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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AI트렌드]방송의 언어, 방송의 품격
미디어&AI트렌드 | 등록일 : 2025-04-25

방송 언어의 선정성, 과격성 등은 논란이 된 지 오래다. 방송 산업 경쟁 심화로 SNS상의 언어를 방송인들까지 받아들이면서 이러한 현상은 점차 두드러지고 있다. 소탈함과 진정성이 강조되는 시대라 해서 품격 없는 언행이 합리화될 수는 없다. 방송 언어의 공공성 유지 방안을 짚어본다. 편집자 주

 

“언니랑 맥주를 깠습니다” (<볼륨을 높여요>), 

“슬픈 무드를 담은 앨범으로 보면 될까요” (<키스더라디오>), 

“일 바이 일인가요” (< FM데이트 >)

“계속 샤라웃은 했는데” (<별이 빛나는 밤에), 

“이머전시, 뭐 그런 일들이 있나”, “제가 아까 링톤이라고 했잖아요” (<웬디의 영스트리트>), 

“좀 빡칠 것 같긴 해요” (<배성재의 텐>)

 

지난 3월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산하 방송언어특별위원회는 비속하거나 과격한 표현, 비표준어 혹은 부정확한 표현, 불필요하거나 잘못 쓴 외국어·신조어·유행어를 쓴 청소년 청취자 대상 라디오 프로그램을 대상으로 위와 같은 부적절한 언어 사용 실태를 지적했다. 그뿐만 아니라 낮 시간대 송출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도 진행자가 비속어를 사용하거나(<두시의 데이트>), 남성생식기를 지칭하는 표현(<두시탈출 컬투쇼>) 등이 주의 판정을 받았다.

 

자극적 언어, 생존을 위한 필수 요소?

 

방송 언어가 선정적이고 부적절한 양상을 띠는 것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방송 산업의 경쟁 심화는 방송 언어가 오염되는 대표적인 원인으로 꼽힌다.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기 위해 선정적이거나 폭력적인 언어를 활용한다는 것이다. 1990년대에는 유료 케이블TV가, 2011년에는 새롭게 출범한 종합편성채널이 지상파 방송을 위협하는 경쟁 요소로 부각됐다. 유행어, 줄임말, 맞춤법을 따르지 않는 표기법 등 SNS 사용자들의 언어문화를 방송인들이 무차별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지적도 이어졌다(주창윤, 2017). 방송 프로그램 장르 및 포맷의 변화도 방송 언어 문화에 영향을 미친다. 2000년대 후반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크게 유행하면서 소위 ‘리얼버라이어티쇼’ 혹은 ‘관찰 예능 프로그램’이 다양하게 제작되었다. 스튜디오에서 진행자가 시청자에게 공적인 언어로 말을 건네는 프로그램과 비교하면,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출연자들은 사적인 모드로 일상적인 표현을 활용하면서 대화를 나눈다. 현장감과 재미를 위해 생생한 언어 사용이 필수적인 장르의 특성상, 언어의 건전성을 강조하는 것이 재미를 반감시키거나 주 시청자들의 흥미를 떨어지게 할 것이란 주장과 함께, 과거의 ‘건전가요’와 같은 경직된 규정이 규제기관에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박은희·심미선·김경희, 2014).

 

자기 브랜드 홍보, 음주 방송… 솔직함과 경솔함의 경계


시대를 대표하는 이상적인 방송인의 상(像)이 변화하는 것도 방송인들의 언어 활용에 영향을 주고 있다. 오늘날 유튜브나 넷플릭스 등 글로벌 플랫폼에서 유통되는 방송 프로그램이 많아지면서, 엄격한 심의 규정이 적용되는 지상파나 케이블TV에서 다루기 어려웠던 소재나 언어 표현들이 프로그램 내에서 적극적으로 언급되거나 희화화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2025년 2월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예능 프로그램 <도라이버: 잃어버린 나사를 찾아서> 방송분에서도 대표적인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동일한 제작진과 출연진이 KBS를 떠나 넷플릭스로 옮긴 상황에 대해 방송인 조세호는 ‘브랜드나 상호명을 자유롭게 언급해도 되지 않냐’ 라는 점을 확인하며, 자신이 운영하는 패션 브랜드와 또 다른 출연자 홍진경이 운영하는 식품 브랜드 이름을 외친다. 이 장면에서는 “공중파의 속박을 벗어던지고 자유를 찾다”라는 제작진의 자막이 더해졌다.

 

지상파 방송에서 특정한 상호 언급을 금지하는 이유는 간접광고 및 불공정 경쟁을 방지하기 위함이며, 방송에서 자신이 운영하는 사업체를 광고하는 것은 공공성격의 채널을 사사로운 목적으로 활용한다는 차원에서 부적절하다. 글로벌 OTT나 유튜브를 통해 유통되는 프로그램이 늘어나면서, 방송인들이 플랫폼별로 다른 자아를 보여주는 것도 방송인이 구사하는 언어나 태도에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친근한 이미지의 방송인 신동엽이 술을 마시면서 게스트와 대화를 나누는 채널 <짠한형>도 연예인의 또 다른 자아를 보여준다는 명분하에 음주 문화를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친밀감과 품격이라는 두 마리 토끼 잡기

 

지난 2월 15일에 방영된 MBC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는 아나운서 출신 방송인 손범수가 방송인 전현무의 멘토로 출연했다.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면서도 발음과 장단음을 날카롭게 지적하는 원칙주의자의 모습이 일면 우스꽝스럽게 그려졌다. 그의 모습을 낡은 시대의 가치를 강요하는 것처럼 묘사하는 대화를 보면서 한편으로 그 시절 방송인들은 국민의 언어 생활의 표본이 되는 ‘공공 언어’ 문화에 대한 사명을 체화한 세대였음을 새삼스럽게 느낄 수 있었다.

 

과거 아나운서나 MC가 표준어와 정제된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졌다면, 오늘날 방송에서는 개성 있는 언어 사용이 시청자와의 친밀감 형성을 위해 필수적인 요소로 자리 잡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소탈함과 진정성이 강조되는 시대라는 점이 품격 없는 언행을 합리화하는 이유는 될 수 없다. 출연자의 개성과 독특함을 강조한다는 미명하에 무례하거나 저속한 언행을 방치하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부적절한 언어 행위를 옹호하기 위해 시청자의 선호를 방패로 삼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이와 관련해 최근 연세대 이지원·백영민 연구팀은 비속어·욕설 문제가 부각되고 있는 게임, 정치, 스포츠 장르 유튜브 콘텐츠를 대상으로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제시했다. 8개 유튜브 채널에 최근 2년간 업로드된 765개 동영상을 대상으로 온라인 비속어·욕설 사전을 활용해 각 동영상 자막에 등장한 비속어·욕설 빈도를 측정하고, 이에 따른 조회수(노출도)와 ‘좋아요’ 수(시청 만족도)의 변화를 분석한 결과, 비속어·욕설 사용 빈도가 높아질수록 시청 만족도가 심하게 감소하는 패턴이 대부분의 채널에서 확인된 것이다. 크리에이터와 시청자 간의 친밀한 관계 맺기가 강조되는 유튜브에서 비속어나 욕설 사용이 어느 정도는 집단정체성을 확인하고 강화하는 효과를 갖지만, 빈번히 사용될 경우 사용자들에게 부정적 감정을 일으킨다는 것이다(이지원·백영민, 2024).

 

이 연구 결과는 조회수와 ‘좋아요’로 결정되는 유튜브 플랫폼에서도 시청자들이 무작정 자극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의미인 동시에, 경쟁적 환경 속에서 시청자들의 관심을 사기 위해서는 선정적인 표현이 불가피하다는 오래된 고정관념을 점검해 봐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공공 언어’로서 방송 언어의 품격을 지켜야 한다는 논리는 방송의 공공성을 생각할 때 반박할 여지가 희박하지만, 바람직한 언어 문화를 형성하는 데는 적절한 규제뿐 아니라 방송 출연자 및 제작진, 그리고 시청자를 포함한 규범적 합의가 필수적이다. 방송심의 제재가 단순히 규제 행위에 머물지 않고 프로그램의 질적 개선으로 이어지려면 심의 제재 결과를 사회적으로 수용할 수 있어야 하는데 모든 사례를 포괄하는 조문을 만들기도 어려울뿐더러,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사회 변화를 심의 기준과 규정에 반영하는 일도 쉽지 않다는 현실적 어려움도 따른다(박은희·심미선·김경희, 2014).

 

다시 말해, 시대가 요구하는 친밀함과 품격을 동시에 지키는 것은 규제만으로는 달성할 수 없으며, 방송 제작진과 출연자들의 인식 변화, 그리고 시청자들의 비판적인 평가가 함께해야 한다. 오늘날 방송이 우리 사회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시청자에게 어떠한 존재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 속에서 품격 있는 친밀감을 성취할 수 있는 길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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