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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J 잼미와 배구 선수 김인혁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로 온라인이 뜨겁다. 두 사람 모두 지속적인 악플에 시달리다 얼마 전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BJ 잼미의 어머니 역시 악플로 고통받다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지면서, 2022년 2월 5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모녀살인범 유튜버 사망사건) 가해자 유튜버랑 에펨코리아, 디시인사이드 강력처벌을 요청합니다”라는 청원이 올라와 단시간에 10만 명의 동의를 받았다(이후 이 청원은 내려가고 같은 내용으로 에펨코리아와 디시인사이드 등 고유명사가 익명 처리된 청원이 2월 7일에 다시 올라왔고, 2월 13일 기준 18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 청원에 동참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는 건 이런 ‘살인 사건’이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는 2008년 고(故) 최진실 씨의 죽음을 목도한 이후 적극적으로 ‘악플 문화 근절’에 대해 떠들어왔지만, 안타깝게도 그로부터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다. 오히려 더 나빠졌다고 할 수 있을 텐데, 최근 몇 년간 악플과 사이버 괴롭힘으로 세상을 떠난 이들은 설리, 구하라, BJ 박소은, BJ 메텔, 배구 선수 고유민 등 한두 명이 아니다. 초연결 시대의 악플이란 익명 뒤에 숨어 이름난 연예인을 괴롭히고 그의 삶을 안줏거리 삼아 낄낄거리는 개인의 ‘위악적인 오락’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것은 돈벌이와 연결된 거대한 규모의 산업과 시장의 문제가 됐다. 개인의 선한 의지에 호소하는 문화적인 캠페인만으로 악플과 그 해악을 해결할 수 없는 이유다. 악플이야말로 21세기에 본격적으로 열리기 시작한 디지털 주목경제(digital attention economy)의 마르지 않는 땔감이다.
‘사이버렉카(cyber-wrecker)’라는 신조어는 이런 새로운 이윤 창출 구조의 문제를 잘 보여준다. 사이버렉카는 사이버 공간에서 논쟁적인 이슈가 발생하면 이를 빠르게 ‘견인’해 짜깁기한 콘텐츠를 올려 돈을 버는 유튜브 채널을 말한다. 교통사고가 터지면 사고 현장에 가장 먼저 달려와 사건·사고를 수습하고 사고 차량을 견인하는 레커차에서 온 말이다. 사이버렉카의 세계에서 “사고가 발생했다”고 알려주는 신호탄이 바로 악플인 셈이다. 악플이 사이버렉카를 끌어들이고, 사이버렉카가 이슈를 확장시키면 그때부터는 악순환의 고리가 시작된다. BJ 잼미의 악플에 기름을 부어 결국 그를 죽음으로까지 몰고 갔던 채널 ‘뻑가’가 대표적인 사이버렉카다.
“아니면 말고” 식으로 밀어붙이는 소위 ‘이슈 콘텐츠’들은 연예인, 유튜버, 일반인을 가리지 않고 타깃으로 삼는다. 정치의 영역 역시 이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유튜브 슈퍼챗(Super chat) 전 세계 1위를 기록한 것으로 알려진 ‘가로세로연구소(일명 가세연)’나 ‘열린공감TV’ 등 시사 뉴스 채널을 표방하는 채널들 역시 사이버렉카 짓을 서슴지 않는다. 각자 보수와 진보를 자처하면서 자신들이 선택한 정치적 입장에 따라, 혹은 지지하는 정치인에 따라 기꺼이 소문을 퍼트리고 험담을 생산하면서 대상을 공격한다.
비판을 받고 고발을 당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심지어 처벌을 받으면서까지 이런 사이버렉카 활동을 계속하는 것은 물론 돈이 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들이 생산하는 콘텐츠를 그대로 베껴 쓰는 언론이 늘어나면서, 자신들이 이슈 메이킹의 중심에 있다는 영향력에 도취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를 ‘진실을 파헤치고 정의를 구현하는 자’로 규정하기도 하는데, 이 역시 문제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며 이슈와 가십거리를 줍는 행위를 ‘취재’라고 주장하면서 언론의 역할을 곡해할 뿐만 아니라, 맹목적인 추종자들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기꺼이 사악해지자
이런 상황에서 플랫폼을 제공하는 유튜브와 구글에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악해지지 말자(Don’t be evil)”는 구글 창업 당시 기업 모토였는데, “나쁜 짓을 하지 않고도 돈을 벌 수 있다는 걸 보여주자(You can make money without doing evil)”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21세기 초입,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기반으로 ‘관계’에 대해 고민하는 다양한 SNS가 등장하던 시기, 구글은 관계를 더욱 풍성하게 하고 삶의 질을 윤택하게 하는 편리한 테크놀로지를 꿈꿨을 것이다. 더 많은 사람을 연결함으로써 함께 열어가는 아래로부터의 변화. 하지만 이 모토는 2015년에 사라지는데, 구글 소유의 유튜브를 떠올려보면 그 이유를 알겠다. 유튜브는 ‘나쁜 짓’을 할수록 더 많은 돈을 버는 플랫폼을 열어 놓았다. 디지털 테크놀로지는 세상을 이롭게 한 딱 그만큼에서 반보 정도 더, 세상을 불행하게 만들었다.
누군가는 테크놀로지 자체를 비판하는 것에 동의하지 못할 수도 있다. 테크놀로지란 중립적인 것이고, 그걸 이용하는 사람에 따라 얼마든지 그 쓰임이 달라지는 것 아닌가. 하지만 인터넷으로 돈을 벌고자 하는 건 유튜버와 같은 플랫폼 유저들만은 아니다. 테크놀로지를 개발하는 플랫폼 제공자 자체도 수익 모델을 만드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가장 중요한 목표고, 그 목표 아래에서 기꺼이 나빠진다. 제프 올롭스키(Jeff Orlowski)의 다큐멘터리 <소셜 딜레마(The Social Dilemma)>(2020)는 바로 이 문제를 알기 쉽게 설명한다.
이 다큐멘터리에는 초창기 페이스북, 애플, 구글, 트위터,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에서 일했던 IT 업계 선구자들이 대거 출연해 제작진의 인터뷰에 응한다. 그중에는 업계를 떠난 사람도 있고, 여전히 업계에 머물러 있는 사람도 있으며, 업계를 떠나 적극적으로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활동가도 있다. 여러 반가운 얼굴 중에는 페이스북에 ‘좋아요(Like)’ 버튼을 만든 엔지니어 저스틴 로젠스타인(Justin Rosenstein)도 있다. 좋아요 버튼은 SNS의 생태계를 완전히 다른 성격으로 전환했다. 무엇보다 좋아요 버튼이야말로 유저들을 더 많은 시간 페이스북에 머물도록 하는 시스템이고, 결과적으로 SNS가 주목경제의 핵심이 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처음 좋아요 버튼을 만들었을 때, 그리하여 더 많은 시간 페이스북에 머물도록 유저들을 붙들 수 있게 됐을 때, 로젠스타인은 자신이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하는 데 기여하게 되리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초창기 선구자들은 SNS가 ‘좋은 일’을 하고 있다고 믿었다. 헤어진 가족을 만나게 하고, 장기 기증자를 찾아주기도 하고, 새로운 친구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아랍의 ‘자스민 혁명’1)은 이런 SNS 순기능을 증명하는 증거와도 같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다른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SNS를 통해 극단적인 이념 대립의 장이 형성된 것이다. 찰스 아서(Charles Arthur)의 《소셜 온난화》가 추적하고 있는 것처럼 “더 많은 사람들이 연결될수록 세상이 나아진다는 믿음은 착각”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 선구자들은 침울하게 말한다.
“이런 결과를 의도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거다.”
그렇다면 도대체 뭐가 문제인가? 이 질문의 답은 “IT 업계는 무엇을 팔아 돈을 버는가?”라는 질문과 연결돼 있다. 초창기 실리콘밸리는 물건, 상품을 팔았다. 컴퓨터, MS 오피스나 포토샵과 같은 컴퓨터 프로그램, CD-ROM…. 하지만 지금은 더 이상 이런 물건들이 돈이 되는 세상이 아니다. 메타버스의 핵심 테크놀로지를 선보이는 메타(구 페이스북)의 오큘러스퀘스트(Oculus Quest) 시리즈를 생각해 보자. 메타에서는 타사와는 비교도 안 되는 저렴한 비용으로 VR에 접속할 수 있는 디바이스인 오큘러스퀘스트를 판매한다. 이는 메타가 투자하는 것이 오큘러스가 아니라, 그것을 통해 온라인에 접속하는 유저 그 자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메타는 유저를 확보하는 데 투자 중이다. 왜냐하면 현재 IT 업계의 주요 구매자는 유저가 아닌 광고회사들이고, IT 업계의 주요 상품은 플랫폼이나 기계가 아니라 유저 그 자체기 때문이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개인의 점진적이고 눈에 띄지 않는 행동과 인식의 변화”가 바로 IT 업계가 광고주에게 파는 것이다. SNS에 뜨는 내용과 광고에 따라서 어떤 상품을 원하게 되는 것, 그 자체가 상품인 셈이다. 그리고 이 변화의 효과적인 상품화를 위해서는 유저가 무엇을 사기 위해 전자지갑을 열 것인가를 정확하게 예측할 필요가 있는데, 그런 예측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빅데이터다. 다른 누가 아닌 유저 본인이 온라인에 접속해 생산하는 방대한 데이터 말이다. 그리고 빅데이터를 얻기 위해 IT 회사들은 더 많은 유저를, 더 오랜 시간 자신의 플랫폼에 묶어놓아야 한다.
이렇게 오랜 시간 머물게 하는 데도 여러 가지 장치가 쓰인다. 첫째, 위에서도 언급한 디자인 요소다. 좋아요 버튼이나 알람 설정, 리트윗이나 리그램 같은 설정들이 사람의 뇌를 자극한다. 둘째, 주목을 끎으로써 돈을 버는 시스템을 제공한다. 이와 함께 매우 치열한 주목경쟁이 시작되는데, 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더 자극적인 이미지와 더 과격한 주장을 생산할 수밖에 없고, 시청자들은 이에 붙들리게 된다. 마지막으로 ‘추천 알고리즘’ 혹은 ‘증폭 알고리즘’이 작동한다. 나의 검색 데이터를 바탕으로 끊임없이 추천되는 영상들을 따라 피드를 구경하다 보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린다. 아마도 누구나 경험해 본 일일 터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이 세 가지 요소가 다 맞물린 조건 하에, 유튜브가 어떤 이유에서 특정 동영상을 나에게 추천하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나의 확증편향을 만족시키고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사고방식을 강화하는 알고리즘이 돌아간다. 더 자극적이고 시선을 끄는 내용일수록 ‘알고리즘에 타는 일’이 쉬워지는 것은 물론이다. 이와 함께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하고만 더 많이 연결되는 에코 챔버(Echo Chamber) 효과가 강화된다.
#유튜브도_공범이다
사이버렉카 시장은 돈을 향하는 테크놀로지의 속성과 함께 열렸다. 또 한 가지 주목해야 할 것은 이 시장이 여성 혐오가 돈이 되는 안티페미니즘 시장이라는 점이다.
BJ 잼미의 경우 시작은 2021년 도쿄올림픽 때 펼쳐졌던 안산 선수에 대한 공격과 비슷했다. 그가 소위 ‘극단적인 페미니스트 커뮤니티’에서 사용하는 용어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에펨코리아와 디시인사이드를 중심으로 BJ 잼미에 대한 공격이 시작됐고 120만 구독자를 ‘거느리고’ 있는 뻑가는 남초 커뮤니티의 공격을 적극적으로 끌어와서 ‘페미 의혹’을 확대 재생산했다. 그는 BJ 잼미의 죽음 이후 삭제된 저격 영상에서 “저도 많은 커뮤니티를 돌아다녀서 아는데 (BJ 잼미가 한 말들은) 전형적인 저쪽 사람들이 쓰는 단어에요. (중략) 이런 단어들을 입에 달고 있다고? 아유, 그런 일반인이 어딨어”라고 했다. ‘저쪽 사람들’이라는 표현에서 확인할 수 있다시피, 피아를 구분해 좌표를 찍는 방식은 온라인 집단 괴롭힘의 전형적인 수단인데, 이렇듯 덮어놓고 페미니스트라고 낙인만 찍으면 얼마든지 “자살시킬 수 있다”는 태도가, 은유가 아니라 실제로 사람을 죽인다.
그러나 유튜브는 이렇게 ‘사람을 죽이는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제재하지 않는다. 신고가 들어가도 제대로 대응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유튜브도_공범이다’ 해시태그가 등장한 이유다. 관련해서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얼마 전 「온라인폭력방지법」 제정 착수를 예고했다. 그는 지금 국회에 상정돼 있는 일명 「설리법」으로 알려져 있는 ‘준 인터넷 실명제’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맞는 말이다. 그는 영국과 호주의 ‘온라인 안전법’을 대안적 모델로 제시하는데, 둘 다 플랫폼 사업자가 지켜야 할 의무 규정을 부과하고 법적 책임을 함께 묻는 법이다. 전문가들은 독일의 네트워크집행법(NetzDG) 역시 충분하지는 않지만 지금 단계에서는 참고할 만하다고 제안한다. 이 법은 이용자가 200만 명이 넘는 SNS에 특정 대상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선동하는 콘텐츠가 올라오면 플랫폼 사업자가 24시간 이내 차단하도록 의무화했다. 이처럼 플랫폼에 책임을 묻는 방식을 통해 혐오 선동과 폭력의 스펙터클이 돈이 되는 메커니즘을 깨야 한다.
물론 법적 제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페미니즘과 소수자 의제가 공격의 빌미가 되고 낙인이 되는 사회에 대해 적극적으로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이런 가십거리를 마치 대단한 가치가 있는 뉴스라도 되는 듯 보도하는 언론의 행태 역시 성찰해야 한다. 페미니스트라면 죽어도 되는가? 왜 그런 폭력적인 문화를 방조하는가. 한국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다.
1) 2010년 12월 북아프리카 튀니지에서 발생한 민주화 혁명. 아랍 및 아프리카 지역에서 민중봉기로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첫 사례로서 이집트·시리아를 비롯한 주변 국가로 민주화운동이 확산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편집자 주 <출처 - 두산백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