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상세
지역신문이라도 사투리 기사를 작성한 전례는 없었다. 우려와 기대 속에 출발한 부산일보의 사투리 뉴스는 제목부터 기사 전체가 사투리에 그 내용까지 부산의 역사를 담아냈다. 사투리로 지역의 역사와 뉴스를 전달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지역 언론의 역할이 아닐까. 사투리 뉴스의 제작 기록을 따라가 보자. 편집자 주

“이거 좀 파이다(별로다). 재미없다.”
며칠 동안 통계에다 옛날 신문까지 준비해 완성했던 기사는 “재미없다”라는 이유로 자체 회의에서 무참히 난도질당했다. 그동안의 노력과 수고가 허사가 된 것 같아서 참담했고, 혹평을 날린 팀장이 얄미웠다. 이번에 야심차게 준비했던 고정물의 이름은 <데스노트>였다. ‘데이터+스토리 노트’의 줄임말로 일상과 밀접한 데이터와 옛이야기를 접목해 재미와 정보를 동시에 전달하는 게 기획의도였다. 그런데 재미없다는 이유로 데스노트가 데스노트에 오를 판이었다.
“말투를 함 바꿔보는 게 어떻겠노? 너무 딱딱한 신문 기사체 말고. 예를 들면 얼라들한테 옛날에 이런 일이 있었다고 풀어주는 식으로 말이다.”
팀장의 조언을 곰곰이 되씹다가 문득 경상도 사투리로 기사를 풀어쓰면 어떨까 하는 생각까지 미쳤다. 부산일보는 이름 자체가 말해주듯 부산을 기반으로 하는 지역신문이지만, 제목을 사투리로 다는 것 외에는 단 한 번도 모든 기사를 사투리로 작성한 전례가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감칠맛 나는 사투리로 지역 밀착형 콘텐츠를 전달하는 방식이라면 독자 반응도 나쁘지 않을 것이리라. 부산일보의 사투리 뉴스는 이렇게 탄생했다.
독자와 함께 만드는 사투리 뉴스
2020년 1월 25일에 처음 보도된 사투리 뉴스 <홍매화가 벌써 천지빼까리! 지금 겨울 맞나?>1)는 그해 들어 유난히 포근한 부산의 겨울 이야기를 담았다. 우선 부산 기상청을 통해 최근 50년 부산의 기온 통계를 확보한 뒤 겨울 기온 추이를 설명하고, 따뜻한 겨울 현상의 원인을 짚었다. 또 과거 50년 동안 부산에서 가장 추웠던 1980년 겨울과, 가장 따뜻했던 2006년 겨울의 풍경을 옛 신문을 통해 독자들에게 보여줬다. 1980년 겨울에는 혹한 탓에 연탄가스로 일가족이 사망하는 가슴 아픈 일들이 흔했고, 포근했던 2006년 한겨울에 봄 상품을 내놓는 유통가의 대응이 인상적이었다.
처음으로 내보내는 사투리 뉴스라서 그런지 신경이 많이 쓰였다. 평소 구사하던 사투리 입말로 기사를 작성하되 헷갈리는 사투리 단어 등을 사전에서 검색해 적확한 표현인지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 혹시나 부·울·경 외 다른 지역 독자들이 사투리 표현을 모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편집자 주’에 “글을 읽다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으면 댓글로 남겨주세요. 친절하게 설명해드리겠습니다.^^”라는 글까지 남겼다. 그럼에도 기사를 장난스럽게 썼다는 반응이나 사투리가 부정확하다는 지적이 나올까봐 꽤 전전긍긍했던 기억이 난다. 한편으론 200자 원고지 20매가 넘는 기사 분량이라 독자가 읽다가 지루해할 수 있겠다는 걱정도 했다. 팀에서는 처음에 파일럿용으로 시도하는 차원에서 ‘사투리 뉴스’라는 간판도 달지 않았다.
드디어 첫 보도가 나가고 댓글 반응을 살폈다. “지역신문의 특성을 잘 살렸다” 등 상당수가 호평이라 안도했다. 게다가 일부 독자들이 “기사 직이네예”, “참말로 억수로 웃긴데이”, “기사 잘 읽었어예” 등과 같이 사투리 댓글로 호응해 기쁘기도 했 다. 물론 일부 반응 중에서는 사투리에 대한 거부감과 동시에 장난으로 기사를 쓴 것 아니냐는 혹평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부정적인 평가가 기사 쓰는 데 지장을 주진 않았다. 사투리 뉴스가 몇 차례에 걸쳐 이어지자 기자협회보 등 미디어 전문지에서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실제 사투리 뉴스가 기사화된 적도 있다.
특히 사투리 뉴스는 독자들의 옛 추억도 불러일으켰다. 2020년 2월 5일에 보도된 두 번째 사투리 뉴스 <부산에 개미 코때까리 만큼 오던 눈, 이제는 아예 엄따>2)에 한 독자는 기사에서 언급된 부산에 폭설 내리던 날 결혼해 하객들이 눈길에 넘어지는 등 아수라장이었다는 댓글을 남겼다. 또 다른 독자는 눈이 내리던 그날 대학 수업이 휴강돼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는 댓글도 썼다.
혹시 사투리 뜻을 물어보는 댓글은 없는지 유심히 찾아봤다. 놀랍게도 독자가 독자에게 대댓글로 사투리의 뜻을 설명해 주고 있었다. 다음은 그 사례들이다.
“강세이들이 뭐죠?”
“강아지의 경상도 사투리예요.”
“야시같이 대비를 한다는 건 무슨 뜻인가요?”
“여우같이 눈치껏 잽싸게 대비한다는 거죠.”
부산말 맞나? 뜻하지 않은 사투리 논쟁
사투리 뉴스를 2회까지 제작하면서 받았던 지적 중 하나는 “반말을 써서 기분 나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2020년 2월 20일에 보도한 <부산에는 와 이리 굴다리가 많은교? 왜냐면예…>3) 기사부터는 높임말로 기사를 작성했다. 기사에 사투리 냄새가 많이 배도록 ‘찌짐(부침개)’, ‘강세이(강아지)’, ‘코때까리(코딱지)’처럼 사투리로 표현할 수 있는 특정 단어들을 많이 발굴해 사용했다. 이와 함께 사투리식 형용사, 이를테면 ‘파이다(별로다)’, ‘천지빼까리다(굉장히 많다)’, ‘엉성시럽다(지긋지긋하다)’, ‘까리하다(근사하다)’ 등과 동사 ‘디비다(뒤집다)’, 부사 ‘쎄리(완전히)’, ‘억수로(대단히)’ 등도 자주 사용했다. 종결어미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사투리 뉴스를 높임말로 쓰기 시작하면서 문장의 종결어미가 ‘~예’, ‘~했심더’, ‘~아입니꺼’, ‘~아인교’, ‘~하소’ 등으로 바뀌었다.
같은 경상도지만 부산과 울산, 동부경남, 서부경남 등에서 사용하는 사투리는 약간 다르다. 대구·경북 지역까지 함께 보면 차이는 더 벌어진다. 나는 부산에서 태어나 군 복무 2년, 대학 시절 해외 연수 1년을 제외하고는 부산을 벗어난 적이 없다. 부산 사람이기에 부산 사투리 하나는 자신 있게 쓸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러던 중 한 독자가 단 댓글에서 “서부경남 쪽 사투리 같다”라는 내용을 보고 순간 ‘아차’ 했다. 어머니 고향은 서부경남과 가까운 창원시 마산 합포구인데, 아마도 내가 쓴 사투리는 어머니께서 자주 쓴 사투리체가 아닌가 싶기도 했다.
격렬한 사투리 논쟁이 벌어졌던 기사는 2020년 4월 25일에 보도됐던 <머라카노? 부산 동물원 또 문닫는다꼬?>4)였다. 때마침 부산의 유일한 동물원 ‘삼정더파크’가 문을 닫는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과거 부산 동물원의 흥망성쇠 내용을 사투리로 담았다. 그런데 별안간 기사의 사투리가 부산 사투리가 아닌 것 같다는 의견이 쏟아졌다.
“이기 부산 사투린교??? 이래 억지로 쓸라카면 쓰지 마소. 부산사람 아니지예 기자님.”
“이게 무슨 부산 사투리야 ㅋㅋㅋ 했씸더. 이게 무슨 부산사투리?”
부산 사투리가 아닌 것 같다는 대표적인 댓글들이다. 부산 사투리로 특정하지 않고 경상도 사투리로 기사를 작성했다고 서두에서 미리 밝혀두기는 했다. 그런데 심지어 자신을 부산 사람이라고 밝힌 한 독자는 나에게 메일까지 보내 기사의 일부 문체가 대구·경북 사투리라고 강력히 항의했다. 같은 경상도 사투리지만 개인적으로 대구·경북 사투리를 전혀 접해 본 적이 없어 조금 당혹스러웠다.
해당 기사까지 사투리 뉴스는 모두 다섯 차례 게재됐고, 반말을 높임말로 바꾼 것 외에는 문체에 큰 변화도 없었다. 그런데 이처럼 격렬한 논쟁이 촉발된 기사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리고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기사에 달리는 초반부의 댓글 성향이 전체 반응을 좌지우지한다는 점이다. 이후의 사투리 뉴스에서는 이런 논쟁도 점차 사그라졌다. 오히려 사투리를 비하하는 댓글을 반박하는 독자들도 꽤 많았고, 부산일보가 사투리를 지키고 써야 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니냐는 반응도 상당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