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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루나·테라 사태는 침체된 전 세계 암호화폐 시장을 더욱 얼어붙게 만들었다. 테라와 루나를 합쳐 약 57조 원이 일주일 만에 증발한 것이다. 심층 취재가 부족한 해외 언론 받아쓰기 위주의 암호화폐 보도의 문제점을 살펴보고 어떤 대안이 필요할지 살펴본다. 편집자 주
코인계의 리먼브라더스 사태
미국 시간으로 지난 5월 9일, 알고리즘 스테이블 코인(algorithm stable coin)1)인 테라(UST)의 디페깅(depegging)이 발생했다. 개당 1달러(약 1,300원) 가치를 보장한다던 테라의 가격이 0.68달러로 떨어진 것이다.2) 원래 설계대로라면 테라가 디페깅될 때 자동으로 자매 코인인 루나(LUNA)로 테라(UST)를 사들이면서 테라 가치가 1달러로 회복돼야 했다.
그런데 테라를 사들이기 위한 루나가 너무 많이 발행되면서 루나 가격이 폭락해버렸다. 루나로 테라를 충분히 사들일 수 없게 되자, 테라 가격도 그대로 수직 하락했고 이로 인해 루나가 무한 발행되는 죽음의 소용돌이(death spiral)가 일어났다. 결국 며칠 만에 테라 가격은 0.01달러(약 13원)까지, 한 달 전 115달러(약 15만 1,400원)를 넘었던 루나는 0.000025달러(약 0.03원)까지 폭락했다. 테라와 루나를 합쳐 시가 총액 57조 원이 일주일 만에 증발해버렸다.
그렇지 않아도 금리 인상 등으로 침체된 전 세계 암호화폐 시장은 테라 사태로 더욱 얼어붙었다. 영국 가디언은 테라 폭락 직후 2008년 금융위기 같은 “코인계의 리먼브라더스 사태”일 수 있다며 우려했다.3)
실제로 비트코인 가격은 테라 사태 전 4,500만 원 수준에서 급락해 한때 반 토막 수준까지 떨어졌다. 7월 11일 현재 암호화폐 시가 총액은 9,092억 달러(약 1,190조 5,064억 원) 수준으로 연초 2조 1,600억 달러(약 2,843조 6,400억 원)에 비해 1조 2,508억 달러(약 1,646조 6,700억 원)나 감소했다.4)
테라 사태는 곧 언론의 참사
테라 사태 후 국내 언론은 관련 보도를 쏟아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뉴스 분석 시스템 빅카인즈에 따르면, 테라 사태가 터진 5월, 54개 언론사에서 암호화폐 관련 기사를 3,811건이나 보도했다. 전월 2,550건에 비하면 거의 50% 가까이 늘어났다.
그러나 미디어가 테라 사태를 제대로 전한 것만은 아니었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는 지난 6월 <달의 몰락: 99.99% 루나 대폭락의 진실>에서 앵커 프로토콜 로고를 전혀 다른 암호화폐 프로젝트인 ‘앵커(ANKR)’로 써서 빈축을 샀다. 뿐만 아니라 그동안 언론사들은 테라 발행사인 테라폼랩스의 권도형 대표가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에서 일한 천재 개발자라고 보도했지만, 실제론 각각 3개월 인턴으로 일한 게 다였다.
물론 테라 사태 이후 암호화폐 급락은 암호화폐 전문가도 쉽게 예견하지 못했다. 국내 최대의 블록체인 전문 투자사인 해시드도 테라 사태로 손실을 봤다.5) 세계 최대의 암호화폐 거래소 바이낸스(Binance)와 미국 최대의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Coinbase)도 테라폼랩스에 투자했다. 비트코인 폭락으로 테슬라는 5,800억 원, 넥슨은 800억 원가량 손해를 봤다고 알려졌다.6)
그럼에도 언론이 테라 사태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순 없다. 암호화폐 전문가인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5월 한국경제 기고에서 테라 사태의 원인으로 테라의 구조적 결함, 업계의 자정능력 부족, 미흡한 정부 정책과 함께 언론의 무분별한 홍보성 기사를 꼽기도 했다.7)
입맛대로 골라 쓰는 해외 언론 보도
테라 사태 후 국내 언론 보도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없던 건 아니다. 오마이뉴스는 지난 5월 조선비즈나 월간조선 기사를 비판했다.8) 여기에 소개된 월간조선 보도의 경우 전체적으론 규제 일변도인 정부의 블록체인 정책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9)
오마이뉴스가 문제 삼는 것은 이 기사 서두에 소개된 ‘루나 백만장자(Luna Millionaires)’ 사례다. 그런데 사실 이 사례는 뉴욕타임스가 지난 2월 보도한 내용을 가져온 것이다.10) 뉴욕타임스 보도 역시 비트코인 이외의 암호화폐에 투자해 돈을 번 사람들을 다분히 선망의 대상으로 그렸다. 다만 해당 보도는 루나는 아니지만 다른 암호화폐를 비판적으로 소개해 균형을 맞췄다. 월간조선 기사의 진짜 문제점은 해외 언론사의 보도를 입맛대로 한쪽 내용만 가져다 썼다는 점이다.
국내 보도의 또 다른 문제점은 해외 언론 보도 내용을 검증 없이 쓰는 것이다. 앞서 권도형 대표의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 근무 경력은 블룸버그(Bloomberg)가 4월 권 대표와 인터뷰하면서 소개한 내용이다. 이를 국내 언론사들이 그대로 받아썼고, 이를 다른 언론사들이 재생산했다.
심층 취재 없는 암호화폐 보도
가장 큰 문제는 블록체인 생태계 내부에 대한 자체 심층 취재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테라 관련 보도의 상당수는 해외 보도를 그대로 가져다 쓴 것이다. 테라 사태 이후에도 국내 언론은 권도형 대표의 인터뷰를 월스트리트저널 기사에서 가져왔다.11) 테라처럼 국내서 시작된 프로젝트도 이 정도니 해외에서 시작된 다른 암호화폐 프로젝트는 말할 것도 없다. 직접 취재가 아닌 해외 언론에 의존하다 보니 제대로 맥락을 짚어내는 보도가 어렵다.
사실 해외 암호화폐 프로젝트 취재만 부족한 것은 아니다. 암호화폐 보도는 보다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이를 살펴보기 위해 빅카인즈에서 2017년 1월 1일부터 2022년 6월 30일까지 5년 6개월 동안 수집한 암호화폐 관련 기사 전수를 분석해보았다. 검색어는 ‘블록체인’, ‘암호화폐’, ‘가상자산’, ‘가상화폐’였다.
전체 기사 수는 12만 9,236건이었다. 이 중 인용문이 한 건도 없는 기사는 3만 188건이었다. 해설이나 사설 성격의 기사를 제외하면 이런 기사의 상당수는 단신성 단순 보도로 추정된다. 인용문이 한 건인 기사도 5만 3,129건이나 된다. 취재 관행상 이런 기사는 보통 보도자료를 단순 기사화한 경우가 많다. 즉 한쪽 견해만 일방적으로 전달했을 가능성이 크다. 자연어처리로 추출한 인용문의 숫자라 약간의 오차가 있다 해도, 전체 기사의 64%가 인용문 한 건 이하라는 점은 문제다.
기사 ‘질보다 양’…단순 보도 다수
기사를 너무 많이 생산하는 것이 취재 부족의 원인일 수 있다. 실제로 2017년엔 연중 350일 암호화폐 관련 기사를 쏟아냈다. 2018년부턴 아예 하루도 빠짐없이 기사가 나왔다.
언론사별로는 빅카인즈 수록 경제지와 전문지 전체인 10개 매체가 보도량 1위부터 10위까지 독차지했다. 보도량 1위는 서울경제신문으로 총 1만 1,724건의 기사를 내놨다. 분석 기간 동안 가장 기사를 많이 쓴 기자는 총 1,126건의 기사를 쓴 전자신문의 길재식 기자다. 890건으로 2위를 기록한 허준 파이낸셜뉴스 기자는 2019년엔 290일 동안 무려 677건의 기사를 썼다. 심지어 두 기자 모두 블록체인 분야만 취재하진 않았다. 길 기자는 금융산업 전문기자였으며, 허 기자는 게임 등 콘텐츠와 통신이 주된 취재 범위였다. 다른 분야 기사까지 포함하면 이들이 작성한 실제 기사 수는 더 많다는 얘기다.
블록체인 취재 전담 기자 필요해
기자들의 블록체인 관련 전문성도 다소 부족하다. 5년 반 동안 블록체인 기사를 한 번이라도 쓴 기자 수는 6,000명을 넘는다.12) 이중 기사를 100건 이상 쓴 기자는 189명뿐이다. 전체 기사 작성자의 3%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앞서 살펴봤듯이 블록체인 관련 기사를 많이 쓰는 기자도 다른 분야를 맡으면서 블록체인 분야까지 함께 커버하는 경우가 많다. 2018년부터 2년간 238건의 기사를 쓴 김진솔 매경닷컴 기자처럼 인턴 기자가 블록체인 기사를 도맡는 경우도 있다.
물론 일부 기자는 블록체인만 전문으로 취재하기도 한다. 특히 해당 언론사가 블록체인 전문 매체를 둔 경우 블록체인 전문 기자가 있을 수 있다. 파이낸셜뉴스 계열 블록포스트의 김미희 기자(814건), 서울경제신문 계열 디센터의 심두보 기자(491건) 등이 해당된다.
블록체인 전문 매체의 취재엔 다른 논란거리도 있다. 이런 매체는 블록체인 기업이 언론사와 함께 투자한 경우가 많다. 이해 상충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기자가 블록체인 관련 사업을 하면서 취재를 병행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 기자가 전문성은 갖출 수 있지만 취재에 충분히 공을 들이기 어렵다. 블록체인 전문 매체는 취재 부문을 사업 부문과 따로 분리하고, 저널리즘 훈련이 된 전담 출입 기자를 최소한 한 개
팀 단위로 배치해야 한다.
블록체인 관련 데이터 저널리즘 활성화해야
물론 좋은 보도도 있다. YTN의 <무법지대에서 활개치는 가상화폐> 보도와 같은 심층 기사는 방송기자연합회의 ‘이달의 방송기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13) 다만 이런 기사가 사회부 등 다른 분야에서 일회성 기획으로 나온다는 점이 아쉽다.
사실 블록체인 보도야말로 데이터 저널리즘을 활용한 심층 취재가 요구된다.14) 원칙적으로 블록체인은 모든 거래 내역이 투명하게 공개되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이상적이라면 테라 사태 역시 실시간 모니터링을 통해 위험 징후를 사전에 발견할 수 있었다. 문제는 대형 암호화폐가 아닌 경우 업체가 제공하는 블록 익스플로어 정도만 제공되며 그나마도 들여다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거래 내역을 수집, 분석할 수 있는 암호화폐 및 가상자산 데이터베이스가 구축될 필요가 있다.15)
장밋빛 가득한 업계나 규제 일변도의 정부 측 정보원에 치우치지 않고 독자적인 탐사보도 역량을 갖춘 블록체인 전문 기자 양성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블록체인 전문 기자는 비리를 파헤치는 탐사보도 역량을, 전통 미디어 기자는 블록체인에 대한 이해를 키워야 한다. 언론계의 자율 규제를 위해 블록체인 보도를 포함한 경제 보도 준칙도 마련돼야 한다.
탈중앙화로 대변되는 블록체인 기술의 잠재력은 여전히 크다. 중앙화된 플랫폼 기업의 독점을 깨고, 웹 생태계의 중심을 개발자와 투자자에서 창작자와 사용자에게 이동시킬 것으로 기대된다.16) 그러나 실제론 사람들이 탈중앙화의 가치를 맹신하게 만들고, 이를 제대로 된 견제 없이 자본의 탐욕을 채우는 데 악용하려는 시도가 블록체인 생태계에 팽배하다. 블록체인 분야의 언론인들은 이러한 허구를 폭로하는 것을 넘어서, 블록체인의 탈중앙화 이념을 복원하고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저널리즘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릴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1) 스테이블 코인은 코인 가치를 다른 법정 통화와 1대 1로 고정하는 고정 환율제를 적용한다. 화폐 가치를 고정시키는 것을 페깅(pegging)이라고 한다. 그 종류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달러와 같은 법정 통화를 담보로 한 경우다. 달러와 연동된 테더(USDT)가 대표적이다. 둘째, 비교적 가치가 보장된 암호화폐를 담보로 하는 경우가 있다. 이더리움 담보의 메이커 다오(MakerDAO)가 유명하다. 셋째, 무담보인 경우로 알고리즘만으로 가치를 유지하는 알고리즘 스테이블 코인이다. 문제가 된 테라가 세 번째 방식이다.
2) CoinMarketCap, TerraClassicUSD, 2022, https://coinmarketcap.com/ko/currencies/terrausd/
3) Hern, A., <Could terra fall prove to be Lehman Brothers moment for cryptocurrencies?>, The Guardian, 2022.5.11, https://www.theguardian.com/technology/2022/may/11/terra-price-cryptocurrency-stablecoin
4) CoinMarketCap, Total Cryptocurrency Market Cap, 2022, https://coinmarketcap.com/ko/charts/
5) 박상혁, <국내 VC와 블록체인 업체도 LUNA(테라) 사태 '직격탄'>, 코인데스크코리아, 2022.5.19, https://www.coindeskkorea.com/news/articleView.html?idxno=79415
6) 이상덕·명지예, <비트코인 폭락에…테슬라 5800억, 넥슨 800억 물렸다>, 매일경제, 2022.6.15, https://www.mk.co.kr/news/economy/
view/2022/06/525041/
7) 허란, <역대급 '코인 붕괴' 왜 발생했나…루나 사태 A to Z [긱스]>, 한국경제신문, 2022.5.28, https://www.hankyung.com/it/article/202205259979i
8) 임병도, <루나·테라 폭락 사태... ‘천재’‘잭팟’ 외친 언론 책임 없나>, 오마이뉴스, 2022.5.16,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835429
9) 하주희, <천재들이 선도하는 한국 블록체인, 발목 잡는 정부>, 월간조선, 2022.3,http://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G&nNewsNumb=202203100033
10) Yaffe-Bellany, D., <They Made Millions on Luna, Solana and Polygon: Crypto’s Boom Beyond Bitcoin>, The New York Times, 2022.2.7, https://www.nytimes.com/2022/02/07/technology/cryptocurrency-luna-solana-polygon.html
1) Osipovich, A. & Sohn, J., <Do Kwon’s Crypto Empire Fell in a $40 Billion Crash. He’s Got a New Coin for You>, The Wall Street Journal, 2022.6.22, https://www.wsj.com/articles/do-kwons-crypto-empire-fell-in-a-40-billion-crash-hes-got-a-new-coin-for-you-11655914487
12) 총 6,087명이나 동명이인 기자가 있을 경우 이보다 더 많을 수 있다.
13) 정현우, <YTN ‘무법지대에서 활개치는 가상화폐' 이달의 방송기자상 수상> YTN, 2021.5.26, https://www.ytn.co.kr/_ln/0103_202105261703229121
14) Al -Saqaf, W., <Dat a journal ism on the blockchain>, DataJournalism.com, 2019.4.4, https://datajournalism.com/
read/longreads/data-journalism-on-the-blockchain
15) 조재우, <[칼럼] 테라 사태가 우리에게 남긴 숙제>, 코인데스크코리아, 2022.6.30, http://www.coindeskkorea.com/news/articleView.
html?idxno=80066
16) 박대민·명승은, <미디어 블록체인, 플랫폼리스의 기술>, 한국언론진흥재단, 20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