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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현장] 한겨레 몰고 사태로 본 뉴스룸 민주주의
미디어현장 | 등록일 : 2022-06-24

안수찬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교수는 《신문과방송》 2022년 5월호 <한겨레 몰고 사태로 본 기자의 책임, 데스크의 책임-정보 처리와 정보 수집의 전문성 사이에서 균형 찾아야>라는 기사를 통해 뉴스룸 의사결정에 있어 데스크의 중요성에 대해 논한 바 있다. 이번 호에서는 관련 주제에 대해 김희원 한국일보 논설위원의 다른 시각을 소개한다.1) 편집자 주

 

‘한겨레 몰고 사태’는 지난 2월 한겨레신문에서 ‘윤석열 대선 후보가 2005년 검사 시절 삼부토건으로부터 수사 무마 청탁을 받았다’는 의혹을 1면에 보도하려다 편집위원들의 의견에 따라 유보한 일이다. 취재기자는 이를 부당한 개입으로 받아들여 편집국 구성원들에게 전체 메일로 기사 초고를 전송하며 이 판단이 맞는지를 물었고, 첨부된 기사 초고가 외부로 유출되면서 논란이 커졌다. 안수찬 교수는 《신문과방송》 5월호에서 몰고 사태에 대한 의견은 밝히지 않은 채, 이 같은 뉴스룸 내부 갈등이 뉴스 가치 판단의 기준이 공유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며 그것은 곧 한국 언론의 데스크 역량 즉 정보 처리 능력의 전문성이 너무 부족하고 소홀한 것에 기인한다고 했다.

 

우리나라 언론사들이 유능한 데스크의 중요성을 경시하고 또 데스크의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진단에는 고개를 끄덕일 만하다. 하지만 뉴스룸 내부 갈등이 데스크 책임인 뉴스 가치 기준을 공유하지 못한 것에서 비롯된다는 대목에는 선뜻 동의하기가 어렵다. 결론부터 말하면, 뉴스 가치 기준이란 데스크가 제시해야 하는 고정된 것이라기보다 개별 기사를 놓고 데스크와 취재기자 간 끊임없는 의견 교환과 타협의 산물이며, 그 과정에서 이견이 맞서 때로 갈등으로 치닫는 한이 있더라도 이견과 갈등이 아예 없는 것보다는 낫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뉴스 기준, 데스크 전문성만의 문제 아냐

 

우선, 뉴스 가치 기준을 몇몇 단어로 규정할 수는 있겠으나 기사마다 일관되게 적용하는 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부터 지적해야겠다. 한겨레 몰고 사태가 정당한 게이트키핑이냐, 부당한 검열이냐는 평가도 따지고 보면 해당 기사가 보도할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는 판단에 따라 달라진다. 나는 처음부터 한겨레의 몰고 판단은 게이트키핑의 일환이라고 봤다. 공개된 기사 초고를 근거로 판단컨대 청탁자 본인도 아닌 아들과 제삼자의 대화만으로는 윤 후보가 과거 수사 무마 청탁을 받았다는 의심은 들지언정 기사를 1면에 게재하기엔 부족하다고 본다. 내가 데스크라도 이런저런 보충 취재를 지시했을 것이다.

 

나는 내 나름의 판단 기준을 적용한 것이지만 그 기준을 적용한 결과는 기사마다 천차만별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위 기사에 대해 보도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할 측면도 많다. 공정과 법치를 명분 삼아 출마한 대선 후보라면 더 민감하게 봐야 하고, 대선 후보쯤 되는 공인이면 의혹이 100% 확실하지 않아도 보도할 수 있으며, 청탁이 수사 무마로 이뤄졌는지 확인하는 것이 쉽지 않은 취재라는 것도 감안할 수 있다. 사건에 따라, 대상에 따라, 맥락과 시기에 따라, 그리고 무엇보다 확보한 정보의 깊이와 신뢰도에 따라 기사 판단은 제각각이다. 그러므로 그 판단을 가장 잘 할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취재기자와 팀장, 부장, 국장, 때로는 편집위원의 판단을 종합하는 것이다. 한 명이나 두 명이 오판할 가능성은 매우 높지만 각 단계를 거치며 정보를 공유하고 의견을 종합하다 보면 제대로 판단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의견이 엇갈릴 때 결국 책임자는 뉴스룸 국장이지만 그 또한 다양한 의견을 들었을 때 나은 판단을 할 수 있다. 그렇게 머리를 맞대 종합 판단한 결과라면, 설사 내 판단과 다르더라도 맞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존중해야 하는 게 아닐까.

 

이견 없을 때 언론 실패 못 막아

 

오히려 위험한 것은, 여러 단계를 거쳐 논의하고서도 기사를 쓰지 않기로 했을 때가 아니라 데스크의 일방적 판단이 지배할 뿐 논의 자체가 없는 때다. 한두 명의 출중한 데스크가 기사 판단을 잘하고 기사 방향과 기획 아이템을 선도할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언론의 실패를 막지 못한다. 나는 언론이 저널리즘적으로 자주 실패하는 이유가 기자의 실패 때문(흔히 말하는 기레기 때문)이 아니라 타깃 시장에 뉴스 상품을 팔려는 언론사의 합리적 선택 때문이라고 보지만, 이견·토론·갈등이 전혀 없는 언론사는 심각한 실패를 막을 기회조차 잃는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내가 경험한 사례를 들어보자. 2005년 줄기세포 논문 조작 사건 보도는 대다수 언론이 일방적으로 황우석 박사를 감싸고 MBC <PD수첩>을 공격하며 진실 규명을 가로막고 국가적 혼란을 일으킨 대표적인 언론 실패 사례다. 당시 나는 많은 기자가 DNA 분석 같은 과학적 팩트까지 무시하면서 황 박사 편들기에 휩쓸린 광기를 납득하기 어려웠고 2006년 신문·방송·통신사 기자들을 심층 인터뷰해 석사논문을 썼다. 그중 가장 충격적이었던 게 A사의 경우다. 자원과 취재력이 풍부했던 A사는 고위 데스크가 황 박사의 사이언스 논문에 문제가 있다는 정보를 매우 일찍 접했지만 취재기자는 이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 채 황 박사 발언 받아쓰기와 <PD수첩> 비판에 매진했다. 데스크가 취재기자에게 ‘확인해보라’는 지시조차 안 한 것이다. 취재기자는 <PD수첩>도 전혀 취재하지 않았다. 과학 담당이었던 그는 “<PD수첩>은 방송 담당 기자의 몫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는데 방송 담당 기자로부터 정보를 건네받거나 확인을 요구한 적도 없었다. 정보 공유도, 이견도, 토론도 없었던 이 매체는 줄기차게 오보와 편향 보도를 생산했다. 논문 조작이 드러나면서 A사는 큰 비판에 처했는데 사내에선 반성도 질타도 없었고 취재기자는 억울해했다.

 

A사가 고위 데스크부터 과학 기자, 방송 기자까지 천편일률로 황 박사 쪽에 기울어 반대 팩트는 취재(지시)조차 하지 않은 것은 단지 그들의 전문성이 떨어져서는 아닐 것이다. A사를 비롯한 많은 언론사가 국가 영웅을 지키자는 기사가 (진실을 은폐하는 오보일지 몰라도) 더 잘 팔릴 것을 알고 있었기에 편향 보도와 오보 생산에 주저함이 없었으리라. 하지만 A사가 뉴스룸 내에서 정보를 공유하고 기자와 데스크 간 토론이 활발한 조직 문화를 갖고 있었다면 뉴스 판단은 달라졌을 것이다. 그렇게까지 심각한 실패는 막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실제로 취재 자원이 풍부하고 정보 공유가 활발했던 B사는 사건 초기 큰 오보를 냈지만 재빠르게 논조를 전환했다. 한국일보가 다른 언론사보다 일찍 논문에 의혹을 제기하는 뉴스를 생산했던 것도 취재기자의 자율성을 인정하고 내부 토론이 활발한 문화와 전통이 있었던 덕분이었다.cc

 

팩트 지키는 건 취재기자의 책임

 

2021년 한강 대학생 사망 사건 보도 또한 비슷한 환경에서 재연된 언론 실패 사례다. 또 반복하지만 수많은 언론이 유튜브를 뒤따라 무분별하게 살인 의혹을 확산한 것은 흥미진진한 미스터리 요소로 인해 조회수를 높여줄 뉴스가 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론의 실패를 막지 못한 것은 뉴스룸 내 토론이 죽어 있었던 탓이다. 지난해 8월 살인범으로 몰린 대학생 친구를 대리했던 변호사를 인터뷰했을 때 그는 “기자를 사람으로 취급할 수가 없다”는 신랄한 비판을 했다. “모 매체 기자에게 실컷 사건 설명을 했는데 정반대 내용으로 기사가 나왔다. 항의했더니 그 기자가 ‘데스크 지시라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 이러니 기자를 사람으로 보겠나”라는 것이었다. 자신이 취재한 팩트를 데스크에게 설명·설득하지 않는 기자도, 기사 방향을 정해놓고 무조건 쓰라고 지시하는 데스크도, 나로선 상상하기 어려운데 존재하는 게 현실이다. 여기엔 어떤 갈등도 없다. 기자와 데스크가 사이좋게 손잡고 나쁜 언론을 구현한다.

 

지난해 5월 관훈클럽 세미나 또한 한강 대학생 사망사건 보도를 주제로 삼았다. 세미나 토론 시간과 식사 자리에서 다양한 매체 소속 언론인들이 비판, 자조, 냉소를 쏟아냈는데 한 기자가 이런 말을 했다.

 

“(살인 의혹을 부풀리는) 기사가 문제가 있다고 말하면 부장이든, 국장이든 다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팔리는) 기사는 써야 하는 것 아니냐는 분위기다. 그러니 아무도 쓰지 말자고는 못 한다.”

 

언론 시장을 지배하는 경제적 유인(잘 팔리는 뉴스는 뭐든 써야 한다)과 뉴스룸 이견·소통의 부재(말해봤자 소용없다)가 어떻게 언론의 실패를 낳는 메커니즘으로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일단면이다.

 

저널리즘 원칙 살려내는 언론사

 

그러나 놀랍게도 언론계엔 저널리즘 원칙이 실종되지 않았다. 강고한 경제적 유인에도 불구하고 본연의 임무를 자각하는 기자들이 있다. 국정농단이라는 최악의 권력 게이트를 드러낸 것이 JTBC 등이었고, 줄기세포 논문 조작이라는 대형 과학 사기를 폭로한 것은 MBC였다. 눈부신 언론의 성공 사례다. 문제의식을 가진 기자와 소통할 줄 알았던 데스크가 언론의 실패를 막은 사례도 있다. 한강 대학생 사망 사건 보도가 한창일 때 한국일보는 사회부 기자들의 문제 제기를 받아들여 의혹 보도를 자제하고 최대한 확인된 사실만 보도하는 논조를 유지했다. 뉴스룸 내 이견과 토론이 저널리즘 원칙을 살려낸 것이다.

 

언론사의 뉴스 판단과 뉴스는, 뉴스룸 구성원들 역량의 총합이자 타협의 결과물이다. 유능한 취재기자와 데스크의 존재가 결정적이지만, 그들 사이의 소통 또한 못지않게 중요하다. 평기자와 팀장, 팀장과 부장, 부장과 국장 사이에 활발한 보고와 피드백, 조율, 상의, 때로 격한 토론이 곧 뉴스 판단의 과정이다. 데스크의 역할과 책임이 월등히 큰 게 사실이나 기자가 자기 의견 없이 데스크 지시를 따르기만 한다면 결코 성공하기 어렵다.

 

마감에 쫓기는 업무 특성상 기자 조직은 수직적 지시 체계를 따른다. 동시에, 부장 국장을 ‘님’으로 부르지 않으며 한 명 한 명이 독립적 기자라는 의식을 갖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이견과 토론은 어떤 언론사에선 억압되고 어떤 언론사에선 번창한다. 조용한 뉴스룸은 일사불란한 게 장점일 것이고 시끄러운 뉴스룸은 때로 징계·퇴사·불신 등 아름답지 않은 갈등으로 번진다. 나는 여전히 뉴스룸 갈등보다 갈등의 부재가 더 큰 문제라고 믿는다. 사이좋게 손잡고 ‘망하는 언론’의 길로 나아가느니 다른 곳을 바라보는 누군가 “그쪽이 아니다!”라고 말할 줄 알아야 처참한 언론 실패를 막을 수 있다.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를 지키는 언론의 요체다. 언론 스스로 내부 민주주의를 갖춰야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것이다.

 

 

 

 

 

1) 본고는 기고 요청에 따라 필자 개인 SNS에 올렸던 글을 수정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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