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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논리로 보면 작은 학교는 문을 닫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겨진다. 부산일보는 작은 학교 통폐합과 그로 인해 고통받는 학생들의 현실을 정보공개청구, 연구소 공동 조사 등을 통한 아홉 차례의 기획 시리즈로 보도했다. 오랜 기간 국내외를 넘나들며 보도한 <학교가 사라진다>의 취재 과정은 어땠는지 살펴본다. 편집자 주

2021년 1월 초순이었던 것 같다. 이미 해가 떨어진 초저녁, 좌성초등학교로 가는 길은 험난했다. 좌천동 증산로 125번길 끝에서 좌성초등학교로 이어지는 증산동로가 급경사이다 보니 차량 밑이 바닥에 살짝 긁히기까지 했다. 부산에 살면서도 이런 급경사지에 학교가 다 있다는 게 신기했다. 좌성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바라본 야경은 일품이었다. 부산에서도 손꼽히는 마천루인 부산국제금융센터 빌딩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 주변으로 퇴근 차량들이 헤드라이트를 켠 채 개미 행렬처럼 길게 늘어섰다.
그렇다. 좌성초등학교는 누가 봐도 대도시 속 학교였다. 그런데 이 학교가 2월 폐교된다는 게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소멸하는 것에 대한 안쓰러움을 느끼면서 이면에 숨겨진 구성원들의 아픔은 무엇인지, 학교 통폐합의 문제점은 없는지 무척 궁금해졌다. 여러 상념에 잠긴 그날 저녁 좌성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부산일보 기획 시리즈 <학교가 사라진다>의 씨앗이 뿌려졌다.
저소득층 지역일수록 학교 먼저 사라져
좌성초등학교가 통폐합된다는 소식은 지난해 연말 교육 담당 기자를 맡은 뒤 전임 기자가 쓴 기사를 살펴보던 중 접했다. 농어촌도 아닌 제2의 도시 부산에서 학생 수 감소로 문을 닫는 학교가 있다? 게다가 좌성초등학교 인근 좌천초등학교는 2018년에 이미 통폐합으로 사라졌다? 일련의 내용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2021년 1월 저녁 좌성초등학교를 처음 방문하고 학교 통폐합 관련 기사 내용을 구상하던 중 2월에 열린 좌성초등학교 폐교식을 먼저 취재했다. 인근 초등학교로 뿔뿔이 흩어져야 했던 아이들을 바라보는 내내 착잡한 심경을 떨칠 수 없었다. 학령인구가 준다지만 학교 통폐합만이 정답인지, 작은 학교 유지 방안은 없는지 더욱 깊이 고민하게 된 계기도 폐교식에서 지켜봤던 학생들의 눈물 덕분이었다.
기자 네 명으로 구성된 취재팀을 꾸리자마자 사전 조사에 돌입했다. 우선 교육부에 정보공개를 청구해 최근 10년 동안 광역단체별로 사라진 학교 수를 추적했다. 예상대로 비수도권 지역에서 사라진 학교가 전체의 90% 이상으로 수도권을 압도했다. 그런데 전국 8개 특별·광역시 중 부산에서 문 닫은 학교가 22곳으로 최다를 기록했다는 점은 전혀 예상치 못한 사실이었다. 취재팀은 같은 기간 부산에서 사라진 작은 학교와 이른바 적정규모 미만(초등 240명 이하, 중등 300명 이하) 학교로 낙인찍힌 작은 학교 130곳(전체 학교의 21.1%)의 주소를 전수 조사해봤다. 이들 학교는 서부산권의 농촌, 공장 지역과 원도심(동구·서구·중구·영도구)에 집중 분포하고 있었다. 해당 지역은 부산에서도 정주 여건이 열악한 곳으로 저소득층 비율도 높다. 취재팀은 학교 통폐합 정책이 지역 차별과 그곳에 사는 소외계층 학생들에 대한 ‘교육 불평등’에까지 맞닿아 있음을 간파했다.

2021년 1월 통폐합을 앞둔 좌성초등학교에서 물품이 반출되고 있다. 이 학교는 지난해 2월 19일 폐교됐다. Ⓒ부산일보
10개월간 공을 들인 작은 학교 취재
아홉 차례에 걸쳐 보도된 기획 시리즈 <학교가 사라진다>의 첫 기사는 부산일보 지면에 2021년 10월 18일 자로 실렸다. 10개월 동안 취재를 이어갈 정도로 많은 공을 들인 셈이다. 매일 소화해야 할 기사가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기획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폐교를 앞둔 학교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폐교 지역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살펴보려 수시로 현장을 찾았다. 통폐합을 앞둔 학교는 거대한 참치가 해체되는 것처럼 여기저기 뜯겨 나가고 있었다. 가뜩이나 다른 학교로 전학 가야 하는 것도 서러운데 ‘폐교 행정’이라는 쓰나미에 휩쓸려 학습권마저 침해당하는 학생들이 처한 현실은 매우 처절했다. 첫 기사 <사라진 ‘작은학교’ 부산 22곳… 특별·광역시 중 ‘최다’>는 가난한 지역에서 사라진 학교 현황과 앞으로도 잠재적으로 통폐합당할 수 있는 학교의 불투명한 미래에 초점을 뒀다. 또한 같은 날 보도된 <학기 중 물품 처분… ‘뜯겨 나가는’ 학교 보며 아이들 상처>도 통폐합 대상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의 안타까운 상황을 상세히 알렸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보도였다.
취재팀은 폐교 지역 학생들과 함께 등굣길을 직접 걸으며 그들이 감내해야 하는 고난의 등하굣길도 생생히 묘사했다. 폐교를 앞두고 위험천만한 비탈길을 걸어 통학하는 초등학생, 버스를 갈아타기 위해 아침밥도 거르고 집을 나서는 중학생 사례는 이런 과정에서 건져낸 성과물이었다. 빙산의 일각인 학교 통폐합을 통해 ‘교육 불평등’이라는 거대한 빙산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것이다.
학교 통폐합으로 해당 지역에 무슨 일이 발생하는지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도 취재팀의 과제였다. 폐교 주변 지역 주민과 상인들은 이구동성으로 증언했다. 학교가 사라지니 젊은 층은 다 빠져나가고 노인밖에 남지 않았다고. 취재팀은 좌천초등학교(2018년 폐교)를 찾아가 현장 상황을 확인했다. 대낮이었지만, 학교 주변에는 단 한 명의 행인도 찾을 수 없었다. 마치 지구상의 모든 인류가 한꺼번에 증발한 것 같은 기묘한 기분이 들었다. 오랫동안 이어진 적막을 깬 것은 칼갈이 장수의 “칼 가이소” 외침뿐이었다. 눈으로 확인한 현장에서 더 나아가 객관적인 데이터를 통해 지역 황폐화를 보다 상세히 보여주는 방법을 고민하던 중 ‘지역소멸지수’가 떠올랐다. 대도시 학교의 통학구역은 동의 통·반으로 나뉜다. 부산 동구 좌천동 일대는 최근 3년간 초등학교 2곳과 중학교 1곳이 폐교됐는데, 취재팀은 이들 학교의 통학구역 소멸지수 추이를 살펴보기로 했다.
통계청 사이트에는 기초단체의 동, 인구 현황까지만 나와 있었다. 이에 부산 동구청에 2016년부터 2021년까지 좌천동 26개 통에 대한 연령대·성별 인구 현황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모든 자료 취합 뒤 지난한 엑셀 작업을 통해 폐교와 현재까지 운영 중인 학교 통학구역의 지역소멸지수를 구해 비교·분석했다. 역시 학교가 사라진 지역의 지역소멸지수는 학교가 건재한 곳보다 악화돼 있었다. 세 번째 보도 ‘마을의 죽음’ <학교 사라진 동네, 인구도 급속 유출… 학교는 ‘인구 댐’이었다>에서는 학교가 사라진 곳에서 공동화가 급격히 진행되는 현상을 현장 취재와 지역소멸지수, 학부모, 주민 증언 등을 통해 입체적으로 구현해냈다.

경제 논리를 넘어서 작은 학교 장점 살려야
교육계 인사는 물론 적잖은 사람들이 “작은 학교를 유지하는 데 돈이 많이 든다”는 인식을 내비쳤다. 작은 학교는 빨리 문을 닫는 게 바람직하다는 주장 이면에는 교육적 가치보다 경제적 논리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 게다가 작은 학교는 학생 수가 적기 때문에 양질의 교육을 할 수 없다는 고정관념도 상당했다. “무조건 큰 것이 낫다”는 맹목적인 믿음을 곳곳에서 접하고 씁쓸했던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취재팀은 그동안 진실로 받아들여졌던 이러한 주장들을 하나하나 검증해보기로 했다. 이를 위해 학교 통폐합과 작은 학교 교육을 다룬 각종 연구보고서와 논문, 심지어 해외 자료까지 찾아 주요 내용을 숙지했다. 학교 통폐합 사업으로 재정을 얼마나 아꼈는지 부산시교육청에 관련 자료를 요청하기도 했다. 작은 학교에 자녀를 보낸 학부모, 폐교 직전까지 근무했던 교사를 섭외해 그들의 생생한 경험을 듣는 것도 놓치지 않았다. 그 결과 네 번째 보도 ‘작은학교를 위한 변명’에서 학교 통폐합의 재정 절감 효과가 크지 않고, 교육 개선의 근거도 부족하다는 사실을 소개했다. 다섯 번째 보도 ‘재난에 강한 작은학교’ 편은 전면등교가 가능하다는 최대 장점을 부각해 코로나19 시대 작은 학교를 다시 바라볼 수 있는 계기도 제공했다.
취재팀은 단순히 작은 학교를 옹호하는 것을 넘어 학령인구 감소 시대에 인구의 댐 역할을 하는 작은 학교의 역할을 상세히 담아내려 부단히 애썼다. 경남의 시골 마을은 물론 서울까지 출장을 다녀오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여섯 번째 보도물 ‘작은학교의 소생’에서는 작은 학교 살리기 프로젝트로 인구 유입을 이끌어내고 있는 경남 남해군 상주초등학교의 사례를 다뤘다. 심지어 국내 최대 도시인 서울에도 작은 학교 지원 정책이 있다는 사실을 소개한 일곱 번째 보도물 ‘서울형 작은학교’는 통폐합만 우선시했던 부산 교육계에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취재팀은 해외 사례도 전하기 위해 캐나다 토론토와 세인트존스로 날아가 현지 학교를 취재했다. 캐나다의 학교 통폐합 역사와 진통, 작은 학교 유지 방안 내용을 중점적으로 다뤘다. 특히 캐나다 뉴펀들랜드 래브라도 지역에서 적용 중인 복식학급(multi-grade class)을 소개하는 등 지역사회 학교(community school)와 함께 작은 학교를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했다. 부경대 지방분권발전연구소와 함께 실시한 <소규모 학교 통폐합에 대한 인식조사>는 톱다운 방식으로 진행 중인 학교 통폐합 사업에 반대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는 통로였다.
숫자에 따른 기계적 통폐합, 이제 그만
이번 기획 시리즈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기획취재 지원사업에 선정돼 제작비 일부를 지원받아 보다 풍성한 내용을 담을 수 있었다. 재단이 주최했던 ‘내러티브 기사 쓰기’와 ‘데이터 저널리즘’ 강의에 참여했던 덕분에 기사에서 다양한 기법을 시도할 수 있었던 것도 행운이었다. 1편에 소개된 좌성초등학교의 물품반출 장면은 폐교를 앞둔 학교에서 벌어지는 일을 재단 강의에서 배운 상황 내러티브 방식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애초 계획대로라면 통폐합의 최대 피해자인 학생을 섭외해 학교와 가정에서 삶의 변화를 추적하려 했다. 그런데 어린 학생들에게 접근하는 것 자체가 만만치 않았다. 한번은 폐교 주변 취재를 진행하던 중이었다. 마침 하교하는 학생들에게 다가가 새 학교에서 집까지 통학하는 게 어떤지 물어봤다. 아이들은 낯선 어른의 질문에 잔뜩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어떤 아이는 급기야 스마트폰을 꺼내 어딘가 전화를 걸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취재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이번 기획보도물이 부산시교육청의 정책을 바꿨다는 점은 큰 성과로 삼을 만하다. 부산시교육청은 최근 학교 통폐합 일변도 정책에서 유턴해 작은 학교를 대폭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우선 작은 학교에 교원을 추가 배치하고, 특색 프로그램 사업도 지원한다. 김석준 부산시교육감도 최근 그의 페이스북에 “특성화 교육과정으로 소규모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의 학력을 높이고 즐거운 학교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썼다. 학령인구 감소 시대에 학생 한 명 한 명이 소중하다는 사실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부산일보는 교육 당국이 숫자에 파묻어버린 학생들을 다시 일으켜 살뜰히 보살펴나갈 수 있도록 계속 감시의 고삐를 죌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