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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현장] <레거시 플러스>와 뉴스룸 혁신
미디어현장 | 등록일 : 2021-01-05

2020년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인 동아일보는 ‘레거시 플러스’를 선언하며 젊고 역동적인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이달의 기자상, 디지털저널리즘어워드 대상을 받을 만큼 성과를 거뒀지만 이에 만족하지 않고 지속 가능한 뉴스룸을 만들겠다는 그들의 도전을 들여다본다. 편집자 주

 

 

2018년 초 발족한 동아일보의 100주년 조직 ‘뉴센테니얼본부’ Ⓒ동아미디어그룹

 

 

2020년은 3·1운동으로 태어난 동아일보가 백 살이 되는 기념비적인 해였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준비했던 프로젝트 상당수가 축소되거나 취소됐지만, 창간일(4월 1일) 사내에 배포한 뉴스룸 혁신 보고서 <레거시 플러스(legacy plus)>에서 제안한 내용은 상당 부분 현실로 옮겨졌다.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서 ‘지속가능한 뉴스룸’을 만들어야 할 필요성을 누구보다 크게 느끼던 구성원들의 동참과 호응 덕분이었다.

 

동아 뉴스룸 혁신 보고서 <레거시 플러스> Ⓒ동아미디어그룹

 

새 백 년의 화두 ‘레거시 플러스’

 

혁신 보고서의 주무부서는 2018년 초 발족한 동아일보의 100주년 조직 ‘뉴센테니얼본부’였다. 본부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레거시 미디어의 대표 격인 동아일보가 새로운 100년을 어떻게 맞이할지 고민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2년여 동안 사내 구성원은 물론 외부 최고경영자(CEO) 및 저널리즘, 미디어 분야 석학부터 대학생까지 총 200여 명에게 미디어와 저널리즘의 미래, 동아가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물었다.

 

2019년 초부터는 전사적 100주년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하면서 동아 저널리즘이 직면한 과제를 100개의 ‘질문 나무(Question Tree)’ 형태로 정리했다. 또 동아 뉴스룸이 지금 꼭 해야 하고, 할 수 있다고 판단한 실행과제(To Do List)를 발굴했다. 보고서 제목은 한 세기 동안 지켜 온 레거시를 미래지향적으로 업그레이드하자는 뜻을 담아 ‘레거시 플러스’로 명명했다. 여기에 뉴스룸을 시작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혁신 방안이 나오길 바라는 뜻에서 ‘저널리즘&디지털’이란 부제를 달았다.

 

보고서에선 ‘계승·발전시켜야 할 레거시’와 ‘개선해야 할 레거시’를 구분한 뒤 △콘텐츠 △디지털 브랜딩 △저널리스트 부문에서 동아 뉴스룸이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서술했다. 먼저 콘텐츠 부문에선 ‘선택과 집중’을 강화해 뉴스룸 취재 인력의 20∼30%를 동아의 대표 상품이 될 ‘히어로콘텐츠’ 생산에 상시 투입하자는 원칙을 제시했다. 이를 위해선 일하는 방식이 달라져야 했다. 업무상 비효율을 제거하기 위해 ‘공유된 규칙(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주니어보드’를 도입해 젊은 구성원의 목소리를 과감히 반영하자고 제안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와 함께 디지털 모바일 분야에서 존재감을 높이기 위해 ‘동아가 이런 것도 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파격적인 디지털 실험을 제안했다. 이를 위해 뉴스룸 외부에 신문·방송 공통의 뉴스 실험실을 만들고 제작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하자고 했다. 

 

저널리스트 분야에선 인재상을 재정립하고 브랜딩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자는 내용과 함께 △전문기자 제도 개선 △세대 간 소통을 위한 역(리버스) 멘토링을 포함해 다양한 멘토링 제도 도입 등을 제안했다.

 

공개 직후부터 사내외 화제

 

2014년 뉴욕타임스의 혁신보고서가 공개된 후 적잖은 국내 언론사가 내부 혁신 보고서를 제작했다. 대부분은 ‘디지털 퍼스트’를 내세우며 디지털로의 전환을 강조하는 내용이었다.

 

‘레거시 플러스’ 역시 디지털의 중요성을 간과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최근 확산하는 가짜뉴스 논란 속에서 변하지 않는 ‘탁월한 저널리즘’의 가치에 집중하고, 콘텐츠 유통 전달 역량을 전방위적으로 업그레이드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다른 언론사와 차별된다.

 

보고서는 창간기념일인 2020년 4월 1일 사내에 배포됐다. 발간 소식은 신문 창간기념호 지면에도 실렸는데 즉시 업계의 화제가 됐고, 학계와 언론재단, 기업 등에서 “한 부 구할 수 있겠느냐”는 연락이 이어졌다. 타사 노보 1면에는 참고해야 할 사례로 언급되기도 했다.

 

내부 구성원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보고서에 QR코드를 넣어 누구나 자신의 의견을 보낼 수 있도록 했는데 한 기자는 원고지 13장이 넘는 장문의 피드백을 제출하기도 했다. 모바일 메신저, 전화 등으로도 수십 개의 피드백이 쏟아졌다.

 

보고서를 만들 때 가장 많이 신경을 쓴 것 중 하나는 디자인이었다. 동아 E&D와 협업했는데 보드게임 형식과 게이밍 요소 등을 활용해 젊고 발랄한 이미지를 도입했다. 이를 통해 구성원들이 시각적으로도 새로움을 느끼고 메시지를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했다. 이 때문인지 공개 직후 ‘언론사가 만든 것이 아닌 것 같다(?)’는 평가를 받았다.

 

보고서 발간 후엔 핵심 메시지를 전파하기 위해 스티커를 제작 배포했다. ‘히어로콘텐츠 만드는 중이니 쪼지 마세요’, ‘계급장 떼고 대화해 봅시다, 배운 사람끼리 좋은 말로’, ‘화성에서 온 기자, 금성에서 온 데스크’ 등 재치 있는 문구를 경쾌한 이미지와 함께 담아 노트북과 휴대전화, 취재수첩 등에 붙일 수 있는 사이즈로 만들었다.

 

수직적이고 권위적인 이미지를 탈피한 시도는 구성원들에게 신선한 파격으로 다가왔다. 기자들은 노트북 등에 자발적으로 스티커를 붙였고 일부는 자신의 SNS 계정에 올렸다. 배포한 스티커는 하루 이틀만에 사라져 추가 제작을 몇 번이나 해야 했다.

 

 

[그림 1] 보고서의 핵심 메시지를 보여 주는 스티커 Ⓒ동아미디어그룹

 

 

히어로콘텐츠 프로젝트로 시동

 

경영진이 보고서에 포함된 실행과제의 조속한 이행을 당부함에 따라 메시지 확산과 동시에 보고서에서 제안한 과제를 실행에 옮기는 작업이 이뤄졌다. △중요성 △시급성 △실현가능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우선순위가 높은 것부터 순차적으로 실행했다.

 

가장 먼저 시동을 건 것은 히어로콘텐츠 프로젝트였다. 동아 뉴스룸의 향후 방향성을 보여 주는 가장 좋은 수단은 콘텐츠라는 생각에서 보고서 발간 한달 후 히어로콘텐츠팀을 꾸렸다. 편집국 기자 4명에경영전략실과 뉴센테니얼본부 기자 1명씩 참여했다. 

 

총 6명의 히어로콘텐츠팀에게 저널리즘 측면에서 탁월하면서도 혁신적인 디지털 모바일 사용자경험(UX)을 제공하는 콘텐츠를 만들라는 미션이 떨어졌다. 이들은 소비자에게 차별화된 가치를 제공하는 창간 100주년 대표 콘텐츠를 만들겠다는 각오로 5개월 동안 고민을 거듭해 <증발-갑자기 사라진 사람들> 시리즈와 ‘코로나19 낙인’ 관련 보도를 선보였다. (자세한 과정은 《신문과방송》 2020년 12월호 참조)

 

성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2020년 8월 말 코로나19 낙인을 다룬 <어느 날 죄인이 됐다>는 동아일보 역대 최고 조회수를 기록했다. 본 편(<어느 날 죄인이 됐다>과 부속 편(<어느 날 불륜남이 됐다>)을 합쳐 약 550만 명이 읽었다. 이어 10월 초 공개된 <증발-갑자기 사라진 사람들>은 증발자들과 동아일보를 응원하는 수많은 긍정적 댓글과 사내외 호평을 이끌어 냈다. 그 덕분인지 제362회 이달의 기자상과 제9회 디지털저널리즘어워드 대상을 수상했고, 현재는 히어로콘텐츠팀 2기가 구성돼 현장을 누비고 있다.

 

성과 뒤에는 히어로콘텐츠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지지를 아끼지 않은 편집국과 동료들이 있었다. 예전에는 하루 단위, 최근에는 더 짧은 주기로 숨 가쁘게 돌아가는 편집국이지만 히어로콘텐츠팀 기자들에겐 5개월 동안 어떤 압박도 가해지지 않았다. 디지털뉴스팀 사진부 편집부 뉴스디자인팀과 동아닷컴 등은 오히려 “힘을 보태겠다”며 히어로콘텐츠팀 업무를 최우선적으로 지원했다.

 

히어로콘텐츠팀의 성공은 뉴스룸에 ‘선택과 집중이 살 길’이라는 확신과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왔다. 일선 부서에선 “우리도 히어로콘텐츠 같은 걸 만들어 보자”며 서로를 독려하는 분위기가 생겼다. 2020년 하반기 입사한 신입 기자 중에도 여럿이 입사 과정에서 “히어로콘텐츠를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동아일보 역대 최고 조회수를 기록한 <어느 날 죄인이 됐다> <출처 – 동아일보 인터랙티브 화면 갈무리>

 


일하는 방식 개선 매뉴얼과 조직 만들어

 

‘선택과 집중’ 강화를 위해선 뉴스룸의 일하는 방식이 지금까지와는 달라져야 했다. 뉴센테니얼본부는 혁신 보고서의 제안에 따라 편집국, 경영전략실 등과 함께 <Hero 되는 방법 Here요! 2020 뉴스룸워크 리디자인 매뉴얼(편집국 편)>을 만들어 2020년 6월 중순 사내에 공개했다. ‘명령’이나 ‘사규’가 아니라 ‘합의된 기준’을 통해 일하는 문화를 바꾸자는 취지를 실현하기 위해 팀장급 등 기자 7명이 고민을 거듭한 끝에 구성원들이 준수할 9개 항목을 도출했다. 이어 편집국 부장단 등의 피드백을 반영해 내용을 확정했다.

 

매뉴얼은 △남이 쓴 기사보다 우리가 쓸 기사에 집중해요 △면피용 발제는 우물가 숭늉! 찾지도/하지도/요구하지도 말아요 △풀 기사 챙기느라 제 풀에 지칠 필요 없어요 △‘안 함’보다 ‘실패’가 2020배 나아요 등 선택과 집중 강화를 위한 실천 방안을 유머러스한 문구로 표현했다. 또 혁신 보고서의 캐릭터를 활용해 발랄한 느낌의 포스터를 만들어 뉴스룸 곳곳에 붙였다. 천광암 편집국장은 매뉴얼을 보고받고 “전적으로 동의한다”며 부서장들에게 엄수를 지시했다.

 

‘풀만 챙기다 초식동물이 됐다’, ‘면피용 발제, 면피 안 되는 것으로 밝혀져’ 등 매뉴얼 내용을 유쾌하게 담은 스티커 역시 사내에서 인기를 끌며 조기에 매진됐다. 매뉴얼의 메시지를 담은 포춘쿠키, 데스크용 변색 콜드컵 등도 호응을 얻었다. 한 사회부 사건팀 기자는 “캡(사건팀장)부터 스티커를 붙이고 다니면서 팀원들의 취재 시간을 확보해 주기 위해 애썼다. 다들 히어로콘텐츠에 대한 갈망이 있는데 매뉴얼과 스티커 덕분에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매뉴얼 제정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도록 ‘주니어보드’가 출범했다. 2020년 10월 말 런칭한 ‘밀레니얼 스쿼드’는 전원 10년차 이하, 절반 5년차 이하 기자 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레거시 플러스>와 <Hero 되는 방법 Here요! 2020 뉴스룸 워크 리디자인 매뉴얼>에서 제안한 조직문화 혁신 방안의 이행 여부를 점검하고 발전시키는 역할을 맡는다.

 

구찌(Gucci)는 2015년 30세 이하 밀레니얼 세대 직원의 모임 ‘그림자 위원회(Shadow Committee)’를 만들어 쿨한 이미지로 거듭났다. 국내 기업 중에선 조직 운영에 젊은 시각을 반영하고 젊은 소비자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가기 위해 ‘주니어보드’를 활용하는 곳이 적지 않다.

 

밀레니얼 스쿼드는 2021년 6월까지 한 달에 한번꼴로 모여 편집국의 더 나은 업무 방식을 고민하며, 그 이후에는 2기에 배턴을 넘긴다. 영상 세대답게 2021년도 매뉴얼은 포스터가 아니라 영상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명건 신임 편집국장 역시 개선책이 나오면 실천 방안을 적극 강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림 2] <Hero 되는 방법 Here요! 2020 뉴스룸 워크 리디자인 매뉴얼(편집국 편)> Ⓒ동아미디어그룹

 

 

인재상 재정립, 제작 시스템 개선도 시동

 

동아미디어그룹에선 지금까지 언급한 것들 외에 혁신 보고서를 토대로 뉴스룸을 한 단계 전진시키기 위한 시도가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과거 ‘선비’ 또는 ‘지사’로 표현됐던 동아일보의 인재상도 진화 중이다. 혁신 보고서는 “지금 동아 뉴스룸에 필요한 기자는 일정 수준 이상의 콘텐츠를 만드는 ‘성실한 모범생’이 아니라 창의성을 발휘해 차별화된 콘텐츠를 만들 ‘미래형 저널리스트’”라고 지적했다.

 

동아미디어그룹은 2020년 ‘백년둥이’들을 뽑을 때 채용 제도를 전면 개편하면서 보고서 내용을 반영했다. 탁월한 콘텐츠를 만들 자질을 평가하기 위해 해당 분야에 대한 관심과 의지를 키워 온 사람을 우대했다. 전원 채용연계형 인턴으로 선발하면서 주도적으로 운영해 온 유튜브 채널이나 온라인 커뮤니티 등도 링크를 달아 소개하도록 했다. 채용설명회는 완전개방형 유튜브 라이브로 전환했다. 인턴 최종 면접도 미디어 시장 변화에 따른 창의적 대응 방안을 동아미디어그룹 리더들에게 제안하는 역멘토링 방식으로 진행했다. 컴퓨터제작시스템(CTS) 업그레이드 및 콘텐츠관리시스템(CMS) 도입 논의도 본격화되고 있다. 2020년 7월부터 실무회의를 진행하며 업무상 비효율을 줄이고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도전을 장려하기 위한 제작시스템 구축 방안을 진척시키는 중이다. 물론 혁신 보고서 제안 중 아직 실현되지 못한 것도 많다. 하지만 백년 기업의 혁신과 조직문화 개선이 하루아침에 이뤄질 수 없는 건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 주년에 안 변하면 언제 변할래’라는 스티커 문구처럼 100주년을 뉴스룸 진화의 모멘텀으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이 조직 전반에 침투한 것은 혁신 보고서의 성과이다. 히어로콘텐츠를 통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고 히어로콘텐츠팀 2기와 밀레니얼 스쿼드 등 후속 조직도 활동 중이다. 레거시 플러스의 도전은 새해에도 이어진다. 독자와 국민들에게 ‘창간 100주년을 계기로 동아가 달라졌다’는 말을 들을 때까지 멈추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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