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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 청탁을 받고 생각하니 몇 년 전에도 비슷한 주제로 글을 쓴 기억이 났다. 2016년 《관훈저널》 140호에 실린 <한국 언론의 외신 보도 실태와 개선 방향>이 그것이다.1) 당시 원고를 찾아 읽어보며, 6년 전하고 지금의 국제 보도가 얼마나 달라졌나 생각해 봤다. 그 글은 외신을 인용하는 행태뿐 아니라 한국 언론의 국제 보도 전반을 다룬 것이었는데, 당시에 했던 실태와 원인 진단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했다. 필자는 기존 연구2) 등을 참고해 국내 언론의 외신 보도 가운데 개선할 점으로 △초보적인 오역이 많이 나오는 등 전문성이 부족하고 △미국·유럽 등 영미권의 알려진 매체를 주로 인용하는 등 서구에 편중된 보도를 하고 있으며 △편협한 민족주의나 국가주의에 빠진 아전인수식 보도도 많고 △언론사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국제 이슈의 판단뿐 아니라 사실관계도 달라지는 편향성을 보이는 점 등을 지적했다. 당시 필자는 △한국의 경제력과 국제적 위상에 맞게 국제뉴스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단순 외신 번역에서 벗어나기 위해 해외 통신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등 보도의 질을 한 단계 높일 수 있는 아이디어도 제시했다. 하지만 그 뒤로 어느 언론의 국제보도가 눈에 띄게 달라졌다는 소식은 과문한 탓인지 들어보지 못했다.
오히려 언론을 둘러싼 환경이 날로 악화하며, 국내 언론의 국제뉴스 보도, 특히 외신 인용 행태가 저널리즘의 원칙에 비춰 뒷걸음질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뉴스의 선정성 심화와 타블로이드화에 외신이 부적절하게 ‘활용’되는 양상이 그것이다. 해외 토픽 같은 흥미 위주의 외신 기사가 늘 있었지만, 이제는 북한 권력자의 안위를 포함해 내용과 분야를 가리지 않고 재미만 있으면 어떻게든 인용하는 상황이 됐다. 디지털 뉴스 시장에서 클릭 경쟁이 과열되면서 외신 보도 역시 그리되고 있다.
‘함량 미달’ 기사 꼭 써야 하는지 판단해야
일부 언론사에 외신은 독자의 눈길을 잡는 ‘미끼 기사’의 보고다. 인간적 흥미는 중요한 뉴스 가치다. 가뜩이나 국제뉴스를 읽는 이용자가 적은데, 독자가 흥미 있어할 만한 외신을 적절히 기사화한다면 누가 뭐라 하겠는가? 하지만 말초적 자극 외에 다른 뉴스 가치가 없는 기사를 자극적 제목과 함께 내보내고, 사실 확인마저 제대로 하지 않고 보도하는 것이 문제다. 그런 보도가 시간이 갈수록 늘어난다면, 그 사이 무슨 변화가 있었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한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북한 최고 권력자 ‘김정은 사망설’은 여러 차례 나왔고 그때마다 오보로 판명됐다. 지난해 10월에도 북한 김정은 사망설이 해외 언론에 등장했고, 국내 여러 언론이 이를 받아서 보도했다. 물론 오보였다. 미국 타블로이드 잡지 《글로브(Globe)》는 2021년 10월 23일 미국 정보 소식통을 인용해 “김(정은)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이 쿠데타를 통해 김 위원장을 축출했다”라고 보도했다. 한 달쯤 앞선 9월 19일에는 일본 도쿄신문이 “북한 정권 수립 기념일 행사(9월 9일)에 등장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대역”이라고 보도해 국내 언론이 인용해 보도한 적이 있었다. 한 달 사이에 나온 두 해외 언론 보도는 ‘김정은이 이미 실각했고, 이를 감추기 위해 여러 행사에서 대역을 내세우고 있다’는 그럴싸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국내 언론은 두 외신을 인용해 많은 보도를 쏟아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의 신문방송 모니터 보고서3)를 보면, 9월 19~20일 사이에 도쿄신문의 ‘대역설’을 인용한 기사는 34건이고, 10월 24~25일 《글로브》의 사망설 보도를 인용한 기사는 50건이었다. 세계일보, MBN은 두 외신을 각기 두 차례씩 총 4회 보도할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뉴시스, 서울신문, 중앙일보, 한국경제, SBS도 10월 《글로브》의 사망설 보도를 두 건씩 인용해서 기사를 내보냈다.
북한 최고 권력자 김정은 조선노동당 총비서의 안위에 대한 정보는 큰 뉴스 가치를 가진다. 따라서 관련 외신에 언론이 촉각을 기울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 해도 정보의 신빙성 여부를 따져서 보도 여부와 방식을 판단해야 한다. 특히 외신 기사가 익명 또는 불확실한 취재원에 의존하고 있거나, 그 매체가 해당 국가에서 신뢰도가 낮고 과거에도 북한 관련 오보를 낸 곳이라면 바로 인용하기보다 사실 여부를 확인해 보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글로브》 기사는 익명의 취재원 한 명을 정보 출처로 하고 있다. 도쿄신문 기사는 ‘대역설’의 근거로 “한국 국방부에서 북한 분석관으로 일한 고영철 다쿠쇼쿠대 주임연구원의 주장”과 이를 반박하는 북한 정치학자 의견을 함께 싣고 있다. 기사 안에서도 주장이 엇갈리지만 도쿄신문은 제목에서 ‘대역설’을 도드라지게 내세우고 있다. 기사가 다루는 사안의 중요도에 비해 근거가 허술한 기사였지만, 국내 많은 언론이 “전했다”, “주장했다”라며 외신을 거의 그대로 인용했다. <“살 쏙 빠진 김정은 혹시...” 도쿄신문, 대역 의혹 제기>4), <“북 김정은 사망?...9·9절 등장은 대역”-미 타블로이드>5), <또 ‘김정은 사망설’...“북 김여정, 올해 5,6월 김정은 살해”>6) 등이 그런 기사의 제목이었다. 여기까지는 해외 언론의 보도를 확인하지 않고 인용하는 한국 언론의 오랜 관행이 반복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조금 다르게 보도한 곳들도 있는데 그 내용과 이유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글로브》 보도에 대해 국가정보원이 다소 이례적으로 즉각 사실이 아니라고 확인을 해 주는데, 이를 담아서 비판적으로 외신 내용을 인용한 기사들이다. <美매체 “김여정이 김정은 죽였다” 쿠데타설에 국정원 반응은?>,7) <“김여정 쿠데타, 김정은 사살설...사실 아니다” 국정원, 외신보도에 신속대응>8), <김여정의 김정은 제거 쿠
데타설...국정원 ‘사실무근’>9) 등이 이런 기사들이다. 사실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외신 보도에 대해 정보 당국이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면, 이를 보도함으로써 불필요한 혼란의 확산을 막고 독자의 판단을 돕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외신의 내용이 국제 이슈를 다뤄본 기자의 경험에 비춰 ‘함량 미달’이고, 이런 내용에 대해 당국의 예상되는 부인이 나왔다면 기사를 꼭 써야 하는지 판단이 필요하다. 당국이 부인한 내용을 쓰느라 ‘말이 안 되는’ 외신의 내용을 독자에게 알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저널리즘 건강 위협하는 ‘믿거나 말거나’ 외신
신빙성이 낮은 외신을 일단 인용하고 본 기사와 당국의 부인을 앞세워 쓴 기사는 모두 한 가지 지점을 지향하는 게 아닐까 의구심이 든다. 바로 독자가 흥미 있어할 만한 소재를 놓치지 않음으로써 클릭수를 높이자는 목적이다. 이럴 때 ‘당국이 부인했다’는 파생적 사실은 “뭐하러 이런 외신까지 인용하느냐”는 눈총을 피하는 알리바이 구실을 한다. 도쿄신문 기사를 인용해 두 건의 비슷한 기사를 내보낸 한 중앙일간지가 한 달 뒤 나온 《글로브》 기사를 인용해 <“김여정, 쿠데타로 김정은 제거 후 대역썼다”...미 글로브 보도에 우리 정부 “사실 아냐”>10)라는 기사와 같은 날 밤 <국정원, ‘김여정 쿠데타’ 미타블로이드 보도에 “전혀 사실이 아니다”>11)라는 두 건의 유사한 기사를 온라인에 내보낸 것이 흥미있는 소재를 온라인에서 최대한 많이 배포하려는 언론사의 의도를 보여주는 것으로 보인다.
뉴스의 타블로이드화 추세가 최근 들어 심각해지고 있는데, 심각한 것은 이를 이른바 주요 언론사가 주도하는 것이다. 타블로이드화는 “양질의 언론이 판매를 주목적으로 하는 타블로이드 신문처럼 변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 4월 19일 한국언론학회 저널리즘특별위원회 세미나에서 김창숙 이화여대 교수와 이나연 연세대 교수가 발표한 <한국형 모바일 포털 저널리즘의 타블로이드화> 발표는 이런 현실을 분석했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구독자 300만 명 이상을 확보한 13개 언론사의 1,317개 기사를 분석한 결과, 제목에서 타블로이드 속성이 나타난 기사는 절반이 넘는 61.9%였다. 중앙일보(79.8%), 한국경제신문(72.9%), 머니투데이(71.4%), 헤럴드경제(69.6), 매일경제(67.7%) 순으로 그 비중이 높았다. 기사의 주제가 타블로이드 속성을 가진 경우는 전체의 30.4%로 나타났는데, 중앙일보(44.9%), 머니투데이(43.8%), 아시아경제(40.8%), 조선일보(38.5%) 순이었다. 실제 이 연구에서 상위에 오른 언론사 가운데 여럿은 계약직 사원을 동원해 이런 타블로이드성, 연성 뉴스를 ‘찍어내듯’ 생산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포털 생태계에서 눈에 띄고, 독자의 클릭을 유도해서 광고 수입을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제뉴스는 뉴스의 타블로이드화에 좋은 재료가 되고 있다. 한국기자협회 등이 분석한 지난 한 해 네이버 랭킹뉴스 페이지뷰(PV) 상위 50위권 기사에서도 외신을 가져다 흥미 위주로 제목을 달고 번역한 기사가 제법 눈에 띈다. <이게 웬 신음소리? 女기자, 방송 중 성관계 생생 전파...“업무의 일부”>12), <어렵게 노총각 탈출했더니…SNS서 아내 결혼식 본 30대 男>13), <자고 일어났더니 얼굴이 괴물로…20대女 ‘끔찍한 경고’ [글로벌+]>14) 등이 그 사례들이다. 이나연 교수는 세미나에서 “한국 모바일 포털 뉴스의 타블로이드화 관점에서 분석해봤더니 적지 않은 선정적 기사가 SNS, 커뮤니티, 해외 매체 등으로부터 생산됐다”며 “기자의 핵심적인 업무가 취재와 보도, 사실 확인 등이라고 봤을 때 그 어떤 것도 지켜지지 않은 보도”라고 지적했다.15)
모바일 환경, 포털 환경은 뉴스의 내용과 제작 관행에 여러 변화를 준다. 독자의 눈길을 끌기 위해 TV 드라마나 오락 프로그램 내용을 쪼개서 만든 온라인 기사가 인터넷에 범람한다. 마찬가지로 잠시만 인터넷을 뒤져도 수두룩하게 찾을 수 있는 ‘믿거나 말거나’ 식의 외신도 점점 더 클릭을 위해 활용되며 저널리즘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1) 이봉현, <한국 언론의 외신보도 실태와 개선방향>, 관훈저널, 140호, 2016.9.
2) 김성해·심영섭, 《국제뉴스의 빈곤과 국가의 위기》, 한국언론진흥재단, 2010.
3) 민주언론시민연합, 신문방송 모니터 <무분별한 외신 받아쓰기, 언론은 김정은을 몇 번 죽일 것인가>, 2021.10.27,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0315
4) 박세진, <살 쏙 빠진 김정은 혹시...” 도쿄신문, 대역 의혹 제기>, 연합뉴스, 2021.9.9, https://www.yna.co.kr/view/AKR20210919022000073?input=1195m
5) 정윤미, <북 김정은 사망?...9·9절 등장은 대역”-미 타블로이드>, 뉴스1, 2021.10.24, https://www.news1.kr/articles/?4470615
6) 이수현, <또 ‘김정은 사망설’…“북 김여정, 올해 5,6월 김정은 살해>, 매일신문, 2021.10.24, https://news.imaeil.com/page/view/2021102415402943183
7) 박현주, <美매체 “김여정이 김정은 죽였다” 쿠데타설에 국정원 반응은?> 중앙일보, 2021.10.24 ,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017609#home
8) 전경웅, <김여정 쿠데타, 김정은 사살설...사실 아니다” 국정원, 외신보도에 신속대응>, 뉴데일리, 2021.10.25, https://www.newdaily.co.kr/site/data/html/2021/10/25/2021102500073.html
9) 김경수, <김여정의 김정은 제거 쿠데타설...국정원 ‘사실무근>, 파이낸셜뉴스, 2021.10.24, https://www.fnnews.com/news/202110242055158805
10) 강민선, <김여정, 쿠데타로 김정은 제거 후 대역썼다”...미 글로브 보도에 우리 정부 “사실 아냐”>, 세계일보, 2021.10.24, https://www.segye.com/newsView/20211024506375
11) 이도형, <국정원, ‘김여정 쿠데타’ 美 타블로이드 보도에 “전혀 사실이 아니다>, 세계일보, 2021.10.24, https://www.segye.com/newsView/20211024508805
12) 최서영, <이게 웬 신음소리? 女기자, 방송 중 성관계 생생 전파...“업무의 일부”> 뉴스1, 2021.5.30, https://www.news1.kr/articles/?4322313
13) 김예랑, <어렵게 노총각 탈출했더니…SNS서 아내 결혼식 본 30대男> 한국경제, 2021.6.1, https://www.hankyung.com/international/
article/2021060115907
14) 김소연, <자고 일어났더니 얼굴이 괴물로…20대女 '끔찍한 경고' [글로벌+]>, 한국경제신문, 2021.6.7, https://www.hankyung.com/
international/article/2021060725417
15) 박서연, <포털 뉴스 타블로이드화 중앙일보가 가장 심했다>, 미디어오늘, 2022.4.20,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36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