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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없는 선거보도, 없는 걸까 안 쓰는 걸까
집중점검 | 등록일 : 2020-04-01

21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유권자라면 각 정당과 후보의 정책 공약을 꼼꼼히 살펴 투표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실제 우리 사회의 선거 모습은 사뭇 다르다. 

언론도, 유권자도 정책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언론의 정책 보도 외면은 직무유기다. 국민이 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언론이 마땅히 해야 할 역할을 짚어본다. 편집자 주

 

 

 

정치와 정책, 정치와 경제를 대립하는 개념으로 쓰는 사람들이 많다. 정치를 선거라는 좁은 의미로 파악할 때 빠지기 쉬운 오류다. 정치는 경제, 외교·안보, 사회·문화 등 모든 정책을 포괄하는 상위의 개념이다. 경제가 곧 정치요, 정책이 곧 정치다.

대통령 선거, 국회의원 총선거, 전국 동시 지방선거 등 모든 선거에서 정당과 후보는 정책 공약을 내놓는다. ‘우리 정당을, 우리 정당의 후보를, 나를 뽑아주면 이런 정책을 실천하겠다’는 약속이다.

지금까지 유명했던 정책 공약은 주로 대통령 선거 공약이었다. 1987년 노태우 후보의 ‘주택 200만 호 건설’, 2002년 노무현 후보의 ‘행정수도 이전’, 2007년 이명박 후보의 ‘747(7% 성장, 1인당 소득 4만 달러, 세계 7대 강국)’, 2012년 박근혜 후보의 ‘기초노령연금’ 등이 그런 공약이었다.

대통령 선거 정책 공약에 비해 국회의원 총선거 정책 공약은 눈길을 별로 끌지 못한다. 대통령에 비해 국회의 역할이 크지 않다고 잘못 알고 있는 사람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국회는 매우 중요한 권력기관이다. 대통령제는 대통령과 국회라는 두 개의 권력을 선출해서 상호 견제와 협력으로 국정을 이끌어 가도록 설계한 권력분립형 체제다. 국회에 권한과 책임을 몰아주는 권력융합형 체제인 의원내각제와 다르다.

대통령제 국가인 미국의 경우를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미국에서 ‘트럼프 행정부’라는 말은 많이 써도 ‘트럼프 정부’라는 말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대통령을 주로 행정부의 수반으로 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문재인 정부’라는 말이 있을 뿐 ‘문재인 행정부’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통령을 주로 국가 원수로 보기 때문이다. 국민의 이런 인식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등 과거 독재 정권의 그림자이기도 하다.

 

그 누구도 관심 없는 정책 공약

 

국회의원 총선거는 주권자인 국민이 국가 운영을 위해 필요한 권력의 절반을 위임하는 매우 중요한 선거다. 따라서 유권자는 각 정당과 후보의 정책을 꼼꼼히 따져보고 투표해야 한다. 정책 선거를 위한 여러 가지 제도가 마련돼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정책 선거를 독려하기 위해 각 정당의 ‘10대 정책 공약’을 제출받아 발표하고 있다. 21대 4·15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각 정당의 10대 정책 공약을 중앙선관위가 발표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벤처 4대 강국 실현’, ‘소상공인·자영업자 생업 안전망과 자생력 강화’, ‘기후위기와 미세먼지로부터 안전한 대한민국’ 등이다. 미래통합당은 ‘우한 코로나19 국민과 함께 극복’, ‘대한민국 경제 프레임 대전환 희망경제로’, ‘국민부담 경감 및 경제 활성화’ 등이다.

민생당은 ‘코로나19 중소상공인·자영업자 민생 지원 및 극복수당 지급’, ‘공공개혁으로 국민세금 낭비 방지 및 행정 신뢰·효율성 증대’, ‘5·18 민주화 운동 철저한 진상규명 및 5·18 정신 헌법 전문 반영’ 등이다. 정의당은 ‘그린뉴딜 경제로 한국사회 대전환’, ‘청년에게 부모 찬스 대신 사회 찬스를’, ‘부동산 투기 근절 및 서민주거 안정’ 등이다.

각 정당은 10대 정책 공약 이외에도 엄청나게 많은 정책 공약을 인터넷 정당 홈페이지에 올렸다. 그러나 대부분의 유권자는 각 정당의 정책 공약 내용을 잘 모른다. 이유가 뭘까? 언론이 보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앞에서 소개한 ‘10대 정책 공약’도 몇몇 언론이 나열식으로 간단히 보도했을 뿐이다. 정책 공약에서 중요한 정책의 타당성과 재원 마련 대책까지 깊이 있게 따져서 보도한 언론은 거의 없었다. 우리나라 언론은 선거 때마다 정책 선거를 강조한다. 유권자가 정책을 보고 투표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그러면서도 정작 정당이 발표하는 정책 공약 보도를 외면한다.

언론은 누가 공천을 받고 누가 탈락했는지, 여론조사에서 누가 이기는 것으로 나왔는지, 선거에서 누가 이기고 누가 졌는지 보도하는 데 열을 올린다. ‘자객 공천’, ‘금요일의 대학살’,  ‘피의 목요일’, ‘골리앗을 쓰러뜨린 다윗’, ‘싹쓸이’ 등 살벌하고 자극적인 표현이 난무한다. 지면과 화면에서 피가 튀고 비명이 들리는 듯하다. 언론이 정책을 보도하지 않는 이유가 뭘까?

첫째, 유권자가 정책에 관심이 없다. 유권자는 정책보다 사람이나 정당을 보고 투표하는 데 훨씬 더 익숙하다. 이번 총선에서도 정책이 아니라 ‘이낙연이 이길 것인지 황교안이 이길 것인지’에 관심이 더 많았다.

둘째, 정당도 정책에 관심이 없다. 정당의 정책 공약은 백화점의 진열대 상품과 비슷하다. 진열대 안의 전시용 상품은 실제로 팔려고 내놓은 상품이 아니다. “우리 백화점은 이렇게 좋은 물건이 많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펼쳐 놓은 상품이다. 정책의 수용자와 공급자가 모두 관심이 없다는데 전달자가 정책을 크게 보도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 정책 보도를 외면하는 언론으로서는 훌륭한 핑계가 있는 셈이다. 하지만 언론의 정책 보도 외면은 직무유기다. 공론장으로서 언론의 기능과 책임을 저버리는 무책임한 처사다. 

 

정책 보도 외면하는 진짜 이유

 

우리 언론이 정책 보도를 외면하는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첫째, 반정치주의다. 반정치주의는 정치를 경멸하고 조롱함으로써 일반 시민이 정치에 기대를 걸지 못하게 하는 이데올로기다. 반정치주의는 박정희, 전두환 등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군 출신들이 만들었다. 쿠데타를 정당화하기 위해 기존 정치 체제와 정치인들을 무력화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에는 재벌, 검찰, 관료가 반정치주의를 끊임없이 확산시키고 있다. 재벌, 검찰, 관료는 본질적으로 자본 기득권 세력이다. 자본 기득권 세력에게 민주주의는 귀찮은 제도다. 자본주의는 1원이 한 표인데, 민주주의는 1인이 한 표다. 그렇다고 자본 기득권 세력이 민주주의를 직접 공격할 수는 없다. 그래서 민주주의 대신 정치를 공격하는 것이다.

문제는 정치에 대한 언론의 태도다. 본래 정치와 언론은 민주주의 체제를 떠받치는 양대 기둥이었다. 정치와 언론이 손잡고 봉건군주나 왕이 가지고 있던 권력을 빼앗아 시민들에게 골고루 나눠주고 민주주의 체제를 구축했다. 정치와 언론은 시민의 편이었다.

그런데 자본 기득권 세력이 언론을 정치로부터 분리해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언론사에 대한 광고와 협찬, 언론계 인사 영입 등 자본 기득권 세력의 무기는 강력하다. 자본 기득권 세력에 편입된 우리나라 언론은 1990년대 이후 반정치주의 보도를 부쩍 강화하고 있다. 주로 선거에서 이기고 지는 싸움만을 보도한다. 콜로세움에서 벌어지는 검투사들의 대결을 중계하는 것처럼 정치를 다룬다.

언론이 정상이라면 정치를 게임이나 전쟁처럼 보도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각 정당이나 후보들의 정책 공약이 어떻게 다른지, 정책 공약은 유권자인 국민의 삶에 실제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하고 전망해야 한다. 어느 정당이 다수 의석을 차지하면 내 월급에서 얼마가 더 빠져나가는 것인지, 소득세와 보유세는 얼마가 더 늘어나는지, 일자리는 또 얼마나 늘어나는지 자세히 따져줘야 한다. 정책 보도가 실종되면 수혜자와 피해자는 각각 누구일까? 수혜자는 반정치주의라는 이데올로기를 확산시켜 반사이익을 보는 기득권 세력이다. 피해자는 온 국민이다.

둘째, 정파성이다. 언론사마다 보수나 진보, 중도 성향의 논조를 가질 수 있다. 정당에 대해서도 호불호가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언론의 정치 보도는 기본적으로 공정해야 한다. 운동 경기에서 심판이 공정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런데 우리나라 언론은 지나치게 정파적이다. 정파성은 반정치주의와 비슷하면서도 또 다른 차원의 심각한 문제다. 1992년 대통령 선거, 1997년 대통령 선거에서 보수 성향의 유력 신문사들은 드러내놓고 정권 교체에 반대했던 ‘전과’가 있다.

그랬던 신문사들이 이번 21대 4·15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문재인 정권 심판론’을 들고나왔다. 1월 1일 자 신문부터 사설과 칼럼을 통해 “선거 결과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짓는다”며 문재인 정권을 심판해야 한다고 여론을 부추겼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언론에서 ‘정권 심판론’을 이처럼 노골적으로 드러낸 적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코로나19’ 사태 보도도 마찬가지다. 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비판하는 수준에 그치지 않고, 총선에서 무능한 정권을 심판해야 한다는 논리로 몰아갔다.

이른바 보수 성향의 언론이 공정성을 잃고 지나치게 정파적인 보도를 일삼는 이유가 뭘까? 언론사주나 기자들이 특정 정치 세력을 지지하기 때문일까?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가장 중요한 원인은 뉴스를 소비하는 수용자들이 그런 편파 보도를 원하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다.

과거에 사람들은 자신이 알고 있던 사실과 언론 보도가 다르면 자신의 생각을 교정했다. 그런데 지금은 자신의 생각을 교정하지 않고 언론 보도를 배척한다. 믿음과 사실이 충돌하면 사실을 버리고 믿음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런 경향을 확증편향이라고 한다.

이처럼 곤혹스러운 상황을 맞닥뜨린 언론사는 두 가지 길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우선 뉴스 소비자들이 원하는 대로 정치적으로 편향적인 기사를 싣는 길이 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뉴스 소비자들이 원하는 수준에 미치지 못하지만 어떻게든 공정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길이 있다.

정치적으로 편향적인 기사를 싣는 언론을 ‘사이다 언론’, ‘해장국 언론’이라고 부른다. 독자나 시청자들이 “시원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반면에 공정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언론은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언론’이 될 수밖에 없다.

어정쩡한 언론은 조회수가 떨어지고 광고가 붙지 않는다. 어정쩡한 언론이 자본주의 체제에서 미디어로서 생존할 수 있을까? 어려울 것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사이다 언론, 해장국 언론에는 정책 기사가 필요 없다. 정책은 복잡하고 어정쩡하기 때문이다. 우리 언론에서 정책 기사가 점점 더 사라지는 이유다.

이런 현상은 사실 유튜브에서 먼저 나타났다. 유튜브의 콘텐츠 전략은 ‘더 폭넓은 계층의 구독자들에게 골고루 어필하는 채널’이 아니다. ‘특정 성향을 가진 구독자를 집중적으로 만족시키는 채널’이다. 조회수가 돈으로 이어지는 구조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유튜브에서 정책 기사를 본 일이 있는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정책 기사는 조회수가 나오지 않는다.

결국 언론도 유튜브처럼 미디어 기업으로 생존하기 위해 공정한 보도나 정책 기사는 외면한 채 점점 더 극단적으로 정파적이고 파편화된 메시지에 집중하는 길로 가고 있는 것이다. 언론의 극단적 보도는 언론의 신뢰 하락으로 이어지고 신뢰 하락은 다시 극단적 보도를 부른다. 악순환이다. 언론이 이 늪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해결책을 찾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셋째, 출입처 위주 취재 관행이다. 출입처 위주 취재 관행은 언론사 내부에서 해결할 수 있는 간단한 문제가 결코 아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언론사는 뉴스 공급자인 관청이나 대기업 등 출입처에 기자를 상주시키고 있다. 기자들은 자기 출입처 기자실에 머물며 취재원이 공급하는 브리핑이나 보도자료 등에 의존해 뉴스를 만든다. 공급자 시각에서 뉴스를 제작하는 것이다. 정치부 기자들도 국회 기자실에 상주하며 정치인의 시각에서 정치 뉴스를 생산한다.

언론사에서 정책 기사는 정치부가 아니라 경제부, 산업부, 사회정책부, 문화부 등 다른 부 소속 기자들의 영역이다. 경제부, 산업부, 사회정책부, 문화부 기자들은 주로 관청이나 대기업 등 자기 출입처 기자실에 상주한다. 정책에 대한 전문성과 식견도 정치부 기자가 아니라 정책 담당 기자들이 앞선다. 정치부 기자들은 정책을 자신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언론사의 이런 출입처 중심 영역 구분은 정책이 실제로 수립되고 법률로 제정되는 절차와 상당히 동떨어진 것이다. 과거 독재나 권위주의 정권 시절과 달리 이제 우리나라에서 정책의 중요한 내용은 당정회의나 국회 입법 과정에서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쉽게 말해서 우리 언론의 정책 취재와 보도에 큰 구멍이 뚫려 있는 셈이다.

지난 1월 29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2019년 입법 및 정책 결산 기자 간담회라는 매우 특이한 행사가 열렸다. 언론의 정책 보도 실종에 답답해하던 국회 사무처가 마련한 자리였다. 국회 보건복지위원장과 수석전문위원이 나란히 앉아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했다.

간담회에는 주로 보건복지부 출입 기자들이 참석했다. 국회 출입 정치부 기자들은 거의 참석하지 않았다. 2월 17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기자 간담회도 마찬가지였다. 기자 간담회 내용을 깊이 있게 보도한 언론은 거의 없었다. 앞으로 정책 기자간담회가 다시 열려도 같은 현상이 반복될 것으로 보인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언론의 출입처 위주 취재 구조 및 관행을 깨뜨려 나가야 한다. 그래야 뉴스 공급자 위주의 시각을 뉴스 수용자 위주의 시각으로 교정할 수 있다. 말은 쉽지만 실행은 쉽지 않은 과제다.

결국 우리 언론은 선거를 앞두고 각 정당이 제시하는 정책의 핵심 내용을 추출해서 정치 의제로 제시할 수 있는 수준에는 아직 이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언론 구성원들이 모두 함께 고민해야 할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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