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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상반기 언론을 사로잡은 뜨거운 키워드 중 하나는 ‘이대남(20대 남성)’이었다. 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이 압승하는 데 큰 역할을 했던 청년 남성의 표심에 관심이 집중됐다. 청년 남성의 현실이 어떤지, 여당의 민생 정치가 어디에서 실패하고 있는지 깊이 있는 분석이 등장하기 전에 언론이 가장 먼저 주목한 것은 ‘페미니즘’과 ‘젠더 갈등’이었다. 그리고 이런 관심은 2021년 5월 갑자기 터져 나온 ‘메갈리아 손가락 논란’으로 이어졌다.
시작은 GS25 ‘감성캠핑’ 홍보 포스터였다. 일부 남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이 포스터에 이미 폐쇄된 ‘메갈리아’ 사이트의 엠블럼이 사용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 남초 커뮤니티 유저들은 GS리테일에 항의하는 한편 온라인 여론전을 전개했다. 한국 언론이 이를 빠르게 기사화하면서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사건으로 만들었고, 몇몇 남성 정치인이 이에 동조하면서 논란은 확전됐다. 결국 GS리테일에서는 분명한 이유도 모르는 채 서둘러 사과했고, 관련 사업을 담당했던 팀장과 디자이너는 경질됐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자신들의 목소리에 사회가 주목하자 효능감을 느낀 이들이 손가락 엠블럼을 찾아 온라인 세계를 누비기 시작했다. 그들은 국방부, 서울경찰청, 경기남부경찰청, 인천교통공사 등 공공기관 홍보 포스터에서 메갈 손가락을 발견했다며 항의하고, 민간 기업의 광고도 계속해서 문제 삼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공공기관이건 사기업이건, 민원이 들어오기만 하면 앞뒤 따지지 않고 사과하기에 바빴다.
하지만 정말 이 모든 것이 남성 혐오를 퍼트리려는 “정신 나간 페미니스트들의 음모”였을까? 사실 메갈 손가락 찾기는 애초에 진지한 문제 제기라기보다는 안티 페미니즘을 기치로 내건 집단적 놀이이자 폭력에 불과했다. 이후에 벌어진 일들을 좀 더 살펴보자.
메갈 손가락 찾기 이후
메갈 손가락 찾기가 한 차례 훑고 지나간 뒤 얼마 되지 않아 한국 사회는 또 하나의 황당한 소식을 접하게 된다. 예의 그 남초 커뮤니티에서 이번에는 ‘2020 도쿄 올림픽’ 양궁 국가 대표로 출전 중인 안산 선수가 페미니스트이므로 메달을 박탈해야 한다는 주장이 등장한 것이다. 그들은 안산 선수가 쇼트커트에 여대를 다니고 있으며, ‘웅앵웅’, ‘오조오억’과 같은 ‘남혐 단어’를 썼다는 이유로 그가 페미니스트라고 주장했다. 그뿐만 아니라 직접 그의 SNS에 찾아가 “페미인지 아닌지 밝히라”며 악플을 달았다.
이쯤 되니 ‘손가락 사태’ 때까지만 해도 남초 커뮤니티의 말에 귀를 기울이던 언론들도 무언가 잘못됐다고 생각하게 된다. 사실 언론인은 물론이거니와 기사를 통해 이런 소식을 접하게 되는 사람들 대부분이 메갈리아 등장과 폐쇄의 맥락을 잘 모른다(궁금하신 분은 《대한민국 넷페미사》를 추천드린다). 그러므로 “손가락 엠블럼은 한국 남성의 성기가 작다는 조롱”이라는 말만 듣고 앞뒤 맥락에 대한 이해 없이 ‘메갈=페미=남혐’이라는 낙인에 쉽게 동조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쇼트커트=페미=남혐’은 다르다. ‘쇼트커트의 다양한 맥락’을 많은 사람이 이해하고 있다. 비로소 남초 커뮤니티의 안티페미니스트 선동에 제동이 걸린 셈이다.
별개로 보이는 두 사건은 사실 하나의 사건이다. 그 이야기로 넘어가기 전에, 언론이 사실과 맥락을 취재하기보다는 자신의 편견과 확증편향에 기대어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할 때 페미니즘을 둘러싼 담론의 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시계를 잠시 1980년대 미국으로 돌려보자.
평등 향한 진보에 대한 반격, 백래시
미국의 저널리스트 수전 팔루디(Susan Faludi)는 1991년 작 《백래시》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을 사회적 위협으로 보면서, 여성의 독립성에 대한 온갖 비방이 특히 각종 분야 전문가의 입을 빌어 펼쳐지는 것을 성평등을 향한 진보에 대한 반격, 즉 백래시(backlash)라고 규정했다. 팔루디는 1980년대 미국에서 교육, 정치, 패션, 미용, 종교, 심리학 등의 분야를 두루 살폈고, 특히 언론이 어떻게 “대중들에게 백래시의 정서를 유포했는지” 촘촘하게 분석했다.

《백래시》 Ⓒarte
1980년대 미국 언론은 ‘남자품귀현상’, ‘생물학적 시계’, ‘포스트 페미니즘’ 등의 용어를 만들어내면서 페미니즘이 여성들에게 역설을 안긴다는 사회적 믿음을 만들어냈다. 그 역설이란 여성들이 페미니즘 수혜 아래서 많은 성과를 손에 넣었지만 결혼도 못하고, 아이도 못 낳고, 결국 본성을 배반하는 삶을 사는 아주 불만스러운 상태에 놓였다는 것이었다. 페미니즘이 사회는 물론 여성의 삶도 망친다는 신화는 그렇게 언론에 의해서 확대됐다. 그러나 이는 팩트를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었다.
팔루디가 《백래시》에서 소개하는 대표적인 사례는 충격적이지만, 그 내용이 낯설지는 않다. 1986년 2월, 어드보케이트에서 예일대 사회학과 닐 베넷(Neil Bennett)이 6만 가구를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 결과를 기사화한다. “학업과 직장 생활을 중시하는 대졸 여성들이 결혼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베넷은 “결혼 경험이 없는 30세 대졸 여성이 결혼할 가능성은 20%였고, 35세의 경우는 가능성이 5%까지 떨어졌으며, 40세가 되면 1.3%로 내려갔다”고 말했다. 이 내용은 바로 기사화됐고, 미국 언론과 대중문화를 사로잡았다. 뉴스와 신문은 물론 예능과 드라마, 영화에서도 이 ‘결혼궁핍사태’에 대해 떠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연구 결과는 잘못된 것이었다. 미국 인구조사국 결혼가족통계 부서의 인구학자 진 무어맨(Jeanne Moorman)은 1,340만 가구를 대상으로 한 1980년 인구센서스를 근거로 다시 연구를 진행했다. 그 결과 결혼 경험이 없는 30세 여성의 결혼 가능성이 58~66%로 나왔다. 베넷의 추정치보다 세 배 높은 결과였다. 35세 여성은 일곱 배, 40세 여성은 스물세 배가 높게 나왔다. 무어맨은 이 연구 결과를 발표하려고 했지만, 곧 정부 윗선에서 “더 이상 이에 대해 언론과 이야기하지 말라”는 명령이 내려온다. 그리고 “가난한 미혼모들이 복지 시스템을 어떻게 오용하는지”에 대해서 더 적극적으로 연구하라고 지시한다. 이후 무어맨이 자신의 연구 결과를 언론에 알렸지만, 언론은 이를 무시하거나 사소하게 취급했다.
언론은 공론장에서 ‘개소리’ 배제를 위해 노력해야
1986년 6월, 뉴스위크는 이 내용을 확장해서 기사를 낸다. 뉴스위크의 기사는 완전히 틀린 베넷의 결혼 연구를 커버로 다루면서 공신력을 부여했다. 이 기사는 이후로도 뉴욕타임스 등 유력 언론들에 의해 계속해서 중요하게 다뤄졌다. “실질적인 통계와 과학적 사실보다 ‘페미니즘에 대한 인상’이 기사 내용을 결정”했던 셈이다. 팔루디는 “뉴스위크의 기사는 수치 보도로 가장한 우화였다”고 평가한다.
그리고 2006년 6월. 뉴스위크는 1986년 기사에 대한 진지한 사과를 커버로 다뤘다. 커버의 제목은 <20년 전 뉴스위크는 마흔 살 싱글 여성은 결혼하기보다 테러리스트에게 살해당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예측했다. 우리는 틀렸다. 결혼궁핍사태를 재고하다>였다. 당시 인터뷰이로 참여했던 싱글 여성들의 이후의 삶을 추적한 결과, 그들 대부분은 결혼했고 또 무난하게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더라는 내용이었다.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로 언론이 충분히 장사하고 난 뒤의 일이다.
다시 글을 열었던 사건들로 돌아가 보자. 메갈리아 손가락 법석과 안산 선수에 대한 온라인 괴롭힘은 별개의 사건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의 사건이다. 남초 커뮤니티에서 “쇼트커트=페미”라는 공식이 나오는 것은 2015년 페미니즘 대중화 이후 청년 여성들을 중심으로 여성들에게만 강요되는 외모 관리 강박에 대한 저항이 일어나고 이것이 이른바 ‘탈코르셋 운동’으로 이어지면서 머리를 짧게 자르는 것이 페미니스트 저항의 하나로 여겨져 왔기 때문이다. 쇼트커트기 때문에,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아서, 특정한 소설을 읽었다는 이유로, 여성들은 온라인에서뿐만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괴롭힘을 당한다. 그리고 이는 때로 생계와 학습권의 박탈로도 이어진다. 모두가 안산 선수처럼 합당하게 보호받는 것은 아니다.
여성학자 권김현영은 닷페이스와의 인터뷰에서 철학자 프랭크퍼트(Harry Frankfurt)의 《개소리에 대하여》와 제임스 볼(James ball)의 《개소리는 어떻게 세상을 정복했는가》를 인용하면서 ‘개소리’를 진지하게 받아주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메갈 손가락이 등장한다는 주장이나 쇼트커트 페미니스트에겐 연금을 줘서는 안 된다는 도처의 말은 ‘개소리’다. 그에 따르면 개소리는 거짓말과 다르다. “거짓말은 사실이 아니라는 게 밝혀지면 제거된다. 그러나 개소리는 그렇지 않다.” 개소리는 계속 인구에 회자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가치를 획득하게 된다. 그는 강조한다. “개소리의 가장 큰 문제는 팩트체크로 해결이 안 된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은 팩트체크를 게을리하지 않고 공론장에서 개소리를 배제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언론은 여전히 공신력이라는 책임의 무게를 지고 있지 않은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