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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 CES2021로 본 미디어 산업의 흐름
테크 | 등록일 : 2021-02-02

세계 최대 전자제품박람회인 CES가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으로 열렸다. IT와 전자제품의 신기술이 펼쳐진 현장에서, 미디어 업계 종사자들은 어떤 영감을 떠올려야 할까. 실리콘밸리에서 특파원으로 활동하는 필자가 보내온 편지에서 그 답을 찾아본다. 편집자 주

 

 

안녕하세요. 저는 실리콘밸리에서 <미라클레터>라는 이메일 뉴스레터를 쓰고 있는 신현규 매일경제 실리콘밸리 특파원입니다. 지난 1월 11일부터 14일까지 미국에서는 CES2021라는 이벤트가 열렸는데요. CES(Consumer Electric Show)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IT·전자제품 전시회랍니다. 과거 여기에서 카세트테이프, CD, 캠코더처럼 이전에는 전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제품들이 ‘짠’하고 등장하면서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죠. 매년 이처럼 신선한 기술·제품들이 쏟아지는 전시회인지라 많은 산업계 종사자들이 이곳에서 한 해 동안의 신제품 전략들을 구경하고 나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구상하곤 한답니다. 그렇다면 미디어 업계에 종사하는 우리에게 올해 CES2021이 던져준 메시지는 없을까요? 이번 《신문과방송》 기고에선 그와 관련된 궁금증을 해소해 드리고자 합니다.

 

디스플레이의 무한 확장

 

미디어의 메시지는 최종적으로 어디에서 보이느냐가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같은 콘텐츠라도 PC화면에서 보느냐, 스마트폰에서 보느냐, 태블릿에서 보느냐에 따라 느낌이 확 다르잖아요. (혹시 PC나 랩톱에서 책 읽는 건 어렵지만,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에서는 술술 읽히는 경험을 해 보신 적 없나요?) 

 

이처럼 디스플레이 형태의 변화는 미디어 업계종사자에게 중요한 기술적 변화가 아닐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CES2021에서 단연코 주목받은 기술 중 하나는 LG전자의 롤러블폰이었어요. 삼성의 폴더블폰과 달리 가만히 놔두기만 하면 돌돌 말렸던 디스플레이가 펴지면서 화면이 확장되는스마트폰이죠. 그러다가 주머니에 넣어야 하면 화면이 다시 말려들어 가고요. (참고로 LG전자가 롤러블 TV를 만들어서 내놓은 게 작년이었어요. 그리고 롤러블 디스플레이 패널을 시제품 형태로 처음 내놓은 것은 2016년이었죠. 5년 만에 시제품을 TV형태로 바꾸고, 이제는 TV를 스마트폰 형태로 만들만큼 기술적 진전을 이뤄낸 건데요. 이걸 보면 기술이라는 게 1~2년 투자해서 제품으로 바로 연결되는 것이 절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 수 있죠.)

 

LG전자는 롤러블뿐만 아니라 투명 디스플레이도 내놔서 눈길을 끌었어요. 특히 초밥집 주방장과 손님 사이에 투명 TV를 놓아두면, 주방장이 초밥을 쥐는 사이 손님이 투명 TV 속에서 광고를 보는 장면을 보여줬는데, 이게 많은 분의 기억에 남은 것 같더라고요.

 

롤러블, 폴더블, 투명 등으로 계속 진화해 나가고 있는 디스플레이. 이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우리 삶의 모든 공간에 디스플레이가 침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 같아요. 롤러블이 가능해진다면, 예를 들어 책상 앞이나 거울 옆에도 디스플레이가 들어오지 않을까요? 상상하지도 못했던 그런 곳에도 디스플레이가 들어가게 된다면 그 공간에 맞는 콘텐츠도 뒤따르지 않을까요? 그리고 누군가는 그 시장을 빠르게 파악하고 뛰어들지 않을까요?

 

 


 

5G와 가상현실

 

올해 CES에서 개인적으로 주목해 봤던 것 중 하나는 5G로 인한 미디어 환경의 변화였어요. 특히 버라이즌이 야심 차게 준비한 키노트에서 어떤 미디어 혁신이 가능할지를 눈여겨봤죠. 과연. NFL이라는 미식축구 경기장을 통째로 실시간 3D 스캔한 다음, 여기서 나오는 초당 수백 기가바이트의 데이터들을 5G로 순식간에 다른 곳으로 옮겨서 가상현실 기기로 재생하는 모습이 시연됐어요. 사물의 순간이동이죠. 이 기술이 광범위하게 사용된다면 사람들은 전 세계 어디서나 가상현실 헤드셋만 쓰면 미식축구 구경을 할 수 있게 될 것 같아요.

 

그리고 CES2021 행사 내에서는 아니었지만, 애플이 증강현실 안경을 내놓는다는 뉴스가 나왔고, 파나소닉이 증강현실 기술 회사를 인수한다는 뉴스도 나왔어요. 페이스북이 판매하고 있는 가상현실 기기인 ‘오큘러스2’는 판매량이 엄청나게 늘어서 재고는 바닥이 났고 부품 수급 또한 어렵다는 이야기들도 현지에서 들리네요. 5G로 인해 미디어 회사들은 이제 가상현실을 본격적으로 생각해 봐야 할 때가 온 것 같아요. 이미 로블록스(Roblox)나 마인크래프트(Minecraft) 같은 3차원 게임 공간에 익숙해져 있는 MZ세대1)들은 신문 또는 방송 콘텐츠들을 가상현실 또는 증강현실 공간 내에서 소비하는 것이 굉장히 자연스러울지도 모르니까요. (더 깊은 가상현실·증강현실 관련 이야기들이 혹시 계속 궁금하시다면 매주 세 번 이상 찾아가는 프리미엄 이메일 뉴스레터 <미라클레터>를 구독해 주세요. 검색창에 미라클레터를 입력하면 구독할 수 있답니다.)

 

차량이라는 새로운 미디어 공간

 

그리고 저는 여러 해 CES에 참가하면서 차량 내부가 점점 미디어 소비 공간이 돼가는 변화를 지켜볼 수 있었어요. 예를 들어 올해 벤츠가 차량 내부 디스플레이를 공개했는데요. 운전자뿐만 아니라 조수석에 앉은 사람도 운전자와 같은 화면을 바라볼 수 있고, 다양한 인포테인먼트(정보+오락)를 즐길 수 있게 시원시원한 화면이 제공되죠. 앞으로 자율주행차가 더욱 보편화하기 시작하면 이런 인포테인먼트 시설들은 더욱 확장돼 나갈 것 같아요. 전기차 형태로 차량이 진화하게 되면서 ‘차량이 점점 더 거대한 스마트폰으로 변화해 간다’고 하잖아요. 그러면서 차량 내에 앉은 사람들의 행동 양식도 지금과 굉장히 달라질 것 같아요.

 

 


 

예를 들어 테슬라 같은 경우 최근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통해 제한된 형태로 게임들을 서비스하고 있는데요.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Elon Musk)는 자율주행차가 되면 차량 내에서 즐길 수 있는 게임들의 가짓수는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고, 게임이라는 콘텐츠가 결국 테슬라에게 돈을 벌어다 주는 수단 중 하나가 될 거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게임이 이렇다면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들을 전달하는 신문과 방송 관련 기업들도 차량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등한시 해서는 안 될 것 같아요. 조금 다른 이야기도 한번 해 볼게요. 최근 차량의 변화에 대해 주목하는 분들이 많은데요. 특히 주식 투자하는 분들의 관심이 많죠. 저는 주식 투자의 관점을 떠나서 차량의 변화가 굉장히 거대한 인류 문명의 또 한 차례 변화를 예고하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제러미 리프킨(Jeremy Rifkin)은 《3차 산업혁명》이란 책에서 커뮤니케이션과 에너지 전환이 동시에 일어날 때 문명이 거대하게 바뀐다고 이야기했어요. 저는 그 문명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공간이 차량이라고 생각해요. 전기로 구동되는 자율주행자동차 속에서 5G 가상현실로 시공간을 벗어나 순간 이동할 수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물론 그런 미래가 언제 다가올지는 알 수 없지만) 이런 미래가 실제로 온다면 어쩌면 가장 크게 변화해야 할 것은 미디어 산업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고객에게 접근할 수 있는 채널은 넓어졌다

 

매년 CES 주최 측은 넷플릭스, HBO, 디즈니 등과 같은 비디오 스트리밍 산업 관계자들을 초청해 뭔가 새로운 발표를 하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2018년에 넷플릭스가 CES 무대에 등장했었고요. 지난해 CES에서는 ‘퀴비(Quibi)’라는 모바일 전용 스트리밍 서비스가 출범한다는 발표를 하기도 했죠. (비록 퀴비는 출범 후 1년을 채우지 못하고 사라져 버렸지만 말이에요) 하지만 올해 CES에서는 그런 놀랄 만한 방송 영역의 기술혁신은 보이지 않았어요. 

 

하지만 물 밑에서 진화하고 있는 거대한 스트리밍 방송 기업들의 경영적 진화를 보지 못한다면 CES를 제대로 관찰하지 못한 것이나 다름없을 거예요. 저는 이번 CES에서 HBO맥스(HBO Max)라는 스트리밍 서비스를 지휘하고 있는 앤 사노프(Ann Sarnoff) 워너미디어 CEO의 발언들을 보며 그런 변화를 확실히 느낄 수 있었어요. 현재 미국에서 HBO맥스는 넷플릭스와 디즈니플러스의 뒤를 이으면서 세 번째로 높은 구독자 수를 기록하고 있는 곳인데요. 앤 사노프 CEO는 새로운 영화를 제작하더라도 앞으로 극장에서만 먼저 개봉하는 시대는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이야기했죠. 이것만 들으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데요. 중요한 것은 그다음 발언이에요. “우리가 영상을 즐기는 방식은 달라졌어요. 즐거움이 유통되는 파이프 관 또한 달라졌죠. 따라서 높은 수준의 콘텐츠가 있다면 이걸 어디에서 언제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선택지는 더욱 넓어졌어요.”

 

 


 

지금 많은 미디어 회사들은 검색포털이나 방송플랫폼 등의 알고리즘에 간택을 받기 위한 콘텐츠의 마감 시한에 쫓겨 허덕이는 상황이라고 보여요. 그런 상황에서 여러 플랫폼에 맞게 맞춤형 콘텐츠를 제공한다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닐 거예요. 하지만 점차 시대는 더욱 빨리 변화해 나가고 있어요. 신문이나 TV 형태의 미디어가 오랜 기간 동안 사람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묶어 줬다면, 이제는 사람들이 특정한 매체(스마트폰, 태블릿, PC, 안드로이드, iOS, 유튜브, 넷플릭스 등등)의 특정한 콘텐츠를 중심으로 서로 공감을 나누는 공동체를 형성했다가 금세 다른 매체의 다른 콘텐츠로 이동해서 또 다른 공감대를 형성하죠. 이제 미디어 기업들이 그처럼 메뚜기 뛰듯 순간적으로 달아나는 고객들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과거보다 더욱더 고객 중심적으로 돼야 할 거예요. 더군다나 매체의 변화는 과거보다 빨라지고 있어요. 2008년 스마트폰이 처음 나왔고, 2년 뒤인 2010년에 아이패드가 나왔잖아요. 이제 CES2021에서 볼 수 있었듯 차량이 새로운 미디어 매체로 변화하려 하고 있고, 점점 스마트홈·스마트시티 등도 그렇게 진화할 거예요.

 

미디어 산업은 위기가 아닌 때가 없었어요. 늘 위기였죠. 시대의 조류가 흐르고 흘러서 새로운 기술적 기반에 도달하면 거기에 적응해서 살아남는 종(種)이 되기 위해 모두 발버둥 쳐야만 했어요. 하지만 저는 위기라는 말을 달리 해석해 봐요. 그건 뒤집어 놓고 보면 아직 전 세계 미디어 회사 중에서 디지털 기반이라는 새로운 땅에 정말 잘 적응한 곳은 없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 같아요. 실제로 대부분의 미디어 회사들이 힘들어하고 있잖아요. 그러나 어쩌면 그 사실이 기존의 미디어 회사, 또는 미디어 산업을 뒤집어엎으려는 야심 찬 미디어 스타트업에는 기회일 수도 있을 거예요. CES2021은 미디어 산업의 지반이 계속 바뀌어 가고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이벤트였어요. 그리고 그 속에 어쩌면 기회가 있을 수도 있음에 누군가의 심장이 두근거리고 있다는 것도 느낄 수 있는 이벤트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지쳐가는 현실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마시기 바라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실리콘밸리에서 신현규 드림

 

 

 

 

 

1) 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한 Z세대를 통칭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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