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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의 행위가 악의적이고 반사회적일 경우 실제 손해액보다 훨씬 더 많은 손해배상을 부과하는 제도인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1763년 영국에서 처음 거론됐고, 최근 국내에서도 자주 오르내리고 있다. 어떤 법안들이 논의되고 있는지, 검토해야 할 사안은 무엇인지 살펴본다. 편집자 주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손해’를 끼쳤을 때 피해자는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운수 사나운 일이 생겼거니 체념하며 조용히 덮어 버릴 수 있다. 혹은 ‘눈에는 눈’ 식으로 물리적 응징을 고려할 수 있으나 법치주의 사회에서 사적 보복은 허용되지 않는다. 무엇인가를 도모하려면 법의 힘을 빌려야 한다. 국가의 형벌권에 기대어 가해자의 신체를 감옥에 가둘 수 있다. 피해의 성격에 따라 가해자가 생명을 내놓아야 할 때도 있다. 가해자가 금전상의 고통을 겪도록 할 수도 있다. 형사상 벌금형이 그러하다.
피해자는 민사상 금전적인 지불을 얻어낼 수도 있다. 거칠게 분류하면 두 가지다. 하나는, 실제 입은 손해를 배상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전보적 손해배상’이다. 다른 하나는, 피해자가 당한 실질적 손해보다 더 많은 금액을 배상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가해자가 악의적이거나 의도적으로 피해자에게 손해를 입혔으므로 형벌에 준하는 고통을 느껴야 한다는 것인데, ‘징벌적 손해배상’이라고 한다. 가해자를 가만두면 안 된다는 응징의 요구가 배어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 논의의 역사
1995년 2월 서울지법 동부지원의 판결에 따르면, 징벌배상은 가해자에게 고의 등 주관적인 악의가 있을 때 보상적인 손해배상에 덧붙이는 것이다. 위법행위에 대한 징벌과 동종행위의 억지가 주된 목적이다. 한국의 민사법 체계에서 인정되지 않는 형벌적 성격의 배상형식이며 공서양속에 반한다고 당시 법원은 판단했다. 세월 따라 법적인 환경도 변해 2021년 2월 말 현재 20개의 법률에 ‘징벌적 손해배상’이 도입돼 있다. 2011년 ‘하도급거래 공정화법’에 처음 규정됐다. 2021년 2월 5일 시행된 ‘자동차관리법’이 가장 최근의 사례다. 이들 법률에 규정된 징벌배상은 주관적 구성요건으로 고의나 과실을 요구하고 있다. 기간제법과 파견법은 ‘명백한 고의’, 개인정보보호법, 신용정보법, 환경보건법은 ‘고의나 중대한 과실’을 징벌배상의 요건으로 삼고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에 대한 국내의 논의는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9년 법무부 민법개정 특별분과, 2004년 대법원 산하 사법개혁위원회, 2009년 민법 개정위원회에서 논의된 바 있다. 도입해야 한다는 측은 기존 손해배상제가 피해구제나 악의적인 불법행위 억지에 한계가 있다는 점, 형벌이 미치지 못하는 영역에 징벌배상이 효과적 제재가 된다는 점, 공적인 제재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다는 점, 법 위반 행위로 얻은 부당 이익을 환수하고 수범자의 준법을 이끌어 법치주의 실현에 기여한다는 점을 제시했다. 반면, 도입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영미법의 산물인 징벌배상은 대륙법계 국가로서 전보배상을 원칙으로 하는 우리 민법 체계와 조화되기 어렵다는 점, 이중처벌 금지나 과잉금지원칙에 위반될 가능성, 악의적 불법행위는 형사적·행정적 절차를 정비해 대응할 수 있다는 점, 과다한 징벌배상으로 인한 위축효과 등을 제시했다.1) 민사상 일반법으로 입법되지 못하고 개별법에 분산돼있다.

최근 여당 의원들은 언론중재법 개정안,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에 징벌배상을 도입했다. 이에 언론은 징벌배상 법률안을 처리하려는 국회와 싸워야 하는 동시에, 민사상 징벌을 찬성하는 다수 국민을 설득해야 할 어려운 처지에 빠졌다. Ⓒ뉴스1
정부·여당의 시도, “강하고 긴박하고 묘하다”
그런데 최근 ‘징벌적 손해배상’을 법률에 규정하려는 ‘광범위하고 강한’ 시도가 ‘긴박하게’ 전개되고 있다. ‘묘한 분위기’다. 첫째, 광범위하고 강하다. 여당 국회의원들이 추진하고 있을 뿐 아니라 정부도 징벌배상 법안을 마련하고 있다. 법무부는 2020년 9월 손해의 5배 이내 징벌배상을 담은 상법 개정안 입법을 예고했다. 여당 및 범여권의 의원들은 언론중재법 개정안,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에 징벌배상을 도입했다. 손해의 3배 이내 배상안도 있지만, 사안에 따라서는 수십억 원의 손해를 배상하도록 정한 법률안도 있다. 둘째, 긴박하다. 의석수 과반을 훌쩍 뛰어넘은 여당은 2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밝혔다가 최소한 3월 안에 통과시키겠다는 다짐을 내놓았다. 징벌배상이 포함된 법률안을 ‘6대 민생법안’에 묶어 처리를 준비하고 있다. 셋째, 분위기가 묘하다. 언론에 대한 징벌배상을 언론단체가 강하게 반대하고 있음에도, 국민의 81% 혹은 61.8%가 찬성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언론의 반발 과정에서 국민들은 스무 개의 징벌배상 법률이 이미 시행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됐다. 언론은 징벌배상 법률안을 처리하려는 국회와 싸워야 하는 동시에, 언론에 대한 신뢰를 거둬들이고 민사상 징벌을 찬성하는 다수 국민을 설득해야 할 어려운 처지에 빠졌다.
이 글은 작금의 징벌적 손해배상제 법안의 개괄을 목표로 한다. 그런데 글의 범위를 정하는 데 애로가 있다. 징벌배상 법안들이 형식과 내용 면에서 중구난방, 정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떤 법안은 법률명에 ‘징벌’을 담고 있다. 오기형 의원이 발의한 ‘징벌배상법안’이나 박주민 의원의 ‘징벌적 배상에 관한 법률안’이 그렇다. 개정안의 제안 이유에서 징벌을 표명했지만, 내용상 ‘배액’만 담은 법률안도 있다. 3배 이내의 손해배상을 규정한 정청래 의원의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그 예다. 연구자에 따라서는 2배·3배·5배 이내라는 손해배상은 ‘징벌배상’이 아니라 ‘배액배상’ 제도라고 간주하기도 한다. 이런 관점에 따르면 현재 논의 중인 대부분의 법률안은 전보배상과 징벌배상 사이 그 어디쯤 있다. 법무부의 상법 개정안은 여러 법률에 산재한 징벌 규정을 상행위에 일반적으로 적용하려는 취지를 반영했다. 박주민 의원의 ‘징벌적 배상에 관한 법률안’은 민법 및 민사소송법의 특례법 성격을 띤다. 최강욱 의원안처럼 제안 이유와 내용 면에서 ‘의심의 여지 없이’ 징벌배상인 사례도 있다. 개정안이 대부분이지만 제정안도 발의됐다. 시민의 표현이나 언론 보도를 대상으로 한 법률안이 있는가 하면 일반적인 상황에 적용하려는 입법안도 나왔다. 상법개정안처럼 언론계의 강한 반발과 주목을 불러온 법률안도 있고, 언론의 불법행위를 비껴가지 않았음에도 박주민 의원안과 오기형 의원안처럼 상대적으로 조용히 발의된 법안도 있다.
최근 등장한 관련 법안 현황
징벌배상 법안의 개괄이 어려운 이유는 또 있다. 정부와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징벌배상 법안이 시민의 표현의 자유, 언론 보도를 규율하려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앞의 [표 1]에서 보듯이 현재 시행 중인 징벌배상 법률의 다수는 손해 산정이 상대적으로 용이하거나 물리적이며 가시적이다. 반면 시민표현과 언론 보도로 인한 손해배상은 위자료의 성격을 갖는다. 허위 보도로 손해를 입혔더라도 우리 법원은 정신적 고통을 치유하려고 할 뿐 재산상의 물리적 손해를 인정한 사례가 거의 없다. 손해의 3배 이내, 5배 이내 규정이 실질적으로 징벌의 효과를 가지는가에 대한 평가가 상이하다. 명예훼손 등의 불법행위로 시민이나 언론이 부담해 온 기존의 손해배상금액이 적정한 수준인가에 대해서도 찬반이 갈린다. 이와 같은 점을 고려하면서 최근의 징벌적 손해배상 법안을 유형별로 정리하려고 한다.

첫째, 법률 이름에 ‘징벌’을 담은 입법안이다. 이름에 걸맞게 이들 법안은 개별법을 초월해 불법행위 전반에 걸쳐 전면적으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하려고 한다. 박주민 의원의 ‘징벌적 배상에 관한 법률안’은 민법과 민사소송법에 대한 특례로 동법을 제안했다. 전보배상액의 2배 이내로 징벌배상을 제한하고 있으나 타인의 신체와 생명에 손해를 끼쳤을 때는 그 한도를 넘는 배상책임을 인정하고 있다. 오기형 의원의 ‘징벌배상법안’ 역시 징벌배상을 민사법에 전면적으로 도입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다만 동 법안은 그 적용을 상당히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악의적 불법행위자’ 즉, 타인의 권리나 이익을 침해할 의사가 있거나 침해 사실을 알면서 이를 무시하고 손해를 입힌 사람에게 적용하되 가해자를 징벌하거나 가해자의 유사 불법행위를 억제할 필요가 있는 경우로 제한한다.
둘째, ‘징벌배상’을 제안 이유로 제시했으나 법률안 내용은 배액배상을 규정한 경우다. 법무부가 입법예고한 상법개정안, 정청래 의원의 언론중재법개정안 등이다. 상법개정안은 고의나 중과실로 상인이 타인에게 손해를 입혔을 때 손해의 5배 이내 배상책임을 규정했다. 상행위가 아니라면 적용되지 않는다. 그 입증은 상인이 해야 한다. 상인이 해당 행위로 형사처벌이나 행정처분을 받았다면 그 내용도 징벌배상의 금액 결정에 반영된다.
정청래 의원안은 언론사가 ‘악의적’으로 인격권을 ‘명백하게 침해’한 경우에 3배 이내의 징벌배상을 규정하고 있다. ‘악의적’인 경우란 ‘허위사실을 인지하고’ 피해자에게 ‘극심한 피해’를 입힐 목적으로 ‘왜곡 보도’할 때를 말한다. 국회의 법안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다른 영역의 징벌적 손해배상 법률에 비춰 비례성을 잃었다고 보기 어려울 것이나 형사상 명예훼손죄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이중처벌의 소지가 있다는 점, 언론의 자유가 위축될 수 있다는 점, ‘악의적’이라는 기준이 자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셋째, 말 그대로 징벌형이 될 수 있는 법안 유형이다. 최강욱 의원안은 언론중재위원회를 ‘언론위원회’로 바꾸고 문화체육관광부 소속으로 두려는 규정, 언론위원회가 언론사 등에 시정명령과 이행강제금을 부과한 규정을 뒀다. 특히 ‘비방할 목적’을 가지고 거짓이나 왜곡 보도를 해 손해를 입혔다면 언론사의 하루 평균 매출액의 몇 배까지 손해배상을 하도록 규정했다. 그러한 보도를 했을 때부터 삭제한 날에다가 평균 매출액을 곱한 것이 언론사가 얻은 이익인데, 이를 ‘초과’하는 범위에서 배상하도록 했다. ‘비방할 목적’을 3가지로 유형화했다. ‘중대하게 침해’하거나 ‘더 많을 것으로 예상’하거나 ‘자의적으로 선별’하는 경우를 포함하고 있다. 법률안의 조문이 ‘자의적’이라는 비판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넷째, 윤영찬 의원의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은 비교적 ‘조용히’ 발의됐으나 ‘언론’ 포함 여부를 두고 격랑에 휘말렸다. 이 법안은 고의나 중대한 과실을 요건으로 하며 배상을 손해의 3배 이내로 정했다. 거짓사실로 명예를 훼손할 때, 불법 정보로 명예훼손 등 손해를 입혔을 때 적용된다. 이 법안은 두 가지가 눈에 띄었다. 첫 번째는 징벌배상의 대상을 동법 제44조의7 제1항 제2호의 ‘거짓사실 명예훼손’으로 삼으면서 더불어 ‘불법정보의 유통금지’라는 제44조의7의 조문명을 가져와 적용 범위를 헷갈리게 했다. 두 번째는 손해를 끼친 이용자에게 입증 책임을 전환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법은 이미 제70조에 ‘비방할 목적으로 허위의 명예훼손’을 할 경우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규정하고 있다. 가혹하고 실질적인 이중처벌이라는 주장이 제기될 수 있다.
한편 이원욱 의원의 '민법 개정안'은 명예훼손 손해배상의 특칙 규정인 제764조에 제2항을 신설해, 허위사실 명예훼손죄가 유죄확정된 경우 손해의 5배 이내 배상을 규정하고 있다. 이는 금전배상의 예외를 규정한 조문에 다시 금전배상을 5배까지 상향하는 내용을 규정하는 것으로 법규정 체계상 논란이 되고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 논의는 위와 같은 법안의 내용과 형식 외에 염두에 둘 것이 더 있다. 한국의 현행 법제는 허위의 명예훼손 외에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와 모욕죄를 두고 있다. 비방할 목적이 있을 때는 출판물명예훼손죄나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죄로 처벌할 수 있다. 형법의 1,500만 원, 정보통신망법의 5,000만 원 벌금형 상한이 낮다고 볼 수 없다. 박광온 의원의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은 7,000만 원까지 벌금을 상향했다. 3배 이내의 배액배상이 적정한가의 문제, 벌금형보다 더 낮게 책정될 때의 민사상의 징벌배상이 과연 ‘징벌’의 기능을 수행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도 제기될 것이다. 더불어 시민의 표현이나 언론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은 형사상 명예훼손죄나 모욕죄를 폐지하고 전략적 봉쇄소송을 금지하는 법률안의 제정과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1) 김정환, <징벌적 손해배상의 적정한 운영방안에 관한 연구>, 사법정책연구원, 176-177쪽, 2019; 법제사법위원회, <징벌적 배상에 관한 법률안 검토보고>, 2020.9; 법제사법위원회, <징벌배상법안 검토보고>, 2020.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