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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인해 학교가 문을 닫으며 아이들은 힘든 시기를 겪고 있다. 특히 가정 형편이 어려운 아동·청소년은 학습뿐 아니라 정서 면에서도 불평등이 악화됐다. <1년의 교육 공백, 100년의 빚>이 조명한 우리 아이들의 현실을 살펴본다. 편집자 주

교육에 집중한 이유
2020년 나 또한 ‘교육’에 손을 놓고 있었다. 10여 년 기자 생활 동안 교육 불평등, 아동 인권을 주요 관심사로 두고 취재를 진행해 왔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여력이 없었다. 시사IN은 편집국 안에 취재 기자가 스무 명이 채 안 되는 매우 작은 언론 조직이다. 하나같이 빈손이 없는 상태에서, 누군가는 신종 감염병 방역에 관한 보도를 이끌어나가야 했다. 부랴부랴 코로나19 TF팀장을 맡고 팬데믹, 보건, 의료, 과학 부문 보도를 이어나갔다. 정신없이 쏟아지는 코로나19 관련 사건과 쟁점들 사이에서 급선무가 ‘교육’은 아니었다. 나 또한 그랬고 대한민국 사회도 그러했다.
빈틈은 개인적 삶 속에서 먼저 포착됐다. 학부모로서 겪은 휴교, 원격 수업, 돌봄 재난의 과정에서 단순히 개인적 삶의 문제를 넘어서는 문제들을 목격했다. 비교적 재택근무와 유연 근무가 쉬운 업무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순식간에 일도 가정도 엉망이 됐다. 직업(혹은 생계)을 택하면 어린 자녀를 방임하게 되고 자녀를 챙기려면 직업과 생계를 놓아버릴 수밖에 없는 처절한 딜레마는 굳이 더 취재해보지 않아도 나만의 일이 아니란 걸 알아챌 수 있었다. 불가능을 극복해보려 어떻게든 일과 아이를 챙기고, 그것이 하나둘씩 자리를 잡아가면서 나는 더 슬퍼졌다.
그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1년동안 자녀의 온라인 수업을 위해 프린터, 잉크, A4 용지, 어린이용 헤드셋을 새로 구매하고 태블릿 PC(원래 쓰던 것은 화면이 작아 눈이 아프다고 해서), 기능성 책상과 의자(오래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으니 영 자세가 구부정해져서), 인터넷 상품(엄마·아빠가 줌 미팅이 잡혀있을 때 아이가 줌 실시간 수업을 하니 누구 하나는 튕겨 나가서)을 바꿨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매일 해야 하는 ‘자가 진단 건강체크’를 시작으로 온라인 종례와 조례, 등교일 변경에 관한 이알리미 공지, 각종 설문조사, 네이버 밴드나 클래스팅을 통한 담임의 공지와 요청을 확인·체크하고 처리하느라 온종일 핸드폰과 PC 모니터를 쳐다봐야 했다. 아침·점심·저녁 식사 챙기기는 기본이었다. 그사이 흐트러지는 자녀의 학습과 생활 태도가 눈에 들어오면 꾸짖고 잔소리하다 관계가 틀어지기도 일쑤였다. 말 그대로 지난 한 해 학부모는 매일매일 하루 종일 담임, 조리사, 전산실 직원, 학생주임이 돼야 했다.
이 모든 일을 어떻게든 해내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생각했다. ‘와, 이거 완전 ‘유상 교육’, ‘독박 교육’이구나.’ 그리고 궁금했다. ‘이런 돈과 에너지를 낼 수 없는 부모 밑의, 아니 아예 보호자가 없는 아이들은 도대체 이 시기를 어떻게 지내고 있는 거지?’ 크고 작은 지출과 돌봄 노동을 (아직은) 감당해낼 수 있는 내 상황에 안도하면서, 동시에 그렇지 못할 많은 가정과 아이들이 떠올랐다. 아마 부모 대부분은 빚을 내서라도, 모든 시간과 노력을 쥐어짜서라도 이 혼란 속에서도 내 아이의 교육 환경을 최대한 아늑하게 만들어주려 애쓸 것이다. 그리고 분명 그러지 못할 부모들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최소한의 공교육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아이들도 많을 것이다. 공교육이 정말 많이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이 문제가 너무나 심각하다고 느꼈다. 심각성에 비해 사회가 너무 작게 고민하고 있다고도 생각했다.
코로나19 방역 보도를 이어가더라도 어떻게든 짬을 내 교육 취재를 놓치지 말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첫 번째 작업은 지난해 추석 직전 보도한 <팬데믹 시대 교육 불평등>(시사IN, 제678호) 기획이었다. 경기도교육연구원에서 초·중·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대규모 설문조사를 벌이고 연구보고서를 작성하기 전 연락을 해왔다. 의미 있는 내용이 많은데 보도에 활용할 생각이 없냐는 제안이었다. 설문 응답 데이터들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모두 예상하던 내용이긴 했다. 아이들의 삶은 완벽하게 피폐해졌다. 영상 매체 노출 시간, 사교육 시간, 학교 과제 시간, ‘할 일 없이 그냥 있는 시간’은 늘어나고 운동·산책, 밖에서 친구 만남, 문화 놀이 시간은 줄어들었다.
전체적으로 아이들 삶의 질이 떨어졌지만, 그 안에서도 편차가 벌어졌다. 가정 형편이 나쁠수록 아이들은 온라인 수업 환경이 열악하고, 동기부여 기회가 제한되고,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 학습뿐 아니라 생활이나 정서 면에서도 불평등이 악화됐다. 형편이 열악한 학생일수록 코로나19 이전보다 너무 많이 혹은 적게 자고, 점심을 거르고, 영상 매체 노출 시간이 길고, 사회관계 축적 시간이 짧았다. 행복도와 미래에 대한 희망이 낮고 불안감과 외로움이 컸다. 걱정하던 내용을 실제 수치로 접하고 나니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겨우 한 학기를 지나고 생긴 변화들이었다. 이렇게 앞으로 1년, 2년 이상 이 피해가 쌓이면 우리 아이들의 미래는 어찌 될 것인지 아득해졌다.
무엇을 말하고 싶었나
첫 번째 ‘교육 불평등’ 기획이 보도되고 나서 적지 않은 피드백이 있었다. 여러 교육, 복지, 시민단체들이 관심을 보이고 관련 주제로 토론회와 세미나, 강연 등을 요청해왔다. 교육부와 각 지역 교육청들도 지난해 하반기부터 여러 ‘기초학력 증진’과 ‘교육 취약계층 지원’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전제는 이것이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 내에서, 코로나19 방역 지침 내에서.’ 그 안에서 여전히 대부분의 교육 활동이 비대면, 부정기적, 특정 집단 대상으로만 이뤄졌다. 지난해 우리나라는 1년 내내 제1원칙, 제1가치가 ‘방역’이었다.
지난해 가을 이후부터 외신을 통해 고무적인 뉴스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학교를 열어도 막상 학생들 사이 코로나19 전파가 걱정만큼 늘지 않는다는 거였다. 어린이들의 코로나19 중증도와 치사율이 꽤 낮은 편이라는 사실은 지난해 상반기부터 알려져 왔지만, 학교 등 아이들의 공간을 열게 되면 아이들이 무증상 혹은 경증으로 가정과 지역사회로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매개체가 될까 봐 아직까지 모두가 겁을 내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아이들은 코로나19로 덜 아프기만 한 게 아니라, 덜 옮긴다고?
해외 연구 결과들을 찾아봤다. 깜짝 놀랐다. 우리나라에서는 11월경에야 ‘정은경 논문’으로 알려진 소아감염학회지 발표 논문이 반짝 화제가 됐지만, 해외에서는 학교 재개가 코로나19 확산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이미 여름 이후부터 실증 데이터와 연구 데이터들이 매우 두텁게 쌓여가고 있었다. 세계 과학계에서는 이미 ‘학교는 (다른 곳에 비해) 코로나19에서 가장 안전한 공간’이라는 사실이 상식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 과학적 사실을 바탕으로 여러 국가가 등교 정책을 변경해나가고 있었다. 학교 문을 열고, 대면 수업을 재개하고, 학교 수업 외에도 여러 아동·청소년의 문화·교육·복지·체육 프로그램을 가동하기 시작해나가고 있었다.
학교가 문을 닫은 동안 우리 아이들의 영상 매체 노출 시간, 사교육 시간, 학교 과제 시간, ‘그냥 있는 시간’은 늘어나고 운동·산책, 밖에서 친구 만남, 문화 놀이 시간은 줄어들었다. Ⓒ시사IN
특히 총리, 장관, 의사협회 등 여러 정책 결정자와 전문가 단체들이 국민 앞에 나서서 등교를 설득하는 모습이 신기하고 낯설기까지 했다. “국민 여러분, 학교는 안전합니다. 우리 미래 세대를 학교에 돌려보내는 것은 국가의 도덕적 책무입니다”(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대국민 성명, 2020. 8. 24), “특히 10세 미만의 아동들은 감염률이 낮고 전염률도 명백히 낮게 나타나는 데 비해 사회적 측면에서 볼 때 학교 휴업의 결과는 심각합니다. 학교와 유치원은 어떤 제한도 없이 다시 열려야 합니다”(독일 병원위생협회·독일 소아감염학회 등 4개 의학 전문단체 공동 연구보고서, 2020. 5. 20)
우리나라를 다시 돌아봤다. 팬데믹 초기의 혼란과 공포는 다소 옅어졌지만, 여전히 공교육은 후순위였다. 학교, 도서관, 돌봄센터 등의 공공 교육복지 기관들은 꽁꽁 문이 닫혀 있는데 사설 학원은 좁고 밀폐된 공간 안에 아이들이 복닥복닥한 역설이 계속 이어졌다. 방치되는 아이들이 걱정돼도 ‘감염되면 어쩔 건데’라는 책임 앞에서 모두가 몸을 사렸다. ‘방역’이 모든 가치를 누르고 있는데 그것이 공적 영역에서만 작동하는 역설이었다. 방역이라는 제1가치를 누른 공교육의 영역은 ‘입시’가 유일했다. 고3은 우리나라에서 등교 재개 순서를 결정할 때 가장 먼저, 등교 주기를 결정할 때 가장 자주(매일) 등교시키기로 결정된 학년이다. 11월 수능을 무사히 치러내기 위해 온 나라가 백일치성드리듯 정성을 모았다. 해외 다수 나라와 절대 같지 않은 선택이었다. 저학년일수록 비대면 수업에 한계가 크다는 교육적 측면, 저학년일수록 코로나19 전파 가능성이 작다는 과학적 측면을 고려해 많은 나라는 고학년의 입시 일정은 미뤄도 저학년의 대면학습 기회를 최대한 보장하려 노력했다. 우리는 정반대였다.
결국 이것은 ‘선택’이었다. 코로나19 상황이라는 신종 혼란 속에서 각 사회는 평소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던 것을 앞에 두고 그 밖의 것들을 후순위에 뒀다. 문화 향유를 중시하는 사회는 모든 것을 닫아도 박물관과 미술관은 열어두고, 미래 세대의 교육과 돌봄이 가장 중요하다 여긴 나라는 다른 건 다 닫아도 학교와 보육원 문은 열어두고, 입시 경쟁을 포기할 수 없는 나라는 다른 건 다 취소해도 수능만은 치러내고야 마는 것이다. 나는 <1년의 교육 공백 100년의 빚>(시사IN, 제700호) 기획을 통해 바로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우리가 지난 한 해 행한 것은 선택이었다고. 동시에 포기였다고.
지난 선택을 질타하고 비난하고 싶지 않았다. 다만 분명 알아야 할 것은 우리의 ‘포기’가 만들어낸 영향들이다. 그것이 정확히 무엇이며 그 대가는 어떠할 것인지를 머릿속에 또렷이 새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선택은 우리 어른 세대가 했으나 대가는 지금의 아동·청소년들이 평생 짊어지고 살아야 할 것이다. 그에 대한 책임감, 죄책감, 고통의 마음을 독자들에게 안겨주고 싶었다. 그래야 미래 세대가 ‘100년의 빚’을 조금이라도 더 빠르고 덜 고통스럽게 상환할 수 있게끔 도움이라도 줄 테니까 말이다.

특히 그 빚이 원래 더 힘들고 약한 아이들에게 더 크고 무겁게 돌아간다는 사실 또한 알려주고 싶었다. ‘학력 격차’ 정도로 쪼그라져 세간에 공유되는 ‘교육 격차’는 사실 비학업 부문에서 더 크고 심각하게 발생했다. 많은 이들이 국·영·수 시험 점수가 벌어지는 것을 두고 교육 격차를 이야기하지만, 식사 공백, 정서적 고립, 방임으로 인한 안전 문제, 문화 자본 양극화, 체력과 건강 격차, 사회성 발달 격차 문제는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는다. 당장 눈에 띄는 것도 아니고 그 영향으로 인한 피해가 수치나 통계로 잡히는 것도 없다. 바로 이런 피해들이 나는 더 무섭고 불길한 미래의 위협 요소라고 보았다.
어떤 반응이 있었나
올해 설 합병호부터 몇 주간 연속으로 보도된 ‘교육 공백’ 기획은 각계각층의 피드백을 받았다. 대개 교육 관련 기사는 교사나 학부모, 교육 정책수립자 등을 제외하곤 그리 활발하고 직접적인 피드백이 없는 편이었다. 이번에는 달랐다. 다양한 연령대와 직업군의 독자들이 메일, SNS, 뉴스 댓글 등을 통해 기사에 대한 의견을 전했다. 예상보다 공감도가 높았다. “맞다. 다른 건 몰라도 아이들 학교는 보내야지”, “그동안 무엇을 잊고 있었는지 이제야 깨달아 가슴이 아팠다” 류의 반응들이 많았다. 가장 가슴이 서늘한 피드백은 “왜 이제야 이런 보도가 나오나요. 이미 상당 부분 많이 늦었네요”라는 의견이었다. 왜 나는 더 빨리 이 의제를 던지지 못했을까 가슴이 뜨끔 아팠다.
교육계에서도 관련된 논의가 한층 풍성해졌다. 각 지역 교육청과 교사 모임 등에서 ‘우리가 더 할 수 있는 게 무엇일지’ 고민하는 자리를 만들었다. 지난해보다 조금 더 적극적이고 촘촘한 교육 복지 정책이 속속 발표되는 모습도 반가웠다.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에 따른 등교 정책도 조금 더 교육 내재적 가치를 중심에 두고 새로 짜였다. 아동·청소년을 위한 여러 문화·복지·체육 영역에서도 무조건 방역을 내세우기보다 방역과 본래의 기능을 공존시킬 수 있는 창의적 아이디어들을 많이 만들어갔다. 결과적으로 지난해보다 아이들의 삶은 조금은 더 풍요로워졌다. 비싼 학원을 등록하거나 프라이빗 스포츠센터를 이용하는 기회를 얻지 못하는 아이들도 갈 곳, 할 것, 놀 것이 (그나마 조금은 더) 생겼다.
흰 눈밭을 공허하게 걸어가는 초등학생의 모습을 공중 샷으로 찍은 교육 공백 기획의 커버스토리 이미지와 <1년의 교육 공백 100년의 빚>이라는 표제를 보고 독자들은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섬뜩한 기분이었다”라고 의견을 전했다. 나는 내심 ‘바라던 바’라고 생각하며 속으로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잔인하게도). 그렇게나마 충격을 주고 싶었다. 왜냐면 지난 1년간 너무나 큰 교육 공백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아무 충격을 받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장 큰 희생을 아이들이 치르고 있었는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러분, 마음껏 밖에서 뛰어놀게 해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여러분의 예쁜 코와 입을 마스크로 가린 채 답답하게 숨을 쉬게 해서 미안합니다. 친구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말라고, 이야기도 나누지 말라고 해서 미안합니다. 집에만 있으라고 해서 미안합니다. 학교 문을 닫아서 미안합니다. 여러분이 좋아하는 쉬는 시간과 중간 놀이 시간을 없애서 미안합니다. 기다리던 수학여행과 소풍과 운동회를 취소해서 미안합니다. 놀이터, 도서관, 복지관, 체험센터, 상담소, 수련관, 체육관 문을 닫아 갈 곳이 없게 만들어서 미안합니다. 특히 어렵고 힘든 상황의 아동·청소년 여러분께 더 크고 무거운 짐을 지워 더더 미안합니다. 여러분의 소중한 1년을 빼앗아서 미안합니다. 여러분의 인내와 헌신은 코로나19를 극복하는 데 매우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아이들에게 이 말을 전하고 싶었다. 기사를 읽고 모두가 이 말을 전했으면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