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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현장] 언택트 시대의 언론 취재
미디어현장 | 등록일 : 2020-11-06

코로나19는 언론 취재를 어떻게 바꿔놓았을까. 많은 것이 달라졌을 듯하지만 사실 큰 변화는 없다. 주요 출입처 소식을 앞다퉈 보도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정작 달라진 것은 그나마 보도 기회가 적었던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를 더 듣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집단감염을 핑계로 사회적 약자를 언택트하고 있는 취재 현장을 살펴본다. 편집자 주 

 

 

사회인권단체 회원들이 지난 10월 7일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코로나19 상황에서 청각장애인들이 겪는 우울감 해소를 위한 자유로운 비대면 상담 환경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코로나19 이후, 기자의 일은 어떻게 달라졌는가? 마스크를 쓰고 취재원을 만난다. 혹은 만나지 않고 전화나 이메일을 통해 이야기를 듣는다. 비대면 브리핑에 접속하고 카카오톡이나 문자를 통해 질문을 던진다. 편집국이나 출입처를 방문하지 않고 집이나 카페에서 기사를 마감한다. 해외 출장이 사라지고 취재원과의 밥 약속, 술자리도 줄어들었다. 

 

코로나19 이후에도, 무엇이 달라지지 않았는가? 코로나19가 세상을 발칵 뒤집었다지만 기자들은 원래 하던 일을 원래 하던 방식대로 한다. 여전히 출입처에서 주는 정보를 토대로 몇 가지 질문과 논평을 덧붙여 중계한다. 검찰발, 청와대발, 국회발, 대기업발 뉴스들이 비포 코로나든 애프터 코로나든 똑같이 포털 뉴스 화면을 가득 채운다. 다르다면 ‘중대본(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발’, ‘방대본(중앙방역대책본부)발’ 뉴스가 그 목록에 추가된 것 정도일까? 감염병 공포가 정점을 찍은 지난봄에 ‘어디서 몇 명이 터졌고’, ‘몇 번 환자가 어디 어디를 휩쓸었으며’, ‘누가 이 감염 고리의 진원인지’에 관한 중계보도식 뉴스들로 잠깐 판이 다소 바뀌었다가, 이내 다시 예전의 주제들로 돌아왔다. 어떤 정치인(혹은 기업인, 공직자)이 무슨 말을 했고 누가 거기에 어떻게 대응했으며 그 공방에 대한 여론의 반응은 어떠한지가 중요한 취잿거리고 또 실제 독자들이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뉴스가 된다. 

 

코로나19 현장 기사에 왜 ‘기레기’ 욕 댓글이 달릴까 

 

코로나19가 바꾼 한국 언론의 취재 현장이란 질문 앞에, 한국 언론은 그렇게 또 한 번 민망한 치부를 드러내게 된다. 애초 우리들의 뉴스는 사회 다양한 사람들의 삶과 목소리에 진작 ‘언택트’ 돼 있었다. 우리가 늘 바라보며 단단히 끼고 있었던 현장이란 신종 바이러스의 위력에도 굴하지 않고 자기 목소리를 당당하고 크게 낼 수 있는 권력자들의 공간이었다. 잘 생각해보라. 코로나19 이후 검찰의 목소리가 작아졌나? 코로나19가 유력 정치인이 띄우고자 하는 화두를 막아섰나? 코로나19가 고위 공직자들의 발언 무게를 낮췄나? 

 

가끔 ‘현장 르포’ 말머리를 붙인, 수백 수천 개의 댓글이 달린 기사들을 본다. 선별진료소나 감염병 전문병원 앞 멀찍이서 카메라로 연사(連射)한 이미지가 반복적으로 언론 소비자들에게 전달된다. 보호복 사이로 흐르는 땀, 얼굴에 덕지덕지 붙은 반창고, 이마에 찍힌 고글 자국…. 기껏 현장 취재로 정보들을 전달해줬는데 언론 소비자들은 그걸 보고 방역진과 의료진의 숭고한 희생에 경의를 표하다가도 갑자기 표정을 바꿔 기자들을 비난했다. “기레기들 저기 가서도 개념 없이 방해하는 거 아냐?”, “기레기들 깝치지 말고 얌전하게 취재하다 가라”…. 코로나19 확산 초기 서울 대림동 시장 한 바퀴를 돌고 ‘노 마스크에 가래침’을 보고한 ‘현장 르포’ 기사에는 조선족을 욕하는 댓글만큼 기자를 욕하는 댓글이 많이 달렸다. 

 

코로나19 이전에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기자들, 특히 막 일을 시작한 신입일수록 “기자는 현장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는 선배의 가르침을 받들고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장례식장, 사고 현장, 위험지역으로 향해갔다. 경멸과 비난의 눈총을 견디며 꿋꿋이 팩트 부스러기 몇 개를 주워 보도하면 분명 클릭 수는 올라가되 욕 메일, 욕 댓글도 만만치 않게 쌓인다. 단순히 ‘내가 거기 갔다, 고로 이것은 현장 기사다’ 이상을 넘어서지 못하는 보도들에 언론 소비자들도 ‘기레기 욕’ 이상의 피드백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그렇게 빈약하고 납작해진 현장이 관전되고 소모되는 사이 언론이 현장 속에서 진정 담아내야 할 작고 미약한 목소리들이 소음 속에 더 묻혀버리게 된 일이, 뭐 하루 이틀 된 일은 아니긴 하다. 코로나19가 그걸 한 번 더 확인시켜준 것뿐이다. 

 

 

경북 청도대남병원에서 일반병동 입원 환자 중 코로나19 검사 결과 ‘음성’ 판정을 받은 환자가 퇴원하고 있다. ⓒ연합뉴스

 

 

언택트, 게으른 기자의 탐사보도 안 한 핑계 

 

그렇다면, 우리가 코로나19 시대에 진짜 보아야 할 현장, 담아내야 할 목소리는 무엇이었을까? 《신문과방송》으로부터 ‘언택트 시대 취재 환경의 변화가 언론 보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등을 다뤄달라는 원고 의뢰를 받았을 때, 나는 지난 2월 집단감염 사태를 겪고 많은 피해자를 낳은 경북 청도대남병원을 떠올렸다. 마음에 빚처럼 남아있던 취재 아이템, 취재 현장이었다. 사회와 가족으로부터 사실상 버림받은 정신질환자들이 수십 년간 장기 입원한 병원에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했다. 좁고 열악한 시설에서 변변한 침대 하나 없이 갇혀 지내오다가 바이러스가 퍼지니 우리가 한 일은 ‘코호트 격리’, 즉 한 번 더 꽁꽁 가두는 일이었다. 

 

코로나19는 우리 사회 어둡고 외면된 곳을 어떻게 그렇게 귀신같이 잘 찾아갈까. 주변 동료들과 혀를 차면서도, 나는 현장으로 가지 못했다. ‘온 병동을 다 감염시킨 슈퍼전파자다’, ‘마지막까지 남아서 헌신적으로 환자들을 돌봤다’ 등 조선족 간병인 하나를 두고 온갖 상반된 소문들이 나돌아다닐 때도, 시급 4,200원을 받고 일하던 77세 간병인이 코로나19에 감염된 정신질환자를 돌보다 사망했을 때도, 25년째 병동에 입원 중이던 몸무게 42kg의 63세 남성이 코로나19 첫 사망자로 발표됐을 때도 ‘이거 뭔가 해야 하는데’ 하며 초조해하면서도 심층 취재 계획을 좀처럼 진전시키지 못했다. 당시로써는 방역 관점에서 온당하고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모든 국민이 이동을 최소화하고 확진자가 발생한 곳을 피해 가야 할 사회적 의무가 있었다. 괜히 기자가 현장에 가서 주변이든 관계자든 들쑤시고 다녀봤자 방역에 방해만 되고 욕만 먹기에 십상이다. 

 

1월 말 중국 우한에서 난리가 났을 때도, 2~3월 대구에서 아비규환이 벌어졌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 현장에서 읽어내고 짚어낼 것들이 무궁무진하다는 걸 분명히 잘 알면서도 현장 심층 취재를 제대로 꾸려내지 못했다. 아니, 하지 않았다. 언택트 취재가 이 시대의 윤리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안다. 그것은 핑계다. 꼭 청도대남병원 잠입 취재를 하지 않아도, 코호트 격리된 환자와 간병사의 얼굴을 보고 인터뷰를 해내지 않아도 그 현장이 말해주는 우리 사회 문제점을 충분히 탐사취재해낼 수 있었다. 전국의 청도대남병원과 비슷한, 사실상 감금 상태인 장기 입원 시설을 찾아내고 그곳의 인권 실태와 방역 시스템을 점검해나갈 수도 있었다. ‘각’은 무궁무진하게 떠올랐다. 다만 골치가 아플 뿐이었다. 당장 써야 하는 기삿거리가 산더미인 데다가, 그런 각의 취재는 품 들인 데 비해 손에 쥘 수 있는 게 너무 적고 불확실하다. 결국 ‘언택트’는 게으른 기자의 핑곗거리가 되고 말았다. 이런 식으로, 지금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현장이 뉴스 자체에서 아예 사라져버리는 역설이 일어난다. 

 

그 현장들은 그러다가 종종 파국으로 치달아 타오르고 재만 남은 상태에서 비로소 뉴스가 된다. 코로나19로 학교와 지역아동센터, 복지시설 문이 모조리 닫혔을 때 나는 사실 알고 있었다. 코로나19 확산 직전에 마감해 보도한 기획이 ‘아동 흙밥 보고서’였다. 가정이라는 울타리가 작동하지 않는, 최소한의 식사권을 보장받지 못한 아동·청소년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많은지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기사로 써냈는데도, 가정 말고 그들을 보호해줄 시스템이 몽땅 멈춰 선 정작 가장 절박한 그 순간에 다른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제대로 된 후속 보도를 이어내지 못했다. 형편이 열악한 지역 아이들의 따뜻한 밥 한 끼를 도와주던 시민단체의 ‘밥차’가 감염 확산 우려로 중단됐다는 류의 소식을 줄줄이 들었다. ‘어떡하나, 아이들이 분명히 굶고 있을 텐데’ 싶으면서도 ‘그렇다고 이 시국에 일일이 애들 집을 찾아가 안부를 물을 수도 없고…’ 하며 본격 취재에 나서지 않는 나를 합리화시켰다. 그러다가 소식을 들었다. 등교가 막힌 원격수업 날, 보호자가 없는 집에서 스스로 라면을 끓여 먹으려다가 불이 번져 심한 화상을 입은 두 형제의 이야기. ‘진짜 이런 일이 벌어질 줄 몰랐나?’를 수십 번 스스로 물었다. 참담하고 죄스러웠다. ‘언택트’ 사회, 언젠가는 폭발하도록 비극들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나는 외면했다. ‘언택트’ 윤리가 그것의 좋은 핑계가 돼줬다. 

 

스스로도 못한 주제에 감히 내질러 보자면, ‘언택트’ 시대에 우리 언론인들은 취재와 보도의 내용이 전보다 더 낮은 곳을 외면하게 되는 현상을 경계해야 한다. 굳이 어렵게 찾아 나서지 않는 이상, 사회적 거리두기에 의해 공공의 시야 밖에 사라진 약자들의 현장이 기자들 손에 쉽게 잡히지 않는다. 대기업·법원·정부청사 속 권력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코로나19 이후로도 똑같은 볼륨으로 사회에 전달되지만, 개별로 흩어져 ‘집콕’(집에 콕 박혀있는 일)하는 사회적 약자들은 점점 더 기자들과 접점이 사라진다. 저소득 가정, 요양병원, 정신병원, 보육원, 발달장애인·장애인 가정이나 집단 시설, 이런 곳들은 원래도 ‘컨택’이 어려웠지만 ‘언택트’ 시대에 방역의 논리 아래 굳이 취재하지 않도록 권장되는 곳들이기도 하다. 기자들 입장에서는 한결 편하다. ‘이런 곳들을 굳이 힘들이고 무리해서 취재할 필요가 있을까? 가만히 앉아 있어도 기삿거리를 만들어서 꾸준히 제공해주는 안정적이고 든든한 취재처들이 이미 많은데.’ 적어도 이런 우리의 게을러지는 마음을 스스로 들춰내기라도 해야 한다. 

 

약자들에게 음소거 해제를 요청하라 

 

코로나19로 달라진 교육을 취재하면서 들은 한 학교 선생님의 이야기가 오랫동안 마음에 남았다. “줌으로 실시간 쌍방향 수업을 하면 카메라와 마이크를 꺼놓는 학생들이 많아요. 구질구질한 자기 집 뒷배경을 보여주기 싫다고요. 단칸방에 여러 식구가 같이 살고 옆에서 온갖 소음들이 들려오는 자기의 가정환경을 노출하고 싶지 않은 거죠. 자기 모습과 소리는 끈 채 남의 목소리와 모습만 가만히 보다가 그런 아이들은 점차 수업에 흥미를 잃고 나가버리거나 다음번에 출석에 빠지기도 해요. 나중에 물어보면 참여하는 기분이 안 난다고 해요. 스스로 마이크와 카메라를 끄긴 했지만 막상 소외감을 느끼는 거죠. 그렇게 점점 더 열악한 아이들이 배제돼가요.” 선생님은 그래서 종종 그런 학생들에게 ‘음소거 해제 요청’을 누른다고 했다. “○○이가 한번 얘기해볼래?”, “○○이 생각은 어때?” 말을 걸고 마이크를 켤 것을 권하면, 어떤 아이들은 도망가기도 하지만 또 몇몇은 수줍어하며 음소거 해제 요청을 받아들이고 조금씩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교사나 다른 학생들이 반응하고, 그 반응에 힘을 얻어 그 아이가 좀 더 큰 목소리를 내기도 할 것을 그 선생님은 기대하고 있었다. 

 

코로나19를 만난 우리 사회의 모습 또한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목소리가 작았던 사람들이 이젠 아예 음소거 된 상태라고, 나는 느끼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세상에서 우리 언론이, 기자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가만히 앉아 있을 때 내 귀에 들리는 목소리가 전부라는 생각을 예전보다 더더욱 작심하고 걷어내야 하지 않을까? 찾아 나서야 하고 발굴해야 하지 않을까? 내가 보고 싶고 보기 쉬운 현장만 보는 건 아닌지, ‘언택트’라는 환경이 우리 사회 어둡고 가려진 곳을 들춰내는 수고가 번거로워 포기해버리는 핑계가 되는 건 아닌지 끊임없이 자기검열을 해야 한다. 그렇게, 작은 목소리마저 잃어가다 자의 반 타의 반 음소거 돼버린 사회적 약자들에게 끊임없이 ‘음소거 해제 요청’을 눌러야 한다. 그게 코로나19가 만들어낸 언택트 시대에 언론이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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