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스타들의 K-POP 문화 체험이 던진 질문
‘싹쓰리’ 프로젝트의 ‘레트로’ 코드는 제작 과정 곳곳에서 두드러진다. 2000년대 초중반에 정상의 인기를 구가한 이효리와 비는 직접 곡 선정과 작사에 참여하고, 앨범 홍보 활동을 하면서 자신들이 활동하던 시기와 최근의 문화 차이를 짚어냈다. 스포츠 신문사들을 순회하면서 앨범 홍보 인터뷰를 하던 과거와 달리, 기자들과의 만남은 순위 프로그램 녹화 가는 길에 ‘출근길 사진’을 찍는 것으로 대체하고, 리허설 중간에는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하면서 팬과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하며 앨범에 관해 소통한다. <엠카운트다운>의 MC인 AB6IX 멤버 이대휘 (<프로듀스101> 출신)는 ‘엔딩요정’이라는 신조어와 함께 음악이 끝날 때 카메라 클로즈업에서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는 노하우를 알려준다. 순위 프로그램 영상에서 인상 깊은 순간이 곧바로 SNS의 바이럴 콘텐츠가 되는 문화의 반영이다.
비슷한 시기 MBC의 또 다른 예능프로그램인 <나 혼자 산다>에도 컴백을 앞두고 음원 공개 30분 전에 인스타그램 실시간 방송을 통해 팬들과 소통하는 가수 화사의 모습이 소개됐다. 대규모 스태프를 대동하지 않은 채로, 자연스럽게 집에서 스스로 카메라를 켜고 팬들과 이야기를 주고받는 모습. 2010년대에 데뷔해서 전성기를 이어가고 있는 화사는 어떤 어색함도 없이 그 모든 것을 자연스러운 활동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듯 보인다.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 나아가 틱톡을 통한 소통이 중요해진 것은 사회적 거리두기와 별개로 이미 자리 잡은 새로운 팬덤 문화인 것이다.
‘싹쓰리’가 보여준 2주간의 음반 홍보 활동기는 20세기에서 온 스타들의 최신 K-POP 문화 체험기라고 이름 붙여볼 수 있을 정도로, 오늘날 K-POP 문화의 이모저모를 생생하게 담아낸다. ‘싹쓰리’ 프로젝트는 현재의 시청자들에게 2000년 전후 대중음악의 향수를 담아 소구하는 기획이었던 동시에, 이효리와 비가 2020년 현재의 K-POP 문화를 체험하며 겪는 좌충우돌 재미 또한 상당했다. 30~40대 시청자는 주인공들의 눈높이에서 새로운 K-POP 문화를 체험하는 재미를, 10~20대에게는 타임머신을 타고 온 듯한 과거의 스타들이 자신들에게 익숙한 유튜브와 댓글 문화 속에서 자신들과 소통함으로써 교감했던 프로젝트라는 의의를 발견할 수도 있다.
200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가수들에게 새 앨범 활동을 재개한다는 것은 곧 MBC, KBS, SBS 지상파 3사 중 한 곳의 순위 프로그램에서 처음으로 무대를 선보이는 것을 의미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MBC에서만 컴백한다든가, YG엔터테인먼트 소속 가수들이 연달아 SBS에서 컴백하는 것이 가십이었던 시절이었다. 시간이 흘러 2020년 현재 음원 산업에서 레거시 미디어와 SNS 간의 권력 구도에 많은 변화가 있다는 증거는 계속해서 발견된다.
지상파 방송에서 신곡이 노출되는 것이 음반의 흥행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던 시대. 신곡 ‘다이너마이트(Dynamite)’로 빌보드 싱글차트에서 1위를 차지한 방탄소년단이 중소기획사 출신이기 때문에 지상파 방송 출연 기회가 적었던 것을 자신들의 역경으로 얘기하는 것에 공감하는 이가 많은 것도, 지상파가 대중의 ‘관심’이라는 자원을 독점하던 그 시대를 모두가 기억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미 잘 알려졌듯 방탄소년단은 스스로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서 일상을 공개하는 방식을 선택했고, 그 결과 구독자 3,650만 명을 보유한 <방탄TV>의 크리에이터로써, 누적 콘텐츠 조회수 61억 뷰를 기록하고 있다.1)
유튜브 시대, 취향 공동체의 부상
편성 시간이나 장르의 제한 없이 자신들의 콘텐츠를 글로벌 이용자들에게 직접 전달하는 자체적인 창구를 구축한 방탄소년단은 방송사나 신문사 같은 게이트키퍼를 거치지 않고, 직접 광활한 유튜브 세계 속에서 팬덤을 구축했다. 언제나 내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만큼 내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는 시대라는 상황을 적극적으로 이용한 것이다.
이처럼 오늘날 자신의 취향에 따라서, 시간과 국가에 상관없이 언제고 원하는 장르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 방송과 통신의 융합이 현실화돼온 지난 10여 년의 시간 동안 이론적으로 논의돼왔던 비선형적 시청은 미디어 이용자 개개인의 일상을 점진적으로 바꿔놓았다. 지상파 채널이나 주요 일간지와 같은 과거의 콘텐츠 분야의 게이트 키퍼, 혹은 오피니언 리더들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서 개개인의 관심사에 따라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집중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하지만, 변화된 플랫폼 환경 속에서 개개인들의 미디어 소비는 온전히 자율적이라고 볼 수 있을까? 꼭 그렇지는 않다. 기세가 약해져 가고 있는 레거시 미디어의 빈자리를 채운 것은 이용자들의 사용 기록을 데이터베이스화하고 콘텐츠 추천에 활용하고 있는 구글이나 넷플릭스와 같은 콘텐츠 플랫폼의 추천 알고리즘이다. 추천 알고리즘은 이용자가 해당 플랫폼에 체류하는 시간을 늘리기 위해서, 관심을 지속시킬 수 있는 새로운 콘텐츠를 끊임없이 추천한다. 한 이용자가 유튜브에서 방탄소년단의 다이너마이트 뮤직비디오를 시청한다고 해보자. 유튜 브는 계속해서 시청하면 좋을 또 다른 영상을 재생 목록의 형태로 제시한다. 그 재생 목록에는 방탄소년단의 뮤직비디오를 시청한 다른 이용자가 시청한 또 다른 콘텐츠, 방탄소년단의 앨범에 피처링으로 참여했거나, 이들의 음악이 속한 케이팝 장르로 분류되는 뮤직비디오들이 기존의 이용자 기록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추가된다.
유튜브의 추천 알고리즘은 내가 어느 국가나, 시간대에 거주하고 있는지를 떠나서, 내 취향과 기존의 콘텐츠 소비 패턴에 맞는 콘텐츠로 이뤄진 보다 개인화된 선택지를 부여한다. 하지만, 이 같은 개인화된 추천 목록 역시 이용자들의 콘텐츠 소비 기록을 머신러닝을 통해 학습한 결과로 구성된다. 취향이라고 표현되는 또 다른 일군의 집단적 시청 패턴에 따라서 콘텐츠들을 범주화하면서, 무수한 콘텐츠들을 일정한 카테고리로 분류해 유목화한 결과다. 유튜브의 트렌드 매니저를 역임한 케빈 알로카(Kevin Allocca)는 70만 뷰를 기록한 테드(TED) 강연에서, 유튜브가 만들어가는 새로운 문화에 대해 ‘취향 메이커(Taste makers)’라는 표현을 통해 새로운 시대의 오피니언 리더들을 명명했다.2)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저스틴 비버(Justin Bieber)의 매니저 스쿠터 브론(Scooter Braun)의 트윗 이후에 급격한 조회수 상승을 겪었듯이, 취향 메이커들은 무수히 생성되는 유튜브 비디오 중에서 지금 주목해야 할 것을 새로운 관점으로 조명한다. 특정한 콘텐츠가 온라인에서 바이럴 콘텐츠가 되는 데 기여하는 것이다. 케빈 알로카는 나아가 이 같은 콘텐츠들에 댓글을 달고, 새롭게 패러디하고, 리액션 비디오를 찍는 것과 같이 자신의 관점에서 재해석하는 일반 이용자들의 참여 문화가 유튜브 문화의 또 다른 핵심이라고 설명한다.
‘1일 1깡’ 문화가 만들어낸 ‘깡’의 역주행
방대한 유튜브 플랫폼은 언제나 내가 원하는 시간에 비선형적으로 콘텐츠 소비를 가능하게 한다. 따라서 콘텐츠 유행에서 시간이 작용하는 방식도 달라졌다. 비의 ‘깡’은 올해 유튜브 알고리즘이 만들어낸 최고의 유행으로 꼽힌다. 발매될 당시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가수 비가 2017년에 발매한 싱글 ‘깡’이 2020년 이용자들의 댓글 놀이에 힘입어 역주행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역주행이란 용어는 음원 순위가 음악 시장을 주도하면서 빠르게 바뀌는 대중가요의 트렌드에서 비롯된 말이다. 음원 차트에서 아웃되는 순간, 생명이 다했다고 여기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때 외부적인 요인으로 인해 다시 차트에 진입해 급격하게 상승하는 음악을 일컫는다.3)
비의 ‘깡’ 뮤직비디오 <출처 - ‘깡’ 뮤직비디오 화면 갈무리>
콘텐츠가 만들어진 시점과 인기를 얻는 시간이 일치하지 않는 역주행이 화제가 되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오늘날 음원 소비문화의 속도가 매우 빨라졌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노래라고 해도, 다른 이용자들이 많이 재생한 음악들을 우선해서 추천하는 음원 플랫폼에서 생명력을 얻지 못하면 대중의 관심에서 사라진다. 따라서 수많은 K-POP 팬덤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가수들의 앨범을 히트시키기 위해서 음원사이트에서 집단으로 스트리밍하는 ‘총공(총 공격의 줄임말)’ 전략들을 개발해왔으며, 이 같은 전략을 복제한 ‘음원 사재기’ 현상이 수면위로 드러나면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차트 문화의 변화는 학술 연구를 통해서도 증명됐다. 미국의 빌보드 차트를 비롯한 영국과 독일, 네덜란드의 음원 차트 데이터를 수집해서 분석한 슈니더와 그로스(Schneider & Gros, 2019)는 약 30년 전인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히트곡들이 오늘날에 비해 3배 이상 톱40 차트에 머무르는 경향이 있었음을 통계적으로 입증했다. 차트에 머무는 앨범의 다양성은 더욱 증가했는데, 보다 많은 수의 음악이 차트 안에서 빠르게 등장하고 사라지는 경향이 점차 심화된 것이다. 또 처음 차트에 진입할 때 높은 순위로 진입할수록, 상위권에 진입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점에서 오늘날 가수와 팬덤이 높은 순위로 차트에 진입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근거를 통계적으로 보여준다.4)
‘숨듣명’이 보여준 지상파 콘텐츠의 가능성
한편, 추천 알고리즘을 경유한 ‘취향 메이커’와 참여 문화의 영향력이 레거시 미디어의 주도권을 흡수해가는 가운데, SBS의 뉴미디어 부문 서비스에서 시작된 <문명특급>은 레거시 미디어가 가진 기획력과 섭외력이 여전히 저력을 발휘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문명특급>은 서로 다른 세대의 문화를 소개한다는 명제 하에 지난해부터 ‘숨듣명(숨어 듣는 명곡)’이라는 부제로 티아라, 유키스, 틴탑 등의 케이팝을 소개하는 기획을 지속적으로 선보이고 있다. <문명특급>은 미처 언어화되지 않았던 2030세대의 음악 취향을 ‘숨듣명’이라는 키워드로 소환하면서, 차트에서 사라진 지 오래인 과거의 음악들에 새로운 맥락을 부여하고 지금 함께 듣고 댓글을 달면서 소비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한다. ‘숨듣명’ 시리즈는 100만~200만에 이르는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면서, 지상파 디지털 플랫폼 콘텐츠 중 이례적으로 올 추석 지상파 편성을 예고했다.
미디어 콘텐츠가 다양해지면서 신곡을 처음으로 접하는 창구로서 지상파 방송의 기능은 약해졌지만, <나는 가수다>, <슈퍼스타K>와 같은 오디션 리얼리티 프로그램, <불후의 명곡>, <히든싱어>, <슈가맨>과 같은 형식으로 과거의 음악에 새로운 서사를 부여하며 차트 역주행의 주역을 탄생시키는 등 음악을 조명하는 방식이 점차 세련되게 변하고 있다. ‘1일 1깡’ 신드롬에 앞서, 양준일이라는 추억의 스타를 소환해낸 ‘온라인 탑골공원’ 역시 2000년대 초반의 <인기가요> 방송 아카이브가 바탕이 됐다는 점을 되새길 만하다. 과거의 높은 시청률을 구가한 지상파 프로그램은 수많은 시청자가 그 시절 콘텐츠에 관한 기억을 집단적으로 간직하고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무궁무진한 ‘역주행 콘텐츠’를 배출할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다. 웨이브나 왓챠와 같은 국내 플랫폼에 <순풍산부인과>와 같은 과거 히트 프로그램이 업로드되는 현상도 이 같은 ‘관심 자원’을 재조명하고자 하는 노력이라 할 수 있다. 시청자들을 ‘본방 사수’에서 자유롭게 만들어주는 미디어 플랫폼 기술을 지상파 방송사가 슬기롭게 활용하면서 나타나게 될 제2, 제3의 ‘숨듣명’을 기대해봐야 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