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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현대사의 그늘, 형제복지원. 그 이름은 익숙하지만 정작 이 사회가 형제복지원 피해자에게 관심을 가진 적은 별로 없다. 부산일보는 지난 33년 동안 온전히 들어본 적 없는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세상에 알렸다. 10개월에 걸쳐 진행된 이 장기 프로젝트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을 확인해 본다. 편집자 주

한 통의 전화, 그리고…
6년 전 겨울,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이었다. 부산에서 벌어진 형제복지원 사건을 다루려고 하는데 부산일보에서 해당 사안을 심층 취재한 기자를 소개해 달라고 했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심층 보도라 할 만한 기사가 없었다. 지역 현안을 비판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왜 제대로 해내지 못한 것일까. 의아함을 넘어 자괴감, 자책감, 죄책감 등 복합적인 감정이 밀려왔다.
올해 초 시민단체 관계자와 식사 자리에서 형제복지원 이야기가 다시 나왔다. 2014년 <그것이 알고 싶다> 방영을 전후로 수많은 언론에서 관련 보도를 쏟아냈지만 사건의 진상 규명까지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형제복지원 특별법, 과거사법 개정안 등 여러 법안이 상정됐지만 총선이 다가오면서 국회 통과가 힘들어진 상황. 다시 여론의 불을 지피기로 뜻을 모았다.
33인 인터뷰와 33년 전 진실
“또 형제복지원이냐?”는 얘기를 듣지 않기 위해 기존 방식과는 차별화한 보도가 필요했다. 타 언론사의 과거 기사들을 살펴본 결과,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온전히 귀를 기울인 콘텐츠는 없었다. 방송물에서 등장하는 1분 안팎의 짧은 인터뷰로는 부족했다. 이들은 이야기를 들어줄 ‘귀’, 대변해줄 ‘입’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취재진은 피해자들의 증언을 미묘한 뉘앙스까지 놓치지 않고 담아내기 위해 ‘동영상 구술사’ 방식으로 취재를 진행하기로 했다. 신문사로서는 흔치 않은 시도다. 1987년 형제복지원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지 ‘33년’이 지난 시점이어서 ‘33’이란 숫자에 주목했다. ‘33인’의 증언을 듣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쏟아지는 ‘최초 증언들’
첫 번째 인터뷰부터 믿기 힘든 이야기들이 쏟아졌다. 아동소대를 비롯해 남성 수용자들 사이에서 비일비재했던 성폭행, 맞아서 실려 나간 뒤 돌아오지 않은 동료들, 해외 후원자들에게 보낸 ‘가짜 편지’ 등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구체적인 사실들이 하나씩 공개됐다. 한 피해자는 죽어 나간 시신들을 직접 손으로 묻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형제복지원 입소 과정도 사실상 공권력에 의한 ‘납치’였음이 낱낱이 드러났다. 역 앞에서 놀다가, 하굣길에, 친구 집에서 돌아가는 길에, 용두산 공원에 놀러갔다가, 엄마를 찾으러 거리에 나왔다가, 고향행 기차를 기다리다, 더위를 피해 집 앞에서 잠자다… 하나같이 ‘인간 사냥’을 당하듯 단속 차량에 실려 형제복지원으로 끌려 들어갔다.

피해자들의 상처는 ‘현재진행형’이었다. 진상 규명과 명예 회복이 이뤄지지 않은 탓에 퇴소 이후에도 사회 적응을 못 하고 주변부를 맴돌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이 기초생활수급자에다 우울증, 자살 시도 경험을 안고 있었다. 1987년 형제복지원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뒤 문제가 해결된 줄 알았지만, 정작 피해자들은 33년의 세월을 숨죽인 채 살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피해자와 함께’ 공동 프로젝트
33인의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든 고민 중 하나는 ‘증언의 신빙성’이었다. 실제로 보상금을 노리고 피해자 행세를 하는 이들도 있어 세밀한 검증이 필요했다. 인터뷰 대상자를 선정하는 데 가장 많은 도움을 준 이들은 다름 아닌 ‘피해 당사자들’이었다. 신뢰할 만한 피해자분들을 통해 인터뷰 대상자를 소개받았다. 취재진에게 직접 연락이 올 경우, 피해자 모임에 ‘사전 검증’을 부탁했다.
평소 형제복지원 문제에 관심을 갖고 활동해온 부산지역 시민단체인 ‘사회복지연대’도 많은 도움이 됐다. 김경일 사무국장이 모든 인터뷰에 빠짐없이 동행했다. 33주에 걸친 ‘33인 인터뷰’는 취재진과 피해자가 유기적으로 협력한 덕분에 가능한 프로젝트였다.

‘1,000만’ SNS 울린 절규의 증언
<살아남은 형제들>은 온라인 전용 콘텐츠로 기획됐다. 영상구술사 내용 중 핵심만 뽑아 동영상 콘텐츠를 제작했다. 유튜브, 페이스북 등 부산일보 SNS 채널을 통해 매주 토요일(주 1회) 업로드 했다.
네이버 모바일 채널에는 동영상과 함께 기사 텍스트도 게재했다. 의미 있는 증언과 형제복지원 사건 관련 진행 상황은 신문 지면을 활용해 보도했다. 채널의 성격에 따라 콘텐츠 형식과 내용을 달리한 ‘멀티소스, 멀티유즈(Multi Source Multi Use)’ 전략은 예상을 뛰어넘는 호응으로 돌아왔다. 유튜브 450만 조회, 페이스북 450만 조회, 네이버 채널 100만 조회 등 총 1,000만 조회수를 기록하며 온라인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SNS에서는 짧고 가벼운, 흥미 위주의 콘텐츠만 먹힌다는 통념을 깨고, ‘정통 저널리즘’이 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했다.

애써 묻어둔 기억을 꺼내야 하는 피해자만큼이나 취재진도 인터뷰 과정을 견디기 힘들었다. 프로젝트를 주도한 기자의 경우 총 인터뷰 분량만 60시간(3,600분), 반복된 편집 과정까지 더하면 200~300시간 동안 피해자들의 ‘끔찍한 상처’를 마주해야 했다. 취재진을 대상으로도 트라우마 치료가 필요하다는 얘기가 오가기도 했다. 고비 때마다 힘이 됐던 건 독자들의 ‘댓글 응원’이었다. 총 10만 건가량, ‘분노’를 넘어 ‘공감’과 ‘연대’, ‘응원’의 댓글이 쇄도했다. “대충하다가 말 줄 알았는데, 부산일보 대단하다!” 같은 댓글을 보고 마음을 다잡으며, 10개월간
의 장기 프로젝트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온라인 기록관’ 인터랙티브 페이지
1월 기획, 2월 첫 촬영, 4월 말 첫 번째 증언 보도 이후 그동안 게재된 동영상(완성본)은 300분 남짓, 기사 텍스트는 20만 자가 넘는다. 그럼에도 담아내지 못한 이야기가 많았다. 다 소화하지 못한 이야기와 각종 자료, 기존 인터뷰 내용을 집대성해 ‘인터랙티브 페이지’를 제작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언론진흥기금이 큰 도움이 됐다. 4개월간 준비해 10월 말 <살아남은 형제들> 인터랙티브 페이지를 오픈했다.
인터랙티브 페이지는 ‘형제복지원 참상 온라인 기록관’ 콘셉트로 구성했다. 형제복지원 입소(납치)장면을 담은 도입부 △애니메이션을 비롯해 △증언△증거 △기억 △기록 등 다섯 개 챕터로 나눠 형제복지원의 인권 유린 참상을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증언’은 33명의 인터뷰 영상과 기사를 한군데 모은 챕터다. ‘증거’ 챕터에선 형제복지원 내부 공간별 사진 수백 장과 피해자들의 육성 증언을 수록했다. ‘기억’ 챕터는 피해 증명에 어려움을 겪는 피해자들을 위해 수용자 명단 일부(2,500명)를 간편하게 검색해볼 수 있도록 했다. 마지막 ‘기록’ 챕터는 자료실성격으로, 형제복지원 자체 발간물과 공식 보고서 등을 살펴볼 수 있다. 향후 발굴 혹은 공개되는 자료는 꾸준히 업데이트할 계획이다.1)
정부 ‘진상 규명’ 드디어 첫발!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입법 움직임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뜻하지 않은 변수가 생겼다. 세 번째 증언자 최승우 씨가 인터뷰 뒤 심경 변화를 일으켜 5월 5일 국회의원회관에서 ‘고공 단식농성’을 벌인 것이다. 사흘째 되던 날, 야당 중진 국회의원이 중재를 벌여 결국 ‘과거사법 개정안’이 제20대 마지막 국회에서 극적으로 통과될 수 있었다.
인터랙티브 페이지가 오픈한 뒤 부산시와 부산일보로 피해자들의 연락이 쇄도했다. 입소자 명단 검색을 통해 본인 이름이 확인되자, 관련 기록을 찾고 싶다는 문의였다. ‘입소 기록’은 형제복지원 피해를 증명할 수 있는 확실한 증거지만 부산시는 개인정보보호법을 이유로 그동안 자료 공개에 소극적으로 대처해왔다. 피해자들의 줄기찬 요구 끝에 최근 부산시는 입소 관련 자료를 제공하기로 약속했다. 형제복지원과 공생 관계였던 부산시를 통해 ‘피해 증명’의 길이 처음으로 열린 것이다.
과거사법에 따라 오는 12월 10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2기(위원장 정근식)가 공식출범하면 국가 차원의 형제복지원 진상 규명 작업이 비로소 첫발을 뗀다. 1960년, 형제복지원 전신인 ‘형제육아원’이 설립된 지 60년 만이다.

형제복지원과 공모자들
<살아남은 형제들>은 과분할 정도로 많은 관심을 받았다. 최근 ‘2020 지역신문 컨퍼런스’에서 ‘금상’을 수상했고, 제362회 이달의 기자상(전문보도부문)에도 선정됐다. 취재진과 피해자분들께 함께 주시는 상이라 믿는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부산만의 이슈가 아니다. 이제 형제복지원 하면 한국 근현대사의 ‘그늘’, 수용시설과 인권 유린 문제의 ‘대명사’로 여겨진다. 1987년 형제복지원이 폐쇄될 당시 전국에 36개 수용시설이 있었고, 그 중 형제복지원이 가장 규모가 컸다.
취재진은 부산에서 벌어진 형제복지원 사건과 피해자들의 목소리에서 시작했지만, 이를 통해 대한민국 사회에 물음을 던지고자 했다. 지난 33년 동안 우리는 한 번이라도 이들의 이야기에 온전히 귀 기울인 적이 있던가. ‘사건이 터지고 언론에 보도됐으니 문제가 해결됐겠지’ 하고 방심하는 동안 가해자들은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고, 피해자들은 숨죽인 채 살아야 했다.
공권력을 등에 업고 무자비하게 거리의 사람들을 잡아 가둔 형제복지원. 그 주변에는 무관심하거나 방조했던 어제의 시민들이 있었고, ‘그땐 그런 시대였다’고 치부하는 오늘의 시민들이 있다. 우리 모두 형제복지원 사건의 ‘공모자’인 셈이다.
1) <살아남은 형제들> 인터랙티브 페이지 http://brother.busa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