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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판례를 통해 범죄 피의사실 공표 시기와 범죄 혐의자·피의자의 신상 공개 여부를 제시해 왔다. 또한 각 언론사와 여러 언론 관련 단체 또한 저마다 사건·사고, 범죄 보도 관련 준칙을 마련해 놓고 있다. 우리 언론의 사건·사고, 범죄 보도 관련 제도 현황과 개선 방안을 짚어본다. 편집자 주
우리 법원이 2002년 이후 언론 분쟁 영역에서 유지하고 있는 법리는 첫째, 공적 인물과 사적 인물은 심사 기준에 차이를 둔다, 둘째, 공적 관심사인지 순수한 사적 영역에 속한 사안인지 심사 기준에 차이를 둔다, 셋째, 객관적으로 국민이 알아야 할 공공성·사회성을 갖춘 사안으로 여론 형성이나 공개 토론에 기여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 심사 기준의 차이를 둔다 등이다.
위 법리는 개별 언론사의 취재 보도 준칙, 기자협회 등 언론단체의 제반 준칙, 신문윤리위원회와 인터넷신문윤리위원회의 자율 규제 심사 기준, 언론중재위원회의 시정 권고 심의 기준, 방송법상 방송심의기준 등에 폭넓게 스며들어 있다. 이들 준칙이나 규정은 자살·범죄·사생활 보도와 마약·약물 보도, 피의자와 피고인 신원 공개, 재판 보도 기준과 방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특별 형법에도 유사한 내용이 있다. 2010년 특정강력범죄법과 성폭력처벌법에 도입된 피의자 신상정보 공개 규정이나, 2024년 1월 시행을 앞둔 중대범죄신상공개법은 어떤 경우에 피의자나 피고인의 신상을 공개할 수 있는지 기준과 방법을 규정했다.
뿐만 아니라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언제 어떤 범죄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 피의사실을 공표하는 것이 허용될 수 있는지, 그리고 범죄 혐의자나 피의자의 신상을 공개할 수 있는지 판례를 통해 그 원칙을 제시해 왔다. 따라서 유명인의 사건·사고, 유명인이 연루된 범죄 보도를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언론사와 언론단체의 자율규정, 관계 법령, 판례법을 통해 이미 충분히, 구체적으로 마련돼 있다고 봐야 한다. 이런 보도 기준은 유명인뿐만 아니라 공인이나 일반인이 연루된 범죄 보도의 기준으로도 활용될 수 있다.
한편 궁극적으로 유명인의 사건·사고와 일상적인 범죄 정보의 최종 출구는 언론이라는 점에서, 몇 가지 더 짚어 봐야 할 것이 있다. 첫째, 범죄 보도의 익명 원칙은 여전히 유효하다. 범죄 보도에 대해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익명성 보장’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대법원은 1998년96다17257판결에서 언론이 범죄를 보도하는 것은 공공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범죄 행태를 비판적으로 조명하고, 사회적 규범을 위반할 때 법적 제재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리고, 범죄의 사회·문화적 여건을 밝혀 사회적 대책을 강구하게 하는 등 여론 형성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범인이나 범죄 혐의자에 관한 보도는 공공성을 갖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2009년 2007다71판결에서 일부 완화된 입장을 밝혔으나 공인이 아닌 일반인 범죄자의 익명 보도 원칙은 여전히, 그리고 강하게 유지되고 있다. 2014년 2012헌마652결정에서 헌법재판소는 범죄 사실 자체가 아닌 범죄자에 대한 내용은 공개수배 등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국민에게 널리 알려야 할 공공성을 갖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2022년 아동학대처벌법 위헌심판사건에서 헌재는 아동학대범죄 자체나 익명화된 형태의 사건 보도는 가능하지만, 아동학대 행위자를 식별하는 보도는 금지된다고 판단했다. 그뿐 아니다. 소년법, 가정폭력처벌법 등 여러 법률에서 가해자라고 하더라도 언론 보도를 금지하고 이를 위반할 때 형사처벌 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가사소송법도 가정법원 처리 사건에 대해 철저한 보도 금지를 명령하고 위반 시 언론인을 형사처벌 한다. 둘째, 2024년 1월 시행되는 중대범죄신상공개법은 법률에서 정한 일정한 범죄의 피의자·피고인의 신상을 심의 절차를 밟아 공개할 수 있다는 것을 규정하는 것일 뿐, 그릇된 범죄 보도 행태를 용인하거나 면죄부로서 작용하는 것이 아니다. 이 법률의 모태는 2010년 도입된 특정강력범죄법과 성폭력처벌법의 피의자 신상정보 공개 규정이다. 두 법률 규정은 2009년 경기 지역 연쇄살인범 강호순 검거 후에 입법됐다. 중대범죄신상공개법은 위의 두 법률에 규정된 내용 외에 내란죄·외환죄·마약범죄·중상해·상해치사·폭행치사상 등 피의자의 신상 공개가 적용되는 대상 범죄를 확대했다. 재판 중인 피고인도 이 법의 적용 대상이다. 이에 따라 자연스레 피의자나 피고인의 신상 공개와 언론의 범죄자 보도가 늘어나겠지만, 얼굴과 이름을 알려주는 보도가 범죄 예방 효과나 규범 형성에 기여하고 사회적 대응 방법을 강구하기 위한 여론 형성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법률에 근거가 있더라도 수사기관에 의한 신상 공개와 언론에 의한 범죄자 보도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셋째, ‘범죄 보도의 추억’에 대한 시민들의 학습 효과가 발휘되고 있다. 사건·사고나 범죄에 대해 언론이 뜬금없이 과도하게 보도하거나, 시시콜콜하고 허접한 보도가 넘쳐날 때 시민들은 권력과 언론 보도 간의 상관관계 혹은 막연한 음모론을 떠올리게 되었다. 학습효과다. 이는 범죄 보도를 하는 언론 역할에 대한 타당성과 언론의 신뢰도를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다.
2009년 1월 31일 주요 일간지와 방송 보도에 경기 지역 살인 사건의 강호순 얼굴 사진이 일제히 실렸다. 특이한 것은 언론 보도량이 급격히 증가하고 범인의 얼굴 사진이 언론에 공개된 날은 범인이 검거된 때로부터 무려 닷새가 지났을 때였다는 것이다. 2004년 7월 검거된 유영철의 경우 검거일과 그 다음날에 그의 범죄 관련 보도가 집중되었던 것과 대비됐다. 더 특이한 것은 그 직전에 청와대 국민소통비서관실의 행정관이 경찰청 홍보담당자에게 강호순 사건을 적극적으로 언론 홍보에 활용하라는 이메일을 보냈다는 점이다. 청와대 행정관의 이메일에는 용산 참사로 인한 경찰의 부정적 프레임을 강호순 사건을 활용해 긍정적 프레임으로 변환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내용이 적시돼 있었다. 강호순의 얼굴 사진이 전격적으로 공개되고, 그의 범죄에 대한 언론 보도량이 폭증한 것에 대해 정치권과 시민사회는 청와대 행정관의 이메일과 관련이 있으리라 추정했다. 웬만한 언론 이용자들도 비슷한 생각을 했을 확률이 높다.
언론은 범죄 가해자나 범죄 정보를 의도적으로 흘리는 수사기관의 특정 목적 달성을 위한 마이크가 돼선 안 된다. 늘어난 유명인 마약 의혹 보도를 두고 일부에서 음모론이 제기된 것은 그 상관관계의 타당성이 전혀 없더라도, 범죄 보도에 대한 학습 효과가 유령처럼 우리 사회를 떠돌고 있는 반증이라는 점을 언론은 잊지 않아야 한다.

유명인 사건사고·범죄 보도 방안
수사기관의 신상 공개와 언론의 범죄자 보도에 의해 위하 효과(범죄를 억제하는 효과)나 범죄 예방 효과가 발휘됐다는 실증적인 검증 자료는 제시되지 못한 반면, 범죄자 자녀의 범죄 대물림 현상은 실증적 연구자료를 통해 확인됐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나아가 신상 공개가 자칫 범죄자 가족, 특히 범죄자 자녀의 인격권 및 범죄자 자녀의 범죄 대물림 현상에 미칠 위험성을 경계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덧붙여 말한다. 신상 공개가 달성시켜 줄 것이라는 입증되지 않은 일반 예방 효과의 기대감 대신, 입증된 범죄 대물림 현상을 감소시킬 필요성에 대한 검토가 더 중요하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을 언론은 귀담아들어야 한다.1) 유명인의 사건·사고나 범죄 관련 보도, 혹은 유명인을 포함한 일반적인 범죄 보도를 어떻게 해 나갈 것인가? 언론 보도의 현실, 언론사와 언론단체의 준칙, 법령상 근거, 대법원과 헌재의 판례 등을 토대로 그 방안을 몇 가지 제시해 본다.
첫째, 유명인 관련 사건·사고는 공공성과 진실성이 확보될 때 보도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보도하려는 내용이 일반 시민에게 정당한 공적 관심사가 될 때, 그리고 공공성의 이익이 유명인 개인의 인격적 이익을 명백하게 넘어설 때 보도가 이뤄져야 한다.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치명적인 풍문을 보도하면 안 된다는 것은 단순히 윤리적 요청이 아니라 책임이 강하게 추궁되는 법적인 요구사항이기도 하다. 나아가 일반인의 사건·사고에 덤으로 유명인의 이름이 도용돼 쓰여서도 안 된다.
둘째, 범죄 보도의 경우 ‘범죄 주변’이 아니라 ‘범죄 그 자체’에 대한 보도로 범위를 한정해야 한다. 국민의 알 권리 대상이자 공적인 여론 형성에 필요한 정보는 ‘범죄행위 그 자체’다. 그 범죄가 발생한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규명하고 공론화를 통해 적절한 사회적 대응 방법을 고구하기 위해서다. 그런 까닭에 언론의 범죄 보도는 공공성이 있다. 범죄 규명에 필수적이지 않은, 더욱이 확인되지도 않은 범죄자의 병력이나 국적, 과거의 어떤 발언, 특정한 속성, 주변 사람들의 어설픈 입담을 선정적으로 다루지 않아야 한다. 피해자나 피해자 가족은 물론이고 범죄 가해자나 그 가족에 대한 보도 역시 자제돼야 한다. 가해자의 신상을 보도할 때 형사처벌 하는 특별 형법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셋째, 익명 보도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 중대범죄신상공개법에 따라 신상이 공개되는 경우, 의혹의 연루자가 공직자·정치적 공인인 경우, 사회적 해악이 명백하고 공공성의 이익이 사인의 인격권 이익보다 뚜렷하게 더 우월한 사안의 경우 언론을 통한 피의자나 피고인의 신상을 공개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일반인은 물론 유명인도 공직자·정치적 공인의 지위가 확고하지 않다는 점에서 원칙적으로 범죄 보도의 익명성을 보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앞서 밝혔듯 중대범죄신상공개법은 언론이 범죄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행위에 대한 면죄부가 아니라, 신상이 공개되는 범죄의 유형과 절차를 엄격하게 정한 법적 기준이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판례의 태도도 일반 시민이 연루된 범죄의 경우 익명 보도를 원칙으로 제시하고 있다.
넷째, ‘알려졌다’, ‘전해졌다’와 같은 피동형 서술어 사용을 억제하고, 대신 ‘말했다’와 같이 주체가 드러나는 서술어를 사용해야 한다. 특히 취재원을 익명으로 처리하거나, 취재원이 아예 없을 때 사용하는 ‘알려졌다’와 같은 피동형 서술어는 사건·사고, 범죄 보도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훼손하고 언론 신뢰도를 크게 훼손한다. 익명 뒤에 숨은 취재원이 특정한 방향으로 여론몰이를 하려고 할 때 피동형 서술어로 포장된 그릇된 정보가 언론의 마이크를 통해 유령처럼 유통될 수 있다. 사건·사고, 범죄 보도의 기사문 서술어를 ‘말했다’로 바꾸게 되면, 취재원이 드러나면서 언론이 정보의 정확성을 더 꼼꼼히 확인할 뿐만 아니라 언론 수용자들 역시 언론 보도를 더 신뢰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다섯째, 수사 단계에 치중된 현재 법조 보도 시스템을 공판 보도가 중심이 되도록 획기적으로 바꾸고, 유명인의 사건·사고는 물론 제반 범죄 보도에서도 당사자가 공인이든 일반인이든 그의 반론을 반영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반론은 의혹의 제기자나 수사기관의 일방적 주장에 대한 당사자의 반박을 의미하지만, 일반 시민 입장에서는 대립되는 견해를 동시에 접하며 정보의 균형성을 맛볼 수 있다. 반론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언론 역시 일방에 의해 제공된 정보의 정확성을 확인할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사건·사고, 범죄 보도의 품질을 실질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언론사와 언론단체의 실행 의지가 중요하다. 어떻게 보도하는 것이 올바른지에 대한 준칙과 원칙, 기준은 충분히 구체적으로 잘 만들어져 있다. 절차를 밟아 범죄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법률도 작동하고 있고, 더욱이 중대범죄신상공개법은 조만간 시행을 앞뒀다. 법원과 헌재는 판례를 통해 범죄 보도의 기준과 방식을 오래전부터 일관되게 제시해 왔다. 유명인의 사건·사고, 범죄와 관련한 피의사실 정보가 누구에 의해 생산됐든 결국 해당 정보의 최종 출구 결정자는 언론이다. 언론은 관련 정보의 공익성과 진실성을 따져야 할 뿐만 아니라, 범죄 가해자가 범죄를 정당화하기 위한 서사를 펼치기 위해, 혹은 수사기관 등이 특정한 의도를 달성하기 위해 언론의 마이크를 빌려 쓰려는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경계해야 한다.
1) 김광현, <피의자신상공개제도의 국내외 현황과 입법례>, 언론중재위원회 ‘피의자 신상공개제도와 언론의 범죄보도’ 세미나 발표 논문, 5-22쪽, 2023, 박경규, <토론문>, 언론중재위원회 ‘피의자 신상공개제도와 언론의 범죄보도’ 세미나 토론문, 20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