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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언론인들이 한데 모여 교류하는 세계뉴스미디어총회가 지난 9월 28일부터 30일까지 스페인 사라고사에서 열렸다. 올해로 제73회를 맞은 이번 총회에는 전 세계 75개국 1,200명이 참석해 언론의 현안과 미래를 논의했다. 총회에 참가한 세계 미디어 그룹의 최신 흐름을 다섯 개 키워드로 살펴본다. 편집자 주
세계뉴스미디어총회(World News Media Congress) 2022가 지난 9월 28일부터 30일(현지 시간)까지 스페인 사라고사 콩그레스 팰리스(Palacio de Congresos)에서 열렸다. 마스크를 쓰지 않고 길게 늘어선 줄, 대규모 인원이 들어선 대형 강연장. 전 세계를 덮친 팬데믹 여파로 3년 만에야 열린 총회에선 익숙하면서도 낯선 풍경이 펼쳐졌다. 총회 현장 곳곳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가짜뉴스 출몰, 기후 위기 고조 등으로 저널리즘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들렸다.
개인적으로 놀라웠던 점은 지루한 팬데믹 상황에서도 저널리즘을 지속하게 할 새 동력들을 찾은 미디어 기업이 적지 않았다는 점이다. 혁신의 방법은 ‘직접 방문 데이터 확보’부터 ‘광고 플랫폼 개발’까지 십수 가지에 이르렀다. 세계뉴스미디어총회는 1948년 설립된 세계신문협회(WAN)가 주최한 연차 총회에 뿌리를 두고 있다. WAN과 국제미디어기술연구협회(IFRA)가 통합된 2009년부터 WAN-IFRA가 주최하는 행사가 됐다. 올해 제73회 총회에는 전 세계 75개국 1,200명이 참가했다. 다섯 가지 키워드와 이를 대표하는 미디어 기업을 꼽아 현장을 전한다.
#저널리즘이중요하다-가제타비보르차
총회 첫날인 9월 29일은 세계 뉴스의 날이었다. 강연장의 대형 스크린에는 우크라이나 전쟁 참상을 전하는 영상이 돌았다.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를 규탄하는 발표자의 발언도 이어졌다. ‘전 세계 언론자유의 근심스러운 상황’, ‘언론의 신뢰 회복’, ‘저널리즘의 가치 설득’, ‘허위 정보를 막아내는 법’ 등 저널리즘 복원과 자유 수호를 주제로 한 세션이 이어졌다.
이날 전 세계 500여 개의 편집국(newsrooms)도 ‘#저널리즘이중요하다(#JournalismMatters)’라는 간단하면서도 명료한 메시지를 발표했다.
이런 분위기는 ‘황금펜(Golden Pen of Freedom)’ 시상식에서도 계속됐다. 황금펜은 세계신문협회가 매년 언론 자유 수호에 공헌을 한 개인이나 단체에게 주는 상이다. 올해 황금펜 수상사는 폴란드의 일간지 가제타비보르차(Gazeta Wyborcza)다. 폴란드 정권의 탄압에 맞서 언론의 자유를 지키고 비보르차 재단을 설립해 동유럽의 언론사들과 우크라이나 언론인들을 다각도로 지원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조안나 크라프치크(Joanna Krawczyk) 가제타비보르차 재단 사장은 수상 소감을 통해 “우리의 모토는 ‘연대 없이는 자유도 없다’”라면서 “우크라이나 언론을 위한 복구 계획을 준비하고 있는데, 억압받는 독립 언론들을 방치하지 말아 달라”고 강조했다.
펠리페 6세 스페인 국왕도 시상식에 참여해 언론의 자유와 저널리즘 회복에 힘을 보탰다. 펠리페 6세 국왕은 “허위 정보 등이 우리에게 큰 위협이 되는 상황에서 건강한 언론, 저널리즘이 더욱 중요해졌다”고 덧붙였다.
동맹의 힘-에네오
총회가 열린 사라고사는 스페인 5대 도시이자, 옛 아라곤 왕국의 수도였다. 인천에서 스페인 바르셀로나까지 비행기로 13시간, 다시 차량으로 3시간 남짓 달리면 사라고사에 도착한다. 이 유서 깊은 도시에 자리 잡은 에네오(Henneo)는 10년 전만 해도 헤랄도데아라곤(Heraldo de Aragon) 신문을 발행하는 작은 신문사였다. 오늘날 에네오는 스페인의 최대 미디어 기업 중 하나이며 스페인 10대 IT기업으로 꼽힌다. 에네오는 이번 총회의 메인 스폰서이기도 했다.
‘공유의 힘, 스페인 동맹이 주는 교훈’ 세션에서는 스페인 미디어 기업들의 독특하고도 놀라운 행보가 소개됐다. 에네오의 대변신은 2012년에 시작됐다. 구글, 페이스북 등 실리콘밸리 대기업의 광고 시장 잠식으로 2008년 금융 위기 때보다 더 큰 위기를 맞았을 때였다. 에네오는 자체 IT 회사인 이베루스(Hiberus)를 세우고 지역의 컨설팅 회사를 인수했다. IT 컨설팅 비즈니스를 키워나가는 동시에 콘텐츠매니지먼트시스템(CMS) 사록(Xalok)을 자체 개발, 50여 개 매체에 공급했다. 워싱턴포스트가 개발한 CMS 아크(Arc)와 달리, 사록은 이 시스템을 쓰는 매체끼리 데이터를 공유하도록 설계돼 있다. 2019년에는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12개 미디어들이 공동으로 이용하는 기술 및 광고 회사인 알라얀스미디어(Alayans Media) 설립으로 이어졌다. 에네오의 급성장 비결은 IT 역량에 기초한 동맹에 있었던 것이다.
스페인 언론사들의 또 다른 동맹 사례는 언론사 공동 광고 플랫폼 위매스(Wemass)다. 2019년 스페인 3개 대형 미디어 그룹(Vocento, Prisa, Grupo God)이 합병하며 등장했다. 위매스라는 이름이 보여주듯, 언론사 연합을 통해 청중 규모를 만들어 낸 것이 특징이다. 이 광고 플랫폼을 이용하면 대략 스페인 사용자의 94%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한다. 위매스에 참여한 언론사들도 각종 데이터를 공유한다. 카를로스 고도(Carlos God) 위매스 최고경영자는 “서로 경쟁 관계에 있는 언론사들이 협업하는 이유는 독자 규모를 확보하고 기술과 데이터를 공유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뉴스는 상품이다-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블룸버그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블룸버그 등 디지털 구독에 성공한 미디어 기업의 공통점은 상품 담당 총괄이 있다는 점이다. 총회 둘째 날에는 3개 매체의 상품 총괄들이 유료 구독 상품을 만드는 노하우를 전했다. 상품을 만드는 출발은 뉴스·광고·마케팅·엔지니어링 등 서로 다른 역할을 하는 구성원을 한 명씩 모아, 공통 목표를 가진 팀을 구성하는 데 있었다.
새 뉴스 상품을 만들 때 많은 자원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캣 다운스 머더(Kat Downs Mulder) 워싱턴포스트 최고상품책임자에 따르면, 보통 기자 한 명, 편집자 한 명, 엔지니어 세 명이 3개월 걸려 상품 하나를 만든다. 워싱턴포스트의 상품 개발 과정은 △청중(audience)이 무엇을 원하는지 이해하기 △경쟁 상황과 기술 현황 파악하기 △최소한의 상품을 빠르게 만들어 보기(보통 3개월) △시장 최적화(Market-fit)를 위한 미세 조정하기 △계속 상품을 성장시키기 등 5단계를 거친다.
워싱턴포스트의 ‘더세븐(The7)’은 매일 아침 7개 기사를 골라 전해주는 뉴스 큐레이션 상품이다. ‘정보 홍수 속에 뉴스를 읽을 시간이 없다’는 젊은 독자의 목소리에 부응하고자 만든 뉴스 상품이다. 총 7개 기사를 선정하는데, 어려운 뉴스가 있으면 엔터테인먼트 뉴스와 과학 뉴스를 넣어 흥미를 더한다. 처음에는 뉴스레터 형태였으나, 최근엔 오디오 콘텐츠로까지 발전했다.
줄리아 베이저(Julia Beizer) 블룸버그 최고상품책임자는 뉴스 상품인 ‘마켓(Market)’을 만드는 과정을 소개했다. 그는 “뉴스 브랜드인 마켓을 알리고 해당 페이지를 내려받을 때 독자 경험을 높이는 데 신경을 썼다”면서 “독자 개인의 금융 목표를 달성하도록 퀴즈를 만드는가 하면, 관련 뉴스레터를 앱 푸시 알람으로 제공해 콘텐츠 배달에도 공을 들였다”고 말했다. 벤 코튼(Ben Cotton) 뉴욕타임스 구독 성장 총괄은 뉴스 상품을 태양에, 기타 다른 상품(쿠킹, 게임, 라이브 등)을 행성에 비유했다. 그는 “뉴욕타임스가 이 같은 다양한 상품 구성을 만드는 데 무려 10년이 걸렸다”면서 “최근엔 사용자들의 편의성을 높이고 경험을 통합하기 위해 여러 제품을 묶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직접 방문 독자의 중요성-악시오스, 인디펜던트
지난 8월 미국 통신·케이블 기업 콕스 엔터프라이즈(Cox Enterprises)가 미디어 스타트업 악시오스(Axios)를 5억 2,000만 달러(약 7,452억 원)에 인수했다. 2021년 매출은 8,600만 달러(약 1,232억 원)로 전년 대비 40% 늘었고, 뉴스레터 구독자는 2,400만 명에 이른다. 악시오스의 급성장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세션 발표자로 나선 니콜라스 존스턴(Nicholas Johnston) 악시오스 발행인은 “전체 방문자 중 직접 방문자의 비중을 높인 게 급성장 비결”이라고 말했다. 미디어와 관계를 맺고 싶어하는 직접 방문자와의 관계를 강화하는 것이 디지털 미디어 비즈니스의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그는 “독자 트래픽에도 파라미드와 같은 위계가 있다”면서 “직접 언론사 사이트를 방문하거나 뉴스레터를 구독하는 고객이 만드는 트래픽이 최상위 트래픽이며, 검색을 통해 들어오는 트래픽이 그다음, 페이스북을 통해 들어오는 트래픽이 최하위 트래픽”이라고 말했다.
2016년 3월 종이신문 발행을 중단한 영국의 인디펜던트는 익명의 방문자를 등록 회원으로 전환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조 홀더웨이(Jo Holdaway) 데이터 및 마케팅 담당 최고책임자는 “로그인 월, 앱, 전자상거래 등 11개의 방법을 통해 매월 8만 명의 등록 회원을 확보한다”고 말했다. 인디펜던트는 총 400만 명의 등록 회원을 대상으로 맞춤형 광고를 제공하거나 물건을 판매해 수익을 거두고 있다.
자동화와 인공지능의 부상-베르겐스티덴데, 글로브앤메일, 니혼게이자이
매스 미디어 시대에서 경력을 쌓아온 ‘인간’ 편집자들은 많은 사람이 좋아할 만한 아이템을 찾는 데 골몰한다. 하지만 로봇 기자를 이용하면 극소수 사람의 관심사도 뉴스로 다룰 수 있다.
노르웨이 5위권 신문사인 베르겐스티덴데(Bergens Tidende)는 로봇 저널리즘에서 뚜렷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이 회사는 2015년 설립된 스웨덴 기업 유나이티드로봇(United Robots)과 협업해 텍스트, 이미지, 그래픽, 지도 등의 콘텐츠를 대량으로 자동 생산하고 있다.
베르겐스티덴데가 추구하는 로봇 저널리즘은 중앙 정치인의 행보나 거창한 어젠다 논쟁이 아니라 독자 가까이에 있는 뉴스, 즉 동네 뉴스를 발굴하는 데 있다. 세션 제목이 ‘우리 집에 더 가까운 스토리(More stories, closer to home)’였던 이유다.
베르겐스티덴데의 장 스티안 볼드(Jan Stian Vold) 프로젝트 책임자는 이를 ‘하이퍼로컬 스토리(Hyperlocal stories)’라고 명명하면서 “당신이 축구 문외한이라도 당신의 딸이 소속된 동네 축구팀의 경기 결과 뉴스를 읽고 싶어 할 것”이라고 말했다.
베르겐스티덴데에는 두 종류의 로봇 기자가 있다. 지역 내 기업의 실적 보고서를 쉽게 요약해 주는 비즈니스 로봇 기자, 일대의 모든 주택 거래를 보도하는 부동산 로봇 기자다. 이 로봇 기자는 지난 3년 동안 총 3만 5,000건의 기사를 작성했고, 500만 건의 페이지뷰를 만들어 냈다. 이 덕분에 2,000건의 구독권 판매도 이뤄졌다.
캐나다의 글로브앤드메일(The Globe and Mail)도 기술을 고도화한 미디어 회사로 꼽힌다. 글로브앤드메일의 ‘소피 사이트 자동화(Sophi Site Automation)’ 솔루션은 독자에게 가장 매력적인 콘텐츠를 찾아 게시하는 기능을 제공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영어 매체 뉴스24(News24)가 이 솔루션을 보조 에디터로 사용하고 있다. 또 지난 5월에는 유력 통신사 로이터와 제휴를 맺어 소피 알고리즘을 한층 고도화하고 있다. 이 회사는 클릭 한 번으로 종이 신문의 레이아웃을 자동으로 만드는 솔루션도 개발했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는 양자물리학을 전공한 박사를 최고과학자(Chief Scientist)로 두고 이노베이션 랩을 운영하고 있다. 나카지마 히로토(中島寛人) 최고과학자는 딥러닝(기계 학습)을 통해 기사 페이지 클릭률을 세 배 이상 높이고, 만화 캐릭터를 이용해 영상 뉴스를 자동으로 만드는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그는 “빠른 기계 학습을 위해 양자 컴퓨터를 미디어에 접목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
총회 마지막 날, 마지막 발표는 후안 세뇨르(Juan Seor) 이노베이션미디어컨설팅그룹 대표가 맡았다. 그는 “2023년부터는 구글 크롬도 제삼자가 고객 데이터(쿠키)를 수집해 맞춤형 광고에 활용할 수 없도록 할 예정”이라면서 “직접적인 독자 데이터를 가진 미디어 기업에는 황금과 같은 기회가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제시한 미디어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은 14개(콘텐츠 판매, 데이터 발굴, 커뮤니티 운영, IT서비스 제공, 브랜드 라이선스, 교육, 후원, 이벤트, 광고대행사, 마케팅 대행, 물건 판매, 아카이빙, 게임, 싱크탱크 등)에 이른다.
그가 마지막으로 강조한 것은 저널리즘 그 자체다. 이 비즈니스 모델이 작동하는 토대는 ‘팩트 파인딩(fact-finding, 사실 찾기)’에서 오는 독자 신뢰이기 때문이다. 세상이 아무리 변하고 비즈니스 모델이 바뀌어도 ‘저널리즘만이 저널리즘을 구한다’는 원칙만은 바뀔 수 없다는 것이다. 3년 만에 열린 세계뉴스미디어총회 2022는 ‘#저널리즘이중요하다’로 시작해 ‘저널리즘만이 저널리즘을 구한다’라는 금언으로 마무리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