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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국내 언론의 보도 양상도 달라졌다. 3월 18일부터 외교부로부터 ‘예외적 여권 사용’ 허가를 받아 우크라이나 현지 취재가 가능해졌고, 보도 분야도 경제·정치 등으로 다양해지고 있다. 우리 언론의 전쟁 보도 현황과 문제점을 짚어본다. 편집자 주
지난 3월 1일 뉴스에선 우크라이나 수도 이름이 키예프에서 키이우(Kiev)로 불려졌다. 이날 KBS를 시작으로 언론사 대부분이 러시아식 발음으로 우크라이나 지명을 표기해 온 것을 현지 발음대로 고쳐 쓰기 시작한 것이다. KBS는 <뉴스 9>를 통해 “우크라이나 지명을 러시아어가 아닌 우크라이나어를 기준으로 전해드린다는 점 말씀드린다”며 “외래어는 그 나라 발음에 최대한 가깝게 표기한다는 국립국어원과 KBS 한국어연구부의 자문을 거쳤다”고 전했다. 이후 종합일간지 9개 사(경향신문, 국민일보, 동아일보, 서울신문, 세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지상파 2개 사, 보도 전문 채널 2개 사, 종합편성채널 4개 사 등은 우크라이나 지명을 현지 발음으로 표기한다고 알려왔다.
언론이 보여준 이 같은 움직임은 외교부나 국립국어원의 공식 결정보다 한발 앞선 변화였다. 언론사 대부분 “침략국인 러시아어 발음으로 쓰이고 있는 자국의 지명을 우크라이나식 발음으로 표기해달라”는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관의 요청 이후 변화가 이뤄졌지만, 이전부터 우크라이나 지명 표기 방식에 대한 기자들의 문제 제기가 있었다. 지난 2월 25일 서동철 서울신문 논설위원은 <씨줄날줄>에서 “우크라이나는 1995년부터 땅 이름의 영어식 표기를 우크라이나 발음에 따르도록 하고 있다”며 “유엔과 유럽연합을 비롯한 주요 국제기구도 이렇게 쓰고 있다. 우리도 ‘키이브’로 우크라이나의 문화적 독립 노력에 힘을 보태면 어떨까”라고 했다. 지성림 연합뉴스TV 북한 전문기자는 다음날 <한반도 브리핑>에서 “우리가 주권 국가를 존중한다면 그 나라의 언어 주권도 존중해주는 게 맞지 않느냐.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이런 문제를 다시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강조한 바 있다.

3월 18일부터 국내 언론사들은 외교부로부터 ‘예외적 여권 사용’ 허가를 받아 우크라이나 현지 취재에 나설 수 있게 됐다. KBS와 SBS를 시작으로 연합뉴스, YTN, 동아일보, JTBC, MBC 등의 기자들이 각각 3일씩 우크라이나 체르니우치에 들어가 취재를 시작했다. <출처 - SBS <8 뉴스> 화면 갈무리>
국내 취재진, 러시아 침공 전부터 접경지역 보도
지난 2월 24일 발발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장기화하고 있다.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언론과 독자의 관심은 여전히 크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빅데이터 분석 시스템 빅카인즈 검색 결과 2월 24일부터 4월 14일까지 우크라이나 사태 관련 기사 수는 4만 3,354건으로 나타났다. 침공 이후 한 달이 지난 3월 24일부터 현재(4월 14일 기준)까지 보도 수만 해도 1만 4,027건에 달할 정도다. 최근엔 우크라이나 사태가 장기화하고, 국내외에도 점차 영향력을 크게 미치면서 언론의 우크라이나 전쟁 보도 분야도 국제뿐만 아니라 경제, 정치 등으로 다양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친러 반군 사이의 교전이 벌어지며 위기감이 고조되던 시기부터 국내 언론사들은 우크라이나 접경지대에 기자를 파견하는 등 변화하는 국제 정세에 민감하게 대응해왔다. 지난 2월 중순 연합뉴스, KBS, MBC, SBS, YTN 등은 취재진을 우크라이나-폴란드 국경 지대에 파견해 현지 상황, 전쟁 가능성 등을 전했다.
러시아의 침공 이후, 종합일간지와 종합편성채널에서도 우크라이나 접경지대에 기자들을 급파하고, 우크라이나 난민의 목소리, 현지 분위기 등을 생생하게 보도해 주목받았다.1) 3월 18일부터는 국내 언론사들도 외교부로부터 ‘예외적 여권 사용’ 허가를 받아 우크라이나 현지 취재가 가능해졌다. KBS와 SBS를 시작으로 연합뉴스, YTN, 동아일보, JTBC, MBC 등의 기자들이 각각 3일씩 우크라이나 체르니우치(Chernivtsi)에 들어가 취재에 나섰다.2)
현지 취재 한계, 부족한 인력으로 어려움도
제한적인 취재 환경으로 국내 언론사 기자들이 겪는 어려움이 드러나기도 했다. 지난달 15일 KBS,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 국내 언론 특파원 6명이 ‘유럽 주재 한국 특파원단’ 명의로 “외교부는 여행 금지 국가의 취재를 보장하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외교부가 예외적 여권 사용을 허가하면서 ‘외교부 출입 언론사 대상, 하루 4명 이내, 방문 기간 3일 이내, 체르니우치주 지역 한정’으로 내건 조건으로는 전쟁의 실상을 제대로 취재하기 어렵다는 문제 제기였다. 유럽 특파원들은 성명에서 “외교부가 제시한 허가 조건을 보며 정부의 ‘국민 알 권리 보’에 대한 수준 이하의 인식과 언론 자유에 대한 몰이해에 대해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며 “BBC와 CNN, 뉴욕타임스 등 세계 유수 언론사들은 전쟁이 시작되자마자 우크라이나 서부 도시 리비우(Lviv)를 베이스캠프로 두고, 수도 키이우는 물론 격전이 벌어지고 있는 동남부 도시들의 소식을 실시간으로 전하고 있고 그 밖의 다른 나라 언론사들도 리비우나 키이우 등에 특파원을 보내 그들의 시각으로 전황을 자국민에게 알리고 있다”고 지적했다.3)
해외 유력 매체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특파원이나 국제 전문기자의 인력 등의 한계도 거론됐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국제 분야에서 기자의 전문성을 강화하고, 외신 의존성을 탈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권희진 MBC 국제전문기자는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기사가 많아지면서 워싱턴포스트나 뉴욕타임스 같이 국제 문제에 정통한 매체의 보도를 해석해 기사화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면서 “인력과 시간이 부족한 국내 언론 환경에서 이런 작업도 의미는 있겠지만 우리만의 시각을 가진 기사가 많지 않은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크라이나 사태는 더 이상 그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당장 유가 상승, 식량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고, 국내에도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앞으로 국제 뉴스에 대한 높은 수준의 접근이 필요해진 상황”이라며 “예전엔 국제 뉴스라면 해외 토픽 비슷한 수준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제는 각 나라의 역사를 이해하고, 뉴스 밸류를 결정하는 등 전문성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트래픽·클릭 수 목적의 자극적 기사 여전
소셜미디어발 보도는 이번 전쟁의 대표적인 보도 양상이기도 하다.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 전문기자가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해 “1991년 걸프전 때는 미사일에 달린 카메라로 전쟁을 중계했지만 이번엔 수천 대의 휴대폰 카메라가 거대한 매체가 된 특이한 전쟁”이라고 설명한 이유다.
2월 24일부터 4월 14일까지 빅카인즈 검색 결과 우크라이나 관련 보도에서 페이스북, 트위터, 텔레그램 등 소셜미디어를 인용한 기사 수는 7,297건으로 나타났다. 현재 전 세계 사람들은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우크라이나 현지에서 찍은 사진과 영상을 통해 실시간으로 전쟁 상황을 볼 수 있는데, 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대다수 국내외 언론이 우크라이나 상황을 전달하고 있다. 언론이 포착하지 못한 현지 상황과 전쟁의 참상이 실시간으로 공유되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Volodymyr Zelensky) 우크라이나 대통령 등 주요 정치인과 군 당국이 주요 메시지 통로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언론의 소셜미디어 인용은 불가피한 상황이기도 하다.
현지에서 전하는 현장의 목소리, 전쟁 발발이 국내에 미치는 영향 분석 등 의미 있는 기사들을 보도하려는 기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온라인에선 어김없이 우크라이나 사태를 ‘클릭 수 경쟁’, ‘트래픽’을 위한 소재로 활용하는 기사들이 나왔다. 이들 보도는 소셜미디어발 소식과 외신 보도를 검증 없이 그대로 받아쓰는 식이다. 지난 2월 28일 이후 개인 소셜미디어를 인용한 ‘드레스 대신 총 든 미스 우크라이나’ 보도가 쏟아졌고, 지난 3월 1일엔 ‘“푸틴에 저항하는 군인과 성관계” 성인모델 反러시아 운동 적극 동참’ 기사가 나왔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장기화되고 있는 현재, 전쟁을 자극적인 소재로 소비하는 흐름은 여전하다. 4월 13일 영국 타블로이드 신문 데일리메일을 인용해 러시아 군인의 여자친구가 “우크라이나 여성은 성폭행해도 괜찮다”고 말한 통화가 공개됐다는 ‘“우크라女 성폭행해도 돼, 콘돔만 잘 써” 러軍과 여친 충격 통화’ 기사가 보도되자 다음날 8개 매체가 같은 내용으로 보도를 쏟아낸 방식이 대표적이다. 러시아의 공습으로 민간인 피해가 속출하는 상황에서 전쟁의 심각성을 전하는 건 언론의 역할이지만, 해당 보도들이 자극적인 제목으로 독자들의 클릭을 끌어들여 분노만 유발시킨 채 전쟁을 흥밋거리로 전락시키는 건 아닌지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소셜미디어상에는 확인되지 않은 허위 정보가 포함돼 있기 마련이다. 지난 3월 KBS가 <뉴스광장>에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우크라이나 1,000만 달러 기부’라는 제목의 리포트를 내보냈다가 오보 사실이 알려져 7일 만에 사과 방송을 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또 중앙일보에선 “파키스탄이 10억 달러 차관을 갚지 않는 방식으로 러시아 제재에 동참한다”는 허위 글을 인용해 보도한 후 문제를 파악하자 기사를 삭제한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허위 정보 확산 방지를 위해 사실 확인이라는 언론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국제 전문기자들의 당부가 나왔다. 권희진 기자는 “소셜미디어 속 영상이나 장면은 현장성 있게 보도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 공신력 있는 매체가 아니고 언어 장벽도 있어 정보를 검증하는 게 쉽지 않아 보도 초창기 굉장히 애를 먹기도 했다”며 “현재는 우크라이나, 러시아 현지 통역사를 섭외해 검증을 받는 등 정확성을 위한 대응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채인택 기자는 “소셜미디어를 통해서만 볼 수 있는 장면이 있는 독특한 상황을 인정할 수밖에 없고, 정부의 출국 허가가 쉽게 나지 않아 국내 기자들이 현지에 가기 어렵다는 한계도 있다”면서도 “BBC는 우크라이나 관련 ‘디스인포메이션(disinformation)’을 팩트체크하는 파트가 별도로 있다. 시간상 늦을 수 있겠지만 언론사는 인력과 경험을 바탕으로 잘못된 사실을 거르는 순기능을 발휘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1) 강아영, <우크라이나 급파된 기자들 "방탄조끼 입고 리포트">, 기자협회보, 2022.3.1, https://www.journalist.or.kr/m/m_article.html?no=51106
2) 김달아, <우크라이나 현지 취재 나서는 국내 언론사들>, 기자협회보, 2022.3.18, https://www.journalist.or.kr/m/m_article.html?no=51218
3) 김고은, <“우크라이나 2박3일 취재? 무슨 수학여행인가!”>, 기자협회보, 2022.4.15, https://www.journalist.or.kr/m/m_article.html?no=514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