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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할 때 입는 옷. 일하는 사람들이 하루의 대부분을 입어야 하는 작업복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 경향신문 취재팀이 전국 각지의 노동자들을 만나 들은 그들의 작업복 이야기를 따라가본다. 편집자 주
기자로 일하는 동안 제 복장은 부서가 바뀔 때마다 조금씩 바뀌었습니다. 처음 입사해 사회부 사건팀에서 경찰서를 돌 땐 주로 운동화에 활동하기 편한 티셔츠와 바지를 입었습니다. 특별한 복장 규정이 있진 않았지만, 갑작스럽게 누군가의 빈소 같은 사건 현장에 가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화려한 무늬나 튀는 색상의 옷은 잘 입지 않았습니다. 법원을 담당할 때는 사건팀에 있을 때보다 조금 더 정장 같은 옷을 입었습니다. 매일 만나는 취재원들이 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정장을 갖춰 입는 이들이어서, 자연스럽게 그와 비슷한 옷을 찾았던 것 같습니다. 이후 기획 취재팀에서 내근할 때는 훨씬 자유롭게 편한 옷을 입었습니다.
사실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현장을 관찰해 기사로 쓰는 기자의 일에서 옷차림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인터뷰이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을 만한 깨끗하고 단정한 옷이면 충분합니다. 취재원과 비슷하게 옷을 입는다고 취재가 잘 되는 것도, 옷을 아무렇게나 입었다고 취재가 안 되는 것도 아니지요. 그런데 일할 때 입는 옷이 일의 효율, 나아가 안전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면 어떨까요. 회사에서 갑자기 업무 내용과는 상관없고 불편하기까지 한 옷을 입으라고 강요할 땐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당신은 무슨 옷을 입고 일하시나요>(이하 <작업복 기획>)는 일하는 사람이 입는 옷에 주목한 기획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하루 중 가장 긴 시간을 일하는 데 쏟습니다. 일터에서 일하는 사람의 처지를 보여줄 수 있는 요소는 많습니다. 시간당 임금, 일하는 시간, 고용 형태 등등. 저희는 그보다 조금 더 손에 잡히는, 구체적인 것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었습니다. 일하는 동안 반드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도 공감할 수 있을 만한 것은 무엇일까. 매우 중요하지만 너무 당연해서 아무도 깊게 신경 쓰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 이런 질문을 통해 작업복이라는 키워드를 뽑아냈습니다.
작업복이란 무엇일까
보통 ‘작업복’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입는 옷입니다. 주머니가 있는 조끼나 긴 소매 상의, 상의와 비슷하거나 진한 색상의 바지 정도죠. 그런데 공장이라도 다 다른 제품을 생산할 텐데, 왜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이라고 하면 비슷한 옷만 떠오르는 걸까요. 식품 공장에서 음식을 생산하는 것과 자동차 공장에서 차를 조립하는 것은 분명 다른 일인데, 그럼 작업복도 작업할 때 쓰는 도구도 다르지 않을까요. <작업복 기획>을 구체화하는 일은 이런 질문에 끊임없이 답을 해 나가는 과정이었습니다.
작업복이라고 하면 통상 옷만 의미하지만, 기획에서는 ‘일할 때 몸에 붙어있는 모든 것’으로 그 범위를 넓혔습니다. 장갑, 건설 현장에서 차는 안전대(안전그네), 안전화나 고무장화 같은 것들을 작업복으로 통칭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일하는 시간 동안 옷이나 피부와 다름없는 것이니까요. 서비스직의 옷은 보통 ‘유니폼’이라고 불립니다. 유니폼 또한 일(작업)을 할 때 입는 옷이니, 작업복이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어떤 일을 하는 사람들의 작업복을 보여줄지를 두고 팀원들과 오랜 논의를 했습니다. 여러 직업의 사진을 찾아봤지만, 사진만 봐서는 모두 비슷한 옷을 입고 일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눈으로 봐서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다양한 직업 종사자들에게 무작정 전화를 걸어 사전 취재를 했습니다. 어떤 옷을 입고 일을 하는지, 불편함은 없는지, 왜 불편해도 개선되지 않는지. 그 내용을 놓고 다시 회의했습니다. 본격적인 취재에 들어가기 전 가장 긴 시간을 들인 작업이었습니다. 최종적으로는 하수·폐기물·재활용품 관련 업종 같은 일반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공간에서 일하는 사람들, 남성 중심의 사업장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 산불재난특수진화대원들, 학교 급식 조리사들, 호텔과 프랜차이즈 음식점에서 일하는 서비스 노동자들을 다루기로 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이들의 작업복
<작업복 기획>의 첫 회는 하수 처리, 쓰레기 소각, 재활용 선별 업종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첫 회는 전체 내용을 포괄하면서도 흡인력 있게 시작하고 싶었습니다. 2~5회차의 주제가 거의 정해질 때까지도 첫 회의 주제를 정하지 못하고 오래 고민했습니다.
그러다 나온 아이디어가 ‘맨홀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작업복’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도심 어디에나 있지만, 실제 맨홀 안을 본 사람은 몇이나 될까요. 가끔 나오는 맨홀 관련 기사들마저 주로 그 안에서 발생한 사고에 관한 것들입니다. 맨홀 안은 습하고 어둡습니다. 하수와 쓰레기가 섞여 흐르고, 그 사이로 벌레와 쥐가 다닙니다. 이런 공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어떤 작업복을 입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사전 취재를 하며 기자가 맨홀에도 들어가 보고, 여기저기 취재 협조를 구했지만, 생각보다 맨홀만으로 취재를 이어가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맨홀을 ‘지하 공간’으로 확대했습니다. 우리가 매일 쓰는 물을 처리하는 하수 처리장, 쓰레기를 태우는 소각장, 쓰레기와 섞인 재활용품을 선별하는 선별장이 지하에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취재 과정에서 처음 알았습니다. 생각해 보면 쓰레기 수거 차량도 늘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늦은 밤이나 새벽 시간대에만 돌아다닙니다. 아침 출근길에는 깨끗하게 비워진 쓰레기통만 보게 되지요. 우리의 일상과 가장 밀접하게 연관된 일을 하는 이들, 사회의 필수 노동을 하면서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이들이 어떤 옷을 입고 일하는지를 첫 회에서 다룬다면, 기획 취지를 잘 살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안다고 생각했지만 몰랐던 것들
‘솔직히 다 아는 얘기 아닐까?’ 어떤 기사를 쓰려고 할 때마다 드는 생각입니다. 건설, 제조업 현장에서 소수인 여성 노동자들의 어려움, 신분이 불안정한 산불재난특수진화대원의 고충, 학교 급식 조리사들의 고된 노동, 서비스직 종사자들이 겪는 부당한 일들. 기획에 등장하는 직업 종사자들의 각종 어려움은 이미 많은 기사에서 다뤄졌던 것들입니다.
작업복이라는 틀로 접근해 취재하면서 ‘다 알기는 무슨, 아는 게 하나도 없었네’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습니다. 산불이 점점 잦아지는 요즘, 여러 기사를 통해 산불재난특수진화대원들에 대해 많이 알게 됐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산속에서 불을 끌 때 헬기에서 붓는 물을 맞고 불 끄는 사람들의 옷이 얼어버릴 수도 있다는 것은 몰랐습니다.
여성 건설 노동자들 몸에 맞는 작은 사이즈의 안전화가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서 양말을 세 켤레씩 신고, 깔창까지 덧대어 신는다는 것은 몰랐습니다. 맞지 않는 것을 바느질해서 수선해 입는지도 몰랐습니다.

학교 급식 노동자들의 옷은 특히 충격적이었습니다. 수백 인분, 많게는 1,000인분이 넘는 음식을 이렇게 적은 수의 노동자들이 척척 만들어낸다는 사실에 놀랐고, 그 음식을 만드는 과정이 생각보다 너무나 위험하다는 것에 또 놀랐습니다. 학교 급식 노동자들의 노동 환경은 최근에 폐암 문제가 불거지면서 주목받았습니다. 많은 기사와 영상을 통해 접했던 노동 환경이었지만, 눈으로 본 급식실은 정말 위험한 산업 현장이었습니다. 면장갑과 고무장갑만 겹쳐 낀 채 급식 조리사들의 손이 뜨거운 김이 펄펄 나는 물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펜을 쥐고 있던 손에 힘이 꽉 들어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호텔과 프랜차이즈 식당에서 일하는 서비스 노동자들의 작업복을 취재하면서는 일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조직의 존재 여부가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됐습니다. 기사에는 다 담지 못했지만, 규모가 큰 사업장에서 일하는 호텔 종사자들의 경우 나름의 노조가 잘 조직돼 있어 유니폼 디자인과 성능 등을 정할 때도 이런저런 의견을 낼 수 있었습니다.
여러 부서와의 협업
<작업복 기획>은 여러 부서의 협업으로 완성됐습니다. 스포트라이트부, 사진부, 데이터를 분석하고 인터랙티브 콘텐츠 등을 만드는 데이터저널리즘팀과 뉴콘텐츠팀 내의 영상 PD들이 작업복이라는 키워드로 모였습니다.
사진부와의 협업은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기획취재라고 해도 보통은 ‘누구를·어떤 현장을 취재하기로 했고, 이런저런 식의 사진이 필요하다’ 정도로 의견 공유를 합니다. 하지만 이번 기획은 처음부터 ‘이미지가 중요하다’는 전제 하에 시작했습니다. 총 5회짜리 기획에 통일성을 부여하는 공통 사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습니다. 사진 자체로 기획의 주제 의식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첫 촬영을 며칠 앞두고 회사 구내식당에 올라가 테스트 샷을 찍었습니다. 핀 조명을 세우고 새로 구입한 배경천 등을 바꿔가며 여러 장의 사진을 찍었습니다. 일터라는 배경에서 작업복을 입은 인물에만 강한 조명을 비춘 작업복 사진은 이렇게 탄생했습니다.
이 사진을 위해서는 한 가지 조건이 필요했습니다. 인터뷰이의 일터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거나, 그 일터와 최대한 비슷한 공간에서 사진 촬영을 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일터와 작업복 사이에 느껴지는 어색함을 포착하고 싶었습니다. 이런 공간을 섭외하는데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스토리가 있어도 사진 촬영 등 이미지로 구현하기 어려우면 보류한다’는 기준을 세웠습니다. 내용적으로는 다뤄보고 싶었지만, 이 조건을 충족시키기 어려워 이번 기획에서는 전하지 못한 이야기들도 많습니다. 언젠가 전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데이터저널리즘팀은 텍스트로 다 풀어내지 못한 ‘디테일’을 새로운 콘텐츠로 만들어 냈습니다. 인터뷰이들이 입는 작업복의 가격, 규격, 소재처럼 기사로는 담기 어려운 정보들을 인터랙티브 콘텐츠로 구현했습니다. <나의 작업복> 인터랙티브 콘텐츠는 인터넷 쇼핑몰을 모티브로 했습니다. 기사에 간단히 언급만 하고 넘어간 여러 작업복에 대해 한발 더 나아간 정보를 전달해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상팀은 총 5편의 기획 중 2편에 해당하는 영상을 제작했습니다. 처음 <작업복 기획>을 구상할 때 마음속으로 세운 원칙이 있었습니다. ‘슬프게 다루지 말자’는 것이었습니다. 독자들에게 ‘힘든 일 하니까 안됐다, 옷이라도 좋은 걸 줘야지’ 같은 마음보다는 ‘멋있다. 대단하다. 감사하다’는 마음이 들었으면 했습니다. 사회에 꼭 필요한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작업복’은 당연히 주어져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영상팀이 제작한 재활용 선별원, 산불재난특수진화대원의 영상을 보면 자신이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멋있는가를 느낄 수 있습니다.
작업복만 바뀐다고 다 바뀌진 않겠지만
<작업복 기획>의 프롤로그에는 “작업복만 바뀐다고 일터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진 않을 것이다”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데스킹 과정에서 다듬어졌지만, 원래 이 문장은 조금 더 길었습니다. ‘우리는 작업복만 바뀌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보지 않았다. 어떤 사업장은 작업복이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아마 대부분 작업복만이 문제는 아닐 것이다.’ 이 문장을 썼던 이유는 ‘작업복을 바꾸자’는 것이 자칫 노동 현장의 더 심각하고 복잡한 문제를 외면한 채 겉모습만 바꾸자는 것처럼 보일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습니다.
기획을 마무리한 지금은, 작업복 같은 ‘최소한의 조건’도 잘 갖춰지지 않은 일터에서, 그보다 더 심각하고 복잡한 문제가 해결될 가능성은 크지 않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작업복 문제에 관한 단일한 해결책은 없을 것입니다. 모든 일터의 상황은 다르기 때문입니다.
다만 매일 입는 옷이 불편하진 않은지, 진짜로 안전한지 같은 것들을 실제 그 옷을 입는 사람들에게 직접 물어보는 것은 어떤 일터에서나 반드시 필요해 보입니다. 당사자들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