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상세
원칙은 원칙이고 현실은 현실이었다. 취재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기사화해 독자의 신뢰를 높여야 한다는 명제에 반대하는 기자는 없다. 적어도 필자의 동료 기자들은 이 저널리즘 기본 원칙에 반대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러나 어떤 취재 과정을 기사화할지, 기사로서 가치가 있을지, 독자들이 궁금해 할 사안인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시각이 있었다. 현실적으로 모든 취재 과정을 기사화할 수도 없고, 그럴 이유도 없었다. 결국 취재 과정을 기사화했을 때 의미가 있으려면 특정 조건들이 필요해 보였다. 이 글에선 취재 과정을 보도하기 어려운 현실적 이유에 대해 정리해보고자 한다. 현실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실현 가능한 대안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앙 일간지 등에서 근무하는 5년 차 기자 두 명, 9년 차 기자 한 명, 12년 차 기자 한 명, 13년 차 기자 한 명, 16년 차 기자(차장급) 한 명, 24년 차 기자(부장급) 한 명 등 총 일곱 명의 기자에게 의견을 구했다. 필자는 13년 차 기자다.
기사와 공적설명서는 엄연히 다르다
우선 한국기자협회의 ‘이달의 기자상’ 공적설명서에 언급된 내용들은 왜 기사화되지 않았을까. 실제로 매달 출품된 기사들의 공적설명서를 보면 웬만한 기사보다 잘 읽히고 기사화해도 좋을 만한 내용들이 눈에 띈다. 공적설명서에는 기획 의도와 취재 배경, 만난 취재원 수, 이 과정에서 접한 어려움과 기사의 의미까지 자세하게 기술돼 있다. 필자 입장에선 경쟁 업체의 영업 비밀을 훔쳐보는 스릴감도 들고, 취재 기자가 겪었을 고생에 공감하다가, 묘한 경쟁의식도 느낀다. 공적설명서를 읽고 기사를 다시 보면 행간에 감춰진 기자의 노력도 발견할 수 있어 기사의 신뢰도도 올라간다. 좋은 기사를 추천해달라는 후배에게 이달의 기자상 수상작을 알려주며 기자협회 홈페이지에 올라온 공적설명서도 꼭 읽어볼 것을 권했다.
그러나 분명히 해둬야 할 게 있다. 기사와 공적설명서는 엄연히 다르다는 점이다. 공적설명서의 목적과 독자는 명확하다. 공적설명서는 심사위원에게 이 기사를 왜 수상작으로 선정해야 하는지 근거를 대는 과정이다. 글쓴이 입장에서 목적과 독자가 분명하기에 기사를 쓰는 것보다 수월하다. 얼마나 치열하게 취재했는지 독자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기술할 수 있어 심리적으로도 부담스럽지 않다. 독자가 귀한 시간을 쪼개 이 글을 왜 읽어야 하는지 고민할 이유도 없다. 꽁꽁 숨겨진 공적설명서를 굳이 찾아서 읽는 독자라면 그들이 체감할 가독성은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기사는 다르다. 독자는 불특정 다수로 확대되고 목적도 공적설명서만큼 분명하지 않다. 독자가 ‘다 읽으니 자기 자랑이었다’라고 느낄 것 같으면 기자 대부분은 자기 검열을 한다. 뉴스라는 확신이 서지 않으면 이를 기사화하는 것 자체가 조심스럽다. 기사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신뢰성을 높이는 것도 좋지만 ‘과연 독자가 궁금해 할까?’라는 의문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기사를 신문 지면으로 연속성 있게 접하는 독자는 거의 없고 포털 사이트에서 파편화된 온라인 기사로 접하는 독자들이 대부분이다 보니 염려는 현실적이다. 취재 과정이 기사화됐을 때 다른 기획 기사들과 분절되고, 전체 맥락을 알지 못하는 독자들에게 취재 과정을 담은 기사는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 ‘일기는 일기장에 써라’라는 비아냥거리는 댓글을 보고 싶은 기자는 없다.
지면 한계 있지만 독자 서비스라면
2018년 서울신문 탐사기획부 재직 당시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 보도에 참여했다. 판결문 200여 개를 확보하고, 법원도서관에서 확인한 판결문에 명시된 가해자 주소를 외우고 가해자들을 만나 인터뷰에 성공할 때까지 지난한 과정을 거쳤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을 보도하지는 않았다. 가까운 미래에 기획을 책으로 재구성한다면 포함할 만한 내용이라 생각했고, 실제로 책으로 출간할 때 취재 과정을 상세히 담았다. 보도 당시 내용이 독자가 반드시 알아야 하는 중요한 내용인지 자문했을 때 확신이 서지 않았다. 자연스레 보도의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지면 사정도 녹록지 않았다. 총 8회, 25개 지면에 걸쳐 방대한 내용이 보도됐지만 취재했던 내용들을 넣기에도 빠듯했다. 취재부터 보도까지 약 3개월이 걸렸는데, 분주하고 빽빽한 시간이었다.
다만, 1회(2018년 9월 3일 자) 1면 기사에는 200자 분량으로 어떻게 취재했는지 기록했다. 조사 방법을 궁금해 할 독자들을 고려한 장치였다. 초고에는 더 자세하게 적었지만, 기사 작성 과정에서 축소했던 기억이 있다. 1,600자 분량의 기사에 취재 과정을 200자 이상 적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최대한 내용을 압축했고, 정제해 담았다. 돌이켜 생각해봐도 취재 과정을 기사화한다는 게 선뜻 상상이 안 된다. 저널리즘 원칙의 당위성에 따라 한 꼭지 작성한다면 맨 마지막 회에 넣는 것을 고려해볼 만한 것 같다.
그리고 실제로 그러한 보도들이 나오고 있다. 지난 4월 제392회 이달의 기자상(기획보도 신문·통신 부문)을 수상한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의 <표류생사의 경계에서 떠돌다>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팀장인 조건희 정책사회부 기자는 시리즈 출고를 마친 4월 18일 동아일보 홈페이지를 통해 <흔한 사건의 이면으로 독자를 초대하기>라는 기사를 올렸다. 주제 선정부터 기사 출고까지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상세하게 적었다. 기획 과정에서 ‘접었던’ 사례도 구체적으로 기록했는데, 인상적이다. 조 기자는 기사에서 ‘정부 회의록을 통해 같은 대책이 반복돼온 문제를 지적하자는 기획은 속기록이 남아있는 회의가 거의 없었던 탓에 무산됐다. 상반되는 두 환자의 현재를 대조하자는 기획은 막상 구현해보니 시각적으로 심심했다. 둘 다 접었다’고 적었다. 실패한 취재를 기사화한다는 건 선배들에게 배우지 못했던 기사 문법이다. 히어로콘텐츠팀의 ‘표류’ 시리즈는 응급실과 구급차에서 37일을 보내며 26명의 표류 환자와 그 가족을 인터뷰해 호평을 받았다.
조 기자는 “기사가 어떻게 제작됐는지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이 많아 취재 과정을 담은 ‘인사이드’ 기사를 작성했다”며 “이 기사를 통해 시리즈 독자가 동아일보 홈페이지로 유입되는 하나의 경로가 될 수 있겠구나 싶었다. 독자 서비스 차원에서 작성한 기사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기사는 지면에 싣지 않고, 지면 기사에는 취재 방법을 압축적으로 적었다고 했다.
기사 형태 고집할 필요 없어
기자가 취재 과정을 기사화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건 한국 언론 전반의 문화·관행과 관계가 깊은 것 같다. 중요한 내용을 먼저 서술하는 스트레이트 기사 중심의 기사 작성 문화에선 특히나 그렇다. 언론사 입사를 준비할 때나 입사 후 선배들로부터 기사 작성 교육을 받을 때 기자는 제삼자일 것을 강요받았다. 르포르타주를 쓸 때도 취재 대상이 분명했고 기자 자신이 드러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어디서도 배운 적 없었던 기사 형태기에 취재 과정을 기사화한다는 것에 생소함을 느끼고, 기자가 주어로 나서야 하는 부담감도 분명한 것 같다. 기자 개인의 시각, 관점을 드러내는 내러티브 기사 쓰기 문화가 확산하면 취재 과정을 드러내는 기사 작성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지도 모르겠다.
글 서두에도 언급했듯 자신의 의견을 밝혔던 기자 모두는 취재 과정을 투명화해야 한다는 원칙에는 동의했다. 다만 취재 과정을 기사화해야 한다는 당위성에 대해선 동의하지 않는 기자도 있었다. 24년 차 부장급 기자는 “독자들이 취재 과정을 궁금해 할지 의문이고, 설령 그렇다 해도 특정 소수의 기사에 해당할 것”이라며 “취재 과정을 기사화함으로써 투명성을 높일 수 있겠지만, 불필요한 익명성부터 줄이는 게 기사 투명성을 해결하는 첫걸음”이라고 말했다. 16년 차 차장급 기자는 “기사의 전체적 흐름을 고려해 이를 손상하지 않는 선에서 취재 과정을 드러내야 하는데 그런 테크닉을 구사하기 쉽지 않다”며 “취재 과정을 기사화하는 건 전사적 공감대가 필요하다. 기사 중간에 이를 녹이려면 일선 기자부터 데스크, 편집기자까지 공감대가 있어야 변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취재 과정을 밝히는 데 있어서는 꼭 기존 기사화 형태를 고집하는 대신, 우리 언론 환경과 문화에 맞게 바꾸면 될 것 같다. 대안 중 하나로 기사에 각주 처리를 하는 것도 방법이다. 기존 스트레이트 기사 형태를 유지하면서도 변화한 디지털 환경에 얼마든지 적용할 수 있다. 빌 코바치와 톰 로젠스틸이 쓴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에도 이러한 내용이 언급돼 있다. 온두라스의 10대 소년이 어머니를 찾기 위해 미국으로 여행하는 이야기를 보도한 LA타임스의 2002년 <엔리케의 여행(Enrique’s Journey)> 보도 사례를 예로 들었다. 책은 “각주를 통해 인용과 특별한 장면 등에 대한 내용을 상세히 처리했다”며 “700단어가 넘게 사용된 각주는 기사의 가독성을 높이고, 독자에게는 세밀한 취재 과정을 충분히 알게 해줬다”고 했다. 별도의 기사 처리가 우리 언론 환경에서 부담스럽다면 각주를 시도해 보는 것도 투명성을 높이는 좋은 방법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