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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
2023년 4월 말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해 조 바이든 대통령을 만났다. 이후 공개된 양국의 공동 성명을 읽다 보니, 한국 원자력발전소의 수출을 제한할 수 있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미국이 요구해온 지적재산권을 존중해달라는 내용이 그것이다. 미국은 한국에 원전 기술을 심어준 나라다. 최초의 상업용 원전 고리1호기 설계 등 미국으로부터 원전 기술을 전수받아 성장해 온 한국은 이제 원전 수출국으로서의 꿈을 꾸고 있다.
그러다 암초를 만났다. 지난해 10월 미국 원전 기업 웨스팅하우스(Westinghouse)가 워싱턴D.C. 연방지방법원에 한국수력원자력과 한국전력을 상대로 지식재산권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한수원의 APR1400 원전 기술이 미국 원자력에너지법상 무단 이전을 금지한 수출 통제 대상이어서 미 정부와 웨스팅하우스의 승인과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공동 성명이 공개된 이후 한국 정부는 미국과 잘 협상해나가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이미 외신을 통해 타협은 불가하다는 웨스팅하우스사의 입장이 전해진 뒤라, 정부가 적극적으로 홍보해 온 것처럼 한국 원전 수출이 흥할 수 있을지 일각에서는 의심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2023년 5월 일본에서 열린 G7 정상회의의 주요 주제도 원전이었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가 올여름에 단행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유국희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을 단장으로 하는 한국 오염수 시찰단은 5박 6일 일정으로 일본으로 떠났고, 23일 후쿠시마 원전을 방문했다. G7 정상들도 국제원자력기구(IAEA) 안전 기준과 국제법에 따라 수행될 국제원자력기구의 독립적 검증을 지지한다고 밝히며 일본 정부를 압박했다. 오염수에 대한 각국 시민의 여론은 좋지 않고 각국 정부 역시 이 무거운 주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외교적·과학적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이처럼 원전 관련 뉴스는 언론에서 꽤 자주, 그리고 매우 중요하게 다뤄질 수밖에 없는 속성이 있다.
실제로 원전을 가리키는 비유 중 대표적인 것은 ‘프로메테우스의 불’이다. 하늘에서 불을 훔쳐 인간에게 건네준 프로메테우스 덕분에 문명은 더욱 풍요로워졌다. 그러나 불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활용도가 달라진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원전 역시 논쟁적 에너지원이라는 의미에서 ‘프로메테우스의 불’이라고 불린다.
환경 보도를 할 때 참고하면 좋은 책으로 이 책을 소개하는 이유는 원전과 관련한 통시적, 국제적 시야를 넓히기 좋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반원전’ 정책과 뒤이은 윤석열 정부의 ‘친원전’ 흐름을 취재하면서, 논쟁적이면서 파급력이 큰 원전 관련 뉴스를 어떻게 보도해야 하는지 고민이 많았다. 원자력은 적은 원료로 큰 효율을 얻을 수 있다는 장점과 작은 사고로도 큰 인명 피해가 날 수도 있다는 단점이 교차하는 에너지원이다(물론 찬반 양쪽 진영 중 필자의 이러한 전제에 대해서도 합의할 수 없다는 이들도 있을 수 있다). 또한 이미 수십 년 동안 한국 사회에서 원자력 산업계와 학계, 지역 주민과 환경단체가 반목하는 역사를 누적해오며 하나의 여론을 형성하고 있다. 이 때문에 지금도 많은 기자와 데스크들이 보도에 앞서 원전을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시간이 많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이 책은 원전을 둘러싼 세계 각국 원전 정책의 추이와 시기별 여론의 향방을 소개하고, 나아가 언론과 과학계, 환경단체 소통의 의미를 엿볼 수 있게 하는 책이다. 주저자인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은 이 책에 앞서 《원자력 딜레마》를 펴냈다. 그리고 딜레마를 넘어 원전을 바라보는 트릴레마 상황(세 가지 어려움)을 분석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원전을 둘러싼 국내외 여론의 다양한 시각을 전하며 원전으로 인한 사회 갈등을 줄일 수 있는 해법을 모색하는 활동들이 소개돼 있다. 모든 정책 보도가 그러하지만, 에너지와 전력 정책 역시 통시적이고 국제적으로 정책을 이해하면 더 맥락 있는 보도를 하는 데 도움이 된다. 2023년을 기록하는 기자들에게 여론과 정책의 추이를 통해 당대 시대정신을 알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 어제의 일을 통해 오늘과 내일을 이해할 수 있다는 통찰을 보여준다.
친원전 vs 반원전 역사 속 뉴스 읽기
과거의 원전 보도들을 보다 보면, 보도 시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원자력문화재단 조사를 보면 1996년 한국 시민 85%가 원전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었고, 66%가 원전 확대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에너지 자원 빈국인 한국이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원전이 있었기에 여론도 나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찬성 비율이 높기는 하지만, 1991년 원전 확대 비율에 긍정적 답변을 한 81% 비율과 비교하면 차이를 느낄 수 있다. 1990년 이후 안면도 사용후핵연료 저장소 설치를 둘러싸고 빚어진 갈등과 1994년 굴업도 핵폐기장 건설 반대 운동의 영향 때문에 부정적 여론이 늘어난 것이다. 원전을 설치하면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폐기물 처리 문제에 대해 1970년대 본격 원전 가동을 시작한 한국에서는 20여 년이 지나서야 제대로 된 논의가 시작된 셈이다. 윤석열 정부 1년 차에는 원전 정책을 복원하는 것이 주요했다면 앞으로 남은 4년 동안은 원전 수출과 폐기물 처리 문제로 격돌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세계 각국의 원전 정책은 여론의 영향을 받으며 궤적이 수정됐다. 후쿠시마 참사가 일어난 2011년 3월 이후 세계 원전 정책은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2011년 7월 23개국 2만 3,000여 명을 대상으로 영국 공영방송 BBC가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현존하는 원전의 사용은 찬성하지만 신규 원전 건설을 반대한다는 의견이 33%였다. 현존하는 원전의 운영과 신규 원전의 건설 모두 찬성하는 의견은 21%, 모두 반대하는 의견은 33%로 반대가 좀 더 앞섰다. 프랑스, 영국, 미국 등 기존 원전 보유 국가에서는 현존하는 원전 운영에는 찬성하지만 신규 원전 건설은 반대한다는 의견이 증가했다. 한편 원전을 보유하지 않은 국가나 신규 원전을 계획하고 있는 나라들에서는 모두 반대 의견이 높았다.
원전 비율 30% 이상을 유지하며 원전 강국으로 부상 중이던 당시 한국 역시 탈핵 분위기로 기울어가는 흐름이 느껴진다. 원전 안전 규제 행정의 독립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국제기구의 지적을 받아들여 상설 원자력안전위원회를 대통령실 산하에 설치하고, 원자력위원회는 원자력진흥위원회로 바꾸기도 했다. 2013년 출간한 이 책에서는 다루고 있지 않지만, 이후 상황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원전에 대한 반성과 재검토 여론은 더욱 힘을 받으면서 2017년 탈원전 정책을 공약으로 내건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범진보 진영 대통령 후보여서 반원전 정책에 힘을 싣기는 했지만, 당시 대통령 선거 후보에 나선 이들의 상당수가 탈원전을 말할 정도로 원전에 대한 우려가 시대정신이었다. 그러나 원전을 폐기하는 정책은 전기요금 정상화 과제, 원자력 학계와 산업계의 강한 반대 목소리 결집 등으로 ‘친원전’을 내건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다시 폐기됐다.
원전을 둘러싼 외부적 환경은 계속 달라지고 있다. 202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기후 위기 담론이 확대되면서 원전에 대한 재평가도 이뤄지는 중이다. 원전과 함께 값싼 전력 생산을 책임져왔던 석탄이나 액화천연가스와 같은 화석연료 사용을 줄여야 하는 기후 위기 시대를 맞아 원전의 불가피성이 다시 떠오르기 시작했다. 탈 탄소 전원인 재생에너지만으로는 기존 경제 체제와 산업구조를 떠받칠 수 없다는 주장에서다.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 기존 원전 보유국이 이 같은 주장을 주도하고 있다.
원자력이 탄소 배출을 줄이는 데 필요한 대용량 발전 기술로 각광을 받는 실정이다. 그러나 탈핵 단체 등 기존 환경단체 진영에서는 원전의 위험성과 비경제성, 기술 개발의 불완전성을 여전히 비판하고 있다. 뒤이어 원전 건설과 수출, 폐기물 관련 제도와 정책 이행 등 원전을 둘러싼 다양한 논쟁 역시 부활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저자는 책을 통해 국가별 원자력 정책의 결정은 “정량화하기 어려운 사회·문화·정치·역사·지역·물리적 요인이 작용하는 복잡한 함수관계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았다. 또 이 모든 변수 이외에 정부에 대한 신뢰도에 따라 정책 수립과 추진 동력의 확보 여부도 결정된다고 지적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여론이 바뀌고, 에너지나 전력 정책도 여건에 따라 바뀌기 때문에 이러한 유동성을 고려하면 친원전과 반원전 구분은 무리가 있다고도 짚는다. 과학자가 아닌 언론인으로서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에너지나 전력 정책을 과학적 판단만으로 결정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생각이 다르다. 다만, 산업화를 넘어 정보화 시대로 흐름이 옮겨가고 있는 21세기 환경문제는 이미 역사적 맥락이 켜켜이 쌓여 분석할 것이 많다. 이 때문에 과거 여러 국가의 원전 정책을 둘러싼 상황들을 이해한다면 한국의 에너지 안보 상황의 대처 방법을 고민할 때 “방향타(리더 항공기)는 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과학, 산업계와 시민을 잇는 언론의 책임
이 책은 사회에서 원전 관련 소통을 늘리기 위해 언론과 홍보계가 더욱 노력해야 할 부분을 강조한다. 과학자로서 원자력에 대한 홍보의 어려움으로 “사고 확률이 매우 낮다고는 해도 일단 발생하는 경우 치명적인 방사능 오염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다뤄야 한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신뢰할 수 있는 홍보 캠페인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국민과 지역 주민이 원하는 정보”를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지역 주민과의 소통에서 원칙과 절차를 갖추는 일을 강조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중앙정부 단위에서 이뤄지는 원전 정책이 아닌 지역 주민과의 소통을 통해 이뤄지는 정책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언론 역시 전력 수요가 많은 서울, 수도권의 시각이 아닌 원전 지역 주민들의 목소리를 더 담아야 한다는 지적으로 들리기도 했다.
책에는 정부가 친원자력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려고 할수록 과학저널리즘에 대한 철학을 공고히 해야 한다는 당부도 담겨있다. 전문가와 일반인의 인식 격차를 해소하는 데 언론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점에서 저자의 주장은 새겨들을 만하다. 저자는 “각 분야 전문가들은 이론·기술적 근거가 진실의 지위를 가진다. 그러나 일상에서는 실제적 행위에 적합한가의 실용적 진리가 자리하고 있다”며 과학자와 시민들이 서로 다른 합리적 기준으로 원전을 바라보고 있음을 지적한다. 원자력계는 원전을 가리켜 “위험하지 않다, 설령 위험하다고 해도 기술로 이를 관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시민들은 행정에 대한 불신이 쌓여있는 데다 분권적 대응력을 요구하기 때문에 서로 다른 지점을 극복할 수 있는 소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원전 보도를 하는 기자들이 과학자와 시민 사이를 연결하는 안내자이자 공론장의 역할을 해야 사회의 갈등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을 재확인할 수 있다.
책의 마지막 부분이기도 한 <원자력 여론조사 원탁 대화록>은 2013년 2월의 대화 기록이다. 과학자, 기자, 지금은 국회의원이 된 탈핵 활동가 등 저자를 비롯한 여성 참가자들이 모여 여성의 시각에서 원전 문제를 둘러싼 사회 갈등을 줄이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토론한다. 그러나 오늘 누가 이런 대화를 한다고 해도 어색하지 않아 보였다. 원전과 관련한 논쟁은 원전의 안전성을 묻는 근본적 질문부터 시의성 있는 시대정신까지 모두를 아우르기 때문이다.
하루하루 쏟아지는 원전 관련 보도를 하기에 앞서, 이 책을 읽으면 같은 트릴레마 상황에서 우리보다 먼저 해답을 찾아보고자 고뇌한 전문가들이 남긴 혜안을 엿볼 수 있었다. 후배된 자의 복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동시에 선배들이 다 풀지 못한 과제가 남아있음을 확인하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시간은 더욱 줄어들었음을 깨달을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