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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점검: 독자에게 말 거는 언론] 한국일보 <디어 마더 프로젝트>
집중점검 | 등록일 : 2021-07-02

신문의 힘은 결국 독자로부터 나온다. 한국일보는 독자를 기다리지 않고 먼저 찾아가는 쪽을 택했다. 연중기획 <인터뷰-엄마>를 기반으로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단행본을 발간하고, 인터뷰 콘서트까지 열어 독자의 뜨거운 반응을 얻어냈다. ‘디어 마더 프로젝트’의 시작과 진행 과정을 들어 본다. 편집자 주 

 

 

행사 기획자도, 전문 생중계 인력도, 마케터나 홍보 전문가도 없이 오로지 기자들이 합심해 기획한 <디어 마더(Dear Mother) 인터뷰 콘서트>. 당일 행사에 앞서 기자들이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출처 – 필자 제공>

 

 

“문소리 씨 태몽은 어떤 걸 꾸셨어요?” (김지은 한국일보 인스플로러랩장)

 

“용이 나와서 아들인 줄 알았는데 딸이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딸이라서 참 잘 됐죠.” (배우 문소리 모친 이향란 씨)”

 

활자로만 존재했던 인터뷰 기사가 눈앞의 무대에서 생생하게 펼쳐졌다. 대뜸 “데이트하자”는 딸 아이의 손에 이끌려온 곳. 마치 나에게 묻는 듯한 인터뷰어의 질문. 귀에 쏙쏙 들어오는 인터뷰이의 답변. 가수 강아솔의 자작곡 ‘엄마’ 노랫말에 어느새 붉어진 딸의 눈시울. 다독이는 손길. 누군가의 엄마이면서도, 누군가의 딸인 자신의 이야기를 울먹이며 털어놓는 마음들. 한국일보가 독자와의 공감을 위해 기획한 <디어 마더(Dear Mother) 인터뷰 콘서트>를 채운 장면들이다.

 

 

김지은 인스플로러랩장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모델 이향란 씨(왼쪽), <디어 마더 인터뷰 콘서트> 중 관객들이 감상을 이야기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오른쪽). Ⓒ한국일보

 

 

어버이날을 며칠 앞둔 지난 5월 1일, 서울 여의도 동화기업 원창홀. 9쌍의 모자·모녀가 인터뷰 콘서트 현장에 속속 도착했다. 참석자들의 한 손에는 보라색 커버의 책이 들려 있었다. 한국일보가 3월부터 크라우드펀딩으로 후원금을 모아 발행한 엄마 인터뷰 길라잡이 책 《디어 마더》다. 

 

책과 콘서트로 구성된 크라우드펀딩 ‘디어 마더 프로젝트’는 최종 166명 독자가 후원했다. 모인 후원금은 640만 원가량으로, 당초 목표였던 500만 원을 상회했다.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후원자 중 최소 인원만이 콘서트에 참석했다. 동시에 비대면 생중계도 진행됐다.

 

콘서트는 1, 2부 2시간 내내 공감의 박수와 탄식으로 가득했다. 가슴 속 쌓인 그 많은 말을 지금까지 어찌 참아 왔을까. 콘서트가 끝나는 것이 못내 아쉬워 관객들은 손을 들어 마이크를 쥐고 저마다의 감상을 풀어놨다. 디지털 기사로만 남았다면 알 수 없었을 독자들의 ‘찐 반응’이었다. 하루 전 포털사이트에서 읽은 한국일보 연중 기획 <인터뷰-엄마> 기사를 ‘인터뷰 콘서트’ 형식으로 체험한 독자들은 “잊지 못할 경험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안 그래도 전날 이향란 씨 인터뷰 기사를 보고 감동받았는데, 이 자리에 그 기사를 쓴 기자와 주인공이 있어서 깜짝 놀랐어요.”

(참가자 이미숙 씨)

 

스마트폰 화면을 통해 혼자 읽고 댓글을 달거나 ‘좋아요’를 누르는 것만이 전부였던 언론사와의 상호작용. 이런 환경에서 독자는 기껏해야 추천할 만한 기사를 주변 지인에 공유하는 것만이 자신에게 허용된 영역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 공간에서 각각의 독자는 더 이상 ‘혼자’ 읽고 떠나는 존재가 아니었다. 무엇이 특별했을까, 무엇이 그들을 ‘진짜 독자’로 호명한 걸까.

 

특명: 독자를 찾아라

 

정초 기운이 채 가시지 않은 1월 초. 한국일보 회의실에 다양한 팀 소속 기자들이 모여 머리를 맞댔다. 김지은 인스플로러랩장의 <인터뷰-엄마> 시리즈를 기반으로 한 콘텐츠 실험을 궁리하기 위해서였다. 회사의 미디어 전략을 담당하는 디지털전략팀을 주축으로, 뉴스룸 내외부 소통 전략을 맡는 커넥트팀이 의기투합했다.

 

지난 연말 조직 개편으로 한국일보에는 기존 언론사에서 보기 힘든 실험적 팀이 등장했다. 기자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출입처에서 탈피한 독자적인 콘텐츠를 만들어가는 1인 랩이 그중 하나다. 2018년부터 한국일보의 에버그린 인터뷰 콘텐츠 ‘삶도’를 연재 중인 김지은 기자는 인물 탐구를 주력으로 하는 인스플로러랩장을 맡았다. 파편화된 디지털 세상에서 독자와 뉴스룸을 연결하는 커넥트팀도 신설됐다. 제각기 사내에서 맡은 역할은 달랐지만, 이날 회의에서 도출된 공통 지향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수렴됐다.

 

‘좋은 기사와 좋은 독자는 너무 멀리 있다. 이제는 우리가 독자를 찾아가야 한다.’

 

 

<디어 마더 인터뷰 콘서트>는 연중 기획 <인터뷰-엄마> 기사를 ‘인터뷰 콘서트’ 형식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사진은 행사 직전 리허설 현장 <출처 – 필자 제공>

 

 

독자, 멀고도 요원한 당신


언론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 독자(讀者)는 어떻게 정의될 수 있을까. 종이신문 열독률은 해마다 역대 최저치를 경신하고, 포털 서비스에서 대중은 언론사의 브랜드나 표방하는 가치를 인지하지도 못한 채 단절된 상태로 뉴스를 소비한다. ‘독자’는 그저 읽는 존재(reader)에 그치고 만다. 이런 한국 언론 환경에서 충성 독자를 확보해야 한다는 각 언론사의 외침은 얼마나 요원하고 공허한가.

 

‘엄마 삶도 프로젝트’(가칭) 이름으로 뭉친 기자들은 아주 작은 데서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불특정 다수로 존재하는 독자에게 한국일보라는 매체를 확실하게 각인시키는 것이 독자를 다시 만나는 첫 단추라 생각했다. 우리가 알리고 싶었던 이미지는 다음과 같다. ①한국일보에는 품질 높은 인터뷰 연재물이 있다. ②한국일보는 독자와의 소통에 진심이다. ③한국일보는 유력자만이 아니라 우리 주변 독자의 미시사(微視史)에도 귀 기울이는 언론이다. 등 ‘광고’라는 수익 행위로 당장 이어지지 않더라도, ‘구독’이라는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말이다.

 

참고할 만한 사내 협업 경험이나 국내외 언론의 전례가 없는 상황에서 기획은 그야말로 백지부터 시작했다. 기사 매수나 지면의 위치 같은 제약이 전혀 없는 프로젝트. 기자들은 한국일보 대표 콘텐츠를 온·오프라인 독자 경험으로 확장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제시했다. 그리고 중지가 모였다. ‘독자들이 직접 자신의 엄마를 인터뷰할 수 있는 가이드북을 만들자. 그리고 인터뷰 전문기자의 취재를 관찰하고, 자신의 인터뷰에 적용할 수 있도록 오프라인 행사를 열자.’

 

사회자, 마케터, 행사기획자로

기자의 변신은 무죄

 

“표지 제목은 은박이 나을까요? 금박이 나을까요?”

 

“책 판매 대행 계약은 계획대로 진행하고, ISBN도 무리 없이 등록됐어요.”

 

“현장 섭외와 큐시트까지 완료! 이제 당일 조명과 음향 장치, 생방송 장비 등 점검하면 되겠습니다.”

 

 

‘디어 마더’ 프로젝트는 회사의 미디어 전략을 담당하는 디지털전략팀을 주축으로, 뉴스룸 내외부 소통 전략을 맡는 커넥트팀이 의기투합했다. <출처 - 필자 제공>

 

 

디데이가 임박할수록 뉴스룸에서 생소한 단어가 쉴 새 없이 오갔다. 마치 한 사람 한 사람이 작가, 책 편집자, 마케터, 행사 기획자가 된 것처럼 다양한 분야의 경계를 넘나들며 일했다. 특히 기존 언론사에서 시도해본 적 없는 실험인 만큼, 회사 경영진에서부터 사내 구성원까지 새로운 도전의 취지를 설명하고 설득을 구하는 커뮤니케이션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먼저, 《디어 마더》 책. 2월부터 수차례 대면과 비대면 회의를 거쳐 목차와 콘셉트를 정했다. 인터뷰에 익숙하지 않을 우리네 엄마의 말문을 여는 법부터, 엄마의 삶을 찬찬히 되짚어 나가는 질문 86개를 머리를 맞대 완성했다. 난생처음 해볼 인터뷰에 막간 재미를 더할 중간중간 쉬어가는 코너는 덤이다.

 

‘엄마 카톡 프로필 사진은 왜 그걸로 했어요?’

 

‘인생 제2의 도전이라고 할 만한 것이 있다면요?’

 

‘엄마는 부먹이에요, 찍먹이에요?’

 

인터뷰 전문기자와 베테랑 사진기자가 정리한 인터뷰와 사진 촬영의 팁, 인터뷰를 진행하기 전 참고하기 좋은 한국일보 기사까지 더해져, 시중에 판매되는 유사 제품에 차별성을 더했다. 한 권의 책을 자력으로 출판한다는 것은, 그저 원고 작성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교정·교열에서부터 디자인 결정, 인쇄, 판매 대행 등 수많은 절차가 눈앞에 남아 있었다.

 

‘찐 독자’를 찾아가기 위한 방식은 크라우드펀딩으로 낙점됐다. 홍보와 독자 개발을 동시에 이룰 수 있는 수단으로 이만한 것이 없다는 공감대에서였다. 한국일보가 내세우는 가치를 공유하고, 기꺼이 돈을 지불하고, 책과 인터뷰 콘서트라는 오프라인 경험을 통해 언론사와 교감하는 펀딩 후원자이자 독자. 이런 독자들이라면, 진짜 독자이자 진한 관계를 맺은 독자인 ‘찐 독자’라 감히 부를 수 있지 않을까.

 

때때로 기자들은 마케터로 빙의했다. 크라우드펀딩 페이지에 보기 좋게 디자인 작업을 하고 프로젝트 취지를 정성스레 설명하는 것 역시 기자들의 몫. 잠재 고객에게 홍보하고 지속적으로 구매자들의 문의를 받으며 소통하는 ‘고객 서비스(CS)’ 임무도 결코 만만치 않았다. SNS 채널 프로모션 같은 고민도 누군가가 대신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인터뷰 콘서트는 또 어떠한가. 67년의 업력 정통 레거시 미디어이지만, 이 같은 독자 행사는 ‘아마추어 기획사’나 다름없는 상황. 인터뷰 콘서트를 보러 올 관람객의 사연과 명단을 추리고, 장소와 게스트 섭외, 전체 기획, 대본과 큐시트 작성까지. 행사일은 다가오는데 해결해야 할 일은 산더미처럼 남아 있었다. 그러나 모두가 헉헉 버거워하면서도, 누구도 해보지 않은 일을 우리 손으로 만들어간다는 기대감도 동시에 커져만 갔다.

 

코로나19로 인해 실내 방역을 철저히 하고, 비대면으로 콘서트를 즐길 독자를 위해 생중계를 진행하는 것 역시 또 다른 챌린지였다. 이를 위해 기획영상팀, 미디어플랫폼팀, 총무팀이 자연스럽게 합류해 어느덧 ‘디어 마더 프로젝트’는 6개 팀이 관여하는 큰 기획이 됐다. 정식 팀은 아니었지만, ‘이런 시도를 한 번쯤은 해 봐야 한다’는 마음이 모여 파티션을 스스로 걷어내고 의기투합한 결과였다.

 

독자의 마음을 여는 열쇠, 그리 멀리 있지 않다

 

“이걸 정말 우리가 해냈네!”

 

“장비도 경험도 없는 과업이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지만, 함께 해낼 수 있어 뿌듯했던 성장의 계기가 됐어요.”

 

“독자가 단순히 기사를 읽는 것을 넘어 우리가 만든 콘텐츠를 ‘경험’, ‘체험’하고 한국일보의 팬이 되는 일의 가능성을 확인했어요.”

 

“칸막이 없는 ‘협업’을 어떻게 해나가야 하는지 실수도, 공부도 많이 한 프로젝트였습니다.”

 

만 4개월 동안 여정을 끝낸 ‘디어 마더 프로젝트’ 일원들은 눈물과 웃음 가득했던 인터뷰 콘서트가 끝나자마자 저마다의 감상을 털어놓았다. 악플 가득한 댓글창을 보며, ‘기레기’라는 멸칭으로 기자를 호명하는 대중을 보며 막연히 어디에 있을지 상상만 해왔던 그 이름, 독자. 간혹 ‘우리를 기억하고, 우리가 내세우는 가치에 공감하는 진짜 독자가 정말 존재할까’하는 회의에 빠지기도 했던 나날들. 그러나 이날 한국일보 기자들은 모니터 너머 막연히 상상했던 독자를 직접 만나고 함께 호흡한 것만으로도 보람을 느꼈다.

 

‘찐 독자를 찾아 만나겠다’는 의지 아래, 부서별 칸막이를 허물고 가욋일도 투정 없이 묵묵하게 해낸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콘서트 날 작은 공연장을 찾은 독자들의 표정이 그 증거다. 물론 이번은 첫 도전이라 기자들의 개인기와 열정으로 프로젝트를 완수했다. 앞으로는 이러한 경험을 언론사의 자산으로 축적하는 것이 과제로 남아 있다.

 

“독자들과의 소통의 폭을 넓히면 독자의 충성도도 높아진다. 소통, 참여를 통해 독자들은 자신들이 ‘커뮤니티’의 일원이라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2017년 뉴욕타임스 혁신보고서 <독보적인 저널리즘>에 등장하는 구절이다. 잃어버린 독자를 호명하고 초대하는 시도들이 언론계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어느 것 하나를 ‘모범 답안’이라 꼽을 수 없는 미증유의 시도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언론에 독자를 초대하려는 마음이지 않을까. 언론사와의 깊은 교감을 일단 한번 경험한 독자는 따뜻한 환대를 기억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일보는 지금도 어디에 있을지 모를 ‘찐 독자’를 만나기 위해 동분서주 중이다. 5월 기후대응팀은 우리가 먹는 한 끼 밥상의 탄소 배출량을 계산하는 <한끼밥상 탄소계산기>를 런칭했다. 젠더 뉴스레터 허스토리는 충성 독자를 발굴하기 위한 여성 인물 MBTI 바이럴 콘텐츠를 선보였다. 한국일보의 남다른 콘텐츠를 ‘경험화’해 독자들에게 각인시키고, 콘텐츠 소비 이상의 효능감을 뉴스 이용자에게 주려는 시도다.

 

아주 작은 발걸음이지만, 차곡차곡 쌓인 진심에서부터 우리의 저널리즘은 다시 살아 숨 쉬고 독자로부터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것이 ‘디어 마더 프로젝트’ 4개월간 여정이 각각의 기자들에게 다시 한번 일깨워준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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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자 : 이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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