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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다수의 지역 언론사는 선거 보도 관행을 답습했다. 그러나 그 가운데 지역 유권자를 위해 선제적 시도를 보여준 언론사도 여럿 있었다. 지역 언론의 가능성을 보여준 지방선거 보도 사례를 살펴본다. 편집자 주
내가 사는 지역의 시·도지사부터 비례대표 구·시·군 의원까지, 총 7장의 표를 행사했던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이하 지방선거)가 지난 6월 1일 끝났다. 이번 지방선거는 대선의 여파로 각종 선거 일정이 지연되고 지역 공약도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 유권자들의 관심이 저조했다. 투표율 역시 지난 2002년 제3회 지방선거 이후 역대 두 번째로 낮았다.
다만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일부 지역 언론사들은 지역 중심, 유권자 중심 보도를 포기하지 않았다. 다양한 방식과 형식으로 출마자를 소개하는가 하면 빅데이터·AI 기법을 도입해 판세를 분석하는 등 새로운 실험을 진행했다. 지방선거가 지역 언론에겐 일종의 축제이자 그 어느 때보다 지역 언론 존립의 필요성을 입증하는 장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역 언론의 다양한 지방선거 프로젝트
특히 이번 지방선거에선 시민의 관심을 끌어올리기 위해 상향식 선거 참여 운동을 시도하는 지역 언론사들이 적지 않았다. 선거에 나선 후보들을 소개하고 공약을 비교·검증하는 데서 나아가 시민의 목소리를 공약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이었다. 여수MBC의 ‘시민이 말하는 대로’ 프로젝트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 프로젝트는 여수MBC가 여수·순천·광양YMCA와 함께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공론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지역별 입후보자에게 공약을 제안하는 기획이었다. 여수MBC 홈페이지와 구글 폼을 통해 제안 받은 공약을 뉴스와 TV 프로그램, 유튜브 콘텐츠 등으로 제작해 도지사·도의원, 교육감, 각 지역 시장·시의원 후보에게 전달하는 방식이었다. 여수MBC 측은 “후보자들의 ‘말’이 주도하는 선거에서 벗어나 시민이 원하는 공약을 후보자에게 밀어 올리는 ‘상향식 선거 의제화’”를 위해 이번 기획을 시도했다고 밝혔다. 실제 이 기획을 통해 제안된 공공도서관 운영 시간 확대, 공공기관 비상용 무료 생리대 배치 등의 공약은 여수MBC 뉴스와 유튜브 등을 통해 소개된 것은 물론 지방선거 출마자들에 직접 전달됐다.
국제신문 역시 부산참여연대, 부산환경운동연합 등 부산 지역 시민단체들과 ‘동네를 바꾸는 백자(100자)의 힘-시민 선거캠프 동백’ 캠페인을 진행했다. 1,000명의 시민이 제안한 100자 공약 중 분야별 우선순위 공약을 선정해 부산시장 후보에게 공개 질의하고 채택된 공약의 이행 상황까지 점검하는 운동이다. 국제신문은 이를 통해 부산시민 1,072명으로부터 공약 제안을 받았고, 5개 분야의 대표 공약을 부산시장 후보
자들에 전달했다.
전주MBC도 학계, 시민단체와 함께 상향식 지방선거 의제를 선정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지난 3월부터 한국정책학회, 호남언론학회, 전북민주언론시민연합 등과 ‘2022 지방선거 의제선정위원회’를 꾸려 논의하고, 도내 11개 시민·노동단체로부터 선거 의제를 제안받은 것이다. 전주MBC는 의제선정위원회에서 최종 선정된 5개 분야 27개 의제에 대해선 도지사와 교육감, 전주시장 후보들에게 답변을 받아 이를 연속 보도로 내보냈다. 김아연 전주MBC 기자는 기자협회보와의 통화에서 “유권자들이 선거에 관심이 없다는 게 어떻게 보면 지역방송의 책임도 크다는 생각이 든다”며 경마식 보도, 당 공천이나 상황을 단순히 따라가는 보도를 지양하기 위해 이러한 시도를 했다고 밝혔다.
상향식 의제 설정은 아니지만 언론사 차원에서 선제적으로 지역 현안을 부각해 정책에 반영되게끔 노력한 곳도 있었다. 경기일보는 지난 3월 중순부터 ‘6·1 지방선거_이것만은 해결하자’란 제목 아래 31개 시·군별로 지역 현안을 부각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기자들이 지역 주민들의 의견을 듣고, 당선자가 꼭 해결해줬으면 하는 정책을 대신 제안하는 기획이었다. 이선호 경기일보 지역사회부장은 “그동안 우리가 지방선거에서 너무 후보자 중심적인 기사를 생산했던 것 아니냐, 하는 내부 논의가 있어 이번엔 독자 중심, 지역 중심의 기사를 생산하자는 생각으로 기획을 했다”며 “경기도 31개 시·군의 현안이 모두 다르다. 지역 주민들이 원하는 정책을 우리가 선거 의제로 후보들에게 전달하고, 해결 방법을 찾는 등 지역 언론의 역할을 다해보자는 차원에서 보도했다”고 말했다.
어떻게 하면 지역민의 관심을 끌 수 있을까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지방선거 정보를 쉽고 재밌게 풀어내는 시도들도 있었다. 인포그래픽과 빅데이터 분석, 팩트체크 등 다양한 코너를 선보였던 중부일보가 그중 하나다. 중부일보는 수도권 모든 여론조사를 시각화해 인포그래픽으로 제공하는 한편 여러 빅데이터를 활용해 경기도지사와 인천시장 후보들의 관심도를 분석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지난해 SNU팩트체크센터의 제휴사가 되면서 후보들의 공약과 주장을 검증하는 팩트체크 콘텐츠도 제작했다.
특히 지난 제20대 총선에 많은 관심을 받았던 ‘격파남(격전지 여론조사를 파헤치는 남자)’은 이번에 AI를 장착해 새로운 콘텐츠를 들고나왔다. 격파남은 이한빛 기자가 선거 판세를 이해하기 쉽게 분석하는 유튜브 콘텐츠로, 이번엔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의 AI 캐릭터를 접목하는 방식으로 업그레이드했다.
민병수 중부일보 디지털뉴스부 부국장은 “휴대폰 외엔 아무 장비도 없던 시절, 독자들의 주목을 끌기 위해 시도한 게 격파남”이라며 “지난 총선 때 히트를 쳐서 이번엔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만들었다. 선거를 딱딱한 측면으로만 접근하면 지루하니, 재미 요소를 넣는 등 다양한 디지털 시도를 했다”고 말했다.
뻔한 후보 소개를 색다른 방식으로 접근한 지역 언론사들도 있었다. MBC충북은 지난 4월 초부터 <예비 후보 탐구생활>이라는 제목으로 유튜브 콘텐츠를 제작했다. 일반적인 정책 토론회로는 후보자들의 면면을 알 수 없다고 판단, 아예 편집 없이 후보자들을 1~2시간 내리 인터뷰하는 콘텐츠였다. 정규 방송에선 불가능한, 유튜브이기에 가능한 제작물이다. 신미이 MBC충북 보도팀장은 “정치를 20년씩 한 분이더라도 막상 그 후보가 누군지 물어보면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더라”며 “그렇다면 1~2시간 함께 수다를 떨면서 후보가 어떤 어려움을 겪었고, 가치관과 비전은 무엇인지 등 A부터 Z까지 알리자고 생각했다. 후보들도 멍석을 깔아주니 속 시원히 얘기하다 간다”고 말했다.
경남도민일보 역시 출마한 예비 후보들을 색다르게 소개하는 시도를 했다. 기사 형식은 크게 다르지 않지만 흡사 ‘나무위키’처럼 페이지 하나에 출마자 명단과 관련 기사를 링크로 걸어 독자들이 손쉽게 훑어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지방자치단체장이나 도의원뿐 아니라 시·군 기초의원까지 볼 수 있도록 했다. 이승환 경남도민일보 뉴미디어부장은 “예비 후보들이 계속 출마 선언을 하면서 지면에선 모두 소화할 수가 없어 웬만하면 온라인으로 처리하자고 기자들 간 합의가 됐는데, 출마 기사들이 산발적이어서 보기가 번거로웠다”며 “어차피 선거 기간 내내 추가될 거니 차라리 모아보자 했고, 추가 장치 없이 기사 입력 툴을 활용해 페이지를 만들었다. 출마한 후보가 기자회견을 하면 그 링크도 옆에 붙여나갔다”고 말했다.
지방선거 당일엔 지역 밀착형 개표 방송을 준비한 언론사도 여럿 있었다. 주요 방송사의 개표 방송은 광역자치단체장과 재·보궐 선거에 집중되기 마련이라 내 지역, 우리 동네 선거 정보와 당선자 소식을 지역민이 세세히 확인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자칭 ‘로컬 개표 방송의 명가’를 내세운 MBC경남은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유튜브를 통해 실시간 개표 방송 <누가 될까?>를 진행해, 오후 9시부터 개표가 완료될 때까지 생방송을 이어갔다. TJB대전방송도 <우리지역 표심 추적단>이란 제목의 유튜브 개표 방송을 통해 대전·세종·충남 지역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방송했다.
100점은 아니지만… 더욱 좋은 보도 탄생할 수 있을 것
다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역 언론들의 이번 지방선거 보도를 100점짜리라 단언하긴 어렵다. 수많은 노력과 시도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점이 적지 않아서다. 다수의 지역 언론사들은 여전히 여론조사 중심의 경마식 보도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고, 후보자 면면이나 정책 검증 역시 치밀하게 이뤄지지 못했다.
경기·경남·광주전남 등 7개 지역 민주언론시민연합이 지난 4월 말 결성한 ‘2022 지방선거보도 민언련감시단’은 이번 지방선거를 두고 “대다수 언론이 정보 전달과 여론 형성이란 언론 본연의 역할을 하기보다 과거 선거 보도 관행과 정치권에 의해 짜인 대선 구도에 편승해 지방선거 관심도를 떨어뜨리는 데 일조했다”고 비판했다. 감시단은 관련 토론회에서도 선거 보도 관행을 진단했는데, 부산민주언론시민연합은 “공약·정책 보도에서 단순 전달 기사 비중이 32.4%를 차지하며 평가·분석·검증 기사 비중은 0%”라고 분석했다. “상대 후보에 대한 평가도 후보의 말을 그대로 전달할 것이 아니라 검증된 평가를 기반으로 내보내야 한다”, “유권자에게 공약 평가 보도가 필요하지만 관련 보도는 거의 없는 상황”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지역 언론에서 희망적인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니다. 가뭄의 단비 같은 시도는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꾸준했고, 보도가 가진 철학은 더욱 깊어졌다. 지역 정치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일부 언론사들의 선제적 시도는 다른 언론사에게 귀감도 되고 있다. 다음 선거에서는 더욱 풍성한 기획과 보도가 탄생할 수 있을 거라 믿으며, 지역 언론들의 노력과 고민을 응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