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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갈등 부추기는 언론] 언론은 사회 갈등을 어떻게 보도해야 하는가
커버스토리 | 등록일 : 2021-09-03

갈등은 사회 변화를 가져오는 창조적 힘이라 할 수 있다. 갈등이 사회 공동체의 기본 요소라면 이를 보도하는 것은 언론의 핵심 기능이다. 갈등은 드러나야 조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언론은 이러한 기능을 제대로 하고 있을까. 한국 언론의 갈등 보도 현황과 문제점 그리고 나아갈 방향을 짚어본다. 편집자 주 

 

갈등을 발견하고, 구조적 요인을 프레임하고, 사회적 가치와 원칙에 대한 논의의 장을 제공하는 언론은 사회 갈등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회 갈등은 언론에 주목을 생산할 수 있는 좋은 소재다. 그러나 난제이기도 하다. 갈등의 복합성 때문이다. 언론이 갈등을 강화하고 심화했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최근 들어 갈등은 보다 다변화되고 층위도 복잡해졌다. 이용자 행태도 변했다. 채 풀지 못한 난제에 새로운 도전까지 겹친 것이다.

 

갈등 보도, 과잉보다 부재가 문제

 

사회 갈등은 제도, 집단, 사회 전체의 변화를 가져오는 창조적 힘이다. 사회학자 랄프 다렌도프(Ralf Dahrendorf)의 견해다. 그의 말처럼 갈등은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다. 우리가 그나마 지금 정도의 기본권을 누리는 것도 수많은 갈등과 조정의 결과다. 갈등은 기존 질서, 규범, 관계의 정당성에 대한 이의가 제기되면서 시작된다. 잠재됐던 불만이 일정한 크기의 공감을 얻으면 갈등으로 표출된다. 표출된 갈등은 합의나 타협을 바탕으로 새로운 질서, 규범, 관계로 조정된다. 가령 불평등 관계가 능력주의로 정당화되는 사회에서, 능력의 기준이나 능력이라는 기준 자체에 대한 이의가 제기되면 갈등이 발생한다. 사회적 논의를 거쳐 능력에 대한 새로운 기준을 세우거나 능력 외에 다른 기준이 추가되면 새로운 불평등 관계로 전환된다. 그렇다고 갈등은 해소되지는 않는다. 여전히 잠재된 갈등이 남기 때문이다. 적지 않은 경우 표출된 갈등이 무시되거나 억압되기도 한다. 갈등이 표출되지 않거나 억압되는 사회는 정체된 사회다. 갈등에 대한 부정적 평가에는 현상 유지를 원하는 불순함이 들어있다.

 

갈등이 사회공동체의 기본 요소이듯 갈등 보도는 언론의 핵심 기능이다. 갈등은 표출돼야 조정될 기회를 갖는다. 갈등 보도는 과잉보다 부재가 더 나쁘다. 2013년 1월 19일 성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하청업체 직원이 진입하는 열차에 부딪혀 사망한 사건을 언론이 사고가 아니라 갈등으로 보도했다면, 2016년 5월 28일 구의역에서 유사한 사고로 숨진 당시 19세 김 군의 죽음을 막을 수도 있었다. 성수역 사건은 작업 규정을 지키지 않아 발생한 사고로 프레임 됐다. 유족의 항변 등 갈등 요소를 보도한 언론사도 있었지만, 전체 언론에서는 묻혔다. 3년 후 구의역 김 군 사고에서는 달랐다. 원청과 하청업체 간의 불공정 계약이라는 갈등 요인이 보도되고 주목을 받았다. 여전히 많은 중대 산업재해가 발생하고 있지만, 구의역 사고 이후 적어도 ‘스크린도어 수리 중 사망’ 사건에 대한 새로운 보도는 다행히 아직은 없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발표한 조사(2016년 자료 기준)에서 OECD 30개 회원국 중 한국의 갈등 지수는 3위였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갈등 조정이 원활하지 않은 한국 사회

 

한국은 갈등 수준이 높은 사회다. 갈등을 안정적으로 조정하는 기제가 약해서다. 많은 조사에서 한국의 갈등 지수는 다른 나라보다 높고, 그에 반해 사회통합 지수는 낮다.1) 최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발표한 조사(2016년 자료 기준)에서도 OECD 30개 회원국 중 한국의 갈등 지수는 3위였다.2) 이 조사에서 정부의 ‘갈등관리 지수’는 27위로 낮았다. 갈등 수준이 높은 것 자체를 부정적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 다렌도프의 갈등 이론에 따르면 사회 변화가 빠르게 진행 중이라고 볼 수 있어서다. 문제는 ‘사회통합 지수’나 갈등관리 지수가 낮다는 점이다. 갈등 조정이 원활하지 않음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갈등 조정에는 기준이 되는 공동의 가치와 원칙이 필요하다. 가치와 원칙은 지속적인 재확인과 재설정이 필요하다. 한국은 식민지, 전쟁, 빠른 경제성장과 도시화를 겪으면서 이를 위해 필요한 영역인 지역공동체와 사회단체 등 가치공동체가 약화됐다. 특히 정당이 가치 공동체로서 역할을 잘 수행하지 못하는 것이 큰 문제다. 갈등이 원칙과 기준에 의해 조정되기보다는 밀어붙이기나 떼쓰기로 봉합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승자 독식과 클리엔텔리즘(clientelism, 후견주의) 정치 문화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갈등 조정의 실패는 사회적 분열로 이어진다. 분열은 사회 공동체를 구성하는 기본 끈이라고 할 수 있는 상호의존성을 부정할 때 발생한다. 에밀 뒤르켐(Emile Durkheim)은 분화된 근대사회가 공동체를 유지하는 비결(혹은 조건)을 ‘유기적 연대’라고 했다. 그에 따르면 전근대의 ‘기계적 연대’가 ‘똑같음’에 기반을 뒀다면 유기적 연대는 상호의존성에 대한 인식에서 나온다. 경쟁하고 갈등하는 상대의 이익과 욕구를 인정하고 그들의 존재가 나의 존재와 연결돼 있음을 인식할 때 연대와 공동체가 가능하다. 대규모의 인구 이동, 도시화, 사회 분화가 폭발적으로 일어나던 시기에 사회 구성원과 사회 각 분야의 연결성을 보여주는 기능을 수행하는 저널리즘이 출현하고 발전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단순화, 이분법, 정서적 소구, 극화에 기대는 갈등 보도

 

주목(attention)의 생산이 언론의 생존 양식이다. 그래서 갈등은 언론이 선호하는 주제다. 하지만 제대로 다루기 어려운 영역이다. 갈등은 복합적인 현상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이해관계에 대한 심층 분석과 복잡한 설명은 노력에 상응하는 정도의 주목을 만들기 힘들다. 갈등의 직접적 당사자가 아닌 독자나 이용자의 주목과 관심은 한정적이다. 짧은 시간만 유효하며 극적 상황 전개가 아니면 유지되기 힘들다. 한국 언론의 갈등 보도의 문제로 지적되는 ‘사건 중심의 단순보도’, ‘극단화된 대립 구도와 불일치 강조’, ‘취재원의 편중’, ‘과장과 자극적 표현’, ‘제목의 주관성’, ‘정파성’3)의 상당 부분은 언론이 처한 이러한 구조적 요인 때문이다.

 

갈등 상황에서 가장 쉬운 보도 방법은 단순화, 특히 적과 아군을 구분하는 이분법이다. ‘집단 이기주의’, ‘기득권 지키기’ 등 선·악으로 구분하는 도덕적 프레임도 유용하다. ‘밥그릇 싸움’과 같이 둘 다를 싸잡아 비판하는 것도 비교적 쉬운 방법이다. 분노나 혐오와 같은 정서적 소구와 극화도 주목을 쉽게 만든다. 갈등 진영의 다양한 목소리를 일일이 반영하기보다는 대표하는 엘리트 간의 대결로 묘사하면 설명도 쉽고 취재도 용이하다. 뉴스 가치에 갈등성이나 부정성, 엘리트 연관성 등이 포함된 이유의 하나다. 그러나 현실 갈등에는 이해관계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고 갈등 당사자들이 가진 경험, 두려움이나 분노와 같은 정서적 요소, 다양한 층위의 욕구와 도덕적 판단들이 결부돼 있다. 보도에서 사실관계의 사소한 부정확성이나 부적절한 용어, 표현, 이미지가 언론을 불신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갈등을 더 심화시킬 수 있다.

 

갈등이 점차 다변화되고 복합화되고 있어 언론에는 어려움을 더한다. 민주화 이후에는 지배 권력에 의해 이념 갈등으로 환원돼 억압됐거나 잠재됐던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 후 진행된 사회적 가치의 탈물질주의적 변화는 갈등의 영역과 층위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최근 들어 세대, 젠더, 종교, 장애, 성적 지향, 인종 등 다양한 요소들이 갈등으로 표출되고 있다. 미디어의 디지털 전환도 갈등의 표출을 쉽게 한다. 존재했지만 기성 언론에서는 주목을 받기 힘들었던 갈등 요인이 상대적으로 쉽게 동조자를 규합할 수 있게 됐다.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의 확산도 그 한 결과라고 봐야 할 것이다.

 

언론이 중재가가 될 필요는 없다


저널리즘 현장과 연구에서 평화 저널리즘(peace journalism)이나 갈등 예민 저널리즘(conflict sensitive journalism) 등 이름으로 좋은 갈등 보도를 위한 대안들이 제시됐다.4) ‘정확성’과 같은 기본적 저널리즘 규범과 함께 ‘대립하는 두 집단 중 하나가 승리하는 제로섬이 아니라 둘 다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대안 제시’, ‘명분이나 입장이 아니라 근저에 깔린 이해관계에 집중’, ‘배경이 되는 맥락 제공’, ‘집단의 대표나 엘리트만 아니라 다양한 구성원들을 취재원으로 선택’ 등이 그것이다. 갈등(해결) 저널리즘에 요구되는 내용은 언뜻 언론에 객관적 보도자의 역할을 넘어 중재가가 되기를 요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좋은 갈등 저널리즘의 요구는 하버드 협상 프로젝트(Harvard Negotiation Project)의 창설자 피셔(Roger Fisher)가 제시한 협상 원칙5)인 ‘문제로부터 사람 분리’, ‘입장이 아니라 이익에 초점’, ‘상호이익을 위한 선택지 개발’, ‘객관적 기준의 관철’과도 유사하다.

 

그러나 나는 좋은 갈등 저널리즘이 개입적 보도를 하는 중재가가 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가령 ‘맥락을 보여주고 겉으로 드러난 현상(입장)만이 아니라 구조적이고 핵심적인 측면(이해관계)을 다루는 것’은 좋은 저널리즘에도 요구된다. 갈등 저널리즘에 요구되는 내용은 정확성, 불편부당성, 투명성, 중요성(relevance) 등과 같은 규범들의 구체적 실천과 다르지 않다. 굳이 구분한다면 갈등 저널리즘은 좋은 저널리즘에 갈등 사례나 갈등 이론에 대한 지식과 경험, 그리고 그를 통해 형성된 갈등 문제에 대한 예민성을 더했다. 즉, 좋은 갈등 저널리즘은 갈등 사안에서 실천하는 좋은 저널리즘이다.

 

언론은 더 예민해져야 

 

사실성이 더 이상 마지막 논거가 되기 힘들어지고(탈진실) 메시지가 어떻게 수용될지 미리 알 수 없는 역동적인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공간에서 갈등 보도는 새로운 도전을 맞고 있다. 김예란은 디지털 미디어 플랫폼에서 언론 이용자는 “‘바이럴리티와 정동’에 의해 ‘자기 조직적인 성격’을 지니고 자생적으로 성장하는” ‘정동 공중(affective public)’을 형성한다고 봤다.6) 디지털 네트워크에서 이용자는 논증의 힘이 지배하는 하버마스의 합리적 ‘담론 공중’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정동 공간은 논리만이 아니라 감정, 느낌, 기분과 같은 정서가 표출되고 상징적 요소들이 반복, 변화, 확장되는 네트워크 공간이라고 이해할 수 있겠다. 제삼자가 보기에는 사소해 보이는 문제나 비합리적일 수 있는 동기로 거부를 조직화하는 ‘캔슬 컬처(cancel culture)’도 이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변화된 이용 생태계에서 갈등 보도는 과연 혹은 어떻게 변해야 할까? 사실성보다는 감성에 소구하는 새로운 서사가 필요할까? 어려운 문제다. 물론 사실성은 여전히 유효하며, 디지털 환경에서 더욱 유효하다. 논의의 기준과 출발점이 되기 때문이다. 변해야 할 것도 있다고 본다. 시론(試論)으로 몇 가지를 예시한다.

 

첫째, 사실성에 대한 겸허함이다. 취재한 사실의 오류 가능성과 불완전성에 대한 보다 세심한 고려와 겸허함이 필요하다. 갈등 보도가 정동 공간에서 야기할 수 있는 정서나 욕구와 관련한 다양한 역동을 선제적으로 인식하는 예민성이 필요하다. 표현, 용어, 논거에 더욱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둘째, 권위와 거리두기가 필요해 보인다. 언론 자체의 권위와 사회 제도의 권위 모두에 해당한다. 사실성의 담보자로 언론이나 기자가 가졌던 담론 공간에서의 우위는 더 이상 유지되기 힘들다. 언론은 판단하고 정리하는 역할이 아니라 사실성을 제공하는 지원자가 돼야 하지 않을까? 또한 입법, 법원 판결, 행정 조치와 같은 갈등 조정의 제도적 권위에 대해서도 비판적 거리두기가 필요하다.

 

셋째, 언론사 내부 소통이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본다. 다양한 영역과 층위에서 새롭게 표출되는 갈등은 언론사 내부 구성원에게서도 나타난다. ‘부정적인 의미로 페미니스트라는 단어를 기사에 쓸 땐 급진 페미니스트라는 용어를 사용하라’고 공지한 것을 두고 벌어진 조선일보 사내에서의 논의7)가 이를 잘 보여준다. 언론사 내부 다양성을 확대하고 사내 열린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적 장치가 언론이 갈등에 대한 전문성과 예민성을 높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1) 강수택, <분열형 사회에서 연대형 사회로의 전환을 위한 사회학적 성찰>, 한국사회학, 53(2), 2019.

2) 김영배, <한국 ‘갈등 지수’ OECD 3위로 최상위권…인구밀집도는 심각>, 한겨레, 2021.8.19.

3) 황치성, <갈등이슈 보도의 새로운 접근>, 한국언론재단, 2008. 

4) 황치성, 2008, 앞의 책, 24쪽 이하 참조.

5) Fisher, R. & Ury, W. L., 《Getting to Yes: Negotiating Agreement Without Giving In》, Penguin, 1981.

6) 김예란, <언론 이용자와 정동 바이럴리티>, 임종수 외, 《저널리즘 모포시스》, 팬덤북스, 2020.

7) 박서연, <조선일보 기자들 “나쁜 페미는 급진 페미” 공지에 ‘전례 없는 논쟁’>, 미디어오늘, 2021.8.13,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4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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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자 : 김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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