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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제작기] 경향신문 <투명 장벽의 도시> 취재기
취재기·제작기 | 등록일 : 2022-12-30

우리나라 대도시의 겉모습은 매끈하다. 고층 빌딩과 잘 닦인 도로, 편리한 교통망. 그러나 한 꺼풀을 들추고 보면 보이지 않는 장벽이 곳곳에 자리한다. 장애인, 어린이, 노동자, 노인에 이르기까지 약자들이 우리 사회에서 부딪히는 보이지 않는 장벽을 마주해 본다. 편집자 주

 

얼마 전 회사 편집국이 있는 6층의 여자 화장실 세 칸 중 한 칸의 문고리가 고장나 사용이 금지됐습니다.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 중 한 칸이 줄었을 뿐인데, 화장실 앞에서 대기해야 하는 시간이 늘었습니다. 한창 일을 하다 잠깐 화장실에 가려고 나왔는데,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자 곧바로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회사 화장실은 6층뿐 아니라 7층, 5층에도 있습니다. 화장실이 정말 급했다면 한 층 위나 아래로 가면 바로 화장실을 쓸 수 있었을 것입니다. 기다려야 했던 시간도 2분 남짓, 딱히 길다고는 할 수 없는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일하는 회사의 화장실은 수시로 청소가 돼 깨끗하고, 비누와 핸드타월도 충분히 준비돼 있습니다. 화장실 갈 때 눈치 주는 사람도 없습니다. 이렇게 평소에는 화장실 이용에 아무런 불편이 없는데, 어쩌다 생긴 잠깐의 대기 시간조차 견디지 못하는 스스로를 보며 창간 기획 취재 때 만났던 수많은 취재원이 떠올랐습니다.

 

매끈한 도시의 껍질을 벗기다

 

경향신문 창간기획팀은 2022년 76주년 창간 기획으로 <투명장벽의 도시>라는 제목의 시리즈를 연재했습니다. 총 5회로 구성된 이 기획은 우리가 사는 도시의 보이지 않는 ‘투명장벽’들에 대해 다뤘습니다. 

 

기획의 시작은 ‘노키즈존’이었습니다. 창간 기획 아이템을 논의하던 중 팀원 한 명이 ‘노키즈존에 대해 당사자인 어린이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한 100명쯤 인터뷰해보고 싶다’는 말을 했습니다. 당사자인 어린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창간 기획이니만큼 조금 더 포괄적인 주제를 다뤘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마침 장애인 지하철 시위로 장애인 이동권 문제가 연일 보도되던 때였습니다. 나이가 어린 사람은 들어갈 수 없는 카페나 식당, 장애가 있는 사람은 탈 수 없는 교통수단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지 않을까. 노키즈존 취재 아이디어를 낸 팀원이 말했습니다.

 

“‘성벽’이라는 단어로 묶어볼 수 있지 않을까요? 누구는 들어갈 수 있고, 누구는 들어갈 수 없는 곳.”

 

이 생각을 조금 더 구체화해보기로 했습니다. 식당, 카페, 지하철처럼 ‘누구나’ 갈 수 있는 공간인데 어린아이나 장애인은 갈 수 없다면, 다른 공간 중에서도 그런 곳이 분명 있을 것 같았습니다. 화장실이 떠올랐습니다. 신축 아파트 천장에서 현장 노동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인분이 담긴 비닐봉지가 나왔다는 뉴스와 함께. 일하다 용변이 보고 싶으면 화장실에 가는 게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누군가 화장실에 가지 않고 그 자리에서 비닐에 용변을 봤다면, 분명히 그렇게 하게 된 이유가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린아이와 장애인, 특정한 일을 하는 노동자가 성벽에 가로막힌 사람들이라면, 비슷하게 취약한 특성을 가진 이들은 또 누가 있을까요. 마지막으로 떠올린 것은 노인이었습니다. 세상은 갈수록 더 빠르게 변합니다. 그 속도를 따라가기 힘든 많은 노인에게 요즘의 편리하고 효율적인 공간들이 어떻게 비칠지 궁금했습니다.

 

‘요즘 도시’의 모습을 한 번 그려봤습니다. 매끈하게 다듬어진 도로의 아래위로 지하철과 버스가 구석구석을 다닙니다. 좋은 식당과 카페는 계속 늘어납니다. 아파트 단지마다 어린이들을 위한 놀이시설이 있습니다. 공중화장실은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깨끗하고 시설이 좋은 편이라고들 합니다. 최근에는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키오스크로만 주문을 받는 매장들, 아예 사람이 없는 무인 매장들도 늘고 있습니다. 도시는 이렇게 편리하고 효율적입니다. 취재팀은 편리와 효율이라는 도시의 껍질을 한 겹 들어내 보기로 했습니다. 껍질을 벗기자 그 안의 투명하지만 견고한 장벽들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기획을 다듬으며 ‘성벽’ 대신 ‘장벽’이라는 단어를 쓰기로 했습니다). 이 장벽은 예상대로 장애가 있는 사람, 나이가 어리거나 많은 사람, 어떤 일터의 노동자들 앞에 주로 있었습니다. 장벽의 형태도 다양했습니다. 취재팀이 처음 떠올린 것은 주로 물리적인 장벽이었는데, 취재를 진행하면서 보니 차별과 혐오, 무관심이라는 장벽이 더 단단한 것 같았습니다. 장벽 앞에 선 당사자들을 만나 이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기로 했습니다.

 

이동 수단이 되지 못하는 지하철과 버스 <투명장벽의 도시> 첫 화는 장애인 허혁 씨의 탈시설 이후 삶을 다룹니다. 그는 교통사고로 몸 일부가 마비된 중증장애인입니다. 30년간 그의 공간은 장애인 거주 시설 안의 자기 방으로 한정됐습니다. 시설 밖 도시의 공간이 변화와 성장을 거듭하고 확장하는 동안, 그의 공간은 갈수록 좁아지고 열악해졌습니다. 그는 탈시설 후 자신의 “지역(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넓어졌다”고 말합니다. 시설 밖으로 거주 공간을 옮기며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여지는 늘었지만, 아직까지 그 앞에 놓인 장벽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이동권 문제가 가장 큽니다. 건강한 신체를 기준으로 한 도시 공간은 그 자체로 중증장애인인 그에게 장벽이 됐습니다. 지하철과 버스는 그와 같이 전동휠체어를 탄 이들에겐 이동 수단이 되지 못합니다. 2020년 기준 전국에 휠체어가 탈 수 있는 저상버스의 도입률은 27.8%(시내버스)에 불과하고, 그마저도 서울(57.8%)에 편중돼 있기 때문입니다. 나머지 지역은 저상버스 도입률 10%대에 머무는 곳이 많고, 아예 0%인 곳도 있습니다.

 

서울에 사는 허혁 씨도 출근할 때는 버스나 지하철 대신 장애인콜택시를 이용합니다. 택시 어플을 열면 몇 초 안에 일반 택시와 빨리 배차되는 택시, 모범 택시 등 택시의 종류까지 선택해서 탈 수 있는 세상인데, 그는 출발해야 하는 시간보다 무려 한 시간이나 전에 택시를 불렀습니다. 장애인콜택시 수가 부족해 한 시간은 기다려야 배차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하철 승하차라는 평범한 행동을 장애인들이 하면 시위가 되어버리는 현실에서 허혁 씨 앞에 놓인 장벽은 여전히 견고해 보였습니다.

 

 

허혁 씨와 김점지 씨가 서울 구로구의 집으로 향하는 언덕길을 함께 오르고 있다. 허혁 씨는 장애인거주시설에서 30년을 지내다 2020년 여자친구인 김씨와 함께 장애인시설을 나와 보금자리를 꾸렸다. 지금은 공공일자리를 얻어 매일 출근한다. Ⓒ강윤중 경향신문 기자

 

 

아이들이 갈 수 있는 공간은 어디일까

 

두 번째 회차에서는 이번 기획의 씨앗이 되었던 어린이들을 만났습니다. 부모님들의 동의를 받고 진행한 인터뷰에서 아이들은 노키즈존이 왜 차별이고 부당한지에 대해 예상보다 훨씬 조리 있게 비판했습니다.

 

“어린이를 위한 안전한 공간을 만드는 것보다 더 쉽고 비용도 적게 들어서 (노키즈존을) 만드는 것 같아요.”(예원이)

“차별을 받은 경험이 있는 아이는 남을 차별하는 어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서현이)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지난 2017년에 노키즈존을 ‘나이를 이유로 한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어린이들의 입장을 금지하면 함께 온 부모도 자연스럽게 그 공간에 진입할 수 없게 된다는 점에서 노키즈존 장벽이 배제하는 대상은 생각보다 훨씬 많습니다. 취재를 진행하며 노키즈존에 대한 문제의식은 ‘그럼 아이들이 갈 수 있는 공간은 어디일까?’로 확장됐습니다. 보통 ‘요즘 아이들은 학원 가느라 놀 시간이 없다’고들 합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을 만나며 절대적인 시간보다는 ‘아이들의 시간을 모을 수 있는’(최이명 박사) 공간, 아이들이 마음 놓고 머물 수 있는 공간 자체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됐습니다.

 

노키즈존이 어린이들을 대놓고 배제한다면, 어린이들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조성된 놀이공간이나 그런 공간 자체의 부재는 어린이들에게 또 다른 장벽이 됐습니다. 놀이터를 만들어야 하긴 하지만 ‘어떤 놀이터여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아이들의 동선이나 발달 단계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는 놀이공간이 많습니다. 장애가 있는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 역시 마찬가지죠. 아파트가 아닌 주택가의 경우에는 공간적 특성 때문에 더욱 적절한 놀이터를 찾기 힘들었습니다. 이 회차는 같은 지역 안에서도 다른 특성을 가진 동네를 오가며 취재를 진행했지만, 불필요한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구체적인 동네 이름은 밝히지 않았습니다.


‘화장실 장벽’의 뿌리는 ‘낮은 노동 의식’

 

취재팀이 세 번째로 주목한 장벽인 ‘일터 내 화장실’은 다른 회차들과는 조금 결이 달랐습니다. 장애인을 고려하지 않은 교통수단이나 노키즈존이 물리적으로 이들의 진입을 막는다면, 노동자들의 화장실 이용을 막는 장벽은 훨씬 복합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동·방문 노동자의 경우는 일단 동선 내에 화장실이 없으면 화장실 이용이 어려웠습니다. 노동자들을 직접 만나기 전에는 ‘업무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가’라는 고민도 있었지만,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이동·방문 노동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화장실에 가지 않기 위해 스스로 수분 섭취를 극도로 제한하다 방광염을 앓게 되는 흐름은 아무리 봐도 정상적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부터도 가스 점검원을 동행 취재할 때, 어떤 집에서 고맙다며 준 비타민 음료를 마시지 못했습니다. 날은 덥고 목은 말랐지만 화장실을 갈 수 없다는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죠.

 

 

김서희 부기관사가 서울역에서 열차 출발 전 화장실에 가기 위해 전력 질주하고 있다. 기관차에 화장실이 없어 기관사들은 짧은 정차 시간 안에 객차나 역사 구내의 화장실에 다녀와야 한다. Ⓒ성동훈 경향신문 기자

 

 

물리적으로 화장실을 제공하기 어려운 노동 조건이라면 일을 하다 짬을 내 화장실을 갈 수 있는 방법을 사업주가 먼저 고민해야 맞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노동자는 ‘각자 알아서’ 화장실 문제를 해결하고 있었습니다. 화장실이 노동 조건으로 취급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국내에도 해외에도 ‘일터 화장실’에 대한 연구는 거의 없었습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2021년 발간한 <여성노동자 일터 내 화장실 이용 실태 및 건강 영향 연구> 보고서가 거의 유일했고, 이 보고서를 작성한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만나야 할 이들을 추렸습니다. 취재원들의 일터는 다양했지만, 화장실이 노동 조건이 아닌 점은 모두 같았습니다. ‘화장실 장벽’을 생기게 한 원인은 화장실의 물리적 부재, 압축적인 노동 시간, 공간 설계 시의 미고려, 차별이나 혐오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있었지만, 그 뿌리에는 공통적으로 ‘낮은 노동 의식’이 있었습니다.

 

디지털화된 도시 노인에겐 생존의 문제

 

노인 회차에서는 디지털화되는 도시에서 노인들이 처한 상황에 주목했습니다. 노인들이 도시에서 겪는 어려움은 다양할 수 있습니다. 도시의 여러 공간이 노화된 노인의 신체보다는 건강하고 젊은 신체를 기준으로 만들어져 있는 것, 기대수명이 늘며 역사상 가장 긴 시간을 노인으로 살아야 하는데, 경제적으로 빈곤한 이들이 많은 것도 문제입니다. 취재팀은 이런 문제들도 다루되, 이 기사에서는 ‘디지털 장벽’에 조금 더 집중했습니다. 노화에 따른 어려움, 경제적 빈곤은 과거에도 있었던 문제라면 디지털화는 현대 도시에서 사는 노인들이 겪게 되는 비교적 새로운 종류의 어려움이기 때문입니다.

 

일상과 관련된 대부분의 서비스가 디지털화되고 있는 도시에서 스마트폰을 자유자재로 쓸 줄 모른다는 것은 단순한 불편을 넘어서는 문제입니다. 남들이 저렴한 가격으로 쉽게 누리는 것들을 비싼 가격으로 힘들게 습득해야 하는 것은 물론, 어떤 것들은 포기해야 합니다. 어찌 보면 생존의 문제입니다.

 

이 회차에서는 경향신문 다이브팀과 협업하여 인터랙티브 콘텐츠도 만들었습니다. 서울디지털재단의 ‘고령층 친화 디지털 접근성 표준’에 따라 ‘모두를 위한 키오스크’를 직접 만들어볼 수 있는 페이지입니다. 키오스크 첫 화면을 어떻게 해야 디지털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지, 메뉴는 어떤 카테고리로 배치해야 알아보기 쉬운지 같은 것들을 선택해볼 수 있습니다.

 

시리즈를 기획하며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를 다룬다는 것에 대한 부담이 있었습니다. 당사자들 목소리를 조금이라도 더 생생하게 담기 위해 신문지면에 나가는 기사 외에 온라인 전용 콘텐츠로 인터뷰를 일문일답 형식으로 정리했고, GIF 영상을 붙였습니다. 노키즈존과 화장실 회차는 ‘놀이 지도’와 ‘화장실 지도’를 직접 당사자들이 손으로 그렸고, 이 과정을 영상 콘텐츠로도 기획했습니다. 다행히 매 회차가 나갈 때마다 포털사이트와 SNS에서 기사가 적지 않게 공유됐고, 공감의 댓글도 많이 달렸습니다. 고용노동부에서는 화장실 장벽 기사가 나간 뒤 설명 자료를 내 대책 마련에 나서겠다고 했습니다. 

 

“현재 진행 중인 현장 실태 조사 결과를 토대로 해외 사례 비교와 이해관계자 의견수렴 등을 거쳐 조속한 시일 내에 화장실 설치와 관련된 세부적 기준을 마련할 예정”(고용노동부)

 

너무 익숙해져서 이제는 보이지도 않는 투명한 장벽. 기획 한 번으로 이 장벽이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단 한 명에게라도 이런 장벽이 우리 사회에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을 환기하고, 경계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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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자 : 김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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