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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비평은 언론의 산업화와 더불어 시작됐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언론 환경이 변화하며 미디어 비평 또한 진화가 이뤄져야 한다. 영국, 프랑스 등 해외의 미디어 비평 사례가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지 확인해본다. 편집자 주
어느 나라에서나 어느 시대든 언론 보도의 정확성이나 객관성을 둘러싼 보도 내용의 규범적 비판은 항상 독자나 언론인의 관심사였다. 그것은 20세기 중후반에 제도적으로 확립된 저널리즘 산업의 등장과 더불어 ‘미디어 비평’이라는 이름으로 대중에 의해 진행됐다. 그리고 이는 미디어 산업의 디지털 전환, 가짜뉴스와 팩트 체킹의 시대를 지나면서, 개념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근본적인 전환을 거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 시대의 미디어 비평이란 어떤 차원에서 의미가 있는 용어일까? 해외 여러 사례는 바로 이 질문을 근본적으로 새롭게 던질 것을 요구한다.
사실 미디어 비평의 기본적인 의미를 확립한 역사적 배경은 1960~70년대 영미권에서의 저널리즘 비평 활동일 것이다. 당시 전 세계적으로 확산한 객관주의 저널리즘의 규범을 바탕으로 언론 활동의 정확성과 객관성, 윤리적 기준의 충족 등을 둘러싼 비판 활동이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이는 당연히 같은 시기 언론학(커뮤니케이션 연구)의 성장과 함께 이뤄진 것이다. 그리고 언론의 규범적 기준과 가치를 대중적으로 확산시킨 몇몇 ‘영웅적인’ 저널리즘 실천들이 이러한 비평 활동의 정당성을 한층 강화했다. 그 과정에서 미디어 비평의 영역 자체도 확장되기 마련이다. 과거 ‘언론 보도’의 규범적 이해라는 좁은 틀에서 이뤄진 비평의 영역이 점차 언론 제도 그 자체를 둘러싼 쟁점들로 확산했다.
영국의 경우, 1981년 출간된 《무책임한 권력(Power without Responsibility)》은 영국 미디어 비평의 중요한 단계라고 하겠다. 당시 소장 학자였던 제임스 커런(James Curran, 런던대 교수)과 진 시턴(Jean Seaton, 웨스트민스터대 교수)이 공동 편집한 이 책은 영국의 신문과 방송의 역사를 미디어 비평의 관점에서 조명한 최초의 저술이다.1) 이 제목은 20세기 초 전간기(戰間期)에 세 차례나 총리를 역임한 보수주의자 스탠리 볼드윈(Stanley Baldwin)의 유명한 발언에서 유래한다. 《무책임한 권력》은 한편으로는 당대 영국 언론 제도의 형성 과정에 대한 대단히 성찰적인 역사이자, 학계가 주도한 학술적 미디어 비평의 기념비적인 저술이었다. 동시에 그것의 탄생은 1970년대부터 본격화된 영국 시민사회의 미디어 비평 활동, 특히 교사를 중심으로 학교 차원에서 자발적으로 형성된 영국식 미디어 교육이라는 현장의 요구가 만들어낸 중요한 성과물이었다.2) 그렇기에 이 책을 기점으로 영국 시민사회의 미디어 비평은 더 이상 언론 보도 그 자체에 대한 비평 활동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프랑스 언론이 신뢰받지 못하는 이유
영국과 미국, 그리고 프랑스의 사례를 검토해 보면 21세기 초엽까지의 미디어 비평 활동은 이를 통해 ‘저널리즘의 퀄리티’를 높일 수 있다는 낙관적인 공감대에서 출발했다. 또한 그것은 시민사회 주도의 활동이건 아니면 언론계 내부적인 활동이건 보다 확장된 주제 영역을 다뤄야 한다는 공통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한국언론재단, 2004). 첫째, 1980~90년대의 ‘탈규제’와 상업적 경쟁의 국면에서, 미디어 산업이 지나치게 이용자와 수익성을 추구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광고주의 영향은 물론, 미디어 산업 자체의 거대 자본으로서의 속성에 대한 관심이라 하겠다. 그리고 이는 단순한 저널리즘 비평을 넘어서, 오늘날까지도 미디어 비평이 우선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인 출발점으로 간주된다. 둘째, 보도 그 자체에 대한 비평과 더불어 이를 작성하는 언론인에게 더욱 초점을 맞춘 비평 활동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각국 언론인의 특성과 교육 시스템, 노동 환경, 취재원과의 관계, 특히 정치권이나 대기업과 언론인의 일상적이자 종종 일탈적인 관계, 그리고 조직 순응주의와 같은 취재 관행에 관련된 요소들이 본격적인 비평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셋째, 저널리즘 보도 내용에 대한 비평 역시 과거의 객관성 혹은 중립성이라는 기준만이 아니라 다원주의(다양성)의 구현, 심층적 보도와 분석의 가능성, 정치·사회적 스캔들 보도 방식의 타당성, 그리고 언론이 ‘보도한 것’과 ‘보도하지 않은 것’에 대한 판단 기준과 같은 보다 복잡한 가치 규범들을 포괄해야 한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이러한 관심은 미디어가 전체 사회·정치적 과정의 가장 핵심적인 행위자로 부상하는 이른바 ‘미디어의 권력화’에 대한 총체적인 비판으로 수렴될 수 있는 것이다. 적어도 디지털로의 본격적인 이행이 이뤄지고, 또 가짜뉴스와 팩트체킹이라는 용어가 일반화되기 이전까지 미디어 비평은 이러한 맥락 속에서 활성화될 수 있었다.
이러한 미디어 비평의 역사적 전통을 과연 언론인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이는 사실 오늘날까지도 미디어 비평 활동이 언론 현장 속으로 확장되는 과정에서 제기된 가장 중요한 질문일 것이다. 프랑스의 경우는 시민사회가 주도한 미디어 비평 활동의 전통이 현장 언론인들과 심각한 충돌을 일으킨 사례에 해당한다. 1995년 겨울 ‘대파업’의 와중에 주류 언론의 보도에 몹시 비판적이었던 시민사회 활동가들이 언론 감시를 목적으로 이듬해 봄 설립한 ‘아크리메드(Acrimed, Action-Critique-Mdias)’는 당대의 가장 선구적인 미디어 비평 기관이었다. 또 1996년 공영방송 채널인 프랑스5(France 5)에서 처음 방송된 <화면 정지(Arrt sur Images)>와 그 진행자였던 다니엘 슈네이더만(Daniel Schneidermann)은 프랑스 언론계에 처음으로 방송 매체 간 상호 비평을 도입했다. 전자는 시민사회 단체로서 ‘권력화된 미디어’에 대한 비판을 목적으로 한 전방위적인 비평 활동을 전개했던 반면, 후자는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특정 정치적 이슈에 대한 사실 검증에서 언론사별 이슈 프레임 분석에 이르는 내용 분석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이들의 비평 활동은 오랫동안 프랑스의 현직 언론인들의 적대적인 반응을 낳은 것이 사실이다. 이는 비록 오래전부터 영미권보다 훨씬 매체 간 상호 비평이 활발한 편이었던 프랑스에서도, 일부를 제외한다면 자신들이 ‘권력화된 집단’이라는 비판을 받아들이기는 어려웠음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언론 현장에서는 이와 같은 시민사회 기반의 미디어 비평의 여러 주제에 대해 오랫동안 별달리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오히려 미디어 비평 활동이 시민사회의 영역이며, 시민들이 언론에 대한 전문가가 아닌 만큼 자신들의 활동에 대한 무지, 편견, 나아가 음모론적 입장이 들어 있을 것이라는 암묵적 전제가 언론인들에게도 확산됐다. 미디어 비평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이 새롭게 폭발했던 2018년 노란조끼 운동(le mouvement des Gilets jaunes)의 시기에 시민사회와 언론인들 간의 극단적인 상호불신의 양상이 펼쳐진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언론인들은 공공연히 ‘미디어 비평이란 미디어에 대한 혐오’라고 발언했고, 그것은 다시 예컨대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의 <디지털 뉴스 리포트> 보고서에서 프랑스 언론이 한국 언론과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불신받는 언론’으로 지목된 이유기도 하다.
팩트체킹
미디어 비평의 진화된 형태?
이 과정에서 과거 미디어 비평의 전통이 ‘팩트체킹’이라는 새로운 언론계의 관행으로 계승되는 것도 최근 영미권이나 프랑스 언론계에서 나타나는 특징적인 현상이다. 특히 프랑스 경우에는 팩트체킹이 어쩌면 언론계 내외부의 미디어 비평 활동에 대한 일종의 ‘대항마’의 성격도 가지면서, 언론사들의 주도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공영방송 프로그램 <화면 정지>는 2007년에 (주로 방송사 내부 구성원들의 압력에 의해) 사실상 폐지가 결정되자, 진행자슈네이더만을 중심으로 즉각 온라인 사이트로 전환해 활동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이 사이트3)는 현재까지 월 4유로(약 5,400원)의 구독료로 운영되는 민간 독립 미디어 비평 사이트이자 중요한 팩트체킹 사이트로 여전히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와 더불어 언론사 스스로가 비록 적극적인 매체 간 상호 비평은 아니지만, 팩트체킹이라는 이름으로 자사는 물론 타 언론사의 보도를 점검하는 소극적인 비평이 확산했다. 2008년 일간지 리베라시옹의 웹사이트(liberation.fr)에 신설된 <정보 해독(D sintox)>4)이라는 섹션이 그 시초다. 이 섹션은 원래 프랑스의 여러 언론사(신문, 라디오, TV)가 보도한 뉴스 가운데 사실관계의 오류가 있는 것들을 지적하는 코너였다. 코너의 제안자인 리베라시옹의 교통 전문 기자 세드릭 마티오(C dric Mathiot)는 프랑스의 대중교통 파업이 있을 때마다 온라인상에서 ‘미니멈 서비스(파업 기간에도 운행되는 최소한의 대중교통 편수)’의 범위를 둘러싸고 “너무 엉터리 같은 정보들이 많이 유통되는 것을 보면서” 이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한다(Bigot, 2018, p. 68). 아무튼 이 과정에서 마티오 기자는 리베라시옹의 웹사이트에 독자적인 블로그 공간을 승인받았고, 이를 <정보 해독>, 나아가 <정치적 발언 속의 거짓말과 언어에 대한 감시자(Observatoire des mensonges et des motsdu discours politique)>라는 프로젝트로 확장시켰다. 이 블로그에 게재된 글은 이후 리베라시옹의 지면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이 블로그는 2012년 9월부터 공영방송 아르테(ARTE) 채널에서 매일 저녁 8시에 방송되는 메인 뉴스 <28분(28 minutes)>의 한 코너로 편성, 방송되기 시작했다.
일간지 르몽드는 그보다 조금 늦은 2009년부터 <레 데코되르(Les Dcodeurs)>라는 명칭의 팩트체킹 섹션을 운영했다. 이 섹션은 2014년 3월 10일부터 방송·동영상 섹션으로 변경돼 오늘에 이른다. 공영방송 프랑스텔레비지옹(FranceTlvisions)의 뉴스 포털인 <프랑스인포(Franceinfo)>는 2012년 1월 7일부터 매주, 그리고 2012년 8월부터는 매일(월~금) 아침 8시 21분부터 팩트체크 프로그램인 <거짓으로부터 진실을(Le Vrai du Faux)>을 편성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자사 뉴스에 보도된 모든 정치적 발언, 경제계나 노조 등의 주장을 보다 세밀하게 분석해 그것의 맥락을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Chambat-Houillon, 2018). 2017년 대선 당시 프랑스의 47개 기관(언론사 33개 및 대학, 비영리단체, IT 기업 등)이 구글 미디어랩의 후원으로 <크로스체크>라는 플랫폼을 통해 과장 보도, 허위 증언(인터뷰)의 사례, 그리고 이미지 사용의 속임수 혹은 왜곡 등을 주요한 대상으로 다룬 팩트체킹 활동을 진행한 것은 널리 알려진 편에 속한다.
이 과정에서 팩트체킹은 과거 언론이 기본적으로 수행하던 ‘퀄리티 컨트롤’의 일종이라는 인식에서, 점차 언론인이 대중과 함께 관심을 기울이는 공적(주로 정치적) 정보에 대한 일종의 ‘사후적(a posteriori) 차원에서의 통제’라는 의미로 확장되고 있다(Bigot, 2018, p. 63). 여기서는 비록 프랑스의 사례를 주로 살펴봤지만, 이는 궁극적으로 현재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팩트체킹 활동이 공통으로 전제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단지 정치인이나 공적 인물의 각종 발언, 프로그램의 제작 과정에서 사용된 여러 정보(인터뷰, 영상 등)의 출처의 신뢰성을 확인하는 작업과 같은 실무적 차원에 국한되는 문제라고 결코 볼 수 없다.
미디어 비평의 중요성
그런 면에서 ‘팩트체킹의 재발명’이라는 주장은 이처럼 과거의 미디어 비평 활동의 전통 속에서 언론인들이 자신들의 활동을 성찰하는 중요한 계기라는 의미를 여전히 강하게 가진다.
현실적으로 팩트체킹의 활성화가 미디어 비평을 전적으로 대체하기는 어렵다. 현재의 팩트체킹 활동은 현실적으로 시민사회가 오랫동안 미디어 비평이라는 이름으로 확장한 미디어에 대한 보다 비판적인 이해 방식 가운데 극히 일부 요소만을 주요 의제로 삼고 있다. 그렇기에 대중과 시민사회의 요구에 대해 언론인은 여전히 더욱더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것은 저널리즘 자체가 처해 있는 여러 가지 위기 상황 속에서, 또한 언론계 내부에서의 미디어 비평의 입지가 갈수록 좁아지는 상황에서 한층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언론을 총체적으로 불신하는 경향을 보여주는 대중의 목소리, 근본적으로 ‘미디어의 권력화’를 총체적으로 비판하는 목소리에 대해 자신들의 뉴스 생산 과정의 전반적인 흐름과 그 생산물을 새롭게 되짚어보는 성찰은 여전히 언론인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작업이다.
1) 이 책의 가장 최근 판은 2009년에 간행된 7판이다.
2) 제임스 커런의 발언. 2018년 6월 28일, 필자와의 인터뷰
3) https://www.arretsurimages.net/
4) 이 섹션 이름은 2017년부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