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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제작기] 국민일보 <빈자의 식탁>
취재기제작기 | 등록일 : 2022-01-28

격차와 양극화가 심화하는 우리 현실에서 밥상도 예외는 아니다. 화려한 성찬이 소셜미디어를 장식하고 있지만 매일 라면, 혹은 밥과 한 가지 찬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이들도 있다. 저소득층의 부실한 식사를 통해 취재진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인지 들어본다. 편집자 주 

 

 

<빈자의 식탁> 인터랙티브 페이지 Ⓒ국민일보

 

 

지난 여름 새로운 기획을 준비하면서 취재팀 방극렬, 권민지 기자가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을 찾아갔다. 그가 들려준 여러 이야기 가운데 “옛날처럼 완전히 굶는 사람은 많지 않은데, 밥이나 김치만 두고 먹는 이들은 여전히 많다”는 말이 취재팀 귀에 들어왔다. 코로나19로 격리된 장병에게 부실 급식을 제공해 논란이 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다.

 

곧바로 저소득층 식사 문제를 연구해온 전문가들과 접촉했다. 그들은 “우리나라 취약계층이 기본적으로 식품비에 쓰는 돈이 없다시피 하다 보니 영양 수준과 섭취량이 떨어진다. 유병률이 높아져 아픈 사람이 많아지고, 저소득층 의료비를 지원하는 국가 입장에서도 이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뻔해 보이는 이야기였지만 언론이 그 실상을 보여준 적은 없는 것 같았다. 노동자의 식사를 다룬 기사가 있었지만 밥보다 노동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특히 지난해는 선진국 담론이 펼쳐지고 있는 시기였다. 일부 정치인은 한국이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며 자화자찬하고 있었다. 한국이 선진국을 추월하는 시대가 됐다는 평가도 나왔다. 선진국으로 업그레이드된 만큼 저소득층의 삶도 한 단계 더 나아졌을까. 선진국 한국의 저소득층은 무엇을 먹고 있을까에 생각이 이르렀다.

 

있는 그대로의 보도에 초점

 

기획 방향은 괜찮았지만 취재가 문제였다. 밥을 제대로 못 먹는 저소득층의 범위를 어디까지 잡을 것인지 고심했다. 식사가 부실한 사람들을 어떻게 만날 것인지, 만난다고 해도 인터뷰에 응해줄지 의문이었다. 무엇보다 그들이 삶의 가장 내밀한 영역 중 하나인 식사를 공개할지 의심스러웠다.

 

취재팀 기자들은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듯 당사자들을 찾아다녔다. 여러 저소득층 지원단체와 구호단체, 사회복지관에 연락해 식사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을 소개해달라고 부탁했다. 독거 중장년이 모여 있는 서울 관악구 대학동도 찾아갔다. 저소득층에게 식자재를 무상으로 주는 푸드마켓 앞에서 무작정 인터뷰를 한 적도 있다.

 

당사자들을 만나면서 몇 가지 원칙을 세워나갔다. 먼저 쪽방촌 등에 거주하는 극빈층은 다루지 않기로 했다. 식사가 매우 형편없을 것으로 예상이 됐지만 독자가 공감할 수 있는 스토리를 끌어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저소득층의 식사를 소개해야 ‘가까운 곳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두 번째로 다양한 연령대의 식사 이야기를 다루기로 했다. 보통 ‘식사 빈곤’ 하면 노년층을 떠올리기 쉬운데, 가난한 중장년층과 청년의 상황도 심각했다. 다만 어린이와 청소년의 식사 문제는 취재 대상에서 제외했다. 결식아동 문제는 지원 제도가 어느 정도 마련돼 있고, 어른의 식사와는 별개 차원으로 접근해야 하는 문제라고 판단했다.

 

취재팀은 저소득층 식사를 있는 그대로 보도하자는 데 뜻을 모았다. 어떤 평가를 받더라도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이를 위해서는 식사 사진이 필수였다. 구구절절한 글보다 식사 사진이 현실을 더 잘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격리 장병의 부실 급식 문제에서도 공분을 일으킨 건 식판 사진이었다.

 

과거 미국 뉴욕의 한 언론이 지하철 전동차와 승강장 사이 틈에 관해 쓴 기사가 생각났다. 그 매체는 독자들에게 자신이 이용하는 지하철역 승강장의 틈을 찍어 보내 달라고 요청했다. 카메라 기능이 있는 휴대전화가 보급된 시기였다. 독자들은 수십 개 역에서 찍은 사진을 해당 매체에 보냈다. 틈에 끼인 발 모습으로 사고 위험을 경고한 사진도 있었다. 사진을 모은 기사는 승강장 틈을 좁히는 공사가 필요하다는 메시지가 됐다.

 

우리 기획도 취재원이 참여하는 방식을 도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요즘엔 대부분이 스마트폰을 갖고 있으므로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저소득층 당사자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난 뒤 식사 사진을 찍어달라고 요청했다. 한 끼, 하루 정도는 누구나 부실하게 먹을 수 있으므로 최소 일주일 치 식사를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식사는 사진보다 더 부실할 수 있다

 

취재팀 기자들은 약 5주 동안 저소득층 25명을 만났다.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14명, 조건부 수급자가 2명, 차상위계층이 2명이었다. 나머지는 이에 해당하지 않지만 식사가 부실한 사람들이었다. 주로 수도권에서 취재했고, 지방에 거주하는 사람들과는 전화 통화를 했다. 무료급식을 하는 지원 기관과 사회복지관도 찾아갔다.

 

인터뷰를 진행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사진이 모이기 시작했다. 여러 당사자가 성실하게 사진을 보내줬다. 25명 가운데 13명에게서 사진 129장을 받았다. 사진 속 식사는 부실해 보이는 것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었다. 이 정도면 괜찮은 것 아닌가 하는 사진도 있었다. 하지만 사진이 쌓여갈수록 생각이 바뀌었다. 부실하게 먹다가도 한두 끼는 잘 먹을 수 있는데 그들의 식사는 계속 부실했다. 일부 괜찮아 보이는 음식은 다음 날, 그다음 날도 반복됐다. 7일간 14끼 가운데 9끼를 라면으로 먹은 30대 남성의 식사 사진은 충격이었다. 사진을 다 보낸 뒤 그가 사리면을 활용해 식비를 아꼈다는 말을 전해왔을 때는 ‘헐’ 소리가 절로 나왔다.

 

시리즈 1회에 소개된 오민정(가명) 씨는 매일 사진을 보내오다 5일 차 밤 11시 53분에 양민철 기자에게 긴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다음 날부터 사진을 보내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

 

“사실 제 몸 하나 간수하고 투병 생활하는 것도 힘든데 제가 뭐라고 상차림에 사진까지…. 저 그냥 바닥이나 책상에 막놓고 먹어요. (…) 그래도 상 놓고 차려 먹으니까 나름 괜찮았어요. 이제 상 놓고 먹으려고요.”

 

오 씨는 그동안 사진을 위해 일부러 상을 차렸던 것이다. 다른 당사자들도 남들 보기에 부끄럽지 않게 괜찮은 식사 사진을 보내려 애썼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실제 식사는 기사에 소개된 것보다 질이 더 낮았으리라.

 

 

취재원 오민정(가명) 씨는 사진을 찍기 위해 일부러 상을 차렸다. Ⓒ국민일보

 

 

사진을 다 받은 뒤 처음 계획대로 전문가에게 맡겨 영양소 분석을 했다. 비교적 꾸준히 사진을 보내온 6명의 일주일 치 식사 사진 85장을 윤지현 서울대 식품영양학과 교수에게 보내 분석을 부탁했다. 윤 교수는 한국영양학회에서 개발한 유료 프로그램 캔프로(Can Pro)에 식사 데이터를 입력했다. 나중에 윤 교수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니 자신이 직접 데이터를 입력했으며 그 과정만 6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윤 교수는 분석 결과를 취재팀에 전해주면서 “깜짝 놀랐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보통 취약계층 식사와 관련해선 다양성을 강조해왔는데 양이 부족하다는 데 놀랐고, 1960, 70년대처럼 탄수화물 위주의 식사를 하는 분이 많다는 데 또 놀랐다고 했다.

 

취재 과정에서 가슴 찡한 순간도 많았다. 양민철 기자는 점심시간에 식사 장면 촬영을 위해 찾아간 50대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 남성에게서 샌드위치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받았다. 이 남성은 샌드위치가 그날 구매한 신선한 제품이라는 것을 알리려는 듯 영수증을 함께 기자에게 건넸다. 양 기자는 그 영수증을 버리지 못하고 시리즈가 끝난 이후에도 책상 위에 뒀다.

 

 

사진을 모두 받은 뒤 전문가에게 맡겨 영양소 분석을 했다. 대체로 양이 부족했고, 탄수화물 위주였다. Ⓒ국민일보

 

 

명확한 메시지를 위한 인터랙티브 제작

 

기획 단계에서부터 디지털 스토리텔링을 함께 염두에 두고 있었다. 다만 디지털 스토리텔링을 해본 경험이 없었다. 해볼까 말까, 고민이 계속되는 가운데 당사자들이 보내준 식사 사진이 쌓이고 있었다. 식사 빈곤 현실이 적나라하게 담긴 사진을 그냥 버릴 수는 없었다. 사진이 한꺼번에 여러 장 소개돼야 메시지를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다른 업무를 해온 사내 개발자, 웹 디자이너가 이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두 사람과 협업해 인터랙티브 페이지 제작을 시작했다.

 

작업을 하면서 추가 업무를 해야 했다. 기획물에 따라 다르겠지만 우리 기획은 질 좋은 사진을 많이 필요로 했다. 취재를 한 차례 마친 뒤에도 인터랙티브 페이지에 쓸 사진을 위해 당사자를 다시 만나거나 기관을 섭외했다. 지면·온라인에 쓰기 위해 만들어둔 그래프는 다시 활용하기 어려워 디자이너가 새로 제작했다.

 

기사는 처음부터 인터랙티브용과 온라인용을 별도로 준비했다. 온라인용 기사를 먼저 작성한 뒤 더 짧은 호흡으로 읽을 수 있도록 고치고 전체적인 분량도 줄였다. 취재팀과 개발자, 디자이너 사이에 기획자가 필요하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기자들은 취재와 기사 작성뿐 아니라 인터랙티브 페이지 디자인 구상을 함께했다. 사진과 그래프를 어디에 어떤 순서로 배치할 것인지, 삽화는 어떤 내용으로 그릴 것인지를 정하고 제작 인력에 이를 주문했다. 처음부터 이런 일을 맡은 기획자가 있었다면 작업이 훨씬 수월했을 것이다.

 

매일 같은 밥을 먹는 사람들

 

기사 작성을 앞두고 가장 고민한 것은 시리즈 1회의 주제였다. 처음에는 부실한 식사를 부각하려 했으나 팀 내 논의 끝에 ‘매일 같은 밥을 먹는 사람들’을 내세우기로 했다. 우리가 발견한 것은 단지 낮은 식사의 질이 아니었다. 굶지는 않지만, 선택권이 매우 제한된 상황에서 식생활을 이어나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게 새로운 발견이었다.

 

시리즈가 끝까지 힘을 받을 수 있었던 건 전문가 제안 위주로 기사를 마치지 않아서였다고 생각한다. 취재팀은 마지막 회에서 서울시복지재단이 2019년 진행한 실험을 소개했다. 어르신 무료 급식 예산을 끼니당 1,000원 올리고 6개월 동안 맞춤형 식사를 제공했더니 정신적, 신체적 건강 모두 좋아졌다는 내용이었다.

 

<빈자의 식탁> 시리즈는 기대했던 것보다 좋은 반응을 얻었다. 특히 디지털 스토리텔링 콘텐츠가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많은 사람에게 읽혔다. 여러 인플루언서의 평가와 공유가 전파에 도움이 됐다. ‘가난한 사람들은 뭘 먹고 사는지에 대한 탐사보도. 아프지만, 그럴수록 꼭 읽어봐야 할 기사’, ‘문제는 식사 자체보다 메뉴를 선택할 수 없는 사람들의 삶이다. 생각할 거리를 주는 공들인 기사다. 일독을 권한다’ 등의 평가가 기억에 남는다.

 

시리즈 1, 2회 보도 직후 기사에 나온 저소득층을 돕고 싶다는 연락이 잇따랐다. 한 대학생은 대부분 식사를 라면으로 먹은 최모 씨에게 음식을 전달하고 싶다고 했다. 최 씨에게 기부 의사를 전달했으나 정중한 거절의 답변이 돌아왔다. 이 대학생은 그러자 서울 대학동 옛 고시촌에 거주하는 장모 씨에게 기부하고 싶다고 했다.

 

취재팀은 장 씨가 주로 다니는 천주교 지원단체를 이 대학생에게 소개해줬다. 추석 연휴 직전, 취재팀도 모르는 사이 이 대학생이 지원단체와 장 씨에게 음식을 기부한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대학생은 인스타그램에서 모금 활동을 벌여 하루 만에 57만 원을 모아 음식을 샀다. 주부라고 밝힌 한 여성 독자는 시리즈 1회에서 소개된 40대 여성에게 과일을 보내고 싶다고 했다. 이 독자는 기관을 통한 지원 대신 직접 지원을 원했고, 얼마 뒤 오 씨 집으로 사과와 배, 오렌지가 담긴 상자가 두 개 도착했다.

 

기사에 달린 댓글에는 ‘나도 저렇게 먹는다’, ‘왜 이 사람들을 안타깝게 여기고 지원해야 하느냐’는 의견도 있었다. 최근 3만 원이 넘는 햄버거를 먹기 위해 줄 선 사람들 모습을 보도한 기사에 달린 거친 댓글들이 다시 생각났다. 격차가 더 커지는 세상, <빈자의 식탁> 시리즈는 다른 한쪽의 현실을 보여주는 균형추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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