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상세
과학자가 아닌 기자
청소년과 청년들이 기후변화 문제가 심각하다고 외치는 요즘 뉴스를 보면서 어른들은 말합니다. 과거에도 기후변화 문제는 진행 중이었고 그때도 모두가 환경문제를 해결하자고 외쳤었다고 말이죠.
30대인 제 기억에도 2006~2007년 이미 기후변화 뉴스는 전 세계의 화두였습니다. 영화 <불편한 진실>이 흥행하면서 기후변화 문제의 ‘불편한 진실’이 알려지게 됐죠. 엘 고어(Al Gore) 미국 전 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았고, 사람들은 ‘기후 위기는 윤리적 문제’라는 말에 공감하며 저개발국 시민들을 위해 책임감을 갖자고 외쳤습니다. 북극곰이 녹아내린 얼음 위에 위태롭게 서 있는 사진을 보며 마음 아파하면서 말이죠.
비슷한 시기인 2007년 말 한국에서는 삼성 허베이 스피릿호의 기름 유출 사고로 태안 해변이 기름 범벅이 됐습니다. 기름을 치우러 수만 명의 자원봉사 행렬이 이어지면서 사회적으로 환경 감수성이 높아진 것을 경험했습니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저는, 만약 내가 기자가 된다면 좋은 환경 기자가 되고 싶고, 그때쯤엔 모든 생명이 평화롭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꿈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운 좋게 기자가 됐지만, 정작 어떻게 해야 좋은 환경 기자가 될 수 있을지 잘 알지도 못했고 확신도 없었습니다.
입사 직후 조홍섭 1세대 한겨레 환경 전문기자의 말이 지난 10년의 기자 생활을 이끈 목표였던 것 같습니다. 좋은 환경 기자가 되기 위해 환경 공부를 더 해야 할까 질문하는 제게 선배는 “스페셜리스트가 되기 전에 제너럴리스트부터 먼저 돼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오히려 다양한 부서에서 다양한 경험을 할 것을 권했습니다. 취재나 기사 작성 등 기자로서 갖춰야 하는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것을 모두 배운 뒤 전공 분야를 분명히 하는 것이 맞다는 설명이었습니다. 환경 기자의 방점은 언제까지나 ‘기자’에 찍혀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기자 생활 만 11년이 되지 않은 저는 여전히 의문 투성이입니다. 좋은 기사를 어떻게 쓸 수 있을지, 그중에서도 환경 기사를 어떻게 써야 더 의미가 있을지 아직도 고민이 많고 확신은 적습니다. 그러나 한겨레 토요판 동물면 담당자(2012.1~2014.3), 국내 언론사 최초의 동물뉴스룸 한겨레 애니멀피플 창간 멤버(2017.4~2018.10), 국내 언론사 최초 기후변화팀 창간 멤버이자 팀장(2020.4~2022.5)으로 일하면서 지금까지 경험한 고민을 나누고자 합니다. 최근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마련한 경력 기자 대상 ‘기후환경 전문연수’에서 이 이야기를 했고 그때의 내용을 다시 정리했습니다.
길어진 글을 앞서 정리하자면, 환경 기자는 환경 전문가가 아닌 기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기자도 환경 기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학자나 전문가와 달리 기자라면, 사건 기자처럼 현장을 확인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들으려는 노력이 기본입니다. 이런 기본 능력에 더해 과거 국내외 환경 뉴스들을 통해 역사적으로 비슷한 환경문제에 직면했을 때 인류가 어떤 고민을 했고 어떤 판단을 했고 이는 어떻게 평가할 수 있는지 현재의 눈으로 알아보려는 성실한 노력을 하면 분명 차별화된 기사를 쓰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또 전 세계 과학자들이, 또는 외국 정부의 결정이 무엇인지를 참고하는 것도 더 나은 기사를 쓰는 노하우라고 생각합니다.
뉴스에는 역사가 있다
많은 언론사가 환경 기사를 주로 정책 기사로 분류하고는 합니다. 환경부나 기상청, 산림청 등 주요 출입처가 정부 부처이기 때문이지요. 또는 과학 기사로도 분류합니다.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사실을 정리하고 이를 통해 정책적 판단을 하는 작업이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인식 때문에 환경 기사를 환경, 과학 분야 석사 이상의 기자가 맡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습니다. 또 환경 기자들이 석사 이상의 공부를 이어가기도 합니다. 물론 많이 배우면 학자들과의 커뮤니케이션도 쉬워지고 어렵고 복잡한 논문을 쉽게 소개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감히, 이런 자격이 환경 기자로서 도움이 될 수 있지만 환경 기자로서의 필수 조건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환경 기자의 시작은 환경 뉴스의 역사를 공부하는 것부터라고 생각합니다. 한겨레 애니멀피플팀, 기후변화팀 등 기존 신문사 조직에 없는 부서를 만들고 또 그 부서에서 기사를 쓰면서 맞닿은 고민은, 기자는 과학자와 대중의 중간 지대에서 이를 잘 설명하는 연결고리가 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려면 대중의 머릿속에 남아있는 과거 환경 뉴스들부터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예를 들어 기후변화 문제를 다루는 기자들이 숙지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명제는 2022년 현재 과학이 말하는 기후 위기란 무엇인가입니다. 독자 수용성을 생각할 때 복잡한 과학 기사 같지 않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기후 기사를 쓰는 것은 기후·환경 기자들의 매우 큰 과제입니다. 그러려면 역사 공부를 하듯 과거의 이야기들을 이해하는 게 최우선 과제입니다.
기후 뉴스의 역사를 정리하면, 전 세계 195개국의 과학자들이 기후변화에관한정부간협의체(IPCC, 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를 조직한 뒤 각국 정부들이 함께 유엔기후변화협약을 채택하면서 기후변화 뉴스가 본격적으로 생성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난 30여 년 동안 어떠한 부침을 겪었는지를 아는 기자와 모르는 기자는 2022년 9월 나오는 IPCC 6차 종합보고서의 의미를 전달하는 데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일반 환경 뉴스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 사회의 현대사 그 자체가 곧 환경 파괴 흐름에 저항하는 역사이기도 했습니다. 수많은 환경 갈등 사례가 떠오릅니다. 경부고속도로 건설, 수도권 아파트 개발, 낙동강 페놀 유출 사건, 대기오염과 미세먼지, 청계천 등 하천 복원, 경부고속철도와 천성산 도롱뇽 소송, 가습기 살균제 참사, 방사능 폐기물장과 각종 발전소 건설 과정에서의 환경 갈등, 재생에너지 입지 지역 내 주민 수용성 문제, 신공항 건설 갈등 등이 있었습니다. 어떤 공론화 과정을 거쳐 사회가 합의점을 찾았는지, 혹은 합의점을 찾지 못해 여전히 대립하고 있는지를 과거 기사나 각 분야 전문가들이 내놓은 대중서를 통해서 그 역사와 시사점을 쉽게 알아볼 수 있습니다. 과거에도 이런 논란이 있었고 그때 정부나 기득권 집단이 잘못 판단한 적이 있다면 이를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을 것이고, 그때 성공적으로 갈등을 해소했다면 이 역시 주요한 선례로 삼아 대안을 판단할 수 있습니다.
외국 자료 인용 필요하지만 충분하지 않다
정책 기사들은 역사성이 있으면서도 동시에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현상들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 때문에 기후변화나 생태, 동물권과 같은 환경문제는 사실 한국 사회보다 외국에서 더욱 활발히 논의하고 있고 과학적 연구도 외국의 연구가 더 앞선 것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성실한 환경 기자라면 외국 학술 논문과 외신을 참고하고 이를 인용하는 노력을 할 것입니다. 한국 독자들에게 외국에서의 논의 과정이나 그들이 찾은 답을 전하는 것 역시 하나의 사실을 전하는 보도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외국의 사례를 전하는 것이 충분한 보도인지는 한 번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2021년 11월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를 취재하면서 스코틀랜드의 육상풍력발전단지를 다녀오고 전문가들을 만나고 온 적이 있습니다. 한국에 닿을 시사점을 알아보러 갔는데 한국전력이 독점하는 한국과 이미 민영화된 영국의 전력시장 상황은 많이 달랐습니다. 북해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워낙 강하기 때문에 한국 해안 상황과 달랐고 국토 면적 대비 인구수가 한국보다 스코틀랜드가 적다는 점 등 양국은 서로 다른 점이 꽤 많았습니다. 단순 비교를 하기 어렵다고 판단했고, 한국과 다른 상황을 고려해가며 영국 상황을 소개하며 한국의 현저한 재생에너지 비중을 다시 진단했습니다. 또 영국 풍력발전단지 취재만 전하지 않고 한국의 재생에너지 업계와 정부 쪽 고민 등도 담아 이를 보완했습니다. 만약 단순 비교만 했다면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채 덮어놓고 재생에너지 확대 주장만 하는 기사를 썼다는 비판을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외국 자료를 인용하는 것은 너무나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외국 사례가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기사의 처음은 현장, 그리고 맥락
좋은 환경 기사의 힘은 우선 현장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과학적 연구를 통해 집계한 데이터도 그 자체로 힘이 있지만 결국은 독자들이 체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쓰는 것이 전문가가 아닌 환경 기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때 기자의 무기는 현장입니다.
2021년 한겨레 신년 기획으로 작성한 <기후위기와 인권> 기획보도는 기후 위기로 고통받는 생생한 주변 이웃들의 이야기를 담은 기사였습니다. 현장에서 느끼는 작은 기록과 팩트를 모아 이를 근거로 환경 문제가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환경문제가 인권 문제일 수 있다는 문제의식을 보여주려 노력했습니다. 이상기후와 재난으로 인한 피해는 종종 있지만 날씨가 좋으면 또 금세 잊고는 합니다. 항상 눈앞에 당장 보이지 않는 기후변화라는 변화를 삶의 문제로 보여주려는 노력을 한 시도 역시 모든 이야기의 출발은 현장, 당사자 문제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기사를 쓸 때 현장이 없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환경 기자는 숨은 맥락을 설명해주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역할도 중요합니다. 현장으로 다 보여줄 수 없는 다소 복잡한 이야기, 혹은 이미 현장이 사라져버린 이야기는 관련 취재원들의 이야기로 마치 사건을 재구성하는 노력도 필요합니다.
2018년 지리산에 살던 반달가슴곰 KM-53이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수도산에서 발견됐을 때 반달가슴곰 기사가 굉장히 많이 쏟아져나왔습니다. 현장 취재도 주요한 보도일 수 있지만, 늘 반달가슴곰을 눈앞에서 취재할 수는 없습니다. 국내 반달가슴곰 종 복원 역사와 성과, 같은 반달가슴곰인데 사육되고 있는 외래종 반달가슴곰과 동물원 반달가슴곰의 사연을 조명한 기사 등은 이 사건을 이해하는 후속 보도로 주목받았습니다. KM-53이 다른 반달가슴곰과 달리 수백 킬로미터를 혼자 여행한 것을 볼 때 야생에서의 곰의 이동 반경이 얼마나 넓어질 수 있는지, 동물 복지나 정부의 종 복원 사업 차원에서 어떤 과제가 있을지 등까지 질문한 기사들이 이 이야기를 더욱 풍부하게 했습니다.
대안을 모색하는 성실한 안내자
환경 기사를 쓸수록 답을 찾기가 어렵다는 생각을 합니다. 당사자가 자연물인 경우가 많고 농어민뿐 아니라 일반 시민과 산업계, 정부 등 모두가 이해관계자입니다. 그래서 환경 기사를 쓰는 기자로서 ‘세상 모든 것은 연결돼있고 답은 쉽게 찾아지지 않는다’는 생각을 떨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답을 내리기보다는 대안을 모색하는 친절한 안내자 역할을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2021년 문재인 정부가 재생에너지 확대 계획을 꾸준히 발표하면서, 새똥이 떨어진 새만금 태양광 현장을 고발한 한 언론사의 단독 보도가 화제였습니다. 앞선 언론사의 보도로 많은 시민이 태양광 무용론을 떠올렸습니다. 그러나 업계 관계자와 새만금 사업 현장 관계자들로부터 말을 들어본 결과 진실은 다소 달랐습니다. 그 결과 이 태양광 사업 현장은 아직 시범운영 중이어서 전원 연결이 안 돼 있어 패널이 뜨거워지지 않기 때문에 새가 바다 위 섬처럼 이용할 수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관리하지 않기 때문에 패널 청소도 따로 안 하는 실정이었지요. 다른 태양광 패널과 달리 새똥으로 범벅이 될 수 있는 조건이었던 셈입니다.
그렇다고 앞선 보도가 무조건 잘못된 건 아니었습니다. 태양광 발전, 특히 해상 태양광 패널 위로 언제라도 새똥이 떨어질 수 있다는 근본적 문제 제기 자체는 언론으로서 할 수 있는 질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후속 보도를 하면서, 이런 맥락을 충분히 담으면서, 미국 에너지부 등 세계 각국이 태양광 발전을 확대하면서 겪을 수 있는 새똥과 관련한 애로사항을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함께 전했습니다.
기자라면 단독 기사의 힘을 모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단독 보도 이후 추가 보도를 통해 대안까지 이야기하려는 노력하는 것도 중요해 보입니다. 환경 기자라면 다양한 전문가들의 고민을 대신 전하며 시민들 스스로 사안을 판단하고 사회에서 대안을 찾을 수 있도록 공론장의 주요한 안내자 역할까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