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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16일 한국언론진흥재단과 한국언론학회는 언론자율규제 제도의 활성화 및 실효성 확대 방안 논의를 위해 공동 토론회를 개최했다. ‘신뢰 회복을 위한 슬기로운 언론 자율규제 방안’이라는 제목으로 열렸던 이 날 토론회의 주요 내용을 지면에 옮긴다. 편집자 주

한국 언론이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음은 이미 다양한 실증 데이터를 통해 입증되고 있다. 그동안 한국 언론 보도는 저널리즘 차원에서의 비윤리적인 보도를 넘어 인격권을 침해하거나 기사와 광고를 제대로 구분하지 않는 등, 위법적인 성격의 보도가 늘어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는데 이러한 한국 언론 보도의 품질 문제는 오랜 시간 많은 저널리즘 연구자들과 언론인 스스로부터도 제기돼 왔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여러 방안 중, 최근 사회적 쟁점으로 대두되고 있는 것이 바로 ‘징벌적 손해배상 법률안’의 도입이다. 언론 보도로 인한 인격권 침해에 대해 법원이 판결할 수 있는 손해배상액의 상한선을 높이자는 것인데, 이러한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한 의견은 첨예하게 나뉘고 있으며 여전히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언론자율규제 제도는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합리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언론단체, 언론사, 언론인이 주체가 돼 윤리강령을 제정하고 위반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독립적인 기구나 조직을 설립해 비윤리적 보도에 대응하는 제도인 언론자율규제는, 국가 개입을 최소화하면서도 이를 온전히 언론인 스스로에게만 맡기지 않아 독립성과 실효성을 갖춘 제도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의 언론자율규제 제도는 지금까지 그 기능과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실질적인 대안이 되지 못했는데, 이는 지난 9월 징벌적 손해배상 법률안에 대한 대체 방안으로 ‘종합적이고 통합적인 언론자율규제의 강화’를 제안한 언론인들의 주장 속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이러한 가운데 지난 11월 16일 한국언론진흥재단과 한국언론학회는 언론자율규제 제도의 활성화 및 실효성 확대 방안을 논의하고자 ‘신뢰 회복을 위한 슬기로운 언론 자율규제 방안’이라는 제목으로 토론회를 공동 개최했다. 토론회는 언론자율규제기구의 현황과 쟁점을 검토한 제1 발제와 이에 대한 개선 방안을 제언하는 제2 발제로 나뉘어 진행됐다. 먼저 국내 세 언론자율규제기구인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인터넷신문위원회 그리고 한국광고자율심의기구의 구조 및 심의 활동 전반을 살펴본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 연구소의 표시영 박사는 세 기구의 현황 검토에서 발견된 쟁점 사항들을 짚으며 서두를 열었다. 세 언론자율규제기구는 주로 심의위원 구성, 제재 수준 및 심의 결과에 있어서 주요한 차이를 나타냈다.
“인터넷신문위원회와 한국광고자율심의기구는 개별 심의위원들이 독립적인 심의 결정권을 가지고 운영되고 있으나 한국신문윤리위원회는 윤리위원회가 심의의 최종 결정권을 갖고 있습니다. 또한 인터넷신문위원회와 한국광고자율심의기구의 심의위원들은 현재 다양한 전문가로 구성된 데 반해, 한국신문윤리위원회의 윤리위원 다수는 언론인들로 구성돼, 이에 대한 대응 방안이 요구됩니다.”
그는 언론인이 중심이 된 언론자율규제기구는 독립성, 전문성, 그리도 다양성 논란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제2 발제자인 이승선 충남대학교 언론정보학과 교수 역시 이와 같은 심의위원 선임 절차와 구조 속에서는 심의위원이 전문성을 발휘하기 힘들다며 회의적인 견해를 나타냈다. 이와 더불어 표시영 박사는 최근 문제성 보도가 증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신문윤리위원회를 주축으로 나타나고 있는 심의 건수 감소와 비교적 낮은 수준의 ‘주의’에 심의 제재 결정이 집중된 현상은, 언론자율규제기구의 활동성과 심의 절차 및 결정에 있어 합리성 문제를 제기한다고 봤다. 공동연구자인 김정호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박사는 특히 한국신문윤리위원회의 경우 그보다 높은 단계의 제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제재 결정이 이뤄지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문제 제기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시급한 과제는 실효성 확보 방안
한편 세 언론자율규제기구의 주 재원은 언론진흥기금인데, 이는 세 기구가 스스로 운영 재원을 확보해야 하는 과제와 더불어 공적 지원금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할 책임 문제를 동시에 야기한다. 이승선 교수는 이와 관련해 “엄격한 선정 심사와 성과지표에 의한 평가 등을 바탕으로 언론자율규제기구에 대한 사업지원금 증액”이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즉 언론자율규제기구에는 공적 지원이 들어가고 공적 지원 확대에 대한 필요성이 요구되는 만큼 기금지원에 대한 선정평가와 성과평가를 보다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승선 교수는 성과지표로 활동성, 전문성, 독립성, 투명성, 합리성, 접근성, 신속성, 실효성을 제안했다. 이는 앞서 도출된 언론자율규제기구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대안으로 활용될 수 있으며, 토론회 참석자들은 이러한 성과지표에 상당 부분 동의했다.
이번 토론회에서 가장 열띤 논쟁이 이뤄진 사안은 바로 언론자율규제기구의 ‘실효성 확보 방안’이었다. 토론회 참석자 대부분은 언론자율규제기구의 낮은 실효성 문제야말로 시급히 해결돼야 하는 과제라고 입을 모았다. 실제 언론자율규제기구의 심의규정 위반 현황을 살펴본 표시영 박사는 “‘기사와 광고의 구분’과 ‘광고 목적의 제한’ 등에서 규정 위반 사례가 빈번히 나타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사형 광고의 위반 사례 수는 줄지 않으며, 동일한 언론사가 동일한 심의규정을 위반하는 사례 역시 속출하고 있어 자율규제기구의 심의 결과가 규제 실효성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고 말했다.
세 언론자율규제기구에 속해 있는 토론자들은 실무적 관점에서 지금의 언론자율규제기구에 대한 실효성 문제가 나타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토론자로 나선 안재승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윤리위원은 “가장 낮은 단계인 ‘주의’는 아무런 불이익이 없어 누구도 심의 결과와 제재를 신경 쓰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편도준 한국광고자율심의기구 기획실장 역시 “자율심의의 이행력이 실제로 가시적으로 나타나지 않고 오히려 후퇴하는 모습”을 보인다며 “실효성 제고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언론자율규제 제도는 실효적일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언론자율규제기구의 실효성을 확보하는 방안이 될 수 있을까.
“자율규제기구의 심의 제재 결과가 언론 현장에 전달돼야 함을 제안합니다. (중략) 최소한 자율규제기구가 왜 해당 콘텐츠를 제재했는가 그리고 개선을 위해서는 어떤 점이 반복되지 않아야 하는가와 같은 내용의 공문이 도달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중략) 심의 제재 결정을 언론사별로 자체 홈페이지 등을 통해 공개하도록 하고, 자율규제기구가 최소한 반기 또는 연간 어떤 언론사가 어떤 규정을 반복적으로 위반했는가에 대해서 공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발제자인 이승선 교수는 무엇보다 심의제재 결정들이 현장 언론인들에게 ‘제대로’ 전달될 필요가 있으며, 관련 결정 및 통계들이 언론자율규제기구와 언론사를 통해 ‘투명하게’ 공개될 필요가 있다고 봤다. 나아가 급증하고 있는 기사형 광고에 대해서는 보다 단호한 어조로 “법정 제재를 능가하는 강력하고 적극적인 자율규제”가 필요함을 분명히 했다.
토론자들이 제안한 언론자율규제기구의 실효성 제고 방안은 대체로 당근과 채찍 전략으로 수렴됐다. 윤리강령을 충실히 따르는 언론사에는 인센티브(incentive)를, 그렇지 않은 언론사에는 그에 상응하는 패널티(penalty)를 부여함으로써 내·외부 자율규제의 효과를 높이자는 것이다. 인센티브 제도로는 공익광고 배정과 언론진흥기금지원사업 참여 등에 대한 우선권 부여 그리고 미디어 바우처 등의 안들이 제시됐다. 패널티로는 외적 규제의 보완과 포털과의 연계 등이 제안된 바 있는데 이러한 대응 방안은 주로 기사형 광고에 초점이 맞춰졌다.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조차 지키지 않은, 수많은 유형의 기사형 광고를 접하고 있다는 편도준 기획실장은 이렇게 말했다.
“기사형 광고는 그야말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그는 광고가 아예 금지된 품목들도 기사형 광고에는 나오고 있다며, 기사형 광고에 대한 과태료 조항의 원상복구를 주장했다. 이는 “기사형 광고에 대해서 과태료를 부과하는 신문법 조항을 되살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 김민정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의 주장과도 일치한다. 또 다른 대안으로 김민정 교수는 포털 뉴스제휴평가위원회와의 협업을 제안하며 최근 기사형 광고를 게재해온 연합뉴스가 기사 노출 중단에 이어 주요 포털 사이트에서 퇴출당한 사례를 들었다. 안재승 윤리위원 역시 “포털과의 연계를 통한 제재는 (윤리강령을 따르지 않는 언론사에게) 실질적인 불이익을 줄 수 있는 효과적인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언론사와 언론인의 의지가 바탕이 돼야
한편 외적 강화보다 “언론사들의 자기 규제가 논의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고 본 황용석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이럴 때일수록 언론사 스스로 자기 규제 원칙을 점검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며 그 예로 정정 보도를 상시화해 매년 가장 훌륭한 정정 보도를 선정하고, 보도 내 오류가 있으면 이를 즉각적으로 수정하는 시스템을 갖춘 뉴욕타임스를 들었다. 그는 우리 언론 역시 이러한 체계를 갖춘다면 “언론중재위원회로 가야 할 많은 일이 이 단계에서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임선빈 인터넷신문위원회 기사심의실장도 “포털과의 연계에 앞서 먼저 언론단체가 스스로 자율적으로 강구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즉 공신력 있는 평가가 투명하게 공개돼 매체에 대한 평판이 이뤄진다면 자연스럽게 포털과의 연계는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그는 언론사의 ‘자율 의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언론사들이 단지 “언론자율규제기구에 가입했다는 사실만으로 사회적 책임을 다했다고 느끼지 말고, 더 큰 책임감과 부담감을 가져야 한다”며, 자율적으로 언론 윤리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 강화를 제안하기도 했다.
언론의 자율 의지 확보는 이상적인 대안이지만 쉽지 않을뿐더러 짧은 시간 안에 갖춰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김정호 박사는 임선빈 기사심의실장이 주장한 자율 의지가 궁극적이고 선제적인 해결책이라는 데 깊이 공감하지만, 이는 장기적인 안이므로 “단기적으로는 언론의 위법적인 보도나 저널리즘 윤리를 위반하는 보도들에 대해 실질적인 피해를 주는 규제가 필요하다”고 말하며, 토론회를 마무리했다.
현재 한국 언론 보도 행태에 대한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각계각층에서 작금의 사태를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 토론회 참가자들은 언론 개혁에 대한 요구와 언론계 자성(自省)의 목소리가 맞물린 지금이야말로 언론계의 신뢰 회복에 있어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봤다. 자율규제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실질적인 불이익을 줄 수 있는 제재 조치가 필요하지만, 이는 언론사와 언론인의 의지가 바탕이 돼야 궁극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는바, 언론계의 자성을 통한 실효적인 언론자율규제 제도가 실현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