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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언론사들이 이제 막 AI를 뉴스 제작에 활용하기 시작한 이때, 한국일보가 국내 언론사 최초로 생성형 AI 준칙을 제정해 화제가 되고 있다. 역사적인 첫 AI 활용 준칙을 발표하기까지, AI를 둘러싼 다양한 의문과 쟁점을 풀어간 과정을 들어 본다. 편집자 주
다양한 산업, 교육, 예술 현장을 들썩이게 하는 생성형 인공지능(AI)의 발전 속도가 무섭다. 언론계 또한 이 혁신의 세례 속에 있다. 그런데 저널리즘에서 생성형 AI는 위력적 도구이자 위협적 도전이다. 생성형 AI는 글이든 이미지든 영상이든 생성(창작)하는 능력이 가공할 만하다. 이는 기자의 업무를 크게 바꿀 것이다. 하지만 AI가 생성한 내용은 정확성을 보장하지는 못한다. 기술의 근본적 한계로 편향과 차별, 저작권 침해 소지를 피할 수가 없다. 이런 면에선 언론이 AI를 사용하는 게 맞는지 의심스럽다. 언론이 생성형 AI를 사용하는 기준과 합의가 필요한 이유다.
생성형 AI 도입 시작하는 언론
국내 언론사들은 생성형 AI를 뉴스 제작에 활용하는 초기 단계에 와 있다. 조선일보는 IT업체 미디어DX와 함께 조선일보 기사 5만 건을 학습시킨 챗GPT 기반의 ‘조선 AI 기사 작성 어시스턴트’를 개발해 2023년 12월부터 기사 작성에 활용 중이다. 보도자료를 입력하면 기사 초안을 작성할 수 있다. 영남일보는 올해 1월 지역 기업 멜라카와 공동 개발한 ‘AI 이미지 생성 솔루션’을 도입했다. 기사와 관련된 내용의 이미지를 생성할 수 있다.
독자 서비스에도 생성형 AI 기술이 적용되고 있다. 동아일보의 애스크비즈(AskBiz)라는 경제 관련 질의-응답 서비스가 그 예다. 빅스터와 공동 개발한 것으로, 동아비즈니스리뷰(DBR) 등 동아일보 콘텐츠와 박영사 서적 데이터를 학습시켰다.
한국일보는 올해 4월 요약, 이미지 생성, 제목 추천, 키워드 자동 추출 등 보조적 기능을 갖춘 ‘하이(H.AI) 뉴스룸 도우미’를 도입했다. 한국일보 플랫폼개발부문이 오픈AI사의 챗GPT를 기반으로 개발한 것으로 통합 콘텐츠시스템 허브에 장착해 쓰기 시작했다.
올해 하반기에는 한국일보 기사 데이터베이스를 학습시켜 기사 작성 AI를 개발할 계획이다. 이 밖에 기사, 이미지, 영상 제작 목적으로 생성형 AI 도구를 개발하는 언론사들이 다수 있다.
AI 도입 전 준칙부터 만든 한국일보
국내 언론사 중 AI 활용 준칙을 갖춘 곳은 한국일보가 유일하다. 최영재 한림대 교수는 한국일보 AI 준칙 제정을 “역사에 남을 일”이라고 했다. 한국일보는 다른 언론사들과 달리 생성형 AI를 업무에 사용하기에 앞서 준칙을 먼저 제정했는데, 언론학자들은 이를 모범적인 사례로 평가하고 있다.
주변에서 이런 질문을 더러 받았다. 한국일보는 왜 준칙부터 만들었을까. 대단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2023년 6월 신설된 뉴스스탠다드실을 8월 본격 가동하며 AI 준칙 제정 계획을 세운 것이 이유라면 이유다. 챗GPT의 등장 이후 놀라운 발전 속도를 보면서 언제든 뉴스 제작에 생성형 AI가 쓰일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뉴스스탠다드실은 지난해 12월부터 자료를 수집하고 쟁점을 연구한 뒤 준칙 초안을 작성했다. 이어 뉴스룸국·신문국·노조 대표로 ‘생성형 AI 활용 준칙 TF’를 구성해 의견을 수렴했고, 스탠다드자문위원의 자문을 거쳐 전문과 8개 조 20개 항으로 구성된 준칙을 완성했다. 지난 4월 4일 노사가 조인식을 갖고 준칙에 합의함으로써 한국일보는 국내 언론사 중 최초로 AI 활용 준칙을 가진 언론사가 됐다.
준칙 제정의 쟁점… 가장 큰 문제는 저작권 침해
준칙을 만드는 과정은 먼저 온 미래를 체험하는 시간이었다. 인간 기자가 해야 할 일과 생성형 AI가 할 일은 어떻게 나눠야 하나, 인간의 독창성이란 무엇인가, 현장의 기록과 재구성된 현장은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인간과 AI는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 실질적인 쟁점부터 다소 철학적인 고민까지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논의가 오래 걸렸던 쟁점들이 있다. 전문가, 즉 스탠다드자문위원 사이에서는 생성형 AI 사용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가 가장 어려운 문제였다. 글쓰기를 AI에게 맡기면 기자의 존재 이유가 남느냐는 입장부터, 이미 단순 스트레이트 기사를 쓰는 봇들이 있는데 생성형 AI가 더 잘 쓴다는 이유로 금지하는 게 맞느냐는 입장이 오갔다.
한국일보 AI 준칙 제정 TF에 속한 기자들은 AI가 뉴스 제작에 참여한 사실을 독자에게 공개할 때 어디부터 AI가 참여한 것으로 봐야 하는지를 오래도록 따졌다. ‘AI가 쓴 문장이 한 줄만 포함돼도’, ‘한 줄 이상 포함하면’, ‘AI가 주도적으로 기여했다면’, ‘50% 이상 차지한다면’ 등과 같은 기준이 언급됐고, AI의 기여도를 과연 계측할 수가 있느냐는 회의적 입장 또한 뒤따랐다.
내가 가장 고민했던 것은 저작권 침해 관련 기준이었다. 뉴스가 다른 이의 저작권을 침해하면 안 되는 것은 당연하지만, AI가 생성한 글이나 이미지가 저작권을 침해했는지 확인하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문제였다. 이 때문에 뉴스 제작에 AI 사용을 금지하는 해외 언론사도 있다.
준칙의 대원칙
저널리즘 가치를 지키는 것
이러한 고민과 합의의 산물이 한국일보 생성형 AI 활용 준칙이다. 준칙의 대원칙은 뉴스 제작의 도구적 혁신과 무관하게 뉴스의 정확성, 다양성, 독립성과 같은 저널리즘 가치는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다. 준칙 전문과 1조 책무성 원칙에 명시한 내용이다. 두 번째 원칙은 “생성형 AI는 기술적 한계와 데이터 편향으로 정확성, 공정성 등을 보장할 수 없으므로 뉴스 제작 구성원의 사실 확인, 검토, 수정 등 관여 없이 AI를 활용한 뉴스를 보도해서는 안 된다”는 인간의 감독 원칙(준칙 2조 1항)이다. 즉 AI 뉴스 생성을 자동화해 출고하는 것은 금지했다.
한국일보 준칙은 취재, 즉 사실 확인을 제외한 뉴스 제작 전반에 생성형 AI를 활용할 수 있도록 허용 범위를 폭넓게 열어두었다. 대신 AI 활용 사실을 투명하게 밝히도록 구체적 기준과 방법을 담아 균형을 맞추고자 했다. 매우 허용적인 준칙이지만 분명하게 제한되는 영역이 있다. 사실 확인은 반드시 기자가 하도록 했고, 창의적 글쓰기나 현장 기록을 생성형 AI로 대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생성형 AI가 편향과 차별 위험이 크다는 것에 주목해 다양성과 포용성 원칙(준칙 5조)을 따로 규정한 것도 한국일보 준칙의 특징이다. “생성형 AI를 활용한 뉴스에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시각이 반영됐는지, 소수 집단의 목소리가 배제되지 않았는지, 차별적 표현과 관점이 포함되지 않았는지 확인하고, 균형 보도, 다양성·포용성 원칙에 맞도록 수정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밖에 저작권과 개인정보 침해에 유의하라는 내용을 담았고, 독자 서비스, 기술적 보안 조치 등을 포괄했다.
좋은 저널리즘은 결국 인간의 몫
AI 기술 혁신이 가져올 변화의 끝을 상상하기는 어렵지만, 우리는 지금 그 시작을 보고 있다. 지금도 AI가 생성하는 이미지와 영상은 실제와 구분하기 어려운 경지다. AI가 제시한 아이디어와 글은 웬만큼 짜임새가 있고 간혹 참신하다. 여기서 기자들은 AI가 생성한 글, 이미지, 영상으로 현장을 기록한 기사, 사진, 영상을 대체하려는 욕망과 싸워야 한다. AI 생성물을 보도하면서 현장 기록으로 오인하게 한다면 사실 보도라는 저널리즘의 핵심 가치를 근본부터 흔드는 것이다. 언론에 대한 신뢰를 심각하게 손상할 수 있다.
반대로 생성형 AI 기술을 제한함으로써 저널리즘 가치를 지킬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유용한 기술은 준칙으로 막는다고 현실에서 막을 수 없다. 생성형 AI로 기사 쓰기를 금지한다 해서 기사가 좋아지지는 않는다. 인간 기자들이 쓰는 엉터리 기사들이 매일 쏟아져 나오는 형편에 말이다.
좋은 저널리즘은 결국 인간의 몫이다. 생성형 AI를 얼마나, 어떻게 활용하든 뉴스는 인간 기자가 만든 것이다. 기술 혁신이 언론 환경과 뉴스 내용에도 영향을 미치겠지만 의미 있는 뉴스를 만들고 언론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결국 언론인에 달린 것이다. 이것이 AI 저널리즘 시대에 기자들이 잊지 말아야 할 핵심이다. AI 준칙을 만들 때 유념해야 할 대원칙이다.
나중에 생성형 AI가 효율뿐만 아니라 창의성과 사실 반영에서도 인간을 능가할 때가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미래에는 그에 걸맞은 준칙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새롭게 구성될 저널리즘조차 AI의 것은 아니다. 무엇이 좋은 뉴스인지, 보도의 기준은 무엇이어야 하는지는 기술에 의해 정해지지 않는다. 인간이 결정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