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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한국 언론 재건축하기] 한국 언론을 지을 사람들
커버스토리 | 등록일 : 2020-12-07

 


 

 

혁신엔 적잖은 시간이 걸린다. 한두 해 만에 이뤄진 게 있다면 필시 혁신이 아니라 개선일 거다. 우수 사례를 담은 책이 서점 매대를 가득 메우지도 않았을 테다. 뉴욕타임스 디지털 부문 수입이 종이신문 수입을 처음 앞지른 게 올해 2분기다.1) ‘혁신’ 보고서를 만든게 지난 2014년이니 꼬박 6년 걸린 셈이다. 보고서 유출2) 이듬해부터 우리나라 언론사 대표들의 신년사 핵심어는 ‘디지털·모바일’ 혁신이었다.3) 마침 6년이 지난 올해도 ‘콘텐츠·디지털’로 반복됐다.4) 내년이라고 크게 다르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선 기자는 혁신을 어떻게 생각할까. 조직의 허리인 5~7년차 기자를 만났다. 가장 바쁘게 현장을 뛰는 연차다. 문제의식도 차고 넘친다. 십수 년 뒤 조직을 이끌 이들의 생각을 듣는 건 중요하다.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혁신을 이룰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일간지·방송사·통신사·인터넷매체소속 기자 네 명을 초대했다. 인터뷰는 이틀에 걸쳐진행했다(10월17일~18일). 경영, 이용자, 저널리즘등 미디어 전반을 둘러싼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오랜 시간 많은 이야기를 나눴지만 이 글은 혁신에 초점을 맞추려 한다.

 

혁신을 숙제라 생각하는 간부들

 

‘디지털 혁신’, ‘읽히는 기사’, ‘저널리즘의 객관성’, ‘정파성으로부터의 독립’ 같은 주제가 갖는 공통점이 있다. 절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랜 기간 내·외부를 막론하고 제기된 문제임에도 도돌이표 찍으며 같은 구호를 반복하는 이유는 무얼까. 혁신의 성패는 종장에나 가서야 가늠할 수 있다지만, 어쩌면 처음부터 무엇이 문제인지 모른 채 방향타 없이 표류하거나 실체 없는 ‘말뿐인 혁신’만 반복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내부자 관점에서 본 언론사 혁신 프로세스가 궁금했다.

 

“언론사는 뭘 해야 할지 몰라요 사실. 문제가 뭔지는 알겠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거예요. 기본적으로는 간단하죠. ‘기사를 판다.’ 기업이니까요. 근데 ‘기사가 안 팔리는 것 같다.’ 그럼 어떻게? 몰라요. 저도 모르죠. 기자 생활 O년을 했는데도요.” [기자 C]

 

“사주들이 뭐가 맞고 틀린지 모르는 경우도 많아요. 예를 들어 ‘디지털이 유행이라는데 해보자’고 시키면 밑에선 KPI 멋있게 만들어 보고하고. 그런데 그걸 보고하는 사람도 디지털을 글로 배우신 분들이라는 게 문제예요.” [기자 B]

 

“일단 사주들은 혁신을 원해요. 돈 벌어야 하니까. 유튜브도 하고, 디지털콘텐츠도 많이 쓰자고 해요. 문제는 그 다음인데요. 국장급에선 그걸 ‘숙제’라고 생각해요. 해야겠다는 말만 하지 움직이질 않아요. 모순이죠.” [기자 A]

 

경영자가 문제를 인식하는 과정부터가 문제였다. 제대로 정의하지 못하면 이후 과정도 무의미하다. 기자 A의 말처럼, 경영자가 다행히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고 적합한 목표를 세웠음에도 관리자들이 지속적으로 달성하지 못한다면? 보다 적합하도록 조직을 재정비하는 게 상식일 테다. 그 후의 조치를 물었다.

 

“인사를 해도 비슷한 분들끼리 바꿔요. 아예 막 젊은 애들을 올리든지, 유튜브 할 거면 아예 편집국에서 분리된 유튜브국을 만들든지. (지금은) 기존에 있는 틀 안에 갇혀 있어서 못 해요. 뭘 한다고 하면 차출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아예 분리를 시켜야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생길 것 같아요. 조직문화부터 바꿔야죠.” [기자 A]

 

‘조직문화.’ 가치중립적인 단어임에도 이내 부정 감정을 환기한다. 인터뷰이 중 한 명은 조직문화를 설명하며 “아직도 기수 문화가 공고하고, 상명하복이 심하고, 데스크가 맞으면 맞는 거고, 대들었다가는 제일 먼저 죽게 된다”고 말했다. 자사 순혈주의·공채 우선주의에 매몰된 조직문화라면, 혁신을 위해 적합한 인재를 뽑아도 이내 비주류로 전락하게 되진 않을까.

 

“성공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 공식을 아는 사람이 있어도 그 사람들에겐 안 맡겨요. 기자 조직은 일단 팀장이 기자여야 돼. 안 그러면 납득이 안 되는 거예요. 잘하는 사람 엄청 많이 뽑아놨는데 팀장에 논설위원 앉혀놓고 해보자고 하면 아래 있는 사람들이 뭘 해요. 누굴 갖다놔도 고루한 것만 재탕하는 거고. 조금만 발칙한 걸 하면 ‘이런 걸 어떻게 해’라고 하는, 그런 곳이니까.” [기자 B]

 

시선을 언론사 밖으로 향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포털 문제다. 개별 언론사 차원에서 아무리 좋은 혁신을 얘기하고 시도해도, 결국 뉴스 유통의 헤게모니를 포털이 쥐고 있다면 운신의 폭이 넓지 않다는 주장이다.

 

“디지털 혁신을 얘기할 때 저는 포털을 빼놓을 수 없다고 생각해요. 언론사마다 포털에 전송하는 기사 수를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올 만큼 우리 상상력은 포털을 벗어날 수 없어요. 언론 혁신이 좌초하는 이유를 찾을 때 포털 구조를 언급하지 않고 언론의 자성이 부족하다는 식으로 분석하는 게 저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기자 D]

 

“아마 모든 언론사 경영진이 연말만 되면 ‘위기다. 신년엔 읽히는 기사 만들자’고 반복할 거예요. 근데 못 찾죠. 제 생각엔 어느 정도 포기한 것 같아요. 우리(언론)가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고, 실제로도 그런 것 같아요. 이용자가 기사를 읽기야 하겠지만 어떤 기사를 읽을지 결정하는 건 포털이죠. (…) 그래서 (읽히는 기사를 쓰려면) 우리가 기사를 어떻게 바꿀 거냐가 아니라, 포털에 가서 기사를 어떻게 선택하는지 투명하게 공개하라고 얘기하는 게 먼저라고 봐요.” [기자 C]

 

맥락 없는 파편기사 이제 그만

 

리드 헤이스팅스(Reed Hastings) 넷플릭스 CEO는 저서 《규칙 없음》에서 넷플릭스가 어떻게 혁신에 성공했는지 서술했다. 실현하고자 하는 아이디어가 있을 때 사용하는 ‘혁신 사이클 4단계’를 소개했다. 1단계는 ‘이의 제기’다. 반대 의견을 공개적으로 표현하고 토론하는 게 회사 차원 의사결정의 질을 높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인터뷰에 참석한 기자들에게도 ‘내가 대표라면 무얼 하고 싶은지, 없애고 싶은 건 무언지’ 물었다. 이의 제기의 일환으로 말이다.

 

“내가 대표라면 뭘 하겠냐구요? ‘꼰대 척결'이요. 회사에 피해가 되는 관리자가 있어요. 꼭 교체해야 돼요. (누구 얘기인지) 다른 사람 다 아는 데 대표만 몰라요. 조금만 관심 가져도 알 수 있는데 말이죠. (…) 자기 아랫사람이 조직에 해가 된다는 걸 모르는 것 자체가 회사 전체에 좋지는 않잖아요.” [기자 A]

 

“관리자 교체는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가 아녜요. 그런 생각이 지금 상황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해요. 싹을 잘라내지 않으면 신입기자들이 들어와서 그걸 보고 자라요. 똑같이. 5년만 지나면 그 사람 같은 복제인간이 되는 거예요. 대물림되는 셈인데, 척결이 필요하긴 하죠 정말.” [기자 B]

 

“반드시 결과를 요구하는 행태를 없애고 싶어요. 기자가 현장에 가면 기사가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있거든요. 그런데 실상은 썩 알릴만한 게 아닐 수 있고, 가졌던 문제의식과 관련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기자들이 이미 밝혀낸 걸 수도 있고. 그런 건 안 쓸 수 있는 문화가 생겨야 하는데, 면 비워놓고 기다리잖아요. 그럼 뭐라도 써야죠.” [기자 C]

 

“저는 출입처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순기능은 있어요. 그런데 딱 그 출입처의 시각만 담게 돼 버려요. 그렇지 않아도 기사의 다양성 자체가 사라지고 있고, 유통 채널조차 포털 하나로 협소해지는 지금의 상황에, 맥락은 없고 파편만 남은 기사가 독자에게 간다고 생각해요. (…) 기계적인 마감도 없애고 싶은데요. 그 자체가 또 다른 일을 하게 만드는 측면이 있거든요. 그것보다는 기자들에게 생각할 시간을 좀 줘서, 총체적인 기사를 쓸 수 있게 했으면 좋겠어요. 좋은 결과물은 들인 시간에 비례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기자 D]

 

“그래, 난 틀리지 않았어”

 

언론은 사양 산업이다. 그럼에도 많은 언론인이 이 업계에 발을 들이는 건 나름의 소명 의식이 있어서다. 많은 ‘뼈기자’들이 밤낮없이, 주말 없이 한국 사회를 기록한다. 그럼에도 한국 이용자의 언론 신뢰는 국제적 수준에서 최하위다.5) 양승목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공급자의 편파성과 품질 문제’를 짚었고, 이나연 성신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이용자의 정파적 뉴스 소비’에서 그 원인을 찾았다.6) 인정받지 못하는 열정의 아이러니다. 이런상황 아래, 매일의 취재·보도에 임하는 자세를 물었다. 언론계에서 이루고자 하는 목표도 얹었다. 질문은 거창했으나 돌아온 답은 담백했다.

 

“어떤 큰 포부보다는, 매일 내가 쓴 기사가 그냥 최고가 될 수 있게 일하자. 이 정도 생각을 하며 지내요.” [기자 B]

 

“적어도 부끄러운 기사, 의도를 갖고 호도하는 기사를 쓰지 않는 기자가 되려 해요.” [기자 D]

 

“‘나는 역시 틀리지 않았어.’ 만화 데스노트를 보면, 탐정 L이 죽는 순간 자신의 추리가 틀리지 않았음을 알고는 이렇게 얘기해요. ‘그래, 난 틀리지 않았어.’ 마찬가지로 그렇게 얘기할 수 있는 기자, 그런 기자가… (되고자해요.)” [기자 C]

 

문제는 켜켜이 쌓여만 왔다. 저널리즘 가치 훼손, 범람하는 허위 정보, 이용자 신뢰 저하, 포털 중심 뉴스 유통 얘기다. 바뀌지 않고 쌓이기만 한 이유는 뭘까. 아직은 먹고살 만해서 그런지도 모른다. 언론사 재무제표 공시를 보면 방송사를 제하곤 경영 악화 속도가 생각보단 빠르지 않다. 뒤집어 말하면 새롭게 시도할 시간이 얼마간 남아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혁신엔 적잖은 시간이 걸린다. 한국 언론 재건축, 서두를수록 좋은 이유다.

 

 

 

 

 

 

1) 김재중, <뉴욕타임스, “사상 최초로 디지털 수입이 종이신문 수입 추월”>, 경향신문, 2020.8.6,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2008061117011

2) 공식적으로 공개한 게 아니라서 유출이란 표현을 썼다. 편집자 주

3) 강아영·김달아, <디지털 혁신, 진화하거나, 시작하거나>, 기자협회보, 2015.9.9.

4) 김고은, <올해 언론사별 사장 신년사서 가장 많이 언급된 키워드는>, 기자협회 보, 2020.1.8.

5) 박아란·이소은, 《디지털 뉴스 리포트 2020 한국》, 한국언론진흥재단, 2020.

6) 위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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