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상세
지난 4월, 모텔에서 벌어진 20대 부모의 아동 학대 사건이 언론에 보도됐다. 생후 2개월 된 딸을 아버지가 탁자에 던져 의식을 잃게 만든 것이다. 대중은 분노했고, 부모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그러나 이 사건 뒤엔 언론에 드러나지 않은 이면이 있었다. 시사IN의 취재로 밝혀진 숨은 이야기를 들어본다. 편집자 주

2호선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는 길이었습니다. 지하철 문이 열리고 닫힐 때마다 쏟아지는 사람들 사이에서 부대끼며 스마트폰 스크롤을 내리고 있었습니다. 한 기사 제목을 보고 손길이 딱 멈췄습니다. 지금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대강 이런 제목이었습니다. ‘모텔 전전하던 20대 부모⋯ 친모 구속 후 아빠가 자녀 학대⋯.’ 이어지는 기사 내용은 이랬습니다. 모텔을 전전하며 두 아이를 키우던 엄마가 사기 혐의로 구속됩니다. 그 뒤 혼자서 두 아이를 돌보던 아빠가 갓난아기 둘째를 ‘시끄럽다’는 이유로 테이블 위로 내던지고 맙니다. 의식을 잃은 갓난 아기는 중환자실로 실려 가고, 아이 아빠는 구속됩니다.
한숨이 나왔습니다. 쓰고 있던 마스크가 크게 들썩이면서 안경에 김이 서렸던 게 기억납니다. ‘갓난아기가 있는데 아기 엄마를 강제로 데려가도 되나?’ 처음 든 생각이었습니다. 얼마나 큰 금액인지는 모르겠지만, ‘사기’라는 단어보다 ‘생후 두 달’이라는 단어가 더 크게 보였습니다.
일단 메모장에는 ‘수감자 자녀의 인권(?)’이라고 적어뒀습니다. 뒤에 괄호를 치고 붙여놓은 물음표는 나중에 떼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두 아이의 엄마는 왜 사기를 쳤을까? 무슨 사기를 쳤을까? 아빠는 뭘 하고 있었던 걸까? 공범일까? 몰랐을까? 아기 엄마가 잡혀갈 때 경찰에게 호소하지는 않았을까? 돌봄이 필요한 어린 자녀가 있으면 형 집행을 연기해주는 제도는 없나? 연기해줄 수 없다면 적어도 돌봄을 지원해주는 제도는? 지금 첫째 아이는 어디에서 지낼까? 둘째는 의식을 찾았나?
시간이 지나자 더 자세한 사연을 담은 기사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아기 엄마 A 씨는 지적 장애를 가진 것으로 밝혀졌다.’ 눈에 불이 확 켜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이 기사는 꼭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시 메모장을 열어서 지난번에 썼던 메모를 지우고 다시 썼습니다. ‘동사무소? 구청? 경찰? 뭐 함?’
저 물음표들은 떼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사회 시스템에 빈틈이 있었을 거라고, 그 빈틈 사이로 모텔을 전전하던 20대 부부가 결국 돈을 훔치고 자식을 내던지게 된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쁜 사람이 있었겠지. 비록 작정을 하고 나쁜 마음을 먹은 건 아닐지라도, 게으른 사람이 있었을 거야.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모르고 그저 관성적으로 일하는 그런 게으른 사람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났겠지.’
취재에 들어가기 전 저의 목표는 그 사람들, 그 빈틈을 찾아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선에서 최선을 다한 사람들
첫 관문은 모텔 사장님 인터뷰였습니다. 먼저 사고가 일어난 ㄱ모텔을 찾아갔습니다. 한 집 건너 한 집이 모텔인 좁은 골목이었습니다. 모텔마다 차량 번호판이 보이지 않도록 주차장 입구에 길게 늘어뜨린 커튼을 달고 있었습니다. ‘인터뷰 안 한다고 쫓아내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무색하게 ㄱ모텔 사장님은 적극적으로 인터뷰에 응해주셨습니다. 이른 점심시간 카운터 한쪽에서 밥상을 펴고 식사를 하던 그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말을 이었습니다.
“이 일을 어떡해요. 안타깝잖아요. 부모도 말이 부모지 애야, 애.”
ㄱ모텔 사장님은 모텔 가족이 남기고 떠난 짐을 보여줬습니다. 상자 하나에 캐리어 하나, 유모차 하나. 4인 가족이 남긴 짐은 그게 전부였습니다. ㄱ모텔 사장님이 펼친 손바닥만 한 수첩에는 아기 엄마가 날마다 적어놓은 기록이 있었습니다.
“이거 봐요, 여기, 4월 6일 화요일. 새벽 12시 10분에 (분유) 한번 먹였지? 새벽 4시에 먹였지? 또 아침 8시에 먹였지? 그리고 마지막이 오후 1시 15분이잖아. 애 엄마가 오후 2시에 잡혀가 버렸어. 그 뒤로 아무것도 안 적혀 있잖아.”
기댈 곳 하나 없이 아이들을 키우던 이 부부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은 모텔 사장님이었습니다. 모텔 사장님은 “아무리 힘들어도 애를 던지는 건 잘못한 일이지, 정말 그러면 안 됐지”라면서도 “그래도 어떻게든 애들 키우려고 했던 사람들인데 그 사정을 좀 헤아려줄 수는 없었을까”라고 안타까워했습니다.
4월 6일 당시 아이 엄마를 체포했던 경찰 관계자와 통화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원래 아이 엄마를 체포하려고 출동했던 게 아니다. 담당 구청에서 주시하고 있던 한 가정이 갑자기 연락 두절 됐다는 신고를 받고 아이를 찾던 중에 아이 엄마 앞으로 구속영장이 발부돼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공무를 집행하는 입장에서 체포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라고 말했습니다.
생각해보면 곤혹스러운 일입니다. 내 업무는 구속영장이 발부돼 있는 용의자를 체포하는 일인데, 막상 문을 열고 들어서니 그 용의자가 두 살배기 아기와 두 달 된 갓난아기를 돌보고 있었다면 저는 어떻게 했을까요. 당시 경찰은 아이 엄마를 체포한 뒤 담당 구청에 연락을 취해 보호가 필요한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렸습니다. 경찰은 ‘나쁜 사람’ 혹은 ‘게으른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한편으로 맥이 빠지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저의 전제가 무너져서 다행이라는 안도감마저 들었습니다.
ㄱ모텔 사장님은 바로 옆집이나 마찬가지인 ㄴ모텔로 가보라고 알려주셨습니다. 모텔 가족이 ㄱ모텔로 오기 전 오랫동안 머물렀던 곳이었습니다. ㄴ모텔 사장님은 이 가족이 어떻게든 모텔촌을 벗어나 새 출발을 하기를 바랐던 분이었습니다.
“내가 동사무소(행정복지센터)에 연락을 했어. 이 가족 어떻게 도울 방법이 없겠냐고. 근데 이 가족이 사는 실제 거주지랑 서류에 등록돼 있는 주소지랑 달라서 도움받기가 어렵다는 거야. 그래서 사회복지 선생님이랑 나랑 계속 연락하면서 집을 구하고 있던 중이었어.”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구청 담당자와 통화를 했습니다. ㄴ모텔 사장님의 말씀은 사실이었습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담당자는 최선을 다하고 있었습니다.
개인의 비극에 사회가 할 수 있는 일은
부부가 화장실에서 둘째 아이를 출산했던 ㄷ모텔 사장님도 비슷한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출산 직후 부부가 자취를 감춘 뒤 ㄷ모텔 사장님은 동사무소에 전화를 걸어 “애를 데리고 모텔을 전전하는 젊은 부부가 있다. 이러다 무슨 일이 날 거 같다”라고 알렸습니다. 모텔 가족의 존재를 인식한 동사무소는 그 뒤로도 여러 차례 ㄷ모텔 사장님에게 전화를 걸어 가족이 돌아왔는지 확인했습니다.
저의 전제는 또 한 번 깨지고 말았습니다. 여기서 ‘나쁜 사람’ 혹은 ‘게으른 사람’은 없었습니다.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충실하게 업무를 수행하고 있었고 오히려 필요 이상의 선의를 가지고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ㄱ모텔 사장님도, ㄴ모텔 사장님도, ㄷ모텔 사장님도, 그리고 경찰과 구청 직원과 동사무소 담당자도요.
기사를 쓰면서 찝찝한 기분마저 들기도 했습니다. 제게 익숙한 기사의 전개 방식은 ‘누가 잘못했고, 무엇이 작동하지 않았으니, 이제 이렇게 저렇게 개선해 나가면 된다’는 식이었습니다. 선명하고 뚜렷하고 딱딱 떨어지는 그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손으로 가리킬만한(좀 더 솔직히 말하면 ‘가리키고 싶었던’) 악마가 사라진 느낌이었습니다. 그만큼 빈 지면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습니다. ‘아동 학대를 연구하는 교수님에게 전화해야 하나? 사회단체 활동가에게 인터뷰를 요청해야 되나? 어떡하지?’ 텅 빈 지면을 마주한 당혹스러움은 초조함에 가까웠던 것 같습니다.
하는 수 없이 사건이 일어난 그대로 쓰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상황을 판단하기도 어려웠고, 섣불리 판단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가해자를 악마화하고 싶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그를 편들어주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시스템에 구멍이 뚫렸다’고 쓸 수도 없었고 또 그렇다고 해서 ‘당신이 나쁜 사람이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겼다’고 개인을 탓할 수도 없었습니다.
모두가 선의를 가지고 움직였음에도 결국 두 달 된 아기가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이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단지 가해자를 악마화하고,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될까요. 한 번쯤 생각해보고 싶은 지점이었습니다.
누가 나쁜 사람이라고 알려주는 선명함도 없고,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명료함도 없는 기사였지만 예상외로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아기 엄마가 갚지 못한 빚을 조금이라도 대신 갚아주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는 전화가 걸려오기도 했고, 모텔 가족에게 전달해주기를 바란다며 편집국으로 수표를 보내주신 독자분도 있었습니다.
저 역시 이번 기사를 통해 모든 일이 꼭 선악이 명확하게 나뉘어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모두가 선의를 가지고 움직였음에도 불구하고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사실도요. 한 가족에게, 한 개인에게 그런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공동체가 적정한 시점에, 적당한 방식으로 개입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빈 지면에 여전히 남아있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