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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195km 중에서 이제 100m 남았다. 다리는 다 풀렸고 폐는 타들어 간다. 결승선이 아지랑이처럼 흔들리며 다가오고 있다. 이제 곧 모든 것이 끝난다. 그런데 바로 그때, 펜스 뒤 관중석이 웅성댄다. 누군가 펜스를 훌쩍 넘어 트랙 위로 뛰어든다. 그가 살기 어린 얼굴로 두 팔 벌려 나에게 달려온다. 저자에게 막히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된다.
2026년 5월, 다큐멘터리 <사이비 헌터>의 공개를 앞두고 소송 폭탄이 쏟아졌다. 방송금지 가처분 소송 세 건, 형사고소 한 건, 언론중재위원회 조정신청 한 건. 마라톤 결승선이 코앞인데 막혀서 나자빠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덮쳐 왔다. 소송에서 진다면 지난 1년간의 고생, 15억 원이 훌쩍 넘는 제작비, 공동제작사나 플랫폼과의 계약이 모두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 어렵게 자신의 아버지가 겪은 이야기를 카메라 앞에 꺼내놓은 유가족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된다. 경찰서와 검찰청, 법원에 끌려다니다 PD로서의 인생이 끝날지도 모른다. 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대한민국 최초이자 유일한 사이비 헌터의 죽음
<사이비 헌터>는 2026년 5월 지상파 방송사 MBC와 OTT 플랫폼 웨이브에 동시 공개된 탐사보도 다큐멘터리다. 제목 그대로 사이비 종교 잡는 일을 했던 실존 인물인 고(故) 탁명환 국제종교문제연구소장(이하 탁명환 소장)에 대한 이야기다. 탁명환 소장은 배우 이정재 씨가 연기한 영화 <사바하> 주인공 박 목사의 모티브가 된 인물이다.
그는 1994년 2월 18일 밤 10시경, 자택인 서울 노원구의 아파트 복도에서 피살됐다. 살해 도구는 쇠 파이프와 길이 28cm의 칼. 사인은 과다 출혈. 쇠 파이프가 뒤에서 탁명환 소장의 머리를 가격했다. 곧이어 칼이 탁명환 소장의 목 우측으로 들어가 경정맥과 식도를 지나 경동맥까지 절단했다. 동맥이 잘렸으므로 피가 쏟아졌는데 복도에는 핏자국이 거의 남지 않았다. 부검 결과 탁명환 소장의 위에 상당량의 피가 고여있었다. 고통의 정도나 공포의 크기가 극심했을 것이다.
피살 전까지 그는 평생 70여 차례의 테러를 겪었다. 차량 폭발 테러도 있었고, 급습한 괴한들에게 몸통 앞뒤를 칼에 찔린 일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기적적으로 살아난 그를, ‘마지막 사탄’이라고 부르는 이들도 있었고 ‘예수님의 은총’이라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는 통일교, 구원파, 영생교, JMS, 신천지 등 우리가 알고 있는 각종 신흥종교와 초창기부터 대립했다. 집단 폭행, 납치 시도, 소송 폭탄, 암살 시도 등 일반인에게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졌다. 그래도 그는 카메라와 펜을 놓지 않았다. 이번엔 달랐다. 1994년 2월 19일 자정을 넘긴 상계백병원. 당직의는 탁명환 소장의 사망을 선고했다. 향년 56세. 대한민국 최초의, 유일한 사이비 헌터가 죽었다.
사건 직후 범인은 검거됐다. 수사기관은 그에게 배후를 밝히라 했지만, 범인은 단독범행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렇게 30여 년이 흘렀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탁명환이라는 이름은 지워졌다.
내가 탁명환 소장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건 우연이었다. MBC 시사교양 PD로, 사이비 종교 문제를 취재할 때 자주 언급되는 전문가들이 있다. 탁지일 부산장신대 교수, 탁지원 현대종교 소장이 그런 이들이다. 어느 날인가 문득 그들의 성이 눈에 들어왔다. 둘 다 ‘탁’ 씨네? 혹시 형제들인가? 어, 둘이 정말 형제네! 그런데 형제들이 다 사이비 종교랑 싸우고 있네!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의 아버지 역시 사이비 종교와 싸웠고 심지어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내 마음을 움직인 건, 자신의 아버지가 매우 비극적으로 살해됐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가 걸었던 험난한 길을 아들들이 이어가고 있다는 점이었다. 슬프면서도 매혹적이었다.
탁명환 소장의 첫째 아들인 탁지일 교수를 만나기 위해 그가 있는 김해로 내려갔다.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오랜 고민 끝에 허락했다. 놀랍게도 그때 그가 내게 들려준 이야기는 이 다큐멘터리가 30년 전에 종결된 사건이 아니라, 미제 사건일 수 있다는 가능성이었다. 몇 해 전 그는 발신자 미상의 누군가로부터 “당신 아버지 탁명환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내가 알고 있다. 그 사건 범인이 대성교회(현 평강제일교회)에 50억 원을 요구했다. 진실을 덮는 대가로”라는 텔레그램 메시지를 받았다.
그 메시지를 본 순간, 이 다큐멘터리는 ‘평생 사이비 종교와 싸우다 살해당한 한 남자에 대한 인물 다큐멘터리’에서 ‘사이비 헌터 탁명환의 죽음 뒤에 숨겨져 있는 진실을 파헤치는 탐사보도 다큐멘터리’로 장르가 변경됐다.
익숙한 다큐멘터리의 문법이 깨지기까지
탁명환 소장 유가족의 허락을 구했으니, 그다음 할 일은 좋은 동료들을 찾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함께 고민하고, 나보다 훨씬 뛰어난 능력을 가진 동료를 만나는 일이다. 내게 충격과 질투를 동시에 안겼던 세 편의 SBS <그것이 알고 싶다>가 있는데, 모두 한 작가가 집필한 작품이어서 놀랐던 적이 있다. 그 작가는 이후 드라마 작가로 변신했다. 분명 거절당하겠지만 제안은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PD의 일은 거절당하는 게 8할이므로.
2025년 4월 21일. 벚꽃 만발한 마포의 한 오피스텔 건물 1층에서 윤홍연(필명) 작가를 두 번째로 만나는 자리. 예상 밖의 말을 들었다. 그는 “하고 싶었던 이야기예요”라며 네 장짜리 구성안을 건넸다. 이제는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는 탁명환이라는 이름을 다시 불러주고 싶다는 마음이 담긴 글이었다. 나 말고도 이 이야기를 진심으로 하고 싶었던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윤홍연 작가에 이어 <그것이 알고 싶다>, <당신이 혹하는 사이>를 집필한 장윤정 작가가 합류했다. 나의 MBC 입사 동기이자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신의 구슬> 등 대작을 촬영한 김선철 촬영감독도 함께하기로 했다. 우리가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우리가 밤새 만들고 있는 이 이야기가 어떤 의미를 품고 있는지를 PD보다 더 고민하는 ‘키 스태프(key staff)’를 만나는 건 엄청난 행운이다. 나는 그 행운을 누리며 첫 컷을 찍을 수 있었다.
취재 과정에서 탁명환 소장에 대한 캐릭터가 구체화됐다. 자료와 증언이 부족한 초기 기획단계에서 내가 그렸던 탁명환 소장은 ‘엄격·근엄·진지’한 캐릭터였다. 평생 사이비 종교들과 싸우며 수십 차례의 테러에서도 살아남았던 인물이니까. 그런데 그의 활동을 도왔던 기자나 목사들, 또는 그로부터 도움받았던 사이비 종교 피해자들의 이야기 속 탁명환 소장은 의외의 모습이었다.
공통된 증언에 의하면, 탁명환 소장과 함께 밥을 먹으면 없던 입맛까지 돌아오는 느낌이었다고 한다. 마치 먹방 유튜버처럼 정말 밥을 맛있게, 많이 먹었다는 거다. 오케이, 밥 잘 먹는 옆집 아저씨. 그에 대한 또 다른 증언들은 영화 <킹스맨>을 연상케 했다. 그는 종교 단체에 잠입할 때 쓰려고 가발, 콧수염, 여러 디자인의 안경을 차 트렁크에 넣고 다녔다. 재킷 안쪽에는 유언장을, 허리춤에는 가스총을 차고 움직였다.
탁명환 소장이 히어로물의 주인공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내 앞에 닥친 시련을 능동적이고 긍정적인 태도로 헤쳐나가는 인물’. 수많은 작법서가 공통적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야기의 공식에 딱 들어맞는 캐릭터였다. 캐릭터가 명확해지자 이 다큐멘터리는 ‘사이비 종교의 폐해를 파헤치고 폭로하며 피해자들을 구제하고 싶은 사이비 헌터가, 사이비 종교와의 전쟁에서 겪는 숱한 테러를 극복해 나가는 스토리’가 됐다. 이는 사이비 종교를 다뤄온 많은 다큐멘터리가 취해온 익숙한 관점에서 벗어나는 단초가 됐다.
<PD수첩>, <그것이 알고 싶다> 등 국내 탐사보도 프로그램과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 등이 사이비 종교 문제를 다룰 때의 서사는 주로 피해자의 관점에서 전개됐다. 피해자 입장에서 반사회적이고 비윤리적인 사이비 종교의 행태를, 그것을 직접 겪은 피해자가 스스로 고발한다. 여기엔 다른 무엇이 대신할 수 없는 힘이 실린다.
그러나 <사이비 헌터>의 주인공 탁명환은 사이비 종교의 피해자라기보다는 사이비 종교의 대적자였다. 사이비 종교로부터 많은 공격을 받았지만 또한 사이비 종교 피해자들을 구제했다. 사이비 종교를 다루는 다큐멘터리의 익숙한 문법으로는 탁명환이라는 인물을 충분히 보여줄 수 없다는 고민이 취재를 통해 자연스럽게 해결됐다. <사이비 헌터>는 숱한 사이비 종교들과 맞서 싸운 평범한 남자이자 세 아들의 아버지가 펼치는 활극이 됐다.
결정적 도움을 준 소송
탁지일 교수가 공개한 텔레그램 메시지를 시작으로, 제작진은 30년 전 살해 사건에 배후가 있다고 의심하는 사람들이 더 있는지 찾아 나섰다. 그 과정에서 범인 임홍천 씨의 누나를 만났다. 카메라 앞에 앉기까지 수개월이 걸렸다.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동생은 출소 후 교회 측에, 자신이 탁명환 소장을 살해한 건 당시 탁명환 소장과 갈등하던 박윤식 목사의 지시 때문이었으며, 이 진실이 폭로되기를 원치 않으면 돈으로 보상하라고 요구했다. 누나는 그 과정에서 동생과 교회 사이의 대화를 잇는 역할을 했다.
문제는 물증이었다. 아무리 취재원의 말이 구체적이라 하더라도 그 말을 뒷받침할 수 있는 문서, 사진, 영상, 녹음 등의 물증이 없다면 탐사보도는 실패한다. 분명 누나에게는 자신의 말이 사실임을 증명해 줄 물증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나에게 주지 않았다. 아마도, 동생에 대한 복잡한 마음이 그 결정을 망설이게 했을 것이다.
누나의 말이 사실임을 증명할 수 있는 물증을 찾는 건 제작진의 몫이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탐사보도 다큐멘터리 제작진의 강박과 집착이 시작된다. 특정 지역의 아파트 등기부등본을 전수조사한다거나, SNS를 뒤져 누가 ‘좋아요’를 눌렀는지 찾고, 팔로워의 팔로워의 팔로워까지 일일이 쫓아가는 그런 일들. 김잔디·한수진·가정인 작가, 최유빈·맹현서 PD는 수사권만 없지 수사관처럼 일했고 결과로 입증했다. 그리고 마침내 탁명환 소장을 살해한 임홍천 씨를 만나 그에게 진실을 물을 수 있었다.
임홍천 씨를 만나 질문했던 것은 단 하나다. “박윤식 목사 사주로 탁명환 소장을 살해하고, 그 진실을 숨기는 대가로 교회로부터 큰돈을 받은 게 사실입니까?” 나는 같은 질문을 대성교회에도 던졌다. 교회는 소송으로 답했다. 이 다큐멘터리의 방송을 금지해달라는 것. PD가 교회의 명예를 훼손하고 거짓을 방송하려 한다는 주장이었다. 소송에 졌을 때 닥칠 후폭풍이 걱정돼 한동안 잠을 못 잤다. 그러다 예상치 못하게 일이 풀렸다.
소송 당사자인 내가 법원에 답변서를 제출하면 상대측은 그 답변서에 대한 반박을 작성해 법원에 낸다. 교회 측이 제출한 반박 문서 역시 나에게 전달되는데 놀랍게도 거기에 내가 그토록 확보하고자 했던 물증이 첨부돼 있었다. 임홍천 씨가 출소 후 교회 측에 돈을 요구하기 위해 작성했던 내용증명 원본이었다. ‘박윤식 목사가 탁명환 소장 살해를 지시했다’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즉, 가장 중요한 당사자의 진술이 물증의 형태로 법원을 통해 제작진에게 직접 전달된 것이다. 이에 대해 임홍천 씨와 교회 측은 ‘감정적인 동요 상황에서 작성된 허위의 내용’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박윤식 목사의 사주로 탁명환 소장을 살해했다는 내용을 담은 내용증명이 임홍천 씨에 의해 작성됐고, 이후 교회와 임홍천 씨 사이에 돈이 오갔다.
PD로서 끝까지 싸우는 이유
시사교양 PD로 살며 협박과 소송을 한두 번 겪은 게 아니다. 그런데 <사이비 헌터>는 유독 더 힘들었다. 칼에 맞는 악몽도 꿨다. 집 앞에 낯선 차가 서 있으면 불안했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걱정됐다.
해가 떠 있는 낮에도 마음 밑바닥을 흔드는 불안을 안고 1년을 살았지만 그럼에도 이 다큐멘터리를 끝까지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주인공 탁명환 소장과 세 아들의 삶이 던진 질문 때문이었던 것 같다. 사람들은 이길 수 있는 싸움을 해야 한다고 쉽게 말하지만, 지더라도 끝까지 싸운다면 그것 역시 의미 있지 않은가?
<사이비 헌터> 공개 후, 내가 조연출이던 시절 메인작가였던 작가님으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그 메시지로 이 글을 마치고 싶다.
“‘나 뭐 하려고 PD가 됐나’라고 자문한 적 있는 PD라면, ‘나 이거 하려고 PD했네’ 싶은 프로그램이 있을 텐데, 어제 내가 본 프로그램이 사십 대를 가로지르는 이 시점의 서정문 PD에게 그런 게 아니었을까 싶었음. 그 어떤 아이템보다 선정성을 앞세워도 알리바이가 성립하고 큰 박수마저 받을 수 있는 종교 문제를 다른 방법으로 볼 수 있어서 좋았고, 무엇보다 탁명환과 세 아들을 다시 떠올리게 해줘서, 그들의 평안을 빌 수 있어서 좋았음. 방송까지 고된 시간은 이제 끝났고 이 기억과 어떻게 살아갈지 부디 Peace be with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