 이어가야 하는 유족 측에는 취재 시도 자체가 회사에 해명해야 할 문제가 된 것입니다. 공론장에서는 필요한 보도가 현실의 협상 과정에서는 유족에게 불리한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점이 이번 취재의 아이러니였습니다.

그래서 기사마다 공개 시점을 따져야 했습니다. 지금 쓸 수 있는 사실인지, 조금 더 확인한 뒤 써야 하는 내용인지 구분했고, 기사에 쓰인 문장이 사 측과의 협의 과정에서 유족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함께 살피고자 했습니다. 유족의 의사와 협의 상황을 건너뛰고 보도가 앞서가서도 안 됐습니다. 기사로 쓰는 순간 회사는 보도에 대응했고, 유족은 그 파장을 함께 감당해야 했습니다. 사고의 진상을 짚은 기사가 다시 유족에게 돌아오는 과정을 보며 기사 한 줄이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의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죽음 이후를 오래 보려는 일

뚜안 씨가 숨진 곳은 경기도 이천이었습니다. 사고 다음 날 찾아간 공장, 유족과 활동가들이 향한 경찰서, 경기지방고용노동청 앞 기자회견과 시민분향소, 조례를 논의한 경기도의회까지 모두 경기도 안에 있었습니다. 사고 현장을 본 뒤 장례식장으로 갔고 분향소와 수사기관의 설명, 도의회 논의까지 이어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 사건이 하루짜리 산재 사망사고 기사로 끝나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지역 언론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끝까지 취재를 이어갔습니다. 경인일보 보도를 접한 유호준 경기도의원은 뚜안 씨 가족이 겪은 일이 개별 사건의 어려움에 그치지 않고, 산재 사망 외국인 노동자의 해외 유족이 제도 밖에 놓이는 문제라고 봤습니다. 그는 이를 지방정부가 제도적으로 다뤄야 한다는 문제의식으로 조례를 준비했고, 이후 ‘산업재해 사망 외국인노동자 유가족 지원 조례’를 대표 발의했습니다. 조례안은 여야 의원들 사이에서도 큰 이견 없이 논의됐습니다.

그렇게 지난 6월 경기도의회에서 전국 최초로 제정된 해당 조례에는 해외 유족에게 입국 절차와 국내 체류, 장례와 시신 송환, 통역과 법률·심리 상담, 산재 보상 절차 등을 지원할 수 있는 근거가 담겼습니다. 뚜안 씨 가족에게는 무엇 하나 당연하지 않았던 일들이었습니다.

조례 통과 소식을 베트남에 있는 유족에게 전했습니다. 남동생 뚜 씨는 이 조례가 외국에서 산업재해로 가족을 잃은 유족에게 ‘가장 힘든 시기에 가족들이 사회의 관심과 배려를 받고 권리를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해준다고 했습니다.

조례가 뚜안 씨를 돌아오게 할 수 없고, 한 가족이 겪은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습니다. 다만 비슷한 죽음이 반복됐을 때 국경 밖 유족이 소외되지 않도록 하는 장치가 생겼다는 점은 분명했습니다.

뚜안 씨의 죽음 뒤에는 국경의 벽, 언어의 벽, 행정의 벽이 있었습니다. 공식적인 답변만으로는 충분히 이해하기 어려운 무심함의 벽도 있었습니다. 한 편의 기사가 그 벽을 한 번에 무너뜨릴 수는 없겠지만, 그 벽에 가로막힌 사람들을 조명하고자 했습니다. 이번 보도를 통해 죽음이 한 줄의 사고 개요로 정리된 뒤에도 그 한 줄 밖에 남은 사람들을 조금 더 오래 바라보는 일의 가치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저자의 다른 미디어
  • 필자 : 유혜연
  • 소속 :
  • 직함 :
  • 발행 : 2026-08-28
  • 조회수 : 40
  • 키워드 :
블로그 공유 트위터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