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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유수 잡지들의 폐간 소식과 감각적인 새로운 잡지들의 탄생 소식이 혼재하는 가운데, 한국 잡지는 위기를 맞은 걸까? 잡지를 둘러싼 환경이 달라진 지금, 새로운 시대에 접어든 잡지를 재정의할 필요가 있다. 편집자 주
10대 시절의 나는 잡지를 좋아했다. 《핫뮤직》과 《스크린》을 틈틈이 구해 읽었고, 《윙크》나 《미르》 같은 순정만화 잡지도 매달 사 모았다. 스무 살의 내게 《키노》와 《씨네21》, 《이매진》은 그동안 알고 있던 잡지의 정의를 다르게 해준 계기였다. 《리뷰》와 《오늘예감》, 《샘이 깊은 물》은 잡지를 신봉하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엘르》, 《피가로》, 《보그》와 《GQ》는 한국적인 세련미에 대해 완전히 다른 경험을 주기도 했다. 1990년부터 1999년까지, 나는 잡지에 파묻혀 살다시피 했다.
처음으로 원고료를 받고 글을 쓴 것도 월간지였다. 그 세기말의 1999년 이후 나는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음악 웹진인 《웨이브》의 편집장을 맡기도 했고, 두 번째 직장이던 네이버의 뉴스팀 내에서는 잡지 파트를 담당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창간된 엔터테인먼트 전문 웹진 《매거진t》의 취재팀장을 지내기도 했고, 본격적인 프리랜서, 혹은 전업 평론가로 일하기 시작한 2009년부터는 국내에 출간되는 거의 모든 잡지에 글을 썼다. 가장 최근에는 스페이스오디티라는 음악 스타트업에서 《블립 매거진》이라는 아티스트 잡지를 크라우드펀딩으로 제작하기도 했다. 어쩌다 보니 1999년부터 지금까지 내 경력은 잡지와 딱 붙어 온 셈이다.

잡지는 광고판이다
이런 입장에서 ‘한국 잡지의 위기’라는 주제는 여러 생각을 돌아보게 만든다. 특히 최근에 유서 깊은 잡지들의 폐간 혹은 장기 휴간 소식을 들었다. 《대학내일》이 그랬고 《샘터》가 그랬다. 《샘터》의 경우 폐간 선언 후 우여곡절 끝에 부활했지만, 동시에 새로운 잡지들의 탄생을 보기도 한다. 감각적인 문학잡지를 표방한 《언유주얼》, 《릿터》, 《악스트》와 일상 분야 잡지를 지향하는 《볼드 저널》, 사진 전문 잡지 《보스토크》나 도시별 커피와 커피 문화를 소개하는 《드리프트》 등은 꽤 인기가 많은 잡지다. 《프리즘오브》, 《필로》 같은 영화 잡지들도 꽤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 《매거진B》가 창간한 지도 벌써 10년이 됐으니 그새 잡지의 경향이 뒤집힐 만하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최근 몇 년 동안 미디어에서는 ‘독립 잡지의 부흥’과 ‘잡지 시대의 종말’이라는 헤드라인을 동시에 접할 수 있었다.
스마트폰 시대에 잡지만큼 만감이 교차하는 대상은 없었던 것 같다. 많은 사람이 그 원인으로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의 출현을 꼽을 것이다. 손에 쥔 전화기가 사실상 소형 컴퓨터의 역할을 맡으면서 잡지를 대체할 미디어가 대거 등장한 것이 주요 원인이라고 말이다. 물론 이것은 잡지에만 국한된 얘기는 아니다. 지난 10여 년간, 특히 최근 5년 정도의 시간 동안 사실상 거의 모든 인쇄 매체가 스마트폰과 경쟁했고, 대다수는 실패했다. 스마트폰이 만든 경쟁 체제는 경계가 없다. 스마트폰을 기준으로 종이책은 유튜브와 경쟁하고, 유튜브는 소셜미디어와 경쟁하고, 소셜미디어는 게임과 경쟁한다. 이 와중에 그동안 독자, 시청자, 플레이어, 청취자 등으로 특화돼 불리던 고객 집단은 ‘사용자’라는 정체성으로 통합된다. 스마트폰이 주도하는 이 게임은 사용자의 한정된 시간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다.
내가 기억하는 잡지의 전성기, 혹은 내가 잡지와 사랑에 빠졌을 때는 이런 상황은 아니었다. 그저 시대와 환경이 달라졌다. 여기서 슬퍼할 것인가. 아니다, 어떤 잡지가 사라지는 반면 새로운 잡지가 탄생한다는 걸 주목하자. 잡지를 에워싼 환경 조건이 달라졌다는 것은 잡지를 재정의해야 할 때가 왔음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이 잡지를 각자의 방식으로 정의할 것이다. 누군가는 잡지를 ‘잡스러운 지식의 집합체’로, 누군가는 ‘낭만적인 라이프스타일 취향의 서포터’로, 누군가는 ‘전문 지식의 창고’로 규정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애초에 잡지를 광고판으로 정의한다.
인터넷 혁명이 잡지의 위기 불러
사실 그 어떤 산업이든 생태계는 대체로 ‘생산․유통․판매’의 구조를 가진다. 시장 자본주의가 만들어진 이래 지금까지 이 단순 구조는 달라지지 않았다. 역사적으로 급속한 기술 발전은 각 산업 구조에서 혁명적인 변화를 이끌었는데, 특히 유통 영역에서의 변화는 시장의 폭발적인 확장을 이끌었다. 맞다. 화물열차와 트럭이다. 철로가 생기고 고속도로가 만들어졌을 때 시장은 한정된 지역을 벗어날 수 있었다. 당연히 수익도 늘었다. 한편에선 라디오와 텔레비전이 있다. 라디오 전파가 유럽 대륙과 북미 대륙을 연결하자 글로벌 시장이 탄생했다. 시장이 넓어지면서 광고도 더욱 중요해졌다. 출판, 음악, 영화, 방송 등 로컬의 미디어가 글로벌로 전파되기 시작했다. 1990년대에 내가 빠져 지냈던 《엘르》, 《보그》 같은 패션지들도 반세기 이상 이런 구조에서 사업을 확장하고 규모를 키우고 지속가능성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이 구조는 20세기 말까지 유지됐다.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달라진 건 2000년 이후다. 인터넷의 상용화가 모든 걸 바꿨다. 음성, 영상, 이미지, 텍스트를 모두 디지털 포맷으로 전송할 수 있는 이 새로운 통신망은 거의 모든 영역의 산업 구조에 영향을 줬다. 역시 가장 큰 영향을 받은 것은 유통이다. 출판, 음악, 영화, 방송 등은 디지털 포맷으로 변경돼 물리적 한계 없이 연결된 곳이라면 어디로든 전송되고 공유될 수 있었다. 책, 음반, 비디오 등은 손에 잡히지 않는 콘텐츠가 돼 가상공간에 저장됐다. 인터넷 혁명은 사실상 유통의 혁명이었다. 인터넷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이 늘어날수록 대규모의 트래픽이 발생했다. 사람들은 처음엔 이걸 검색엔진, 포털이라고 부르다가 이제는 플랫폼이라고 부른다.
플랫폼은 2015년 이후, 통신 기술이 모빌리티 환경을 구축할 만큼 더 대단해지고 스마트폰이 전화기, 노트북, 카메라, 텔레비전 같은 하드웨어를 통합하게 되면서 더 중요해졌다. 다수의 사람이 개인화된 미디어를 가진 환경에서 그들에게 콘텐츠를 제공하는 플랫폼의 시대가 만개했다. 한동안은 하드웨어의 성능이 중요했지만 얼마 뒤에는 기기의 성능 자체는 중요하지 않게 됐다. 대신 콘텐츠의 퀄리티가 중요해졌다. 그게 바로 지금이다.
알다시피, 이런 과정은 기존의 미디어 산업을 재정의했다. 20세기의 미디어는 읽을거리, 볼거리, 들을 거리를 통해 대중을 모으고 그들에게 제품을 알리고 싶은 사업자의 광고를 싣는 대신 돈을 받았다. 그런데 인터넷 이후, 이 사람들은 기존 미디어를 아주 천천히 떠나기 시작했고, 스마트폰 이후에 급속도로 빠져나갔다. 미디어 환경 변화, 정확히는 인터넷 혁명으로 인한 유통 구조의 변화로 야기된 광고 시장의 축소와 이동이 잡지의 위기라는 현상의 본질이다.
펀딩·구독, ‘메시지의 굿즈화’가 먼저다
잡지의 위기는 미디어 산업의 변화라는 큰 맥락에서 살펴야 한다. 여기에는 환경의 변화, 수익구조의 변화, 독자의 변화, 그리고 감수성의 변화라는 흐름이 있다. 이 모두가 연결돼 있다. 그래서 기존의 광고 수익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대안으로 펀딩이나 구독 모델이 제시되는 것은 파편적인 문제다. 펀딩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크라우드 플랫폼에 돈을 내는 사람들의 성향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목표를 성공시킨 경우뿐 아니라 실패한 경우들에 대한 사례연구도 필수적이다. 무엇보다 ‘독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아닌 게 아니라 광고가 주요 수익원이던 때는 일단 관심을 끄는 것으로도 충분했다. 여기엔 자극적인 것과 아름다운 것이 모두 해당된다.
하지만 광고가 사라진 상황에서는 관심을 끌되 조금 다른 방향이어야 한다. 독자들은 이상하거나 예쁜 것에 대한 호기심이 아니라 자신의 고민과 문제를 언급할 때 깊은 관심을 가진다. 심지어 그 문제를 잡지의 글이나 형식이 해결해주면 더더욱 좋을 것이다. 경험적으로도, 펀딩은 일종의 진검승부라고 할 수 있다. 오직 기획안과 내용, 구성만으로 목표액을 채워야 한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도 있다. 잡지 제작에는 비용이 많이 든다(특히 창간하는 경우엔 더 많이 든다). 원고뿐 아니라 디자인과 편집, 사진, 비주얼 디렉팅 비용에 인쇄 비용까지 더하면 순 제작비가 커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펀딩에 성공한 독립출판물은 대체로 소규모 팀, 2도 인쇄, 기본 인쇄량 제작이라는 공통점을 가진다. 또한 펀딩 사이트에서의 성과 자체가 마케팅 요인이 되기 때문에 금액을 맞추는 것보다 ‘단기간에 00% 초과 달성’이라는 이슈를 만드는 게 중요하므로 목표 금액을 최소한으로 설정하는 경우가 많다. 결과적으로 펀딩만으로는 순 제작비를 충당하기 어렵다.
이런 맥락에서 펀딩의 성공과 독자의 니즈, 그리고 감수성이라는 문제는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년마다 조사하는 《2019 국민독서실태조사》에서 성인의 종이책 연간 독서율은 52.1%, 독서량은 6.1권으로 2017년에 비해 각각 7.8%포인트, 2.2권 감소했다. 이때 성인들이 ‘독서하기 어려운 이유’로 가장 많이 꼽은 것은 ‘책 이외의 다른 콘텐츠 이용’이었다. 2년 전에는 ‘시간이 없어서’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독자는 변했다. 이젠 왠지 모를 의무감 때문에 책을 읽지 않는다. 취향 때문에 잡지를 보지 않는다. 광고를 대체할 수익 모델이나, 펀딩 전략보다 독자의 관심을 얻을 수 있는 솔루션을 찾는 것이 우선이다. 그러니까 기획이 가장 중요하다.
이 모든 난관을 극복해도 다시 매우 중요한 하나의 문제가 남는다. 바로 지속가능성이다. 어찌어찌 펀딩을 받고 인건비를 생략해서 첫 호를 만들었다고 해도 2호, 3호, 4호에 대한 계획이 정확히 서지 않으면 잡지는, ‘정기간행물’로서의 정체성 자체가 흔들린다. 이 제작비를 매번 펀딩으로 채울 수 있을까? 아니다. 이건 시스템으로 작동해야 되는 문제다. 그러므로 안정적인, 최소한의 수익 모델이 필요하다. 구독 모델은 이때 고민하는 요소다.
그런데 그 전에 2020년을 기준으로 출판물의 위상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사람들이 출판물을 구매하는 것은 그것을 통해 지식을 얻기 위함도 있지만 한편으론 하나의 아이템, 나의 정체성이나 취향 혹은 의사결정을 드러내는 소품이기 때문이다. 큰맘 먹고 산 브랜드 제품의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책과 문구도 그렇게 소비된다. 그러려면 그 결과물 자체가 아름다워야 한다. 특히 그래픽, 디자인, 메시지, 질감 등이 복합적으로 관여하는 출판물이야말로 머천다이즈의 종합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소셜미디어의 시대에는 임팩트가 중요하다. 음악 시장에서 바이닐(vinyl)이나 CD 같은 음반이 여전히 팔리는 이유는 그것이 아티스트의 굿즈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책도 마찬가지다. 나는 이걸 ‘메시지의 굿즈화’라고 부른다. 이런 조건이 선행적으로 충족될 때, 펀딩이나 구독에 대한 전략을 구상할 수 있다.
다시 독자를 ‘발명’해야 한다
다시, ‘잡지의 위기와 해결’이라는 문제로 돌아오면 새삼 핵심적인 것을 깨닫게 되는 것 같다. 애초에 잡지가 광고판으로서 기능했을 때, 잡지에 실린 내용은 타깃 독자들이 관심을 끌 만한 이야기였다. 그래서 최대한 많은 이야기를 싣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하지만 광고판의 기능을 상실하자, 잡지는 양과 속도가 아니라 밀도를 높이는 쪽으로 진화했다. 그래야 관심을 끌 수 있기 때문이다. 요는, 어떤 방식을 택하든 중요한 건 ‘관심을 끄는 것’이다. 그러려면 타깃을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 언제보다 독자 친화적인 기획과 실천이 요구되는 때인 것이다. 이때 우리는 새삼 이렇게 질문해볼 수 있다. 과연 ‘독자’는 누구인가? 자의든 타의든 완전한 개인화로 질주하는 2020년의 미디어 환경에서 1900년대 초반에나 등장한 ‘대중’이란 개념이 어떻게 유효할 수 있을까?
잡지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독자의 관심을 끌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타깃을 정확 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잡지의 위기와 해결을 고민하기 이전에, 우리에게 필요한 건 ‘문제의 정의와 재정의’다. 여기서 문제란 사실 시장성이니 지속가능성 같은 게 아니라, ‘독자’가 아닐까? 해서 새삼 떠오르는 방향성은 바로 이것이다. 2020년 현재, 잡지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새로운 독자가 필요한데 이러한 독자는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발명’돼야 할 것이다. 바로 이런 관점 때문에 크라우드펀딩이나 멤버십 제도, 폐쇄적인 스터디, 네트워킹 및 각종 브랜드와 프로젝트 협업 등 잡지의 생존 전략들은 기획뿐 아니라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커뮤니티 관리 등과 동시에 고민돼야 한다. 궁극적으로 잡지의 지속가능성은 신뢰에 있다는 얘기인데, 사실상 이것은 모든 콘텐츠 분야에도 해당되는 것이기도 하다. 비슷한 고민을 하는 모든 이에게 응원과 격려를 보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