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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29일 일어난 이태원 참사를 우리 언론은 어떻게 다뤘을까. 세월호 참사 이후 정한 재난보도준칙에 따라 많은 부분이 개선됐지만 여전히 미진한 부분은 있다. 이태원 참사 보도 양상을 살펴보고, 문제점과 해결해야 할 과제를 짚어본다. 편집자 주
이태원 참사 보도에서 한국 언론은 학습 능력을 보여줬다. 세월호 참사 때의 잘못을1) 그대로 반복하진 않았다. 한국기자협회 등 5개 언론 단체가 세월호 보도에 대한 반성으로 제정한 재난보도준칙 제15조 “피해자 가족의 오열 등 과도한 감정 표현, 부적절한 신체 노출, 재난 상황의 본질과 관련이 없는 흥미 위주의 보도 등은 하지 않는다. 자극적인 장면의 단순 반복 보도는 지양한다. 불필요한 반발이나 불쾌감을 유발할 수 있는 지나친 근접 취재도 자제한다”는 규정을 위반한 보도가 적었다. 인격권·초상권·사생활 침해, 인터뷰 강요, 비밀 촬영과 녹음도 이번에는 안 보였다(준칙 19조와 20조).
시민들도 그렇게 평가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조사(2022년 11월 전국 성인 1,000명 대상) 결과 이태원 참사 보도에서 한국 언론의 개선된 점에 대한 질문에 ‘유족에 대한 조심스러운 접근’(72.8%), ‘희생된 개인에 대한 지나친 사생활 보도 자제’(71.4%)‘참사 영상 활용 자제’(68.5%) 등에 대한 동의 정도가 상당히 높았다.2) [그림 1]
세월호 참사 때는 언론이 정부 발표나 타사 보도를 검증 없이 보도해 ‘전원 구조’, ‘육해공 총출동’ 등 오보가 많았다. 이태원 참사는 초기 속보에 사망자 수 등에 대한 혼란이 없지 않았지만 심각한 오보는 없었다. 현장 접근이 어려운 해상에서 여러 날 급박하게 진행된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가 달랐기 때문일 수 있겠지만 언론이 ‘공식 발표도 진위와 정확성을 검증’(재난보도준칙 제11조)하고 ‘취재원의 신뢰성과 전문성을 검증’(제12조)하겠다고 다짐한 덕분일 것이다. 2022년 10월 30일 정부 브리핑에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였던 것은 아니다”, “경찰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서울 시내 곳곳에서 소요와 시위가 있어 경찰력이 분산된 측면도 있었다”는 주장을 했지만 언론은 이 해석을 따르지 않았다.
압사 사고 사례에 대한 보도로 공연이나 스포츠 경기 등 행사가 아니라 좁은 공간에 많은 사람이 모이는 것만으로 대형 참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핼러윈 때 차량 통행금지, 위험 지역 폐쇄 등 다른 국가의 사전 조치 사례도 보도됐다. 사람들이 몰렸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한 시뮬레이션과 신체에 가해지는 물리적 압박을 분석한 과학 보도도 많았다. 이로써 책임 소재가 분명해졌다. 국가 책임이며, 국가 권한을 위임받은 자들이 책임져야 하는 비극이었다. 외신들도 거들었고, 한국 언론이 이를 인용 보도했다. 참사를 ‘사고’로, 희생자나 피해자를 ‘사망자’로 표기하려는 정부의 입장을 언론은 따르지 않았다.
모든 언론이 동일한 역량을 보이진 않았다
세월호 참사는 정치화되면서 유족과 국민이 피해를 극복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이태원 참사도 그런 위험을 안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아닌 것 같다. 그런 조짐을 보이는 기사가 없지 않고 일부 정치인들이 소셜미디어 등에서 애도를 위한 유가족의 활동을 헐뜯는 발언을 하고 있지만, 언론 대부분은 이에 대해 부정적이며 비판적이다. 정치적 책임을 추궁하는 것과 참사를 정치화하는 것은 물론 다르다.
학생의 학습 능력이 차이 나듯, 모든 언론이 동일한 역량을 보이지는 않았다. 특히 초기에는 참혹한 모습을 반복한 영상이 많았다. 신문윤리위원회는 심폐소생술을 하는 장면 등을 담은 영상을 실은 동아닷컴 등 5개 온라인 신문과 참사 현장에서 노래하는 영상을 게재한 조선닷컴 등 7개 온라인 매체에 대해 신문윤리실천요강 위반으로 ‘주의’를 결정했다. 참사 초기의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보도는 그에 대한 비판이 일자 대부분 사라졌다. 현장의 ‘원인 제공자’에 대한 보도도 있었다. 의도적으로 뒤에서 밀었다는 현장 목격자의 증언이나 제보 영상이 보도됐다. 토끼 머리띠 남성이 ‘용의선상’에 오르기도 했지만 해프닝으로 끝났다. 소셜미디어에서는 핼러윈 축제에 참가한 것이 잘못이라는 주장도 제기됐지만, 언론은 이 시각을 비판하고 경계했다.
이태원 참사 후 지상파와 종편은 ‘특보 체제’로 전환해 예능 프로그램 등 정규 프로그램을 중단하고 이태원 보도를 이어갔다. 참사로 전 국민이 충격을 받은 상황에서 오락 프로그램을 방송하는 것이 부적절했다는 점에서 편성의 변화는 필요했다. 재난이 발생했을 때 신속하고 정확한 보도로 피해가 확산되는 것을 방지하고 피해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는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홍수나 태풍처럼 진행 중인 사안이 아니어도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는 특별한 일이 발생하면 온통 그 내용으로 방송 시간이나 지면을 채우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해서는 성찰이 필요하다.
초기 언론 보도에 대해서는 앞서 언급한 조사에서 시민들도 부정적 평가를 내렸다. 설문이 제시한 이태원 참사 보도 과정에서 드러난 한국 언론의 문제점 중 ‘사고 원인 및 책임에 대한 과학적 분석 보도 부족’(76.0%) ‘사고 초기 관성적인 24시간 특보 체제’(73.9%) 등에 대한 동의 정도가 높았다. 이런 문제점들은 특보 체제가 가져온 부작용일 수 있다. 많은 양을 보도해야 하며 계속 새로운 소재를 찾아야 했기 때문에 제보 영상을 활용하고 소셜미디어 출처의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전달하거나 현장 영상을 반복해서 방송한 것이 시민들에게 부정적 인상을 주었을 것이다. ‘사고 원인 및 책임에 대한 과학적 분석 보도 부족’에 대한 동의도가 높은 이유도 마찬가지다. 참사 초기 ‘도대체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했는가’에 대한 관심이 가장 높았던 시점에 차분한 분석적 보도보다는 가용한 모든 정보를 쏟아부은 보도가 시청자들에게 남긴 인상이 설문에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
사회적 애도에 대한 기여 부족
이태원 참사에서 제도 언론은 소셜미디어의 오염되고 유독한 정보와 주장을 정제하는 순기능적 역량을 발휘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사회적 애도에 대한 기여는 아직 부족하다. 언론은 정보 전달(transmission model)로 그 역할을 다하는 것은 아니다. 언론은 동시에 구성원을 연결하고 사회적 일체감을 형성하는 역할(ritual model)도 수행해야 한다.3) 재난 상황에서는 사회적 연결과 일체감이 붕괴될 위기를 맞는다. 사회공동체에 대한 신뢰도 무너진다. 그러나 동시에, 적절한 과정을 거치면, 연결을 확인하고 사회적 일체감을 강화하는 기회가 된다. 사회적 애도가 그 과정이다.
애도는 사랑하는 사람의 상실에서 비롯되는 슬픔의 표현이다. 애도 자체는 사라진 사람의 부재로 인한 고통의 감정이지만, 동시에 산 자들의 일상을 회복하게 해 준다.4) 사회적 애도도 마찬가지다. 사회적 재난을 접한 사람들은 공동체 구성원의 희생에 마음 아파하고 유가족의 슬픔에 공감하면서 내가 사는 이 사회에 계속 살 수 있는가에 대한 회의와 두려움을 느낀다.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는 변화된 미디어 환경 때문에 많은 사람이 죽음을 생생하게 목격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시민이 경험한 심리적 충격과 무력감도 치유되어야 한다. 사회적 애도는 남은 사람들이 이러한 두려움과 불안을 극복하고 일상을 회복하게 만드는 과정이다. 물론 다른 대응도 가능하다. ‘어쩔 수 없는 사고이고 개인적 불운이며 나와는 무관하다’는 태도가 그것이다. 이 경우 사회적 애도는 불가능하다. 더 나아가 이런 태도는 사회적 애도를 귀찮아하거나 싫어하게 만든다. 그 결과 재난은 사회적 갈등과 분열, 불안과 무력감이라는 제2의 재난으로 이어진다.
사회적 애도는 쉽지 않은 과정이다. 여러 조건이 충족돼야 가능하다. 첫째, 희생자와 피해자가 나와는 관련 없는 타자로 머물러서는 안 된다. 얼굴과 사연을 알게 되면서 나와 상관없고 모르는 사람에서 아는 사람이 되며, 결과적으로 내가 나의 이웃을 잃은 일이 된다.5) 둘째, 원인 규명과 책임 추궁이 필요하다. 이것은 피해자나 유족의 일상 회복은 물론 사회공동체의 치유에도 중요하다. 셋째, 재발을 막을 수 있는 변화가 필요하다. 법·제도의 변화나 인식 전환이 일어나야 한다. 그래야 사회 구성원들이 공동체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고 이 사회에서 계속 살아갈 자신감을 얻을 수 있다.
이태원 참사에서는 희생자가 타자로 머무르는 시간이 길었다. 이태원 참사는 158명이라는 추상적 숫자의 죽음이 아니었다. 각 개인의 개별적 죽음 158개가 있었다. 사회적 애도는 그 각각의 죽음에 대한 것이다. 정부가 희생자 명단 공개를 꺼려 어려움이 있었지만, 기자가 피해자나 유족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도 개별적 운명을 취재하고 기사화할 수 있는 방법은 있었다고 짐작한다. 그러나 사고 후 이름과 얼굴이 드러나지 않아 희생자가 구체적 실체로 드러나지 않았다. 일부 개인의 운명을 다룬 단발성 기사가 있었지만 익명성이라는 한계가 있었다. 세월호 참사가 희생자와 유가족 사생활 보도의 과다였다면, 이태원 참사는 희생된 개인과 유가족의 운명에 대한 보도의 과소였다. 인터넷 언론 ‘민들레’가 희생자 명단을 공개한 것은 아마 이런 답답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명단 공개가 ‘패륜’이라는 비난은 분명 지나치다. 그러나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인식 수준이 변했고, 틀리긴 하지만 희생자 책임 담론이 있었다는 점에서 원치 않는 자기 노출의 위험이 있었다. 2022년 12월 14일 이태원 광장에 희생자 76명의 영정이 있는 합동분향소가 설치됐다. 이제야 사회가 제대로 된 애도를 하게 되었다. 한겨레는 지난해 12월 5일부터 실명으로 희생자 한 명씩을 다루는 추모 기사를 싣고 있다.
단순 중계보다 책임의 맥락 보여주는 보도 필요
세월호 보도에서는 유병언에 집중하느라 허술한 안전 체제의 문제라는 본질이 희석됐다는 반성이 있었다. 선박의 침몰로 인한 세월호 참사와 달리 이태원 참사의 직접적 원인을 규명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사람들의 이동을 적절하게 조절하지 않아서 발생했다. 사실 책임 소재도 분명하다. 물론 과정별로 누가 어떤 잘못을 했는가를 규명해야겠지만, 핵심은 시민의 안전을 지켜야 하는 국가가 그 책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그 책임은 사전에 참사를 방지할 수 있는 수단과 권한을 가진 사람들이 져야 한다. 희생자 중에는 119로 사고 위험을 신고한 두 명도 포함됐다. 만약 119에 신고한 사람들이 경찰을 동원할 권한이 있었다면 그들은 살아남을 수 있었고 참사를 막을 수도 있었다. 언론 보도에서 법적·행정적, 정치적, 도의적 책임의 차원을 구분하는 작업이 부족하다. 구속 영장, 경찰 조사 등 관련자 조사와 수사에 대한 발표들을 단순 중계하면 결과적으로 책임의 종류와 차원에 대한 초점이 흐려질 수 있다. 수사나 조사 발표를 단순 중계할 것이 아니라 책임의 맥락을 보여주는 보도가 필요하다.
출퇴근 때 지하철에서 이태원 참사와 유사한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보도가 많았다. 좋은 보도이며 필요한 보도다. 그러나 문제 제기 후 상황은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 한국에서 압사 사고만 위험한 것이 아니다. 안전은 비용을 수반한다. 안전을 위해 투자한 비용은 그 효과가 나타나지 않으면, 가령 사고가 발생하지 않으면, 역설적으로 효용성이 잘 드러나지 않는 투자가 된다. 우리가 어떤 삶을 살기를 원하는가, 우리 자식들이 어떤 사회에 사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가와 연결된 논의가 필요하다. 언론이 이태원 참사를 계기로 안전에 대한 ‘철학적’ 문제를 제기하고 생명과 안전에 대한 전반적인 체제를 지적하고 분석하는 보도까지 연결하지는 못했다.
사회적 애도가 언론에서만 이뤄지는 것은 물론 아니다. 기억의 장소와 기념식, 예술, 유가족을 비롯한 시민들의 조직적 활동, 진상 조사와 책임 추궁, 행정적·법적 조치 등 다양한 요소들이 사회적 애도를 구성한다. 사회적 소통을 담당하는 언론은 이러한 요소들에 대한 적절한 보도를 통해 사회적 애도에 기여할 수도 있고, 그 반대로 사회적 애도를 불가능하게 만들 수도 있다.
1) 김호성·김성한·설치환 외, 《세월호 보도...저널리즘의 침몰. 재난보도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 방송기자연합회, 2015.
2) 오세욱, <‘이태원 참사’ 관련 보도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 미디어이슈, 8권 6호, 한국언론진흥재단, 2022.
3) Schudson, M., 《The Power of News》, Harvard University Press, pp.40-41, 1996.
4) 이경성, <‘사회적 애도하기’로서의 퍼포먼스. 에리카 피셔 리히테(Erika Fischer-Lichte)의 수행성 개념을 중심으로>, 연극교육연구, 41, 5-39쪽, 2022.
5) 편소정, <사회적 죽음과 애도의 미학적 태도 연구 -한국 현대 예술을 중심으로>, 부산대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