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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국민이 하나되는 축제 올림픽 중계방송은 ‘보편적 시청권’으로 TV를 통해 누구나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며 이러한 상황도 옛말이 됐다. 누구나 차별 없이 방송을 시청할 수 있는 권리인 보편적 시청권이 스포츠 산업화 시대를 맞아 유명무실해진 것이다. 미디어 환경 변화에 따른 국내외 스포츠 중계와 보편적 시청권의 현실을 짚어본다. 편집자 주
2021년 8월 7일 저녁, 많은 시청자들이 텔레비전 앞에 모여들었다. 도쿄올림픽 근대5종 남자부 경기를 보기 위해서다. 한국 근대5종 역사상 처음으로 전웅태 선수가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그동안 미디어의 주목받지 못했던 종목, 아시안게임에서 우승 경력을 가진 선수임에도 잘 알지 못했던 선수, 그럼에도 최선을 다해 온 그의 모습에 시청자는 박수를 보냈다. 근대5종을 알리고 싶다며 1년 전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고민을 내비쳤던 선수가 마침내 메달을 따는 모습은 시청자들의 가슴을 적시기에 충분했다. 무료 보편적 서비스인 지상파방송에서 근대5종 경기를 중계방송하지 않았다면 가능한 일이었을까?
스포츠 산업화로 유명무실해진 보편적 시청권
스포츠와 미디어는 구분지어 생각하기 힘들다. 선수들의 가쁜 숨과 땀방울, 그들의 치열한 삶과 스포츠 정신이 화면을 통해 온전히 전달될 때 스포츠는 보는 이와 하나가 된다. 스포츠만큼 단기간에 주목을 이끌어 내는 이벤트는 없다. 기업들이 그냥 두고 볼 리 없다. 이를 독차지해서 더 많은 수익을 얻기 위해 그들은 거침이 없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만든 제도가 ‘보편적 시청권(Universal Access Right)’이다. 보편적 시청권은 어느 누구나 어떠한 차별 없이 방송을 시청할 수 있는 시청자의 권리를 의미한다. 우리나라는 2007년에 방송법 개정으로 이를 도입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보편적 시청의 범위를 수신 가구 90% 이상으로 정하고 있다. 유무료 플랫폼을 상관하지 않는다.
2020 도쿄올림픽은 지상파 방송사가 중계권을 확보했기에 무료로 볼 수 있었다. 2022년 베이징동계올림픽, 2024년 파리올림픽도 지상파 방송으로 시청할 수 있다. 그러나 2026년 밀라노동계올림픽, 2028년 LA올림픽, 2032년 브리즈번올림픽은 유료방송에 가입하지 않은 사람들이 볼 수 있을지 아직은 미지수다. 이들 올림픽 중계권을 지상파 방송사가 아닌 종합편성채널 JTBC가 차지했기 때문이다. 지상파방송공동협의체 ‘스포츠중계방송발전협의회’가 방송 역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중계권을 확보하지 못했다. 도쿄올림픽이 열린 기간은 단 2주 남짓이다. 올림픽은 많은 사람의 이목을 단기간에 집중시킬 수 있는 확실한 이벤트다. 더 많은 사람들이 스포츠를 차별 없이 문화와 오락으로 즐길 수 있어야 한다. 보편적 시청권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
올림픽 헌장 제2조(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사명과 역할) 10항은 “스포츠와 선수의 정치적 상업적 남용을 반대한다(The IOC's role is to oppose any political or commercial abuse of sport and athletes)”고 규정하고 있다. 어느 선까지가 남용일까? 1980년대 사마란치(Juan Antonio Samaranch) 위원장 시절부터 올림픽은 본격적인 비즈니스로 여겨졌다. 1988년 서울올림픽과 캘거리동계올림픽 중계권 계약을 컨설턴트를 앞세워 체결했다. IOC는 중계권 협상의 주도권을 쥐었고, 배분율까지 그들이 결정했다. 2020 도쿄올림픽 중계권료로 IOC가 벌어들이는 수입은 26억 4,625만 달러(약 2조 9,966억 원)에 달한다. 상업화로 치달으면서 올림픽은 기업들의 먹잇감이 됐다. 거대 글로벌 복합기업들의 눈독과 IOC의 계산이 맞아떨어지면서 올림픽 중계권료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보편적 시청권 제도는 존재하되, 그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신세로 내몰리고 말았다. 스포츠의 산업화가 스포츠는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문화라는 인식을 퇴색시켰다.
영국, 보편적 시청권 제한으로 시청자 불만 쏟아져
영국은 보편적 시청권 정책을 어느 나라보다 먼저 강력하게 도입한 국가다. 영국은 많은 국민이 스포츠 행사를 문화적으로 향유 할 수 있도록 ‘지정 행사 목록(Listed events)’을 공표하고 영국 인구의 95% 이상이 시청할 수 있는 무료 지상파방송에서 중계하도록 하고 있다. 그럼에도 공영방송 BBC는 2020 도쿄올림픽 중계권을 확보하지 못해 일부 경기만을 중계할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무료 지상파 방송으로 올림픽 경기를 마음껏 누리던 영국 시청자들의 불만이 터져 나왔다. 올림픽 생중계를 보기 위해서는 유료 ‘디스커버리(Discovery)’ 채널에 가입해야 했다. 지난 2015년 IOC가 2020 도쿄올림픽, 2024 파리올림픽 중계권을 미국 디스커버리 채널에 약 13억 유로(약 1조 5,000억 원)로 독점 판매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유럽방송연합(EBU, European Broadcasting Union)과 중계권을 체결해오던 방식과 전혀 달랐다. EBU로부터 중계권을 확보해 보편적 시청권을 제공해오던 BBC는 2020 도쿄올림픽부터는 디스커버리 채널로부터 허용받은 몇 경기만을 생중계할 수 있었다. 이 같은 상황은 독일과 프랑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2020 도쿄올림픽으로 펼쳐진 시청자 불편이 5년 뒤 한국 시청자의 상황 아니겠는가? 2026밀라노동계올림픽의 피겨스케이팅, 봅슬레이 경기 생중계 방송은 유료방송에 가입해야만 볼 수 있을지 모른다. 영국 국민이 디스커버리 채널에 유료로 가입해야만 올림픽을 볼 수 있는 상황을 생각이나 했었을까? 스포츠의 산업화, IOC의 상업화는 이처럼 상상을 뛰어넘는다. 중계권으로 확보한 자금을 선수 양성과 스포츠 활성화의 밑거름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하니 무조건 부정할 수만은 없지만, 정도가 지나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OTT 시대의 보편적 시청권 논의 선행돼야
스트리밍으로 올림픽 생중계를 만날 수 있게 되면서 국면이 달라졌다. 실시간 방송이 지상파 방송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시대가 저문 것이다. 스트리밍 서비스 또한 유료와 무료가 병존한다. 도쿄올림픽 중계권을 확보한 지상파 방송사들이 OTT 플랫폼에 재판매했다. 쿠팡플레이가 OTT 독점 중계권을 구입했으나 스스로 포기하면서 계약에까지 이르지는 못했다. 웨이브, 네이버 스포츠, 아프리카TV, U+모바일tv가 중계권을 확보해 도쿄올림픽을 생중계했다. 유료 OTT 서비스 업체들에게 올림픽 이벤트는 가입자를 늘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넷플릭스가 올림픽을 중계하지 않기에 후발 OTT 사업자로서 더욱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추격의 발판이면서 스포츠 광팬을 흡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온라인 중계권을 초반에 단독으로 확보한 쿠팡은 왜 중도에 철회했을까? 쿠팡플레이는 도쿄올림픽에 앞서 코파 아메리카(Copa America)와 올림픽 축구 대표팀 평가전을 생중계했었다. 내년 카타르 월드컵 최종 예선 경기 디지털 생중계도 맡았다. 그 효과를 충분히 알면서도 쿠팡플레이가 단독 중계권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는 이유로 전문가들은 ‘보편적 시청권’을 꼽는다. 물론 이천 물류센터 화재 사건 등으로 돌아서고 있는 여론을 감안했어야 하는 상황도 있었다. 스포츠 중계라는 게 일회성으로 그칠 수 없음도 잘 알 것이다. 이후 다른 스포츠 이벤트 중계권을 확보해서 지속적으로 제공할 때 스포츠 열혈 팬들을 온라인 쇼핑 고객으로 묶어둘 수 있다. 그럼에도 무엇보다 영국 등 유럽국가들에서 벌어진 일반 시청자들의 볼멘소리를 쿠팡플레이는 미리 예상하지 않았겠는가. 가입자 확보도 중요하지만 도쿄올림픽으로 인해 일반 시청자, 고객의 눈 밖에 나지 않는 것이야말로 지속가능한 온라인 사업에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이용자들은 지상파 방송과 무료기반 OTT 플랫폼을 통해서 우상혁 선수가 펼치는 높이뛰기 결선을 생중계로 볼 수 있었다. 양궁도, 펜싱도 국민에게 일체감을 안겨줬다. 문제는 이후다. 방송법이 정의하는 ‘국민적 관심이 매우 큰 체육경기대회와 그 밖의 주요 행사’를 누구나 무료로 시청할 수 있을까. 지상파방송 시청자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반면, OTT와 같은 스트리밍 시청자는 늘어난다. 언제 어디서나 생중계를 시청할 수 있는 미디어 환경이 갖춰졌다. 통신의 보편적 서비스에 힘입어 보편적인 방송 접근성이 크게 향상된 것이다. 보편적 시청권 논의가 OTT로 확장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방송법은 OTT의 보편적 시청권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지 않다. 미디어 환경 변화에 맞춰 방송법 전부 개정논의가 진행되는 형국에서 보편적 시청권 이슈 또한 놓치지 말아야 할 대목이다.
온라인 스트리밍 OTT에서 보듯이 보편적 시청권 논의는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올림픽, 월드컵 등 주요 스포츠 이벤트가 열릴 때마다 보편적 시청권에 관한 논의와 기사가 쏟아졌다. 국민의 알 권리와 사업자의 재산권적인 가치 사이에서 정답이 없는 논의이기에 명쾌한 결론이 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청자 권익 보장 차원에서 논의를 소홀히 할 수 없다. 정보통신 격차, 소득 격차로 인한 스포츠 시청 ‘차별’을 최소화해야 한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현행 방송법의 보편적 시청권에 ‘추가 비용 없이’, ‘무료로’라는 문구를 포함시켜 실효성을 높일 것을 제안하고 있다. 무료 시청 플랫폼은 여전히 지상파방송이다. 내년에 열릴 카타르 월드컵과 2024 파리올림픽까지는 지상파 방송사들이 중계권을 확보했으니 다소 안심일 수 있다. 이미 2032년 하계 올림픽 개최지가 호주 브리즈번으로 결정된 상황이다. 2026년 동계올림픽까지 시간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올림픽 경기를 생중계로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 무료로 볼 수 있는 장치 마련을 서두를 때다.
미디어와 스포츠, 보편적 시청권 균형점 찾아야
올림픽으로 탄생하는 스타들은 선배들의 경기를 통해 꿈을 키운다. 어릴 적 텔레비전에서 만나는 선수들의 역주, 역영, 경쟁을 보면서 스포츠 스타가 되기로 결심한다. 유료 플랫폼에 가입해야만 올림픽을 시청할 수 있다면 미래 스타로 성장할 누군가의 꿈 꿀 기회마저 빼앗는 일일 수 있다. 스포츠 본연의 기능, 올림픽 본연의 정신을 되새겨야 한다. 누구나 상업과 공익의 조화를 말한다. 소외된 사람들, 궁핍한 사람들에게 이익을 가져다주기보다, 탈규제를 앞세워 자본과 기업의 이익을 가져다주기란 상대적으로 쉽다. 반면, 약자의 이익을 생각하는 보편적 시청권 논의는 어렵다. 그래서 더욱 활발한 논의와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왜 올림픽에 열광할까? 올림픽 정신 때문 아니겠는가. 쿠베르탱(Pierre de Coubertin)은 올림픽 정신을 ‘스포츠를 통해서 심신을 향상시키고, 문화와 국적 등 다양한 차이를 극복하며 우정, 연대감, 페어플레이 정신을 가지고 평화롭고 더 나은 세계의 실현에 공헌하는 것’이라 했다. 그래서 올림픽은 그 어떤 스포츠 이벤트보다 먼저 ‘국민 관심 행사’로 분류된다. 영국 오프콤(Ofcom)은 영국 전체 국민의 95%에 도달할 수 있는 커버리지를 확보한 무료 방송사가 중계하는 ‘지정 스포츠 행사(Listed sporting events)’에 올림픽을 명시하고 있으며, 호주도 국민적 관심이 높은 주요 스포츠 경기의 방송중계권을 무료 지상파방송(Free-to-air television)에 우선적으로 부여하는 이른바 ‘안티 사이포닝(Anti-siphoning) 리스트’에 올림픽을 맨 위에 올리고 있다. 독일은 주간방송협약에서 사회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는 행사는 ‘일반적으로 접근 가능한 무료 TV 프로그램으로 방송돼야 한다’고 규정하고, 올림픽을 ‘주요 행사 목록’의 꼭대기에 명시하고 있다. 프랑스도 시청 대가를 요구하지 않으며 전체 가구 85% 이상에서 수신할 수 있는 방송 사업자가 올림픽 중계권을 가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프랑스 커뮤니케이션법 시행령이 규정하는 21개 주요 행사 목록에 하계, 동계 올림픽은 최우선으로 꼽힌다. 이토록 강조되는 올림픽 경기의 보편적 시청권마저 법·제도적 장치에도 불구하고 위태로운 지경에 빠져있다. 올림픽이 이럴진대 FIFA 월드컵과 주요 스포츠 이벤트는 앞으로 어떻겠는가.
스포츠와 미디어의 관계를 짚어볼 때다. 스포츠 산업은 미디어에 힘입어 발전해 왔다. 1984년 LA올림픽이 상업주의 올림픽의 시작으로 꼽힌다. 당시 개최지 경쟁에 나선 곳은 LA뿐이었다. 공익성을 우선해 온 IOC의 원칙은 흑자 올림픽을 앞세운 LA올림픽 조직위원회로부터 외면당했다. 방송 중계권은 입찰에 부쳐져 거액에 낙찰됐고, LA올림픽은 역사상 첫 흑자 올림픽으로 기록됐다. 2006년 토리노동계올림픽은 인터넷방송 중계권의 원년으로 불린다. 텔레비전 시청률은 급감한 반면, 인터넷 시청자는 크게 늘어났다. 2년전 아테네하계올림픽보다 2006년 토리노동계올림픽 인터넷 시청자가 44% 증가했다. 2020 도쿄올림픽은 OTT 방송 중계권의 원년으로 볼 수 있다. 스트리밍 비디오가 보편화된 미디어 환경 변화가 올림픽 중계권 시장의 판도를 바꾼 것이다.
스포츠 이벤트의 보편적 시청권은 본질적으로 딜레마를 안고 있다. 올림픽이라는 이벤트는 IOC의 것이 아니라 출전 선수, 관람객, 미디어 시청자 모두의 것이다. 한편, 이벤트를 위한 수입원이 없다면 스포츠의 미래에 대한 투자가 소홀해지고, 이벤트의 품질은 낮아질 수 있다. 그래서 스포츠 중계권 문제, 보편적 시청권의 문제를 미디어와 스포츠 업계의 권리와 자유 간 균형을 어떻게 맞추는가의 문제로 단순화할 수 있다. 일방의 권리와 자유만을 앞세울 수 없는 문제다. 결국 활발한 사회적 논의를 거쳐 균형점을 찾아야 하는 사안이다. 대한민국은 보편적 시청권 제도를 가진 나라다. 논의를 거쳐 보완하고 발전시켜간다면 스포츠와 미디어를 통해 가슴 따뜻한 경험을 누구에게나 무료로 안겨줄 수 있을 것이다. 모두가 따로인 디지털 세상에서 그나마 그때만이라도 공동체의 힘을 나눌 수 있지 않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