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상세
‘과연 얼마나 나올 것인가?’ 경향신문 기획취재팀(황경상·이효상·유선희·이수민·박채움 기자)이 전국 지방의원의 수의계약 문제를 전수조사 해보자고 마음먹었을 때 가장 먼저 들었던 걱정 아닌 걱정이었다.
지방의원이 본인 소유 혹은 가족·지인 명의 업체로 소속 지방자치단체의 관급공사 등을 수의계약으로 따내는 문제는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아직도 간간이 터져 나오고는 있지만, 노골적인 사례는 많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22년 5월 이해충돌방지법이 시행됐고 처 사례도 나오고 있었다. 많이 나오지 않을수록 한국 사회 전체로는 좋은 일이지만, 기획을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김빠지는 일이 될 수밖에 없었다.
부정적인 사례로 의심되는 케이스를 하나씩 스프레드시트에 추가하면서 100억, 200억으로 늘어나는 총액을 매일 확인했다. 공개된 자료에 버젓이 올라와 있는 의원 관계회사의 수주 실적을 찾아내는 일은 짜릿함을 선사했지만, 한편으론 착잡한 마음도 들게 했다. 아무도 보지 않으리라 생각했는지, 너무나 적나라한 모습에 놀랐고 그만큼 분노도 일었다.
사람과 인공지능이 합작한 탐사보도
한국 언론에서 인공지능(AI)을 활용한 보도는 걸음마 단계라고 볼 수 있다. 기사 생성 자동화를 시도하거나 이미지·그래픽을 만드는 도구적 활용이 대부분이다. 인공지능을 보조 도구가 아닌 취재의 메인으로 활용해 보려는 생각이 있었고 늘 장기적인 과제로 염두에 두고 있었다.
팀에 새롭게 합류한 기자가 이 기획안을 제안했을 때, AI를 본격적으로 활용해 볼만한 주제라고 생각했다. 지방의원 수의계약 내역을 전수조사하는 일이 어려웠던 이유는 너무 방대하기 때문이었다. 지자체들은 계약정보공개시스템에 수의계약 현황을 게시하고 있지만, 243개 지자체 시스템 형태는 모두 제각각이었다. 다운로드가 가능한 곳도 있었지만 기간 제한을 걸어두거나 다운받은 파일이 깨지는 등 기능 자체가 엉망인 경우도 있었다.
AI 도구 클로드코드(Claude Code)와 안티그래비티(Google Antigravity)를 활용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 각 지자체의 URL 페이지를 주고, 우리가 수집하려고 하는 요소를 입력하기만 하면 클로드코드와 안티그래비티는 자동으로 수집 프로그램을 만들어 결과를 엑셀 파일로 돌려줬다. 이렇게 해서 한 달에 걸쳐 535만여 건의 계약 정보를 추출했다. 물론 일일이 들어가 클릭하고 긁어 복사·붙여넣기를 해도 된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그렇게 하면 5~6개월이 소모됐을 가능성이 크다. AI를 활용하지 않았다면 방대한 계약 정보 수집은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수집하는 도중에도 취재를 멈추지 않았다. 우선 전국 민선 8기 기초·광역의원들의 경력, 겸직 현황, 민간 업무 활동 내역을 수집해 정리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제공하는 후보자 정보, 지방의회 웹페이지, 정보공개센터가 운영하는 ‘오픈와치(OpenWatch)’에 올라와 있는 자료 등을 참고했다. 이를 통해 의원 본인과 배우자·직계가족이 관련된 업체명을 추렸다. 전체 계약 자료가 수집되는 동안 광역의원부터 수작업으로 확인해 보기로 했다. 계약정보시스템에 들어가 업체명을 입력해 일일이 확인해서 의심 가는 케이스를 모았다. 전국 지자체의 계약정보 수집이 완료된 뒤에는 정리한 기초·광역의원 관련 업체명과 계약정보상의 업체명을 자동으로 대조해 의혹 대상 의원들을 골라냄으로써 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었다.
이제는 사람이 본격적으로 달라붙어야 할 시기였다. 의원과 관련된 업체가 지자체 수의계약 현황에서 발견되면 회사와 의원 간의 연관성을 파악하기 위해 법인 등기부등본을 떼서 확인했다. 의심이 가는 업체는 네이버 지도에서 거리뷰를 확인해 보고, 건물 내 혹은 인근에 있는 업체들도 등기부등본을 떼서 의원과 관련성을 살폈다. 뉴스타파의 공직자 재산 정보에서 의원 본인과 배우자, 가족 등이 보유한 토지·건물·증권 내역을 찾은 뒤, 부동산 주소와 회사 지분을 확인해 보고 등기부등본과 대조했다. 이를 위해 500건에 가까운 법인, 부동산 등기부등본을 발급받았다. 이런 과정을 거쳐 1차로 수의계약 의혹 지방의원 142명을 추려냈다.
개별 의원 검증에 앞서 문제 제기의 기준을 명확히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이 부분은 수차례 회의하면서 고민을 거듭했다. 이해충돌방지법은 수의계약 제한 대상을 본인과 배우자, 부모·자식 소유 업체로 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동생 업체 등으로 서울시 수의계약을 수주해 논란을 빚은 김경 전 서울시의원 같은 사례는 빠지고 만다.
논의 끝에 기준을 크게 세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는 의원 당선 후에도 본인이 회사에 직위나 지분을 유지하고 있는 ‘겸직/지분 보유’, 둘째는 회사 대표 명의를 가족이나 지인에게 맡긴 것으로 보이는 ‘파킹 의심’, 셋째는 의원의 형제자매 등 가족이 운영하는 ‘가족회사’ 유형이다. 적어도 이런 유형이라면 공적 문제를 제기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이렇게 기준을 적용해 의혹 대상 지방의원들을 한 명씩 검증한 결과 광역·기초의회 의원 91명이 본인 혹은 가족, 지인 등이 운영하거나 실소유가 의심되는 업체를 통해 2,719건의 수의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확인됐다. 계약 금액은 모두 516억여 원에 달했다.
현장에서 만난 의원님 명패
91명의 의원 중 문서 확인으로 본인과 업체와의 연관성이 비교적 명확하게 확인된 이들을 제외하고, 68명의 의원과는 사실 확인과 해명 청취를 위해 직접 통화했다. 많은 이들이 “특혜받기 위해 힘쓴 적 없다”, “나와 전혀 관계없는 회사다”라고 해명했지만 취재팀이 확인한 사실 자체를 부인하지는 못했다. “이게 무슨 문제냐”라며 “의원 되기 전보다 수의계약을 훨씬 못하고 있다”라며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경우도 있었다. 일부 의원들은 2인 이상의 견적을 받는 수의계약은 수의계약이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국민권익위원회 확인 결과 ‘수의’라는 명칭이 들어가는 이상 모두 법상 금지된 수의계약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해석을 받았다. 법을 가장 엄격하게 준수해야 할 공직자들이 제대로 된 관련 규정조차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전국을 돌며 현장 취재도 진행했다. 경기 가평군의 한 의원이 당선 전 운영하던 업체는 대표가 바뀌었지만 수차례 수의계약을 따냈다. 실소유자가 의심스러워 이 업체의 주소지를 찾아가 보니 일반 가정집이었고, 그곳에는 해당 의원의 명패가 붙어 있기도 했다.
지역 지방의원 절반가량이 수의계약 문제가 확인돼, 기초자치단체 중 문제 의원이 가장 많았던 경북 의성군도 찾아갔다. 의혹이 제기된 업체 현장을 일일이 다 방문했다. 간판도 없고 문을 닫은 지 오래돼 보여 실체가 의심되는 업체도 있었다. ‘관계없는 회사’라는 해명과 달리 해당 의원 이름으로 우편물이 배달돼 있기도 했다. 현장에서 만난 군의원 가족은 “누구 것이라는 걸 아니까 조금은 도움을 주지 않았겠냐, 전혀 아니라고는 말 못하겠다”라는 등 실질적인 영향력 행사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백번 양보해 수의계약이라고 하더라도 지역에 꼭 필요한 사업을 진행했다면 이해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건설업체를 가지고 관급공사 예산을 수의계약으로 따낸 뒤 선심성 공사를 해주고 표를 얻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가 파다했다. 실제로 전남광주 광양시의 현장에 가보니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산길 포장에 예산이 투입됐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마을 주민들은 “10년, 20년이 지나도 그 길을 지나갈 일이 없다”라고 했다. 쇠사슬로 막혀 있어 진입조차 안 됐던 그 길은, 광양시 전직 공무원의 농장을 둘러싸고 있었다. 지역 도의원은 농장주의 민원을 듣고 사업 소재지를 선정했다고 했지만, 이전부터 알고 지내던 지인이었다. 공사는 또 다른 도의원이 소유했던 업체가 진행했다. 사업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예산을 쓰거나 공사를 하기 위해 만든 사업이 아닌지 의심됐다.
지방의원뿐 아니라, 지역에서 수의계약을 활용해 절대 권력을 행사하는 군수의 문제도 다뤘다. 지역민과 동료의원들, 행정기관과 지방의회 등 취재를 통해 군수의 조카와 측근들이 군이 발주하는 수의계약을 다수 챙기고 있었던 사실을 확인했다. 한두 군데의 문제도 아니었다. 지역의 한 건설업자는 “군수는 지역에서 완전히 황제”라고 말했다. 엉망으로 공개되고 있는 수의계약 내역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수의계약 자료 수집 과정에서 계약업체명을 공개하지 않거나 수의계약 내역에 전혀 엉뚱한 업무추진비 자료를 올려놓는 지자체도 확인했다. 이런 기본적인 정보조차 정확히 공개가 안 된다면 감시는 요원한 일이다.
‘수주왕’ 제목 붙였지만… 무용론 아냐
마지막까지 고심했던 것은 실명 보도 여부였다. 취재팀은 지방의원의 사회적 위치를 고려할 때 공익적 목적의 실명 보도가 필요하다고 보고 법률 자문을 거쳐 거론된 대부분의 의원을 실명으로 다뤘다. 부담이 컸지만 그만큼 사회적 환기가 필요한 사안이라고 생각했다.
다행히 보도는 정부의 즉각적인 반응을 끌어냈다. 지난 7월 14일 이재명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보도 내용을 국무위원들과 공유하며 “이해충돌 행위가 만연하고 있는데 행정안전부는 모르고 있다”라며 대책을 주문했다. 행정안전부, 경찰청, 감사원 등에서도 대책 마련과 감사, 수사에 착수했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에서도 이해충돌 의혹을 철저히 조사하라는 목소리가 나왔다. 쏟아진 제보 중 일부를 후속 취재해 보도하기도 했다.
독자들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수집한 500만여 건의 계약 자료를 누구나 검색할 수 있도록 인터랙티브 뉴스로도 구축했다. ‘수주왕 의원’이 누구인지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인포그래픽을 제작했다. 편집국 이노베이션팀의 도움을 얻어 숏폼 영상도 만들어 배포했다. 독자들은 전화와 댓글로 “이런 게 언론이 할 일”이라며 응원의 목소리를 전해왔다.
이번 기획에는 <의원님은 수주왕>이라는 어쩌면 자극적일 수도 있는 제목을 붙였다. 고질적인 병폐가 좀 더 주목받아 이번 기회에 개선됐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 그렇다고 지방의회나 지방자치제도의 무용론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으면 한다. 열정적으로 일하고 지역 주민들의 소통 메신저 역할을 하는 지방의원들도 많기 때문이다.
현실 진단과 대책을 듣기 위해 의성군·경북도의원 출신 임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만나 인터뷰했을 때, 임 의원은 지방의원으로서 열정적으로 일했던 경험과 지역주민들의 소통 창구로서 느낀 뿌듯함을 전해주기도 했다. 지자체장이나 지방의원으로서 좋은 모습을 보여준 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전국 단위 정치인이 된 경우도 많다. 오늘도 지역에서 땀 흘리고 있는 좋은 정치인들도, 또 수주왕 의원들도 모두 같은 제도에서 나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