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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률이 OECD 국가 중 1위인 우리나라는 자살 보도 시 직접적인 단어 대신 ‘극단적 선택’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관행처럼 쓰이는 이 용어의 문제점을 짚어보고 자살 예방을 위한 언론의 역할을 확인한다. 편집자 주
언제부터, 어떻게 사용됐나
언젠가부터 자살 사건 혹은 관련 주제를 다루는 보도에는 ‘자살’이란 용어 대신 ‘극단적 선택’이란 표현이 통상적으로, 그리고 압도적으로 많이 쓰이고 있다. 정확한 시작 시점이야 알 길이 없지만, 다수의 기자가 무언의 합의에 따라 해당 표현을 자주 사용하는 것이다.
기억을 더듬어 언론에서 자살을 극단적 선택으로 부르는 방식이 일반화된 주요 지점을 꼽으라면, 2003년 고 정몽헌 회장의 사망 즈음이 아니었나 싶다. 물론 당시에는 극단적 선택이라는, 흡사 정형화된 표현을 헤드라인으로 사용하지는 않는 분위기였다. 자살 사건을 보도하며 ‘자살’이란 용어를 굳이 쓰지 않을 이유가 명확하게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심지어 요즘엔 금기시하는 자살의 도구나 방법까지 적나라하게 쓰는 헤드라인도 많았다. 따라서, 극단적 선택이란 표현은 기사 작성에서 일종의 보조 역할을 담당하는 ‘묘사어’로서의 기능을 수행했다고 보는 편이 맞다.
당시 해당 용어와 표현이 사용된 일부 보도 사례들을 살펴보면, 전형적인 쓰임새를 파악할 수 있다. “나중에 공개된 유서 내용에는 극단적인 행동을 선택한 원인이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았다”1), “괴로워하시기는 했지만, 이처럼 극단적인 선택을 할 줄은 전혀 몰랐다며 애통해했다”2), “왜 투신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으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었을까”3) 등, 다수 언론은 당시 자살이란 용어를 자유롭게 사용해도 무방한 상황에서 본문 중 사건을 설명하며 해당 표현을 보조적으로 활용하는 모습을 보인다. 물론 ‘극단적’이란 용어와 ‘선택’이란 단어를 기사의 문맥에 맞게 개별적으로 쓰는 모습도 자주 관찰된다. “‘충격적이다. 극단적 방법밖에 없었나’ 라며 고 정몽헌 회장의 자살에 안타까운 애도를 표하고…”4), “왜 죽음을 선택했을까. (중략) 왜 새벽 집무실에서 투신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통해 삶을 마감했을까”5) 등이다.
본 사건 후에도 당연히 자살은 이어졌으며, 사회적으로 회자될 정도의 인물이 유사한 방식으로 사망하는 사례도 끊이지 않았다. 그때마다 예외 없이, 앞서 설명한 고 정몽헌 회장 사건을 다루는 방식과 비슷한 형태로 극단적 선택이란 용어의 활용은 한동안 계속됐다. 이후, 극단적 선택이란 용어가 자살 사건을 지칭하는 ‘대표적이고 일반적인’ 표현으로 자리잡는 현상은, 2013년 발표된 ‘자살보도권고기준 2.0’과 궤를 같이한다. 보건복지부가 언론인과 정신과 전문의, 보건학자 및 미디어 연구자들과 함께 기획해 마련한 자살 보도 관련 제언들이다.
당시 제정 과정에 위원으로 참여했던 기억을 살려 보자면, 회의에서 가장 중요하게 논의된 의제가 바로 ‘자살’이란 용어에 대한 문제였다. 언론과 미디어에서 자살이란 용어를 덜 쓴다고 해서 갑자기 자살률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겠지만, 당시 너무나 빈번하고 선정적인 방식으로 무분별하게 쏟아지던 자살 관련 용어 사용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에 대한 이슈였다. 언론과 미디어 등 콘텐츠를 만드는 주체들이 가급적 자살이란 용어를 쓰지 않도록 하는 효과적인 방법에 대해 고민했다. 많은 논의를 거쳐, 마침내 자살보도권고기준 2.0의 1번과 2번 원칙은, “언론은 자살에 대한 보도를 최소화해야 합니다”와 “자살이라는 단어는 자제하고 선정적 표현을 피해야 합니다”로 정해졌다.

자살보도권고기준 제정과 언론의 선택
2013년 9월 10일 ‘세계 자살예방의 날’을 맞아 발표된 자살보도권고기준 2.0은, 기존 윤리강령 등으로 존재한 바 있고 언론사에서 개별적으로 보유하고 있던 자살 보도 관련 가이드라인을 모두 참고해 주무 기관인 보건복지부가 제작, 한국기자협회에 공식적으로 전달했다. 이처럼 통일되고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주요 배경에는 2011년 최고점을 기록할 만큼 심각했던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있다. 2022년 기준 한국의 자살률은 OECD 국가 중 1위를 기록하는 상당히 심각한 수준(10만 명당 26명)이지만, 2011년에는 이보다 높은 수치인 10만 명당 무려 31.7명을 기록할 정도였던 것이다. 원인이야 다양하게 지적할 수 있겠지만, 2008년 최진실 씨 등 유명 연예인들의 잇따른 자살과 그에 따른 베르테르효과 또한 명확하게 나타났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김은이·송민호·김용준 2015; 유현재 2013).
사상 최고의 자살률이 연달아 보고되던 상황에서 자살 예방에 대한 목소리는 본격적으로 높아졌다. 더 이상 자살을 개인적인 사안으로만 접근할 것이 아니라, “사회적 타살”로 받아들여 다양한 노력을 실행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게 된 것이다(파이낸셜 뉴스, 2013). 자살 유발과 관련 있을 것으로 보이는 사회 내 모든 변수를 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졌으며, 자살 사건을 보도하는 언론과 미디어의 역할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됐다(한창현·유현재·정휘관·한택수·서영지, 2018). 각종 플랫폼을 통해 양산되는 자살 용어와 장면이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토론도 이어지게 된다(유현재, 2012).
이 같은 사회적 흐름을 배경으로, 복지부와 당시 중앙자살예방센터가 관련 전문가들과 협업하여 만든 성과물이 바로 자살보도권고기준 2.0이다(유현재, 2016). 자살보도권고기준 2.0의 9개 원칙 중 핵심은, 결국 언론과 미디어의 자살 용어 사용 자제였다. 하지만 자살 사건이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지는 현실에서, 이를 보도해야 하는 언론의 책무를 생각하면 결코 쉬운 문제는 아니었다. 결국 이 같은 역설적 상황에 대한 언론의 선택과 해법이 바로 극단적 선택이란 용어의 일반화가 아니었을까 판단한다. 다수의 언론은 그렇게 무언으로 합의된 규칙을 지속적으로 준수한 것이다.

그 결과 시간이 흘러, 천천히 하지만 명확하게 규범화된 표현인 극단적 선택은 10년 이상 많은 기자가 활용하고 있는 ‘비공식적 공식 용어’가 되었다(유현재, 2022). 해당 보도나 기사를 접하는 대중 또한, 자살에 준하는 개념으로 당연히 받아들이고 있다.
자살보도권고기준 2.0은 2018년 3.0 버전으로 개정 및 보완되며 새로운 변화를 맞게 된다. 자살보도권고기준 3.0이 기존 2.0과 비교해 주요하게 달라진 특징은 기존의 9개 항목에서 5개 항목으로 축소됐다는 점이다. 3.0 제정 위원회에는 실제 현업에서 활동 중인 언론인들이 다수 참여했으며, 기자들이 자살 기사를 작성할 때 ‘실질적으로’ 준수할 수 있는 원칙들을 만들고자 노력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기존 9개 항목 중 일부가 삭제됐으며, 당시 미디어 환경에 부합하는 내용이 추가되기도 했다. 예를 들어, 기존 2.0에 있었던 “사회적 문제 제기를 위한 수단으로 자살 보도를 이용해서는 안됩니다”는 삭제된다. 물론, 문제 제기 자체를 목적으로 자살 사건을 이용하려는 접근은 여전히 지양되어야 하지만, 송파 세 모녀 사건과 관련 법 제정 등 언론이 자살을 심층적으로 다루며 입법과 정책화로 이어진 사례들이 있었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더불어, 사건에 대한 정보 전달에 그치지 않고, 자살 예방 정보를 기사와 함께 제공해 달라는 요청도 추가됐다. 유명인 자살 보도를 할 때, 일련의 원칙들이 더욱 엄격하게 지켜져야 한다는 주문도 3.0에는 포함됐다.
항목의 삭제와 추가 등 변화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살’이란 용어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는 방향성은 유지됐다. 단, 2.0에는 자살이란 용어를 가급적 자제해야 한다는 단순한 요청만 있었지만, 3.0에는 용어에 대한 일부 대안을 제시했다. “기사 제목에 ‘자살’이나 자살을 의미하는 표현 대신, ‘사망’, ‘숨지다’ 등의 표현을 사용합니다”라고 요청한 것이다. 이는 주로 미국 등 서방에서 자살의 개연성이 높아 보이는 사건에도 사망(Deceased)을 포함해 중립적인 표현을 사용했던 사례들(예: 로빈 윌리엄스 사망, 2014년)에 착안해 제안한 것이다. 3.0을 통한 별도 용어의 제언이 있었지만, 언론인들은 사망 등의 중립적 표현보다는 기존의 극단적 선택을 더욱 정형화해 사용했다. 오히려 더욱 많은 수의 언론인이 거의 예외 없이 사용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고도 볼 수 있겠다(서울신문, 2023년 4월 30일).
‘극단적 선택’의 대안은?
얼마 전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회에 설치된 자살위기극복 특별위원회에서는 “자살은 결코, 선택일 수 없습니다!”라는 메시지를 국민에게 전달하며 ‘자살=선택’의 고질적 명제를 개선하여 자살률을 낮출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바 있다(뉴스1, 2023년 4월 28일). 사실 자살이란 개인의 최종적 선택인 것은 당연히 맞다. 자살의 공식적인 용어로 사용되는 표현이 ‘고의적 자해’인 배경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같은 이성적인 팩트에도 불구하고 특위 차원에서 “자살은 결코 선택일 수 없습니다!”를 강조한 이유에 대해서 곱씹어 볼 필요를 느낀다. 2020년 기준 무려 1만 3,195명이 ‘선택’에 의해 생을 마감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죽음의 문제를 제발 선택의 대상으로 보지 말아 달라는 외침으로 들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물론, 자살률을 줄이는 근본적 방안은 자살이 아예 떠오르지 않을 만큼 행복한 여건을 만드는 작업일 것이다. 하지만 더 나은 사회를 만들려는 노력에 동반해, 세계 최고의 자살률을 기록 중인 나라의 대중에게 행동의 선택지에서 제발 자살을 지워달라는 메시지를 강조하는 것 또한 적절하게 들리기도 한다. 이 같은 메시지는 자동적으로, 그동안 자살을 선택이라 부르던 언론의 관행에 대해서도 재고를 요청한다(서울신문, 2023년 4월 30일). 물론, 그동안 언론이 극단적 선택이라는 용어를 사용해온 것은 자살이란 말과 관련 상황을 가급적 내보내지 말자는 사회적 요청에 부응한 선의의 협조였다. 자살보도권고기준 등, 법적 체계는 아니지만 사회가 처한 난관을 개선하고자 정부가 만들어 제시한 권고를 수용하며 협업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여전히 자살 사건을 보도해야 하는 숙명을 가진 언론에게 ‘극단적 선택’의 대안은 무엇이 있을까?
개인적으로는 지난 2018년 자살보도권고기준 3.0에서 제시한 죽음에 대한 중립적 표현들을 고려하면 어떨까 싶다. ‘사망’이나 ‘숨지다’ 등 팩트를 건조하게 묘사하는 방법도 있겠고, 고인에 대한 예의를 담아 ‘운명을 달리했다’ 등의 표현이 무난한 상황도 있겠다. 많은 분이 반문할 수도 있다. 기사의 맥락을 접하면 너무나 쉽게 자살이 떠오를 텐데, 왜 굳이 중립적인 표현을 일부러 써야 하냐고 말이다. 물론 그러하다. 기사에 ‘사망’으로 표현된다 해도, 기사를 접한 다수는 자살 사건 여부에 대해 쉽게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특정 누군가가 혹시라도 자살이란 용어와 정보를 접하고 자신의 고된 삶을 투영하며 부정적 심리로 전이된다는 ‘베르테르 효과’를 경험하지 않게 된다면, 충분히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이는 필자가 자살률이 최소한 OECD 평균으로 떨어지기 전까지는, 자살이란 용어에 대해 여전히 보수적이어야 한다고 믿는 이유다. 더불어, 뻔하게 느껴지는 이 같은 ‘조심함’은 사람들에게, 언론과 사회 전체가 자살을 막기 위해 갖은 수단을 전방위적으로 동원 중이라는 절박함도 전달할 수 있다고 본다. 자살 예방에 대한 경각심을 환기하는 홍보의 역할이란 뜻이다. 명확한 효과야 보장할 수 없겠지만, 연간 1만
3,195명이 자살로 죽는 상황에서, 뭘 못 하겠는가.
자살 막는 언론의 적극적 선택 희망하며
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률에 대해, 특정한 하나의 이유를 짚어 고착된 현상을 설명할 순 없을 것이다. 동일한 맥락에서, 자살률을 떨어뜨리기 위해 실행해야 하는 사안도 단일할 수는 없다. 코로나19라는 심각한 보건 위기의 극복을 위해 많은 변수가 동원된 것처럼, 또 하나의 보건 위기인 자살 또한 사회의 모든 주체와 구성원이 해결을 위해 참여해야 한다고 본다. 언론과 미디어도 결코 예외일 수 없으며, 그 중요성은 여타 주체들에 비해 극단적으로 중요하다.
언론이 콘텐츠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특정한 용어 사용을 지양하거나 이미지 사용에 유의하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자살 예방 노력으로 판단된다. 특히 10대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인 우리의 상황과 청소년 자살이 좀처럼 줄지 않는 환경에서 미디어를 통해 유통되는 자살 콘텐츠와 표현, 용어에 대한 주의는 이미 많은 연구자가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사가 수행할 수 있는 더욱 적극적인 노력은 자살 사건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매개로서의 역할을 넘어서는 과업이다(전진아 외, 2022). 사건이 발생하지 않은 평소에도 자살 예방을 위한 심층 보도를 진행할 수도 있고, 자살 예방을 위한 공익광고 등을 기획해 언론 스스로가 독자, 이용자와 적극적으로 소통할 수도 있겠다. 자살은 우리 사회 구성원의 삶과 죽음과 관련한 진정한 민생(民生) 사안이다. 자살을 막는 언론의 보다 과감하고 적극적인 선택을 기대해 본다.
1) 심인성·이율,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 투신자살(종합2보)>, 연합뉴스, 2003.8.4,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00425815?sid=102
2) 조일훈, <[정몽헌 회장 투신자살 ‘충격’] 왜 ‘자살’을 선택했나>, 한국경제, 2003.8.4,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15/0000635591?sid=102
3) 이준호, <“대북사업 평가 악화에 스트레스”>, 경향신문, 2003.8.4,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32/0000027237?sid=102
4) 김종태·오남석, <여야 “민족의 아픔 대변” 애도>, 2003.8.4,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1/0000039528?sid=102
5) 공종식, <[정몽헌회장 자살 충격]경영난-비자금수사로 사면초가>, 동아일보, 2003.8.4,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0/0000199721?sid=100



