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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점검: 올림픽 보도] 스포츠 저널리즘을 위한 제언
집중점검 | 등록일 : 2021-09-30

스포츠 관련 콘텐츠는 많지만 스포츠 저널리즘은 부재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스포츠신문 대부분은 사라졌고, 스포츠 분야에서 탐사보도와 심층 보도는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한국의 스포츠 저널리즘이 제 역할을 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할지 알아본다. 편집자 주 

 

스포츠 ‘재발견’ 시대다. 미디어는, 특히 방송은 스포츠 콘텐츠라는 미지의 바다를 향한 대항해에 나선 것 같다. 매일매일 같은 시간대 어느 채널에선가는 반드시 스포츠 경기가 중계되거나 스포츠 스타가 출연한다. 그동안 우리가 경기로만 봐왔던 스포츠 세계의 이면을 ‘노는 언니’와 ‘브로’들이 소개하고, 그들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매력을 발산한다. 우리는 여성으로만 구성된 모델과 배우 팀의 축구 경기를 보면서 찡한 감정도 느끼고, 스포츠 레전드들의 헛발질과 흐트러진 몸매를 통해 인생의 공정함에 안도한다.

 

과거에는 스포츠 콘텐츠가 곧 경기 중계였다. 미디어는 굵직한 경기 결과를 전하는 것에 만족했다. 그러나 지금은 ‘스포츠와 관련된 모든 정보’가 요구되는 시대다. 스포츠 팬들은 코트 위뿐 아니라 라커룸과 커튼 뒤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알고 싶어 한다. 스포츠 기자는 공기처럼 곳곳에 스며있는 정보를 찾아다녀야 한다. 취재할 일도 많고, 매체는 넘친다. 그렇다면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 스포츠 기자는 활발하게 이곳저곳을 헤집고 다니며 신나게 헤엄쳐야 할 것이다. 그런데 현실에서 만나는 스포츠 기자들은 생태계에서 ‘사라지는 종(vanishing species)’1)이라는 인상을 준다. 자신의 일에 대한 자신감을 잃었고 그들이 전달하는 ‘미디어스포츠(mediasport)’의 내용도 활기가 떨어진다. 디바이스와 플랫폼은 많아졌는데 정작 스포츠 저널리즘은 점점 수렁으로 빨려들어 가는 것 같다. 왜 그럴까.

 

스포츠 기자는 사라지는 종?

 

저널리즘은 흔히 권력에 대한 감시, 비판의식을 갖춘 시민의 육성, 공론장 형성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스포츠 저널리즘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스포츠 정보를 전달하면서 동시에 스포츠 문화를 형성하고 스포츠 환경을 감시하는 역할 등이 요구된다. 1980년대 중반 주말 방송 프로그램 중 스포츠 중계가 30~40%를 차지하던 시절이 있었다. 정확한 집계는 없지만 요즘 운동선수가 출연하거나 스포츠를 중심으로 제작된 방송 콘텐츠의 양과 질도 결코 이에 뒤지지 않을 듯싶다.

 

그런 한편에서는 스포츠 저널리즘의 사망이라는 진단까지 등장한다. 기대와 현실 간의 간극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한때 한국을 대표하는 스포츠지 중 하나였던 스포츠서울2)의 상황은 참담하다. 건실했던 언론사가 잇단 매각 과정을 거치며 M&A 시장을 떠돌게 된 현실은 우울하기만 하다. 일간스포츠 또한 분사 후 무가지와 인터넷 매체 등과의 경쟁에서 뒤처지며 구조조정과 직장 폐쇄라는 진통을 겪었고 소유권이 넘어간 지 오래다. 굿모닝서울, 스포츠한국, 스포츠투데이, 굿데이 등은 이미 정간되거나 폐간3)됐다.

 

이 정도는 아니지만, 종종 전통 있는 종합지의 스포츠 지면 또한 스포츠 저널리즘의 쇠퇴를 보여준다. 거의 매일 어이없는 실수들이 눈에 띈다. 오탈자가 있거나 조사를 잘못 쓰고 주어와 술어도 일치하지 않는 등 기자의 기본 자질이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인터넷 언론으로 넘어가면 논하기조차 민망스러울 정도다. 최근에 4대 종합일간지 중 한 곳은 자사 월간지에 쓴 기사를 전재하면서 ‘**월간지가 ** 선수를 만나봤다’고 지면에 버젓이 내보내기도 했다. 기사를 그대로 다운받아 제대로 교열도 보지 않고 내보낸 것으로 보인다. 스포츠 저널리즘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스포츠 저널리즘에 대한 부정적 인식

 

스포츠는 내러티브 저널리즘에 적합하기 때문에 스포츠 저널리즘은 기사 자체에서 활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글쓰기의 힘이 강력히 작동하는 영역이라는 점은 분명 매력적이다. 그러나 스포츠 기자들은 ‘겁쟁이(coward)’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4) 우아한 문장과 시적인 표현을 사용하던 글쓰기 장인들이 자기 기사에 대한 믿음을 잃었다는 어느 종교학자의 한탄은 지금도 유효하다. 여전히 읽고 싶은 스포츠 기사가 있지만, ‘읽을 수 없는’ 기사도 많다. 화면이 주는 가벼운 잔상과 다르게 스포츠 기사는 묵직한 울림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스포츠 기사가 그렇게 하고 있나. 또 스포츠 저널리즘은 오랫동안 ‘장난감 부서(toy department)’ 논쟁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저널리즘의 규범과 원칙에서 벗어난다는 지적을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더욱이 한국의 스포츠 저널리즘은 ‘십자군 저널리즘(crusader journalism)’, ‘치어리더 저널리즘(cheer leader journalism)’, ‘크롭 더스트 저널리즘(crop dust journalism)’ 등 다양한 문제5)를 갖고 있다. 이는 스포츠 상업화와 유착한 스포츠 저널리즘의 문제인데 가장 치명적인 평가 중 하나는 “스포츠신문은 외설적이고 선정적인 황색 저널리즘”이라는 낙인과 관련 있다.

 

한국의 스포츠 저널리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의 근원에는 스포츠신문이 자리 잡고 있다고 판단한다. 스포츠신문의 황금기는 일간스포츠(1969년), 스포츠서울(1985년), 스포츠조선(1990년 각각 창간) 3사가 각축을 벌이던 1990~2000년대 초로 각기 60~70만 부를 발행하며 전성기를 보냈다. 이때 가판대를 점령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농도 짙은 만화와 주간지성 폭로전’이 펼쳐졌다. 제대로 된 스포츠 저널리즘을 구현하는 대신 왜곡된 경쟁에 내몰린 것이 현 위기의 원인 중 하나다. 그나마 제 역할에 충실한 소수의 스포츠 기자들이 분투하고 있지만 스포츠 저널리즘의 요즘 모습은 위태롭기만 하다. 이에, 몇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스포츠 저널리즘을 위한 네 가지 제언: 

솔루션 저널리즘, 탐사보도, 파수견, 윤리와 개인 브랜드화

 

첫째, 스포츠 저널리즘은 대안을 찾는 솔루션 저널리즘의 모습을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 그동안 ‘라떼식 참견’을 제외하고는 스포츠계에 의제를 제공하며 의견을 수렴하고 나아갈 방향을 제대로 제시한 기억이 드물다. 이번 도쿄올림픽에서 한국 국가대표팀은 88서울올림픽 이후 최악의 성적을 냈다. 그러나 많은 국민은 ‘패자와 4등’에게 따뜻한 위로를 보냈다. 과거와 확실히 다른 모습이다. 그런데 스포츠 전문가와 스포츠 미디어 일각에서는 국제대회 경기력 저하를 우려하며 다시 집중적인 훈련과 선택적 투자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스포츠는 경쟁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이겨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어쩌면 국제무대에서 패배가 계속된다면 많은 사람의 생각이 바뀔 수도 있다. 지금은 잘 안보이지만 ‘선수의 훈련방식(인권) vs. 국제대회 성적’이라는 프레임으로 이 문제는 대두될 것이다. 과거의 구태로 돌아갈 것이냐 아니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한국 스포츠의 모습을 새롭게 만들어갈 것이냐의 문제다. 하나의 예에 불과하지만 솔루션 저널리즘이라는 측면에서 스포츠 기자들의 역할이 있다.

 

둘째, 스포츠 지면에는 탐사보도가 없다. 한국기자협회의 한국기자상 역대 수상작을 살펴보면 스포츠 관련 기사는 매우 드물다. 그마저도 끈질긴 추적 보도보다는 ‘취재원과의 관계나 우연’에 의한 특종이 많다. 스포츠 탐사보도를 통해 사회에 울림을 주는 예는 ‘Real Sports’에서 찾아볼 수 있다. ‘부유한 백인 자녀들이 다니는 고등학교의 흑인 여자농구 선수가 아이를 낳았다’는 팩트는 흥미 위주의 단순 보도에 그치기 딱 좋다. 그러나 한 명의 스포츠 선수와 주변을 집중 취재하면서 인종 문제와 계급 갈등은 물론 팀 내 왕따와 학업 부진, 엄마의 교육열, 고등학생의 성생활 문제 등이 복잡하게 얽힌 사회의 이면을 드러냈다. 스포츠 기자는 우리가 스포츠를 통해 세상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드러난 사실과 이면의 진실에 대한 집중 취재는 적은 인원과 줄어드는 지면으로 불가능하다? 그 많은 스포츠 전문 방송과 차별화된 기사를 찾는 기자에게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다. 철학과 신념의 부재로 인한 아이디어 빈곤이라 말하면 지나칠까.

 

셋째, 스포츠 저널리즘은 언론에게 주어진 ‘파수견(watch dog)’ 역할도 해야 한다. 스포츠 기사는 재미와 흥미를 주면 충분하다는 주장이 있다. 그런데 이런 부분은 그동안 충분히 충족돼 오지 않았던가? 한국의 스포츠 문화는 상명하복과 국가주의, 성폭력, 폭력 등의 문제에 노출돼 왔고, 故 최숙현 선수의 희생 등 많은 아픔이 있었다. 이제 스포츠계는 서서히 인권의 가치와 과정의 의미에 눈뜨기 시작했다. 그러나 스포츠 저널리즘이 이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왔는지는 모르겠다. 문제의 모든 책임을 질 수는 없겠지만,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운 것도 아니다. 외국의 스포츠 저널리즘도 마찬가지인데 ‘** 게이트’라는 기사가 스포츠 지면에 없다는 지적6)을 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넷째, 한국의 스포츠 기자들은 취재와 보도를 위한 윤리 가이드라인을 제정할 필요가 있다. AP는 스포츠 기자에게 윤리적 가이드라인을 지키도록 요구한다. 독일스포츠기자협회는 최근 51쪽에 달하는 자체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는데, “스포츠 기자는 어떤 형태의 국가주의적, 국수주의적, 인종적, 종교적, 정치적 명예훼손이나 차별에 저항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기사를 통해 “도핑과 부패 없는 스포츠 환경을 위해 싸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는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한국의 스포츠 저널리즘은 많은 어려움을 겪어 왔고 지금은 디지털 시대의 무한 경쟁에 놓여있다. 스포츠 기자에 대한 ‘불안하고 의심스러운 시선’도 여전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콘텐츠로 무장한 개인 브랜드화가 중요할 것이다. 또 이를 뒷받침할 미디어의 시스템 개선도 필요하다. 그동안 스포츠 저널리즘은 ‘진지한(serious) 영역’으로부터 떨어져 있었다. 이제는 바뀔 때가 됐고 무엇보다도 바뀔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에서 차지하는 스포츠의 의미와 역할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1) Yoo, S. K., , 《Sport in Korea》, pp.75-88, Routledge, 2017.

2) 김예리, <스포츠서울 기자들, 대주주 집 앞에서 “회사 파탄내고 나몰라라”>, 미디어오늘, 2021.6.24,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4068 

3) 김경호, 《한국의 스포츠신문》, 글누림, 2020.

4) Novak, M. , Columbia Journalism Review, 15(1), pp.33-38, 1976.

5) 유상건, 《스포츠 저널리즘: 코너스툴과 라커룸》, 지금, 2020. 

6) Boyle, R., Rowe D., & Whannel G., , The Routledge companion to news and journalism, pp. 245-255, Routledge,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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