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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1: 저널리즘은 안녕한가] 한국 언론은 안녕한가2: 한국 언론인이 바라본 한국 언론
커버스토리 | 등록일 : 2021-12-31

언론 생태계 변화는 전 세계적 현상이지만 한국 언론은 유독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정보화 혁명으로 정보의 민주화가 이뤄졌지만 언론의 위기는 더해졌고, 언론 개혁의 목소리는 여전히 높다. 언론의 위기 원인과 해결 방법은 무엇일지 우리 언론의 안부를 확인해 본다. 편집자 주

 

한국 언론은 안녕하지 못하다. 사람들은 신문을 읽지 않는다. 방송을 보지 않는다. 왜 그럴까?

 

첫째,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신문과 방송을 안 봐도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다. 뉴스는 인터넷이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충분하다. 생활 정보는 디지털 검색으로 충분하다.

 

둘째, 믿지 않기 때문이다. 신문이고 방송이 고 여당 아니면 야당 편이다. 보수 아니면 진보다. 사람들은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언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독자와 시청자에게 외면당하는 언론은 지속될 수 없다. 한국 언론은 생존의 위기에 몰려 있다. 위기의 원인은 근본적이고 원초적이다. 언론도 잘못이 있지만, 언론이 처한 생태계 변화 탓이 더 크다. 언론 생태계 변화는 기후 위기에 비견할 만하다. 적응하면 살아남고 적응하지 못하면 멸종한다.

 

변화해야 한다. 언론의 변화를 진화냐 퇴화냐고 묻는 것은 어리석은 질문이다. 옛날이 좋았다고 말하는 것은 자신이 꼰대라는 고백과 다르지 않다. 언론 생태계 변화는 정보화 혁명과 함께 시작됐다. 정보화 혁명 이전에 정보는 권력이었다. 정확한 정보는 권력자들의 차지였다. 사람들은 늘 정확한 정보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언론은 일반 국민보다 정확한 정보에 조금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집단이었다. 사람들은 그래서 언론을 믿었다. 1980년대에 신문사 편집국에서 당직을 서면 독자들의 사실 확인 전화가 왔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었다. 프로야구 원년 코리안 시리즈 최종 경기에서 만루 홈런을 친 선수가 누구냐고 물었다. 친구와 술을 마시다가 의견이 엇갈려 내기를 했다는 것이다. 신문사는 정보의 창고였다. 기자가 곧바로 대답하기 어려우면 조사부로 달려가서 옛날 신문을 찾아보고 확인해 줄 수 있었다. 그때는 그랬다.

 

언론에 타격 입힌 정보화 혁명

 

21세기가 되면서 정보화 혁명이 시작됐다. 정보화 혁명의 핵심은 검색 기능이었다. 인터넷이나 모바일 검색으로 누구나 정확한 정보를 즉시 확인할 수 있게 됐다. 학생들은 교수의 강의 내용 가운데 틀린 부분을 인터넷 검색으로 찾아냈다. 질병에 대해서 의사들만 알던 지식과 정보에 누구나 접근할 수 있게 됐다. 전문가들의 권위와 신뢰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일반 상식이나 단순한 사실 확인은 더 말할 나위도 없었다. 프로야구 원년 코리안 시리즈 최종 경기에서 만루 홈런을 친 선수가 누구인지는 인터넷을 검색하면 금방 알 수 있다. 사람들은 이제 언론이 자신보다 뭔가를 더 아는 집단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됐다.

 

정보화 혁명은 긍정적인 면이 많았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정보가 흘러넘치면서 정확한 정보와 부정확한 정보가 뒤섞였다. 홍수에 정작 마실 물을 찾기가 어려운 것과 비슷한 현상이었다. 사람들은 정보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바다에는 파도가 있다. 정보의 바다에도 알고리즘에 의한 추천 기능이라는 파도가 있었다. 파도에 몇 번 얻어맞으면 망망대해로 떠밀려 간다. 같은 이치로 인공지능이 추천하는 콘텐츠를 자꾸 접하면 자신도 모르게 극단주의자가 된다. 보수 성향 유튜브 영상을 찾아보면 알고리즘은 또 다른 보수 성향 유튜브 영상을 추천한다. 그런 영상을 자꾸 보면 합리적 보수 정도의 시각을 가진 사람이 점차 태극기 부대로 변해갈 수밖에 없다.

 

정보화 혁명 이전에는 믿음과 사실이 충돌하면 믿음을 바꿨다. 신념보다 사실이 강했다. 정보화 혁명 이후에는 믿음과 사실이 충돌하면 믿음을 지키기 위해 다른 사실을 찾아 나설 수 있게 됐다. 신념이 사실보다 강해진 것이다. 최첨단 과학 시대에 지구평면설을 믿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이유다. 사람들의 확증편향이 심해지면서 팩트 전달을 주 임무로 하는 언론의 권위와 신뢰가 가장 많이 무너졌다. 또 다른 팩트는 얼마든지 있었기 때문이다. 정보화 혁명은 모든 집단에서 권력을 아래로 아래로 이동시켰다. 이런 현상은 전혀 다른 차원에서 언론에 또 다른 타격을 입혔다. 언론의 취재와 분석과 전망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확인·분석, 전망 담은 기사의 실종

 

정치부 기자들 용어로 ‘백블’이라는 것이 있다. 백브리핑을 줄여서 표현한 것이다. 현장에서 기자들이 현안에 대해 궁금한 것을 물어보면 정치인이 그 자리에서 답변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기자들은 바닥에 주저앉아 노트북으로 정치인의 말을 받아치거나 휴대전화로 녹음을 한다. 휴대전화 문자로 정치인의 말을 거의 그대로 받아치는 기자들도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나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등 주요 정치인들의 백블은 백블이 끝나고 자리를 뜨면서 곧바로 기사화된다. 기자들은 경쟁 매체보다 1초라도 빨리 기사를 써야 한다.

 

각 언론사 데스크는 제목에 ‘단독’이라고 붙여 인터넷에 기사를 올린다. 과거 통신사에서 하던 일을 지금은 신문사, 방송사 등 모든 언론에서 하고 있다. 기자들이 정치인의 말을 시시각각 전달하는 일에 치중하다 보니 그 말이 사실에 얼마나 부합하는지 확인하거나,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분석하거나, 앞으로 어떻게 될지 전망하는 기사를 쓰기 어렵다. 두 가지 원인이 있다.

 

첫째,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기자들은 “기사를 쓰느라고 바빠서 취재할 수가 없다”고 하소연한다. 사실이다. 둘째, 의사결정 구조가 바뀐 탓이다. 이 부분이 훨씬 중요하다. 과거 모든 조직의 권력은 최고위층이 갖고 있었다. 대학의 권력은 총장에게 있었고, 회사의 권력은 오너나 최고경영자에게 있었다. 정부 권력은 대통령과 청와대에 있었다. 지금은 달라졌다. 총장은 대학의 권력자가 아니다. 교수, 학생, 교직원, 동문의 눈치를 살펴야 한다. 회사도 오너나 최고경영자가 마음대로 경영하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대통령이나 청와대가 마음대로 정부를 움직이지 못한다.

 

권력의 하향 이동이 가장 심한 집단은 아마도 정당일 것이다. 과거 정당의 주인은 총재였다. 총재가 국회의원 공천권을 행사하고 정치자금을 나눠줬다. 권력과 정보는 총재가 독점했다. 기자들은 총재나 총재 주변을 취재하면 특종을 할 수 있었다. 분석과 전망도 가능했다. 언론사 사장이나 편집국장, 정치부장의 이른바 고공 취재도 가능했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 것이 달라졌다. 정당에는 총재가 없다. 국회의원 공천권은 당원들이 가졌다. 정치자금은 후원회원들이 제공한다. 기자들이 할 수 있는 취재는 정치인들의 말을 듣고 전달하는 것뿐이다. 장님 코끼리 만지기가 그나마 가장 정확한 취재 방식이 된 것이다. 확인과 분석과 전망을 담은 기사가 사라지면서 독자나 시청자들은 언론을 외면하고 있다. 읽을 만한 기사가 없다는 것이다. 부끄럽지만 사실이다.

 

한국 언론 추락의 원인


언론 생태계의 변화는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보편적 현상일 것이다. 그러나 한국 언론의 추락에는 한국 언론만의 또 다른 특수한 원인이 있다. 언론의 기득권 세력 편승이다. 한국 언론의 역사는 오욕의 역사다. 일제 강점기에는 천황폐하 만세를 부르며 일제의 홍보 수단으로 전락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독재 시기에는 정권의 압력에 당당히 맞서지 못하고 독재의 통치 도구로 기능했다.

 

일제 강점기 동아일보 일장기 말소 사건, 박정희 정권 시기 동아일보 백지 광고 사태, 전두환 정권 시기 중앙일보, 동아일보 박종철 군 고문치사 특종 보도 등 권력에 맞서 싸운 흔적이 있다. 그러나 큰 틀에서 보면 한국 언론은 민주화에 기여한 것보다 민주화에 편승해 상업적으로 누린 혜택이 훨씬 더 크다.

 

유신의 어둠이 깊어가던 1974년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언론인들이 유신 정권의 언론 통제에 맞서 자유언론실천선언을 했다. 박정희 정권은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사주에게 압력을 가해 언론인들을 해직시켰다.

 

1980년 전두환 신군부는 언론을 통폐합했다. 1도 1사만 남겼다. 언론인들을 무더기로 해직시켰다. 야만의 시대였다. 전두환 정권은 언론인 해직에 협조한 언론사 사주들에게 온갖 특혜를 줬다. 권언유착의 시대였다. 언론은 자본권력과도 유착했다. 언론사 사주들은 정치권력, 자본 권력과 혼맥으로 얽혔다. 사주들은 기자들에게 순종을 요구하는 대가로 급여를 올려줬다.

 

1985년 《말》지가 전두환 정권의 보도지침을 폭로했다. 보도지침은 언론통제와 권언유착의 물증이었다. 사람들은 제도권 언론을 믿지 않고 재야 단체나 운동권 학생들이 뿌리는 유인물을 믿었다. 내신을 믿지 않고 외신을 믿었다. 1987년 6월 항쟁으로 대통령직선제 개헌이 이뤄지며 언론 규제도 풀렸다. 한겨레, 국민일보, 세계일보가 창간됐다. SBS가 개국했다. 지방 언론사가 많이 생겼다. 1987년 12월 대선과 1992년 12월 대선은 민정당, 민자당 후보가 이겼다. 1997년 12월 대선에서 야당이 이겼다. 사상 최초로 선거에 의한 정권 교체가 이뤄진 것이다.

 

보수 성향 신문들은 민정당, 민자당과 가까웠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를 합쳐서 ‘조중동’이라고 불렀다. 족벌 언론, 조폭 언론이라는 말이 난무했다. 언론 개혁은 시대의 요구였다. 김대중 대통령은 언론사 일제 세무조사를 했다. 신문사주들이 줄줄이 구속됐다. 이를 계기로 보수 신문과 민주당 정권의 관계는 파탄으로 치달았다.

 

보수 신문이 김대중 노무현 정권과 전면전을 벌이며 김대중 노무현 정권은 치명상을 입었다. 보수 신문의 신뢰도 역시 치명상을 입었다. 독자들은 보수 신문의 정부 비판을 정당한 보도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겨레, 경향신문, 오마이뉴스 등 진보적 성향의 언론은 이러한 보수 신문의 태도를 비판했다. 언론 개혁을 요구했다. 그러나 진보 언론의 이러한 태도는 친여 정파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보수 신문과 진보 언론의 공방은 언론사 간의 건전한 상호 비판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여당과 야당의 대리전으로 비쳤다. 진보 언론의 신뢰도 무너졌다. 결국 보수 신문과 진보 언론의 신뢰가 모두 다 무너졌다. 그 사이에 언론사의 재정 상태는 악화했다. 언론사는 대기업과 공기업의 광고와 협찬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광고와 협찬에 의존하면 예속될 수밖에 없다.

 

한국 언론이 신뢰 위기를 극복해야 하는 이유

 

한국 언론은 한국 사회의 기득권 세력에 점점 더 편입돼 가고 있다. 한국 언론에서 갈수록 노동자, 농어민, 빈민 등 하층에 대한 기사를 찾아보기 어려워지고, 자본 소득을 올리는 상층에 대한 기사가 많아지는 것이 그 증거다.

 

정리하자면 한국 언론의 위기는 확증편향 심화와 권력의 하향 이동이라는 언론 생태계 변화, 그리고 한국 언론의 기득권 세력 편승에 원인이 있다. 결국 신뢰의 위기다. 그 결과는 수용자의 외면이라는 재앙적 상황이다. 수용자의 외면은 언론의 존재 이유가 무너지는 것을 의미한다. 사태는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언론이 팬덤에 휘둘리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태 와중에 태극기 부대가 보수 신문사 앞으로 몰려가 공정 보도를 요구하며 항의 시위를 했다. 2020년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부정 선거가 자행됐다고 믿는 사람들은 보수 신문에 부정 선거 보도를 요구했다. 견디다 못한 보수 신문들은 태극기 부대와 부정 선거 음모론자들의 주장을 지면에 반영하고 있다.

 

진보 언론 쪽도 사정은 비슷하다. 2019년 조국 법무부 장관 사태, 2020년 박원순 서울시장 사건으로 친여 성향의 지지자들은 한겨레, 경향신문,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등 진보 언론과 기자들을 강하게 비판했다. 조국 장관이나 박원순 시장을 보호하지 않고 야당 편을 들었다는 게 이유였다. 보수 쪽이나 진보 쪽이나 팬덤의 공격으로 언론이나 기자들은 점점 더 위축되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한국 언론이 지금의 위기를 어떻게 타개해 나가야 할까?

 

묘수는 없다. 거듭 말하지만 한국 언론의 위기는 신뢰의 위기다. 신뢰를 다시 쌓아야 한다. 무너진 신뢰를 한꺼번에 일으켜 세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차곡차곡 다시 쌓아야 한다. 역시 콘텐츠가 가장 중요하다. 양질의 콘텐츠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 취재원의 말을 전달만 해서는 안 된다. 확인해야 한다. 분석해야 한다. 전망해야 한다.

 

정파성을 극복해야 한다. 여당 편이냐 야당 편이냐, 보수냐 진보냐 이런 질문에 갇히면 안 된다. 언론은 그냥 언론이면 충분하다. 보수 언론일 필요도 없고 진보 언론일 필요도 없다. 콘텐츠 못지않게 태도 또한 중요하다. 언론은 이제 계도자가 아니다. 가르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언론은 안내자여야 한다. 진짜 뉴스와 가짜 뉴스가 뒤섞인 정보의 바다에서 등대 역할을 해야 한다. “여러분 이쪽으로 와서 보세요” 라고 끊임없이 외쳐야 한다. 시간이 걸려도 끝없이 외쳐야 한다.

 

언론사는 무너질 수 있다. 언론은 무너지면 안 된다. 언론이 무너지면 민주주의가 무너진다. 한국 언론이 신뢰를 회복해 지금의 위기를 반드시 극복해야만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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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자 : 성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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